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양읍성_03 다양한 축성방식을 보여주는 북측체성과 북문지까지 읍성(邑城)



아직까지 올리지 못한 언양읍성 3편입니다. 2편인 서측체성의 경우 다양한 시대별 축성방식이 남아있는 체성인 것에 비해 북측체성의 경우 남아있는 체성과 복원한 체성이 어우러져 있는 형태입니다. 아래 항공지도에 보면 확실히 표가 납니다. 북동측 체성의 경우 복원을 한 것이고 나머지는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이번편에는 아직 위태롭게 남아있는 북측체성과 북문지까지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서측과 북측 체성이 만나는 부분으로 각루의 하단부가 겨우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겨우 1~2단 정도 남아있는 각루부분의 경우 어떻게 이야기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경계선의 개념이라 봐야하나요? 그래도 이거라도 남아있는 것에 감사해야겠죠.
하단부의 돌의 경우도 생각했던 것보다 크지가 않습니다. 물론 언양읍성의 증축시 북측체성도 축성했겠지만요.
남아있는 것이 3~4단 정도의 체성만 있다보니 성벽이라기 보다 담장이라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높이가 아주 낮습니다.
언양읍성 복원사업이 시작할 것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성벽의 출입을 제한하는 형식의 펜스를 둘러놓았더군요.
사진에 나오는 것처럼 가로형으로 된 돌로 이루어져 축성하는 것도 있지만 세로형으로 축성한 경우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보통 가로형 방식으로 하던데 세로형방식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위 사진과 비교하면 같은 북측체성이지만 사용한 돌의 크기, 색상, 축성방식(가로형으로 돌을 축성한 것인지 아닌지를 이야기합니다.) 모두 틀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의 경우 확실히 틀리죠. 북측체성 또한 임진왜란 당시 무너져 내린 체성을 신축하는 방식으로 하다보니 똑같은 북측 체성이지만 군데군데 체성의 축성방식이 틀리다는 것을 알 수있습니다. 그나저나 이 아래에 나오는 사진의 축성방식은 가로형으로 된 성돌로 축성한 것을 알 수 있네요.
가까이서 찍은 사진인데 역광이라 보니 빛이 많이 들어와서 정확하게 알 수가 없네요. 아무튼 여기에 사용한 체성의 경우도 잔돌끼움방식이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잔돌이 많이 보이지 않네요.
여기 북측체성을 보고 와우~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하단부에 사용한 성돌의 경우 아주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단부의 돌이 비슷한 크기로 하단부를 지탱하지 않고 군데 군데 이가 빠진것 처럼 되어져 있는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임진왜란 당시 무너져 내린후 이후 북측체성을 증축한 것임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하단부를 자세히 보면 큰 돌이 있고 위로 가면 갈 수록 크기가 점점 작아져야 하는 것에 비해 갑자기 작아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임진왜란전에 축성한 언양읍성의 체성이 아니고 임진왜란 이후 무너져 내린부분만 보강하여 축성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사진의 경우 조선초기 연해읍성에 나타난 읍성의 축성방식에서 부터 중기 축성방식 그리고 근대 해방후 담장으로 사용하면서 보강한 부분까지 다양한 방식을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심지어 시멘트기둥(?)까지) 
그러다가 아름답게 서있는 치성을 보았습니다. 이런식으로 잘 남아있는 치성이 있었나 싶을 정도네요. 다만 상단으로 갈 수록 너무 작은 돌을 사용한 것이 아쉽네요.
치성의 체성이 있는 곳에 구멍이 뚤린 돌이 있는데 왜 저곳에 있을까요?
정교하게 꼭꼭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오랜 세월을 잘 견뎌왔네요.
이 치성의 경우 4미터 정도 되는 높이로 남아있는데 요즘 복원하는 21세기 읍성의 치성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여주네요. 뭐랄까 요즘 복원하는 곳의 경우 너무 정교한 것에 비해 조금은 엉성하게 보여줍니다.
치성에 사용한 돌의 경우도 옆으로 길게 들어누운 돌과 정사각형에 가까운돌 그리고 아주 작은 돌들이 모여서 무너져 내리지 않는 치성을 이루네요. 
하단부의 돌의 경우 수평으로 이루어져 있다가 지형을 따라 축성하다보니 돌출된 곳도 보입니다. 아직 까지밥인 감이 있네요.
치성이 마주치는 체성의 경우 가로와 세로형으로 축성한 체성이 보입니다.
아래 사진의 경우 위와 아래 모두 비슷한 크기의 돌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연산군때 축성한 것이 아니라 광해군 9년(1617)에 고쳐 쌓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부의 경우 아주 재미있는 방법으로 축성한 것 같습니다. 상부의 경우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읍성에서 볼 수 있는 방식인 작은돌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는 모두 3~40년전 근대에 한 것입니다.)
어느 부분은 연산군때 석성으로 개축하면서 보여준 돌이 있는 것과 상부의 경우는 광해군때 축성한 방식 모두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거의 가로형으로 된 돌들로 축성되어져 있습니다.
두개의 시대를 뛰어 넘는 방식의 축성법을 보여줍니다. 시대상 150여년인데 읍성의 축성방식은 많이 변했습니다.
여기의 방식은 연산군5년(1500년)에 축성한 방식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세월의 무게를 못이겼는지 무너져 내리는 것을 막기위해 급하게 나무로 지탱하고 있습니다.
이부분의 경우는 거의 하단부의 형태만 남아있어서 아쉬움을 주네요.
이부분에는 또 다른 축성방식인 것 처럼 보이는데 연산군때 축성한 방식일까요?
옆에서 이어진 체성이 아니라면 담장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작고 남아있는 것도 얼마되지 않습니다.
군데 군데 체성을 지지하기 위한 각목이 여러 군데 있습니다.
이정도라면 사실 지탱하는 부분이 얼마되지 않습니다. 이건 언양읍성 복원을 위한 시간이 아주 많이 소요되었음을 보여주는 사진처럼 느껴집니다.
북문지에 있는 언양읍성 옛 모습 조감도의 모습으로 언양읍성을 이해하는데 어느정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언양읍성의 조감도만 가져 온 것으로 조만간 언양읍성 남문의 경우 복원을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조감도처럼 복원을 하려고 한다면 아주 많은 세월이 지날 것으로 보여집니다.
체성과 북문지 옹성이 만나는 부분입니다. 사람들의 출입이 많아서 그렇는지는 몰라도 남아있는 체성이 얼마되지 않습니다. 
북문지가 있었던 부분의 경우 콘크리트로 도로가 개설되어져 있어서 정확하게 추정하기가 힘이듭니다.
필자보다 먼저 언양읍성을 갔다와서 포스팅을 남긴 분의 사진을 올려봅니다. 언양읍성 북측체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아래 사진 출처 : 하늘사랑님

발굴하고 있는 북문지의 모습으로 옹성의 흔적과 체성의 모습이 보이는데 사진을 봐서는 연산군5년(1500년)도에 축성한 방식 그대로 남아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북측체성의 경우 여러군데 증축한 사실은 있지만 성문을 중심으로 한 체성의 경우는 처음 석성으로 축성한 방식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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