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동안 기장읍성 복원을 한다고 했지만 정비복원사업이 예산부족으로 인해 상당히 늦게 진행된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지난 1999년부터 '기장읍성 정비사업'을 2012년 완료 목표로 추진 중에 있는데 예산부족으로 인해 2012년 완료는 힘들어졌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필자도 이정도만 알고 있었다가 지난 7월 15일날 기장군청 문화재관계자를 만나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기장읍성 복원의 경우 탄력을 받아서 진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때 나온 자료를 보면 위 사진에 나오는 동문지 옹성과 적대에 관한 자료와 남문지 주위의 체성과 출토유물 30여점이라고 합니다. 이와 함께 그동안 복원한다고 나온 장관청인데 그에 관련된 복원계획 CG가 나왔네요. 장관청은 원래 조선후기 동남해안을 지키던 군관들이 사용하던 집무소였으나 그 기능이 폐지한후 1910년대 명정의숙의 교사로 사용되어왔습니다. 장관청은 5칸 고사 3칸 동고 3킨이다라고 기장읍지에 적혀있지만 언제 지었졌는지에 관해서는 적혀있지 않습니다. 장관청의 경우 동래에 있는 장관청과 함께 유례가 드문 군관용 관아 건물입니다.

아 그리고 저번 기장읍성편을 이야기하면서 성돌에 글자가 세겨져있다고 이야기 하였는데 이번 발굴조사를 해보니 언양이라는 글자였다고 합니다.

이미지출처 : 맨위 동양문물연구원
가운데 기장군보 "기장사람들"
덧글
그나저나 동래읍성역사관에서 '동래 식파루'라는 유리건판 사진을 전시하고 있고 또 인터넷에도 그 사진이 떠돌고 있는데 식파루가 기장관아의 출입문루라고 알고 있거든요.
외국인들이 사진을 찍으면서 일찍이 개항한 부산동래에 너무 익숙해져서 기장도 동래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했는지...
그런데 식파루가 동래의 읍치에 실제로 있었다고 해도 동래동헌의 문 구실을 했던 건 아닌 것 같군요.
독진대아문의 옛사진과 사진에 나온 솟을삼문을 비교해보면, 독진대아문 중앙문의 양옆 기둥에는 글귀가 적힌 판자(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습니다)가 걸려 있지 않습니다.
물론 이는 옛날 사진의 성능 부재 때문에 잘 안 나온 것이라고 쳐도 부정할 수 없는 요소가 두 가지 있습니다.
독진대아문은 솟은 부분의 지붕에 수막새가 있고 수키와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들의 수는 10개인 반면에 식파루 뒤의 문 같은 경우에는 수막새 대신 아귀토로 마감한 데다가 수키와와 직접 연결되는 것들의 수는 식파루에 가려졌는데도 불구하고 12개 확인됐습니다.
따라서 뒤의 문은 독진대아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망미루가 동래동헌 안으로 들어가는 제일관문이고 그 뒤로 독진대아문을 거쳐 내삼문으로 통하면 부사의 집무처인 충신당이 나옵니다.
참고로 망미루는 독진대아문과 내삼문과 일직선상에 놓여 있지 않습니다.
식파루가 동래에도 있었다면 동래에 귀속된 다른 관청의 문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식파루를 약간 우측면 멀리서 찍은 사진 있잖습니까.
거기 보면 식파루 오른쪽에 열녀문이나 비각처럼 생긴 것이 두개 있는데 제가 모은 사진 속에도 그것들이 존재하더군요.
형태를 대조해보니 일치했습니다.
식파루도 동래에 있었던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다만 동래동헌에 출입하기 위한 문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제가 말한 그 사진의 오른쪽에는 가로 6개 세로 3개 해서 기둥이 18개인 누각이 하나 있는데 그건 또 뭔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