읍성의 복원과 고증 읍성(邑城)



어제 올린 안동 동헌의 복원에 관하여 많은 관심가져주셨는데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경우 읍성내에 있는 각종 관아건물과 체성에 관한 복원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지방자치단체가 스토리텔링이라는 개념으로 예전에 있었던 부분을 복원하려고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발굴을 통하고 많은 시민들과 함께 고민하고 또 많은 자료를 모으고 시민들과 토론 후에 복원을 해야함에도 그렇지 못하고 관에서 추진하는 방식으로 하다보니 문제점이 나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제 이야기한 안동시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기관 모두가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그중에 구미시에서 추진한 선산읍성에 관하여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선산읍성에 관련된 네이버백과사전을 보면 "경북 구미시 선산읍 동부리 1호광장 사거리에 있다. 선산읍성 남문은 조선시대 선산도호부와 선산군의 관문으로, 문 위에 문루(낙남루)가 있었다. 선산읍성은 고려 말 토성으로 쌓았다가 조선시대에 석성으로 개축하고, 1790년 ~ 1811년에 두 차례 중수한 읍성으로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허물어졌다. 18세기 중엽 출간된 《여지도서》에 따르면, 둘레는 1,449척, 높이는 9척이며 동서남북으로 문이 있었다고 한다. 성산읍성 남문과 낙남루는 2002년 12월 20일 복원되었으며, 낙남루 앞에 선정비 23기가 있고 서쪽 도로 한 켠에 죽림사터삼층석탑이 복원되어 있다." 라고 적혀있는데 조금 보강한다면 선산읍성의 경우 지방읍성에 드물게 외성과 내성의 구조로 되어 있으며 외성은 1638년 감사 이명웅과 부사 이각이 쌓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명웅의 경우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병자호란때 인조를 남한산성에 호종했는데 경북 칠곡에 있는 가산산성을 축조하였다고 합니다.

그런 선산읍성의 경우 우리나라에 있는 여느 읍성과 같이 일제강점기때 없어졌는데 2002년 재건하였는데 소요된 경비는 14억원이라고 합니다.

선산읍성의 남문과 낙남루 그리고 남측 체성의 일부가 재건이 되었는데 자세히 보시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것으로 보입니다. 2002년 재건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요즘 복원하는 성곽에 사용하는 방식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화강석을 네모 반듯하게 잘라서 체성으로 사용중인 모습인데 너무 인공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래도 조금은 참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도 정면은 봐줄 수 있는데....(그렇다고 해서 좋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요즘에 복원하는 것과 비교하면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아래 나올 선산읍성 이미지출처 : 청솔객이 걷는길
뒷면을 보면 이건 뭐라고 이야기해야 하나 할말이 없을 정도라는 것이 마땅할 것 같습니다. 일부 체성을 축성해도 이런 방식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나주읍성의 경우도 일부 복원을 하였지만 이 방식은 아니었고 부산진성의 경우도(물론 부산진성의 경우도 화강석으로 두부짜르는 것 처럼 해놓았지만요) 경사가 지는 방식으로 복원을 하지 않았는데 왜 이런 방식이었을까요?
그런데 문제는 낙남루에 있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시면 이상한 것이 없는지요. 낙남루를 가기위해 있는 협문을 지나가야 하는데 협문옆에 있는 문루여장이 벽돌입니다. 일제강점기때의 사진을 보면 우리나라 읍성들 대부분이 문루여장을 벽돌로 되어 있어서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잘못 되었을까요? 낙람루 추녀마루를 보면 5개의 잡상이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잡상이란 궁전이나 전각의 지붕위 네 귀에 여러가지 신상(神像)을 새겨 얹은 장식 기와를 말합니다. 잡상의 임무는 하늘에 떠도는 잡귀를 물리쳐 건물을 지키는 일로 궁궐이나 관아의 건물,도성의 성문에 많이 있는데 왕조의 기강을 보여주는 것과 함께 잡귀를 막고자 한 민간 신앙의 하나인 셈입니다. 

잡상의 설치 시기는 중국 송대의 영향을 받아 조선시대에 우리 나라에 들어와 임진왜란 이후에 성행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잡상이 설치되어 있는 건물로는 정전,왕의 침전,궁성의 정문,궁궐안의 누정,왕릉,왕비릉,원묘의 정자각,성균관,동궐 등으로 한정되며 민가,서원,사원,지방 향교에는 잡상을 설치하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잡상의 수는 5,7,9,11개 홀수로 왕과 관련된 건물은 주로 9개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위에서 설명한 잡상과 달리 선산읍성 남문인 낙남루에 잡상이 있습니다. 이게 어찌 된 것일까요? 물론 복원한 것이지만 동래읍성 북문, 김해읍성 북문, 거제읍성(고현성)의 누각에 잡상이 없습니다. 또 낙안읍성, 고창읍성, 무장읍성, 나주읍성에 있는 누각에도 잡상이 없는데 유독 선산읍성 낙남루에만 있을까요? 답은 하나입니다. 고증이 잘못되었다.





아래에 나오는 전주시에 있는 전주 동헌 풍락헌의 모습으로 최근(2011년 4월)에 복원한 것입니다. 전주 동헌인 풍락헌 복원의 경우 아주 운이 좋은 형식이었는데 일제강점기때 일제가 새 전주군청사 건립을 위해 1934년 동헌을 철거하고 부재들을 전주 류씨 종중에게 매각했던 것을 류씨 종중에서 전주시에 기증을 함으로 예전 자재를 이용하여 복원을 하게 되었는데 다만 예전 동헌 자리가 아니고 장소가 옮겨서 복원을 합니다. 이런 방식을 이중건(移重建, 건물을 그대로 옮겨 짓는 방법)이라고 하네요. 또 전주 동헌은 애초 7칸이었다가 일제 강점기때 매각하면서 6칸만 남았다고 합니다. 복원하면서 6칸은 예전 자재로 1칸은 요즘 자재로 복원을 했습니다.  
전주 동헌 이미지출처 : 쏠쏠한 일상
또 무엇보다 1920년대 전주동헌의 사진이 있는 것이 복원을 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위 사진과 비교하면 거의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철저한 고증작업을 거쳐 원형 그대로 복원하였다고 하던데 맞는 것 같습니다. (필자도 가보지 못하다 보니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아래 사진을 보면 창문을 단 것이 나오는데 일제강점기때 지방 관아건물중 남아있는 것은 이런 방식이더군요.

전주 동헌의 경우 중간에 현판이 있지 않고 우측 1칸 옆에 있는데 이런 사소한 부분의 경우 사진이 없었다면 알 수가 없는 모습인데 사진이 있다보니 복원을 해도 정상적으로 복원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현재는 풍락헌이라는 당호를 사용하지만 예전에는 음순당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또 전주 동헌의 경우 운이 좋은 이유가 있는데 바로 세월입니다. 그동안 오래된 목조건물이 아니라 그나마 최근 건물이라는 것입니다. 전주 동헌의 경우 건물이 오래되어 낡고 퇴락해 무너진 것을 판관 서노수가 개건을 했다고 합니다. 그 후 고종 27년(1890년)년에 화재로 소실이 되었는데.다음 해인 고종 28년(1891년) 판관 민치준이 중창을 합니다. 그후 1934년에 일제가 강제로 철거하여 매각을 결정하고 류씨 종중이 사들이고 다시 전주시에 기증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저 전주동헌의 경우 120년전에 지은 건물입니다.

전주 동헌의 경우 대청마루를 기준으로 좌우에 있는 상방과 협방이 없고 좌측에 상방과 협방이 있는 특이한 구조로 되어져 있으며 문은 모두 걸쇠로 올릴 수 있게 되어져 있습니다.  
이상과 같이 문화재 관련 된 것 복원이라는 부분을 할때에는 철처한 조사도 있어야 하고 운도 있어야 합니다. 그냥 대충 했다고 함면 국민들의 혈세만 날아가는 경우가 발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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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MessageOnly 2011/06/16 16:11 #

    전주 동헌의 경우 건물자체는 잘 지어놓았는데요. 관아건물인 동헌이 향교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이 좀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지금 골목 하나 사이를 두고 향교 곁에 있거든요. 전주 자체가 조선시대에는 관찰사가 있는 대도시였고, 무엇보다 조선 왕조가 '전주 이씨'였기 때문에 부가적으로 경기전같은 시설물들도 있기에, 향교는 전주성내가 아닌 성외에 배치되었습니다. 지금 배치라면 관아가 성외에 배치된 형국인거죠.

    이런 부분은 아쉽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전주 관아건물들은 죄다 철거되었고 본래 위치는 현재 시내 중심가에 있기 때문에 땅값이 비싼 그곳에 이전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부득이 저곳에 옮겨지은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구 도심지를 매입하여 전라감영을 복원하려는 계획이 있다고는 하는데 쉬운일은 아니죠. 풍락헌이 있는 곳은 10년전쯤만해도 저 곳(땅)은 일반시민들이 사는 거주지였습니다. 전주시에서 한옥마을의 한 축으로 전주향교를 선택했고, 정책적으로 전주향교 주변 거주지를 매입하고 철거한 후에 전주 일대에 있는 한옥 건물을 옮겨 지어놓은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연고가 김제 있는 고택도 저 곳으로 옮겨지기도 했고, 새로운 건물도 지어지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효과는 저렇게 한옥마을답게 고택으로 전주향교 주변을 감싸버리고 하다보니 카메라 촬영을 해도 현대건물이 잘 보이지 않게 되었고, 그 덕분에(?) '성균관스캔들'같은 드라마 촬영지로 쓸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건물도 그 드라마에 나옵니다. 당연히 관광객도 늘어났고요.
  • 팬저 2011/06/16 18:49 #

    예... 말씀하신 것 처럼 현재의 동헌의 경우 엉뚱한 곳에 있습니다. 원래 하삼도의 경우 읍성 외부에 향교가 있습니다. 그 향교 옆에 동헌을 짓는 것은 맞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구 도심권안에 복원을 할 경우 엄청난 예산이 소요되기 때문에 향교옆에 지은 것으로 보입니다. 전주의 경우 전라감영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면서 조선의 축으로서의 기능을 했기때문에 복원이라는 카드를 가져오면 좋겠지만 만만치 않는 예산이 소요될 것이라 시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문제일 것으로 보입니다.
  • MessageOnly 2011/06/16 19:53 #

    전라감영 쪽은 전라감영터에다가 전라북도청을 지어놨는데, 서부 신 도심권으로 도청사을 옮겨 지었기 때문에 전라감영을 복원하여 짓기에 부지확보는 어느 정도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위 동헌건물은 이런 자리도 아니고 완전히 사유지인데다 제법 큰 쇼핑건물들이 즐비한 상업지구로 가야하기 때문에 더 힘들겁니다. 전주 객사주변이 상업지구라서 상권이 옮겨지지 않는 한 굉장히 어려운 일이지요. (물론 예전에 비해 상권이 많이 죽었지만 =_=;;)

    전주시는 구 도심권은 전통문화도시로 활용하여 관광자원화하려고 하는 것 같긴합니다만...워낙 예산이 들어가는 일이고, 복원한다고 그 만큼 들어간 비용만큼 관광수입을 올리기가 쉬운 일은 아닐겁니다. 시민들을 설득하는 것은 수입증대쪽이 답일테니 어렵긴 마찬가지 같습니다. 그래도 경기전 주변 땅을 매입하여 복원하거나, 향교주변에 고건축물을 올리는 걸 보면 상당히 의욕이 있어보이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전주는 그래도 다른 도시들에 비하면 조건이 좋은 편이니 조금씩 지어나가는 식의 방법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4대문을 복원하겠다고 하는데....이것은 좀 두렵습니다. 흔적이 없는 건물을 올리겠다고 하는 것이니 만큼 요즘 많이 보이는 현대건축물들과 같은 걸 지어올릴 것같은 불안이 가시질 않습니다.

  • 팬저 2015/01/23 16:14 #

    구 도심권의 문제는 전주뿐 아니라 전국적인 현상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창원 마산의 경우도 전주와 마찬가지로 도심재생사업에 선정이 되었죠.
    보통 지자체의 경우 하드웨어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쓰다보면 예산은 들어가는데 효과가 별로없죠^^ 이렇게 사용하지 않으면 예산이 나오지 않으니까 멀쩡한 도로 파헤치고 가로등 바꾸고 그렇게 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곳의 경우 많은 예산이 투입되고 있는데 효과는 글쎄요~ 그래서 저는 하드웨어 보다는 소프트웨어에 집중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 예로 대구문화재단에서 사용하는 방법이 좋은 방법중 하나이더군요. 도심골목투어 말입니다. 전주의 경우도 이런 부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창원의 경우도 동문 복원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4대문 복원은 생각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기존의 체성부분에 대한 관리가 이루어져서 발굴이라도 있었으면 합니다.
    또 무엇보다 4대문의 복원도 필요하지만 읍성이 지나갔던 체성에 관하여 흔적이라도 표시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런 사소한 것도 하지 않으면서 4대문과 같은 큰 것을 바라는 것은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전주의 경우 히스토리텔링이 잘 발달되어 있는 곳입니다. 이런 부분을 응용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 바람불어 2011/06/17 00:15 #

    확실히 읍성이나 산성보다는 전국 각지에 두루 남아있는 관청에 관한 게시물이 인기가 있네요.
    향교나 관청은 그나마 흔해서 그런것같습니다. ^^;

    대구도 경상감영 건물 두 채를 근래에 다시 고쳤죠. 벽을 만들었습니다. 그전까지는 모르는 사람들이 '조선시대엔
    벽도 없는 건물에서 일 하고, 벽도 없는 마룻바닥에서 잠을 잔건가요?'하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죠.
  • 팬저 2011/06/17 09:33 #

    관청은 우리가 옆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물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향교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경상감영은 아직 가보지 못했는데 한번 가보아야 겠네요.
  • 역사관심 2011/10/14 04:52 #

    부산 진성에 대해 관심이 가서 예전 포스팅을 읽고 있습니다. 저런 성이 진짜 존재했다고 믿기가 어렵군요 (임진왜란 초기에 저 모습이라고?).
    특히나 검은벽돌로 시멘트칠한것 같은 저 모습 (시멘트 맞나요?), 저건 그냥 현대건축같군요.

    요즘복원하는대로 예산이 되면 다시 하면 합니다- 보통 중요한 성이 아닌데 말이지요. 읍성급도 아니고.
    (잡상은 진짜 아무 생각없이 턱턱 올려놓는군요).
  • 팬저 2011/10/14 07:24 #

    임란초기의 부산진성을 복원한 것은 아닌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7~80년대 복원한 것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잡상의 경우는 조금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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