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의 발상지 함흥의 함흥읍성이면서 함경도 감영 영성(營城)



북한의 읍성시리즈 네번째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여름철이 되면 먹는 음식중 가장 많이 먹는 음식중 하나가 냉면입니다. 냉면하면 평양식과 함흥식으로 나뉘어질 정도로 대표적인데요. 우리가 알고 있는 함흥은 어떤 이미지이며 떠오는 것은 무엇일까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함흥식 냉면말고 함흥차사라는 말이 있죠. 이방원의 난을 통해 왕위에 오르자 이성계가 함흥으로 가버리자 태종이 여러 차례 차사(差使)를 파견하여 환궁을 권유했으나 태조는 이를 거부하고 사신으로 오는 자를 모두 죽여버렸다. 이 때문에 어디 갔다가 아무 소식도 없는 것을 함흥차사라고 한다고 하는데 연려실기술 등에 수록된 야사에 나오는 이야기로 실록에는 태조가 사신을 죽였다는 기록은 없다고 합니다.

이것 말고도 여러개가 있는데 바로 함흥읍성입니다. 함흥의 경우 현재 북한의 행정구역으로 함경남도에 속하며 도청소재지이면서 행정, 군사의 중심지이자 조선왕조의 발상지로서 문화적으로도 중시되던 곳입니다.


1872년 지방지에 실린 함흥읍성의 모습으로 아주 웅대한 읍성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4대문의 모습과 함께 수구문의 모습도 보이고 암문처럼 보이는 문이 많은 것이 특징으로 보입니다. 남문 아래에 이성계가 머물렀던 함흥본궁의 모습도 보입니다. 함흥읍성의 경우 전체적으로 평산성의 구조로 되어져 있습니다. 함흥읍성의 경우 북으로는 산의 지형을 이용하고 서측은 성천강의 자연적 해자를 이용했으며 동측과 남측은 자연하천을 이용함으로 방어에 유리하게끔 조성되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남으로 동해바다와 접해있어서 남과 동측으로 공격이 힘이들고 서측은 강의 지류때문에 힘이 듭니다. 그럼 남은 곳은 북측뿐인데 이 부분을 잘 알고 북측을 중점적으로 방어를 하게 축성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북측에는 탕산루와 구천각이 방어의 중심에 있습니다.  (그림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북삼도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 등에 있는 읍성의 경우 향교가 읍성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있더군요. 마찬가지로 함흥읍성에도 향교가 읍성내부에 있습니다. 그림을 자세히 보시면 치성이 많으며 잘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치성 부분은 아래에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함흥읍성의 경우 1453년(단종 원년)에 축성된 것인데 이후에 개축을 계속하여 1872년에도 문루와 성벽이 선명하게 남아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남문 밑에 시장이 있으며 남문을 지나자 객사가 보이고 중영이 보이는데 함경도 감영이라 그렇습니다. 함경도의 경우 중국과 접한 관계로 병영이 두개나 있었으며 이를 통제하는 곳이 함흥의 감영입니다. 함경남병영이 북청(북청 물장수로 유명한 곳)이며 함경북병영이 경성입니다.

중영을 지나고 포정문을 지나니 선화당의 모습이 보입니다. 선화당의 경우 함경도 감영의 우두머리인 감찰사가 근무하는 곳입니다. 선화당을 가기전에 보이는 건물의 경우 영리청과 비장청의 모습이 보이며 진상청(지방특산물을 임금에게 올려보내는 일을 맡아보던 곳), 도리청(세무를 담당해보던 곳), 영고청(관찰사의 옷과 음식을 마련하던 곳), 심약청(관찰사의 보약을 마련하던 곳)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선화당의 경우 현재 남아있으며 북한의 국가지정문화재국보급 제109호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자신보다 높은 감찰사가 있다보니 함흥부사의 경우 찍 소리내지 못하고 조용하게 있었겠죠. 그림지도를 보면 함흥부 동헌의 경우 남문에서 나와 서문과 암문사이에 있습니다. 아무래도 한쪽 구석에 있는 모양을 지울 수 없네요. (그림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함흥읍도의 모습으로 위 1872년 지방지의 모습보다 좀 더 입체적으로 그려져 있어서 함흥읍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함흥읍도의 경우 위에서 이야기한 것 처럼 북측 방향을 막기위해 상당부분 노력한 것이 보이며 남문의 경우 2층 누각이며 홍예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남문 주위에 있는 치성의 경우 돌출되게 그려져 있어서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치성의 경우 일반적인 치성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치성의 모습을 보면 작은 구멍이 뚤러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총안의 모습인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습니까? 예 바로 수원화성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함흥읍성 치성의 경우 수원화성의 축성(1796년)되고 나서 치성을 포루로 개축을 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함흥읍도를 보면 2개의 방어시설이 눈에 들어옵니다. 첫번째가 서문옆에 있는 낙민루의 모습입니다. 실제 크기와 상관없이 일부러 크게 그려진 느낌을 주는데 성천강을 건너는 유일한 다리(만세교)가 있는 곳을 막는 포루라는 점을 강조하려고 크게 그린 것 같습니다. 두번째가 북측에 있는 탕산루의 모습으로 상당히 돌출되게 그려져 있는데 실제로 그래서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탕산루 뒤에 보이는 구천각의 경우 장대건물로 현재도 남아있는데 복원한 느낌을 주더군요. 전체적으로 함흥읍성의 경우 우리나라에 있는 산성과 같이 지형을 따라서 축성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객사와 동헌 선화당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남문 밑에 아주 많은 민가들이 형성되어져 있는데 당시에도 함흥의 규모를 알 수 있는 그림입니다.

함흥내외십경도의 모습으로 이곳에도 함흥읍성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장대와 치성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으며 남문의 경우 옹성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위 고지도에도 남문(남문뿐 아니라 동문과 서문도 없습니다.)의 경우 옹성이 없는데 아무래도 이런 부분이 조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남문주위에 적대를 설치되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북측에 있는 탕산루의 경우 아주 길게 이어져 방어를 하는 모양으로 그려져 있는데 필자의 경우 이런식으로 된 읍성의 경우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일제강점기 함흥읍성내부의 모습으로 보이는 누각의 경우 남문으로 2층누각의 모습이 보이고 2층 누각에는 판문이 떨어져 나갔지만 아직 형태가 보입니다. 체성의 경우 4~5미터정도로 보입니다. 남문옆에 있는 종각의 경우 성문의 개폐를 알리는 종으로 보입니다. 남문 누각옆에 전봇대가 보이는 것으로 봐서 1910년 이후로 보입니다.
함흥읍성의 방어시설인 낙민루에 관한 사진엽서가 있어서 링크시켜봅니다.

낙민루링크

이 사진을 보면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낙민루의 경우 수원화성에 있는 포루와 같이 총안의 모습이 보입니다. 만세교를 건너는 적을 막기위한 방편으로 보입니다. 또 그러면서 낙민루의 경우 평양의 부벽루, 진주의 촉석루, 밀양의 영남루와 같이 회의와 연회를 하는 곳일 것입니다. 그러면서 방어를 하려고 하는 것은 부벽루, 촉석루, 영남루와는 다른 성격입니다. 물론 크기도 성격도 틀립니다.

아무튼 북한의 읍성의 경우 하삼도(충청,전라,경상도)에 있는 읍성과 달리 규모면에서도 크고 산세를 이용한 평산성이거나 산성의 구조로 되어져 있습니다. 아무래도 북측에서 공격해오는 적을 막기 위한 것임을 읍성은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화려한 함흥읍성의 경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사라져버려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북한의 읍성의 코너를 할때 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진짜로 웅장하면서 잘 꾸며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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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1/07/27 05:02 # 삭제

    성곽부분이나 성내나 장대하면서 변화가 많은 성이군요. 작은 수원화성 같기도 하고요.
    이 정도의 읍성도들이 남아 있다면 크게 개발만 되지 않았다 치면 복원하기도 비교적 수월 할 것 같습니다.
    남문 실사진은 홍예기단은 낮아 보이지만 누각은 전주읍성 풍남문에 못지 않은 것 같기도 하네요.

    북한의 성하면 아직도 3층장대가 남아있는 종성읍성이나 누교형태의 북문이 있었던 철옹성이 먼저 떠오르는데, 함흥읍성도 추가될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 팬저 2011/07/27 08:25 #

    아무래도 북측에 있는 나라들의 침입을 막기위해 고구려시대부터 있었던 성들을 증,개축하면서 발달된 것 같습니다.
  • 松下吹笙 2011/07/28 13:07 #

  • 팬저 2011/07/28 17:40 #

    함흥본궁 잘 보았습니다. 삼문의 경우 해방후 복원한 것 같은데 예전의 방식으로 복원을 하지 않았네요. ^^ 북한이나 우리나라나 복원은 ....ㅠㅠ
  • 바람불어 2011/08/09 12:17 #

    겸재 정선의 함흥본궁송 그림도 보네요. 볼때마다 느끼는데 정말 뭔가 영험한 기운이 느껴지는 그림입니다.
  • 팬저 2011/08/09 12:24 #

    힘이 있는 느낌 아니면 사실적인 느낌이 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 松下吹笙 2011/07/28 13:08 #

    함흥은 북한 전주같은 느낌이군요 ㅎ

  • 팬저 2011/07/28 17:41 #

    북한판 전주시라 딱 맡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북한판 전주시 딱 좋네요.
  • 2011/07/28 13:54 # 삭제

    함흥본궁에 있던 태조 이성계의 활과 화살의 사진은 아직 전해져 오는데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고 하죠.

    함흥팔경 중에 만세교의 낙조가 있는데 낙민루가 포함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조선의 OO팔경에 관한 병풍 그림들이 전해져 오고 있고 TV 진품명품에서 해주팔경 병풍이었던가가 나온 적이 있는데 이 병풍에는 성곽과 그 건물들을 배경으로 한 장면들이 몇 폭 있더군요.
  • 팬저 2011/07/28 17:42 #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아시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2011/07/28 17:51 # 삭제

    태조의 활과 화살이라면 우리 나라에서 전통군사사 하시는 분들은 다들 궁금해 하시는 걸 겁니다. 북한에서 어떻게 되었는지 공개를 하지 않나봐요. 지금 남아있는 함흥본궁 자체가 한국전쟁 이후에 대거 복원된 거라서, 규모도 약간 축소되어 있고 본궁 주변에 심어놓았던 소나무들도 많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함흥팔경의 경우 저도 그런게 있다라는 말만 들어서요. ^^;
  • 팬저 2011/07/28 18:54 #

    함흥본궁의 삼문을 보니 복원을 한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
  • 부산촌놈 2011/07/28 17:36 #

    남문을 보니까 약간 훼손된 부분에 벽돌 같이 쌓인 것이 고구려시대 기법 같습니다.
  • 팬저 2011/07/28 17:43 #

    조선초기에 축성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고구려때 있었던 성문을 축성했는지 아니면 당시 새로 신축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 부산촌놈 2011/07/28 23:07 #

    그나저나 홍예문 위에 있는 돌출된 부분은 뭘까요..?

    아, 그리고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함흥이나 전주의 읍성에는 남문 옆에 종각이 있는데 두 도시의 공통점이 태조의 사당이 있다는 건 잘 아실 겁니다. 경기전하고 함흥본궁 말입니다.

    그리고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의 남대문의 옆에도 종각이 있더군요.

    왜 그런 걸까요?

    단순히 도시규모가 크고 교통량이 많아서 그랬던 건지, 아니면 종각에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는지요...

    다른 큰 지방에서도 관아 곁에 폐문루를 두는 경우가 많은데 말이죠.
  • 팬저 2011/07/28 23:36 #

    종각의 경우 성문의 개폐를 알리기 위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종 대신에 북을 갔다 놓은 것은 종을 생산하는 철의 부족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팬저 2011/08/04 18:18 #

    조선시대 읍성에는 반드시 동종이나 북을 달아 놓은 종루나 고루(鼓樓)가 설치되어 있었다.종을 달아 놓은 누각이 종루이고 북믈 달아 놓은 누각이 고루이다. 둘 다 읍성의 문을 여닫는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을 수행하였다. 이렇게 시간을 알려주는 의식을 시보(時報)의식이라고 불렀다. 통신이 불편했던 옛날에는 밤에 혼전의로 별을 보거나 물시계를 서서 시각을 알아냈고 이에 따라 시간을 알리는 시보를 하였다. 시간을 알리는 방법은 동종을 치거나 북, 징을 쳐서 소리로 시각을 알리는 의식을 시행하였다.
  • 팬저 2011/08/04 18:23 #

    신관 사또의 행렬 맨 앞에 보이는 깃발은 조선시대 지방 수령의 3대 권한인 행정권, 사법권, 군사권 가운데 군사권을 상징한다. 그리고 평소에는 읍성 남문위나 영문 밖에 세워서 수령의 권위를 상징합니다. 호기의 경우 영문 밖 양옆에 세우는 군기로서 검은색 바탕에 날개달린 호랑이가 화염을 손에 쥐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 옆에 있는 것이 영기로 진중에서 명령을 전달하는데 쓰였던 깃발로 명령의 권위가 있음을 알려준다고 하는데 여기 남문에는 호기와 영기가 있었다고하는데 사진에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봐서 군사권이 박탈당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 부산촌놈 2011/07/28 23:38 #

    그건 알고 있는데요... 그런 경우가 좀 드물어서 주문 옆에 종각을 달아놓은 도시에는 뭔가 다른 도시들과는 다른 게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 팬저 2011/07/28 23:43 #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 그런 것에 관해서는 잘 모르겠네요.
  • 침묵제독 2011/07/31 19:17 #

    함흥부는 부사가 아닌 부윤이었겠죠.
    또, 감사와 동격인 부윤이자만, 따로 있는게 아니라, 감사가 겸임.
    평양이나 전주처럼...
    (경주만 부윤이 독립되어있고, 대구는 대도호부사가 있지만, 감사가 겸임..)
  • 팬저 2011/08/01 09:53 #

    그렇습니까? 겸임일줄은 몰랐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2011/07/31 22:56 # 삭제

    작년말에서 올초까지 함흥에 대한 전시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했다고 하는데, 이 전시에서 함흥본궁과 함흥읍성에 대해 참고할 만한 그림들이 전시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http://younghwan12.tistory.com/2793

    중간에 보이는 북새선은도권과 북관별과도가 눈길을 끄는데 함흥과 길주에서 있었던 별시를 그렸던 것이라 합니다. 북관별과도의 그림도 함흥 별시 부분으로 보입니다.
  • 팬저 2011/08/01 09:52 #

    예 저도 보긴 보았는데 사진들이 작아서 구별이 힘들었는데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 JUICEHOME 2011/08/05 12:56 #

    조선 말인것 같은데... 낙민루 기와가 참... 나라에서 관장하는 곳인데도...
  • 팬저 2011/08/06 18:10 #

    대한제국시절로 보거나 아니면 일제강점기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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