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와 방어적 관점에서 본 경남의 읍치(읍성이 없는 지역을 중심으로) 읍치



경남 지역중 읍성이 없는 읍치의 경우 조선전기와 조선후기가 다른데 조선후기 때의 상황을 보면 총 9개 지역입니다. ㄱㄴ식으로 한다면 거제, 거창, 단성, 산청, 안의, 창녕, 초계, 하동, 합천입니다. 거제, 하동의 경우 임진왜란 이전에는 다른곳에 읍성을 축성하고 있다가 임진왜란때 함락 당한 후 읍성의 기능이 무너지면서 읍치를 옮기게 됩니다. 단성의 경우 읍성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이 되지만 흔적을 찾을 수 없더군요. 나머지 거창,산청,안의,창녕,초계,합천의 경우는 읍성이 없었던 곳으로 추정이 됩니다. 읍성이 있을 경우 그래도 방어에 조금은 유리한 것이 사실인데 읍성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전 읍치가 있었던 지역을 현재의 지도를 캡처해서 올려봅니다. 어떤 공통점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 거제시 거제면의 모습으로 거제현의 읍치가 있었던 곳으로 거제시 고현에 있었던 읍성을 택하지 않고 이곳 거제현으로 옮겨옵니다.고현읍성의 경우 남측이 계룡산이 있는 구조에서 거제면으로 옮겨오면서 뒤에 계룡산이 있고 앞이 물이 있는 배산임수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바다와 너무 인접해있는데 거제 서측을 막기 위한 수군진은 가배진이 있습니다. 서측의 경우 산으로 둘러싸져 있고 북측의 경우 계룡산이 동측도 산으로 둘러싸져 있는 지형입니다.

1872년 지방지에서 본 거제의 모습(이미지출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 이미지 클릭 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하늘에서 바라본 거제면의 모습으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져 있고 남측만 바다와 접해져 있는 형태로 되어져 있습니다.(이미지출처 : 다음지도) 이미지 클릭 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거창군청이 있는 거창의 모습으로 황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읍치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거창의 경우도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형태로 보여집니다. 황강위에 침류정이라는 누각이 보이는데 현재도 자리잡고 있습니다. 여지도에서 본 거창(이미지출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 이미지 클릭 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하늘에서 바라본 거창의 모습으로 거창의 경우 황강이 자연적인 해자의 기능을 해주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지도 좌측을 보면 나오는 것이 거열산성인데 거열산성의 경우 삼국시대 산성으로 조선시대까지 체성이 남아있었는지는 모르겠네요. 다만 『동국여지승람』에는 읍의 북쪽 8리에 있고 둘레가 3리나 되는 돌로 쌓은 산성이라 기록하고 있었다고 하는 것으로 봐서는 유사시 거열산성으로 피신하여 농성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미지출처 : 다음지도) 이미지 클릭 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단성면의 모습으로 예전에는 단성현이었는데 단성현의 경우 남강과 양천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현 단성초등학교가 있는 곳이 단성동헌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이 되는 곳인데 이곳 단성현에서 충무공 이순신이 백의종군하면서 하룻밤을 유숙했다고 하는군요. 단성현 동측을 보면 유사시 농성할 수 있는 백마산성의 모습이 지도에 그려져 있습니다. 이미지 클릭 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하늘에서 바라본 단성의 모습(이미지출처 : 다음지도) 이미지 클릭 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산청군의 모습으로 산청 또한 남강이 S자로 흐르는 지형에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산청의 경우 배산임수의 지형이 아닌 지형으로 보여집니다. 해동지도에서 본 산청 (이미지출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 이미지 클릭 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하늘에서 바라본 산청의 모습(이미지출처 : 다음지도) 이미지 클릭 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지금은 함양군 안의면인데 예전에는 안의현이 있었던 곳이고 연암 박지원이 이곳 안의현에서 현감을 지냈던 관계로 함양에서는 박지원의 이야기가 많이 전해져 옵니다. 안의현의 치송의 경우 사진상 나오는 남강천이 S자 형태로 안의현을 두르고 지나갑니다. 안의현의 읍치의 경우 조선초기에 사진에 나오는 현재의 안의 위에 있는 남강천 아래에 있다가 지금의 위치로 읍치가 이전을 합니다. 그 이전에는 배산임수의 지형이 아니다가 읍치가 이전을 하면서 배산임수의 지형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미지 클릭 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하늘에서 바라본 안의의 모습 전체적으로 S자형태의 남강천이 안의를 감싸고 있는 형태입니다.(이미지출처 : 다음지도) 이미지 클릭 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창녕군의 모습으로 조선시대에는 창녕현이었는데 이 창녕의 경우 하천이나 강이 지나가지 않는 곳에 읍치가 있습니다. 낙동강의 경우 아주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지승지도에서 본 창녕현의 모습(이미지출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 이미지 클릭 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하늘에서 바라본 창녕군 창녕읍의 모습으로 지도에는 나오지 않지만 창녕읍 뒤에 곽재우장군이 전투를 치룬 화왕산성이 있습니다. 화왕산성으로 이동하여 농성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이미지출처 : 다음지도) 이미지 클릭 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합천군 초계면의 모습으로 초계의 경우 산지가 있는 곳에 있는 분지에 자리 잡고 있는데 지형이 전반적으로 강원도에 있는 펀치볼이라고 불리는 양구와 비슷한 지형입니다. 산이 많이 있는 곳에 아주 넓은 평야가 보일 것입니다. 사진에 나오는 도로가 조선시대부터 이어져오는 도로로 이곳을 통해야 초계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이순신장군이 백의종군하면서 권율 장군이 있었던 초계로 넘어오게 됩니다. 지승지도에서 본 초계(이미지출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로 읍성이 없는 대신에 담장으로 읍성의 기능을 일부하려고 했던 느낌을 줍니다. 이미지 클릭 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하늘에서 바라본 초계의 모습으로 초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지도로 보입니다.(이미지출처 : 다음지도) 이미지 클릭 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초계현이었다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합천군 초계면이 되어서 그런지 초계현에 관련된 자료를 찾기가 힘이드네요. 물론 합천군에서 발행한 역사자료나 합천문화원에서 나오는 초계현지 등이 있겠지만 온라인상으로 구하기가 힘이드네요. 초계면사무소의 경우 초계현 동헌이었을 것입니다. 이 초계현 동헌에서 임진왜란 당시 권율장군이 진을 치고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이 부분의 경우 아주 민감한 부분이 있습니다. 고증적으로 문제가 있다고도 하고 아니다라고 이야기가 나옵니다. 차후에 정확한 부분을 알아서 다시 올리겠습니다.) 객사의 경우 현 초계초등학교자리로 추정이 됩니다.  (이미지출처 : 다음지도) 이미지 클릭 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하동현이 있었던 하동군의 모습으로 임진왜란 당시 하동읍의 치소는 여기가 아닌 하동군 고전면에 있는 하동읍성이었는데 일본군에 의해 무너져내려 1704년(숙종 30)에 현재의 이곳으로 옮겨와서 읍치의 기능을 하게됩니다. 하동읍의 경우도 섬진강이 서측에 자리잡고 있으며 동측으로는 작지만 횡천강이 흘러가서 섬진강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북측에는 산이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지도에서 본 하동현의 모습으로 저 멀리 구읍성이라고 하는 고현면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미지출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 이미지 클릭 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하늘에서 바라본 하동읍의 모습으로 농지의 경우 근대에 매립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따라서 북측의 산세와 동,남,서측의 섬진강과 횡천강을 이용한 형태로 읍성이 없지만 방어에 좋은 지형인 것이 이곳을 읍치로 선정한 이유일 것입니다. 물론 배산임수라는 전형적인 풍수지리적인 요소가 더욱 더 큰 이유도 있었겠지만요. (이미지출처 : 다음지도) 이미지 클릭 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합천군의 모습으로 합천의 경우도 뒤로 산이 있고 앞이 물이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입니다. 황강이 S자로 흘러가는 지형위에 자리잡은 합천은 삼국시대부터 신라,가야,백제가 서로 차지하려고 하던 지형입니다.1872년 지방지에서 본 합천의 모습으로 전령적인 배산임수임을 알 수 있는 그림지도입니다. 이미지 클릭 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지승지도에서 본 합천의 모습으로  합천관아의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지 클릭 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황강이 있는 곳에 조금 작은 동산이 있는데 저곳이 대야성이 있었던 곳입니다. (이미지출처 : 다음지도) 이미지 클릭 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상 간단하게 조선시대 읍성이 없었던 읍치를 살펴보았습니다. 이기봉, 홍금수의 논문 "조선시대 경상도 읍치 입지의 다양성과 전형성"을 보면 "조선초 읍치와 읍성의 경우 고려시대의 읍치의 형태를 유지하고 1425년 이후에 입지하였거나 신설된 읍치는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입지 형태에 아주 가까웠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최원석 경상대 교수의 논문 "지적원도를 활용한 읍성공간의 역사지리적 복원"에 읍성의 입지에 관하여 설명되어져 있는데 "읍성의 입지는 지리적, 지형적, 풍수적 견지로 대별되어 고찰할 수 있다"라고 적혀있습니다.

위에서 보신 것과 같이 읍치의 경우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형태로 되어져 있음을 알 수 있고 그렇지 못할 경우 읍치가 이전을 하는 방식으로 풍수지리에 입각한 읍치를 설치하였습니다. 읍치안에 있는 객사나 동헌을 보면 더욱 더 분명하게 나타나는데 이부분은 다음편에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배산임수가 아닌 읍치의 경우 예전 부터 그곳에 있었던 읍치로 자연 방어적인 측면 때문에 읍치를 이전하지 못한 경우로 보여집니다.

경남에 있었던 읍치의 경우 조선시대 이전부터 이어온 읍치에 읍치를 조성했거나 신설된 읍치를 한 경우가 있는데 신설된 읍치의 경우 풍수지리적인 요소를 뛰고 읍치를 건설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읍성의 경우 연해해안을 따라서 형성이 됩니다. 남해읍성,곤양읍성, 사천읍성, 하동읍성, 삼가읍성, 고성읍성, 거제읍성, 진해읍성, 창원읍성, 웅천읍성, 칠원읍성, 함안읍성, 의령읍성, 영산읍성, 김해읍성,양산읍성,밀양읍성,(경남은 아니지만 연해읍성의 경우 기장읍성, 동래읍성, 언양읍성, 울산읍성, 경주읍성 등)의 경우 바다와 인접해 있습니다. 이곳을 제외한 단성,산청,안의,거창,초계,합천의 경우 바다와 거리가 되는 곳도 읍성이 설치되지 않았던 이유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단 함양읍성의 경우 지역적으로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설치가 되었는데 이는 함양이 주는 상징성 때문으로 보여집니다. 조선시대 좌안동, 우함양으로 대표하는 선비문화와 함께 남원,장수로 이어지는 길목이는 이유 때문일 것으로 봅니다. 함양의 경우도 여느 읍치와 같이 위천이 함양읍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지승지도에서 본 함양(이미지출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 이미지 클릭 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읍성이 없는 읍치의 경우 자연해자의 기능을 하는 하천이나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방어에 유리하게 전개하려고 했던것 같습니다. 물론 방어적인 측면보다 식수라는 부분이 더욱 더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조선과 관계없이 전세계적으로 식수가 있는 곳에서 도시가 형성되는 것을 보아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읍성이 없는 읍치에 비해 경남에 있었던 읍성의 경우 자연적인 해자 구실을 하는 하천이나 강이 멀리 떨어져 있거나 없는 경우가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읍성과 함께 자연적인 해자 구실을 하는 하천이나 강을 낀 읍성을 보면 진주읍성, 곤양읍성, 밀양읍성 이외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머지 남해읍성, 하동읍성, 사천읍성, 함양읍성, 의령읍성, 함안읍성, 칠원읍성, 창원읍성, 진해현읍성, 고성읍성, 거제읍성(고현성), 사등성, 김해읍성, 웅천읍성, 양산읍성, 영산읍성에서는 하천이나 강이 흘러가지 않는다. 하천이나 강의 경우 있다고 해도 거리가 읍성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따라서 하천과 강의 경우 1차적인 해자의 구실을 통해 적의 진입을 막기 위한 목적이 있음을 알 수 있고 지역적으로 조선시대 이전 부터 읍치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식수를 위해 자연 발생적인 부락을 형성으로 읍치의 기능이 자연스럽게 전개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  

방어의 경우 고려시대 이전과 조선초기의 경우 읍치에서 방어의 경우 읍성이 있는 경우 읍성에서 방어를 하면 되지만 읍성이 없는 경우 가까운 산성으로 옮겨가서 형식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조선의 방어개념이 읍성보다는 산성으로 농성하는 형태로 바뀐 조선후기 군사전략의 변화도 있었던 이유로 보입니다.



덧글

  • 부산촌놈 2011/08/11 23:36 #

    경기도는 한양과 꼭 붙어 있는 곳조차도 읍성이 없을 정도로 읍성의 수가 적던데 경기도에 유독 배산임수의 지형이 많아서 그런 건지, 산성이 많아서 그런 건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이유로 경기도에는 읍성이 적은 걸까요?
  • 팬저 2011/08/12 00:54 #

    조선 세종때 최윤덕장군이 이야기 하기를 하삼도에 왜적이 나타나니 방어를 위해 읍성을 축성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왜구들이 하삼도(경상도,전라도,충청도)까지는 올라와도 그 이상은 아무래도 힘이드는 이유 때문에 경기도에 읍성을 축성하지 않은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또 경상도,전라도,충청도의 경우도 해안을 중심으로 읍성이 축성되어있지 내륙에는 읍성이 없는 곳이 많습니다. 내륙에 읍성이 있는 곳은 정치적,인구,행정,역사적 등 이유가 있는 도시에만 읍성이 축성합니다. 경남의 경우 합천,초계,창녕,거창,단성,산청 이런곳은 읍성이 축성되지 않았는데 이 지역을 보면 해안과 멀리 떨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부산촌놈 2011/08/12 11:00 #

    아, 그렇군요.
  • 막수동인 2011/10/21 21:03 # 삭제

    단성현의 경우 강 건너 백마산성이 전란시 현민들이 피난하던 곳이자 군사적 요충지입니다.
    고구려의 첫 수도인 오녀산성보다도 훨씬 사면이 수직 급경사로서 결코 인위적인 축성을 할 필요없는 곳입니다.
    반면에 산정은 평지마냥 평탄지로서 저수지가 하나 남아 있고 사면의 절벽의 암반에는 깃대를 꽂았던 구멍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 팬저 2011/10/22 18:45 #

    예... 말씀하신 것처럼 백마산성이 그런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이는 조선중기 이후 읍성으로서 방어가 불가피한 것을 알고 한 것입니다.
    산성은 가보지 못했는데 한번 가 볼 필요가 있겠네요.
  • 우카 2011/10/28 15:58 # 삭제

    백마산성에 몇 번 가보았는데, 실제로 위에서 보면 전망이 좋습니다. 충분히 방어적 기능을 수행하였다고 생각되며, 저수지 및 구멍 뚫린 암반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죽 올라가면 함양 수동면에 산성이 있는데, 이 산성에서는 경상도에서 전라도를 가는 길목을 차단할 수 있는 요충지였다고 합니다.
  • 팬저 2011/10/28 18:10 #

    백마산성의 경우 삼국시대때 만들었기 때문에 전략적인 요충지에 건설이 되었을 것으로 아마 이후 계속해서 사용했을 것입니다. 다만 조선시대까지 사용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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