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왜성_04 마산왜성축성시 사용한 돌은 어디에서 가져왔을까? 왜성(倭城)



마산왜성의 경우 정유재란 당시 축성한 것이라고 나옵니다. 마산왜성 축성에 관한 여러가지 의문이 드는 것이 있더군요. 첫째가 마산왜성 축성시 사용한 성돌의 경우 어디에서 가져왔을까?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과연 어디에서 가져왔을까요?
▼ 마산왜성 축성시 사용한 돌은 어디에서 가져왔는지에 대한 연구나 논문이 없더군요. 또 아무도 이부분에 대하여 이야기 하시는 분이 없더군요. 그러던중 필자가 합포진성으로 추정하는 곳인 창동일대와 마산왜성의 천수각이 있는 곳까지 거리를 측정해보니 생각보다 상당히 가깝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직선거리로 1.2km로 되지 않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합포진성의 경우 석성이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것 같다라는 것입니다. 고려때 사용한 회원현성의 경우 토성이라 사용하기 힘이들었을 것이지만 합포진성의 경우는 충분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정유재란 당시 축성한 울산왜성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더군요. 경상좌병영성 동헌과 직선거리로 대략 2.3km고 울산읍성 동헌과 직선거리로 1.7km입니다. 그런데 일본군들은 그래도 조금 가까운 울산읍성에서 돌을 가져와서 울산왜성을 축성하였습니다. 그래서 울산읍성의 경우 조선후기를 가면서 읍성의 기능은 상실하게 됩니다.
▼ 마산왜성과 가까운 웅천왜성을 보면 마산왜성과 합포진성이 상당히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웅천읍성을 중심으로 보았을때 3km안에 명동왜성,자마왜성,웅천왜성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웅천왜성의 지성으로 사용했다고 하는 명동왜성의 경우 웅천읍성과 직선거리로 3km고 웅천왜성의 경우 웅천읍성과 직선거리로 1.9km 정도이고 자마왜성의 경우 1.5km정도 됩니다. 웅천왜성의 경우 제포진성과 직선거리로 1.6km입니다. 웅천왜성의 천수각에서 잰 거리이고 웅천왜성의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 끝에서 측정한다면 웅천읍성과는 대략 1.5km정도입니다.
▼ 위 웅천왜성과 웅천읍성까지의 거리 울산읍성과 울산왜성과의 거리를 보았을때 마산왜성과 합포진성까지의 직선거리는 가장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정도의 거리라면 일본군들이 합포진성의 돌을 이용하여 마산왜성 축성시 사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 마산왜성에서 북측을 보면 나오는 것이 경상우병영성인데 경상우병영과는 직선거리로 3km이고 창원읍성과는 직선거리로 6km정도 됩니다. 위에서 나온 울산왜성과 같이 병영성과 3km정도 유지를 한다는 것이 신기하지 않습니까? 물론 경상좌병영성과 울산왜성과 거리가 조금 더 가깝지만 걸어서 간다면 모두 1시간안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경상우병영성과는 거리가 3km정도 되니까 아무래도 1.2km 떨어진 합포진성의 돌을 가져오는 것이 더욱 더 편하게 진행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통해 한반도에 축성한 왜성주위에 있는 조선의 읍성 및  진과 진성 도표로 필자가 임의로 작성한 것입니다. 여기를 보면 왜성의 경우 조선의 읍성이 있거나 수군 진성이 있었던 곳과 가까이에 축성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는 아무래도 왜성축성시 사용할 돌을 가져 오기 편한 이유때문이라 추정합니다. 물론 꼭 돌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기는 힘이들지만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것은 사실로 보입니다.

  왜성의 명칭

읍성

진성

동래왜성

동래읍성

 

부산왜성

 

부산진성

자성대왜성

 

부산진성

기장 죽성리왜성

기장읍성

두모포진성

서생포왜성

 

서생포진성

울산왜성

울산읍성, 경상좌병영성

 

신답왜성

김해읍성

 

웅천왜성

웅천읍성

제포진성

명동왜성

                  웅천읍성

제포진성

자마왜성

웅천읍성

            

안골왜성

 

안골진성

고성왜성

고성읍성

 

영등왜성

 

영등포진성

장문포왜성

 

장문포진

남해왜성

남해읍성

 

마산왜성

경상우병영성, 창원읍성

 구, 합포진성

가덕왜성

 

가덕진성

눌차왜성

 

가덕진성

양산왜성

양산읍성

 

호포왜성

양산읍성

 

예전 토성터를 이용한 왜성

사천왜성

                  사천읍성

선진리토성

구포왜성

                  동래읍성

 


▼ 제포진성이 있는 곳에서 본 제포진의 안내판입니다. 여기를 보면 1437년 합포에 있었던 수군기지(수군첨절제사 종3품)가 이곳으로 옮겨온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러니까 합포진성의 경우 1437년 이후 폐성이 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사용하지 않았지만 합포진성은 어느정도 성(城)의 기능을 하고 있었을 것이고 여기에 있는 돌을 가져 갔을 것으로 보입니다.  
▼ 합포진성의 경우 고려말 몽고군과 함께 일본을 점령하기 위해 만든 수군진으로 추정이 되며 당시 수 많은 선박을 만들고 그 선박의 수리를 위해 굴강이 필요하였을 것입니다. 그러한 흔적들이 일제강점기까지 남아있었고 현재 굴강의 자리는 매립이 되었지만 흔적은 남아있습니다. 이렇게 보았을때 합포진성은 고려말 번성하기 시작했다가 인근 웅천에 제포왜관이 들어서면서 수군기지의 필요성때문에 제포로 옮겨가면서 기능을 상실했다가 정유재란과 함께 마산왜성을 축성하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성돌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면서 그 기능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추정합니다. 이미지출처 : 허정도 박사 
▼ 마산왜성에서 또 하나 의문이 드는점은 용마산 주위로 바닷물은 얼마큼 들어왔을까 하는 것이었는데 예전에 한번 발제글을 올렸습니다. 발제글 보기  아래 그림의 경우 바닷가를 추정한 그림으로 필자가 이야기한 부분과 비슷하면서 바닷물이 더 많이 들어왔네요. 아무튼 이 부분은 발제글에서 이야기하였으니 생략합니다. 이미지출처 : 잊어버렸네요. 다시 알아보고 이미지 출처 바로 잡겠습니다.
▼ 세번째로 의문이 드는 것이 그럼 마산왜성에 있었던 일본군들이 사용한 선소는 어디에 있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용마산의 우측편 현재 마산도서관이 있는 곳의 경우 바위가 있는 곳이라 배가 정박하기가 힘이 들었을 것으로 보이고 예전 오산진이 있었던 곳이 유력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오산진의 경우도 위 발제글에 있습니다. 오산진이 있는 곳이 아니라면 현재 용마초등학교나 합포중학교가 있는 용마산 북측일 가망성이 있다는 것이고 이도 아니라면 합포초등학교가 있는 곳 세곳 중 하나일 가망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왜성의 경우 선소가 기본적으로 있었는데 다른 곳과 달리 마산왜성에 관한 자료가 없다보니 선소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필자가 추정하는 것은 근거를 가지고 하는 것은 아님을 밝혀 둡니다.
네번째로 드는 것이 지성(支城)입니다. 왜성의 경우 축성을 하면서 본성과 지성을 가지고 축성하는데 웅천왜성의 경우 웅천왜성이 본성이고 명동왜성, 자마왜성이 지성으로 사용하였고 안골왜성의 경우 안골왜성안에 본성과 지성을 가져 가는 구조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왜성들도 그렇게 하였을까요? 예 그렇습니다.

웅천왜성과 같은 방식의 왜성을 보면 죽도왜성의 경우 죽도왜성이 본성이고 구포왜성과 신답왜성이 지성으로 사용하였고 서생포왜성의 경우 서생포왜성이 본성 울산왜성이 지성의 개념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또 우리가 잘 아는 부산왜성의 경우 부산왜성이 본성이고 자성대왜성이 지성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나서 자성대왜성 자리에 부산진성을 다시 축성합니다. 조선후기에 고지도나 문헌에 분명히 부산진이라고 불리었는데 일제강점기 이후 이상하게 자성대가 있는 곳에 부산진지성이라고 하는데 이는 저번에도 이야기 했지만 잘못된 것입니다. 부산진지성은 위에서 살펴보았던 것과 같이 본성을 보좌하는 지성을 부를때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산진지성이라고 불리는 것은 일본인들의 시각에서 보았을때 부산왜성을 보좌하는 성을 이아기하는데 자성대왜성의 경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사용한 것이 전부입니다. 그 이후 300년이상 사용한 부산진성의 고유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일본인들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부산진지성이라는 명칭은 잘못 된 것입니다. 지성이야기하다가 딴 곳으로 갔네요)

같이 자신이 있는 곳에 본성과 지성으로 사용하였던 곳은 남해왜성, 순천왜성이었고 김해죽도왜성의 경우는 구포왜성, 신답왜성을 지성으로 사용하면서 죽도에 본성과 지성을 두는 구조로 되어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산왜성의 경우 지성이 있었을까요? 필자도 이 부분에 관하여 맞다 아니다라고 답변드리기 힘이 듭니다. 왜 발굴조사나 문헌조사가 이루어진 것이 없기때문입니다. 그래서 필자도 지성에 관하여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노비산의 명칭을 알고 나서 이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비산에 관한 백과사전을 살펴보면 " 옛날에는 용마산과 맥이 붙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신작로 공사로 분리되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 현재는 떨어져 있는 용마산과 노비산의 경우 붙어있었다면 상당히 가로로 긴 형태의 산이 됩니다. 아래 지도에 나오는 빨간점이 있는 곳이 마산왜성의 천수각자리라면 노비산에 빨간점이 있는 곳까지는 대략 900미터 거리차이가 납니다. 여기에 육지에서 오는 적을 막기위한 지성이 있었다면 어떻게 될까요? 일본군의 입장에서 방어에 유리할 수 있습니다. 합포진성에서 경상우병영성을 육지로 이동한다고 한다면 용마산에서 방어하는 것보다 노비산에서 방어하기가 좋을 것입니다. 이상 필자의 추측이었습니다.^^
▼ 1961년 부산대 한일문화연구소에서 만든 "경남의 왜성지"에 그려진 것 마산왜성의 평면도로 일제강점기때 그려진 것과 천수각의 위치차이가 납니다. 지금으로 부터 50년전에 조사한 마산왜성을 제외하고는 조사된 것이 없습니다.  
통합  창원시가 되면서 이번 2011년 6월 6일 현충일 부터 창원시 두대동에 있는 충혼탑에서 추념행사를 하였습니다. 그동안 마산시에서 진행해오던 추념행사는 창원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현재 용마산에 있는 충혼탑의 위패들은 과연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네요. 이 위패들을 창원 충혼탑으로 옮겨간다면 마산왜성에 관련된 정밀조사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필자의 추정이 아닌 사실이 들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마산왜성_01
마산왜성_02
마산왜성_03
합포진성_01
합포진성_02
합포진성_03
합포진성과 창동도심지
창동예술인촌 그 이전에 발굴조사가 먼저다.
진해제포성지
진해제포성지와 삼포왜란1
진해제포성지와 삼포왜란2
고지도와 제포진
제포진성4
2010년 5월 탐방 제포진성
합포성지가 합포진성으로 사용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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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팬저의 국방여행 : 창동에 합포진성이 있었을까? 2012-07-10 14:29:30 #

    ... 안골왜성, 영등포왜성, 장문포왜성, 눌차왜성입니다. 토성위에 왜성을 축성한 곳을 보면 사천 선진리왜성, 구포왜성, 김해왜성입니다. 필자의 마산왜성 돌들은 어디서 가져왔을까? 발제글 보기 이런식으로 조선의 수군 진성과 읍성의 돌을 가져와서 왜성을 축성하였다면 마산 용마산에 있는 마산왜성의 경우도 왜성에 사용할 돌이 필요 ... more

  • 팬저의 국방여행 : 울산왜성과 마산왜성과의 공통점은? 2015-07-10 18:12:46 #

    ... km가 됩니다. 그 2km가 넘는 곳에 있는 경상좌병사의 선정비까지 가져올 정도로 돌이 귀하였다고 봐야할 것으로 보여집니다. 2011년 6월에 팬저는 마산왜성의 돌은 어디서 가져왔을까? 하는 생각으로 발제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울산왜성을 축성할시 울산읍성의 돌을 가져왔으니 마산왜성을 축성할 당시 그 많은 돌을 어디 ... more

덧글

  • 2011/06/18 12:08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팬저 2011/06/18 12:27 #

    좋게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런 부분에 관한 연구가 없는 것 같고, 또 문화재연구원의 경우 용역이 발주되어야 진행하다보니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결과물은 예전에 나온 그대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적해주신 부분은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 2011/07/23 22:28 # 삭제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팬저 2011/07/23 23:20 #

    증거자료가 과연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 마산왜성 본성에 관한 발굴조사나 지표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았기때문입니다. 또 인근에 있는 합포진성에 관한 부분도 사실로 밝혀진 것이 없다보니 합포진성에 관하여 창원시에서 발굴조사나 지표조사가 이루어졌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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