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이 현감 생활을 한 안의현 읍치 읍치



여지도에서 본 안의현의 모습으로 남강천이 S자 모양으로 안의현을 감싸고 흐르고 있는데 당시에는 동천이라 불렀던 것 같습니다. 동천대교라고 하는 것이 있는 것을 봐서 말이죠. 동헌 위에 향교가 있고 동헌옆에 충렬사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지승지도에서 본 안의현의 모습으로 위 여지도와 비슷함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여지도를 두고 그려진 느낌을 받습니다.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1872년 지방지에서 본 안의현의 모습으로 객사와 광풍루의 모습이 보이는데 광풍루 위에 객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광풍루 아래에 시장이 있음을 표시하였습니다.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다음 지도에서 본 안의현(현 함양군 안의면)의 모습으로 우측으로 남강천이 흐르고 분지형에 가까운 읍치입니다.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안의에서 유명한 문화재는 바로 광풍루입니다. 문화재청에서 소개된 글을 보면 "조선 태종 12년(1412)에 처음 짓고 선화루라 이름 지었던 것을 세종 7년(1425)에 지금의 자리에 옮겨지었다. 그 후 성종 25년(1494)에 정여창이 다시 짓고 광풍루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정유재란(1597)으로 불탄 것을 선조 34년(1601)에 복원하였고, 숙종 9년(1683)에 다시 지었다. 오랜 세월동안 많이 퇴락한 것을 1980년에 정비하였다. 앞면 5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광풍루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양식을 간직하고 있는 우람한 건물이다." 라고 적혀있는데 함양에서 본 학사루와 비슷하게 보입니다. 
▼ 초석의 경우 보시는 것처럼 막돌을 사용하여 만들어 놓았습니다.
▼ 광풍루 누각 아래 시원하게 자리잡고 있는 어르신인데 시원하게 보였습니다.
▼ 광풍루의 경우 여느 읍치에서 볼 수 있는 누각으로 이곳에서 회의, 교육, 연회등을 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이런식으로 남아 있는 누각이나 정자, 읍성의 성문, 동헌, 객사 등의 건물을 기준으로 조선시대 당시의 읍치나 읍성을 추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 예전의 고지도, 그림, 지적도나 사진 등도 복원을 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광풍루의 현판과 멋스럽게 칠한 단청이 이곳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 상무좌우사접장 하경순포선 불망비(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65호)로 안의현을 중심으로 한 상무좌우사(商務左右社)의 접장 하경순의 공적을 기려 안의 상인들이 1911년에 세운 비석으로 상무사는 1899년에 설립된 상업 관장 기관으로 등짐장수인 부상의 단체를 좌사 봇짐장수인 보상의 단체를 우사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공적비의 경우 수령이 고을을 떠날때 해주는 것인데 이렇게 상인을 위하여 공적비가 들어서는군요.
▼ 공적비의 경우 다른 곳에 있었는데 가보지 못했네요. 광풍루앞 하천인 남강천이라고 하는데 명칭이 맞나 모르겠네요.
▼ 읍성철거령이 내려지면서 그곳에 학교, 관공서 등이 들어섰는데 안의현도 마찬가지로 동헌터자리에 안의초등학교가 들어섰습니다. 이곳에서 연암 박지원이 5년간 안의현감 생활을 합니다. 안의초등학교 안에 연암 박지원의 사적비가 있다고 하는데 필자는 그곳까지 가보지 못했네요. 필자의 경우 연암 박지원에 관한 조사가 아니고 읍치에 대한 것이니 이해바랍니다.
▼ 동헌터로 추정하는 근거가 바로 이 큰 느티나무 2그루인데 수령이 적어도 300년 이상 되어져 보였습니다. 보통 동헌터에 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이는 재판과정을 지켜보는 최후의 증인이라는 것을 상징한다고 하네요. 아무튼 동헌건물은 사라져도 이렇게 나무는 살아남아서 이곳이 안의현 동헌터였음을 증명합니다.
▼ 느티나무가 있는 곳에서 허삼둘가옥이 있는 방향인데 현재의 도로와 예전의 도로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주세요.
▼ 느티나무에서 바라본 안의 경로당으로 이곳이 동헌의 내아로 추정이 됩니다. 일단 방향이 남향이 아니고 동향인데 ㄱ자로 된 내아가 아닐까 추정합니다.
객사 사진보기 클릭

안의객사의 경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도 살아 남아있었는데 안의중학교 개교와 함께 교정으로 사용됩니다. 물론 여러가지 많은 변형이 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1953년 졸업식까지 안의중학교 교정으로 사용하고 안의중학교가 현재의 장소로 이전하면서 객사터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현재 안의객사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위 안의객사 사진의 경우 청마 유치환선생이 안의중학교 교장으로 있을때 찍은 사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안의객사의 경우 안의 동헌터 옆인 허삼둘가옥 옆으로 추정을 합니다.(이부분은 안의에 사시는 분이 고증을 해준다면 더욱 더 정확할 것으로 보입니다.)추정 근거는 3가지인데 첫째가 보통 읍치나 읍성에 있는 객사의 경우 지형이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하거나 북측에 위치합니다. 이는 풍수지리적으로 객사의 위험을 상징하기 위해(더 크고 높게 보이려고)서 하는 것인데 동헌터와 나란히 있으면서 우측에 있는 곳을 보니 허삼둘 가옥 옆 말고 없더군요.

둘째는 객사로 가는 길을 근거로 합니다. 객사터로 이어지는 골목을 녹색으로 표시하였는데 예전의 고살이 용캐 남아있었는데 이를 근거로 길을 따라 올라가니 마주보이는 공간이 바로 객사터로 추정하는 곳입니다. 녹색의 길의 경우 이상한 방향이지만 그래도 T자형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객사에서 동헌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의 경우 현재 안의 파출소까지 이어지는데 이 부분이 동헌으로 가는 길이었음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안의면의 경우 생각보다 예전의 도로나 골목이 남아있지 않고 길을 반듯반듯하게 만들어 놓아서 예전 길을 찾기가 힘이듭니다.

세번째가 바로 1872년 지방지를 근거로 합니다. 이 지방지를 보면 읍치(동헌) 옆에 객사가 있고 광풍루 위에 있음을 그려져 있는데그런 공간이 나오는 곳이 객사추정지와 객사추정지 아래 부분 말고는 없습니다. 공간적으로 나올만한 곳을 생각해보니 객사추정지로 된 곳이 나오네요.

물론 어디까지나 필자의 추정이라서 틀릴 확률도 많습니다. 무엇보다 예전의 지도나 지적도가 있다면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동헌터의 경우 안의초등학교라고만 하고 있는데 좀 더 정확하게 추정을 한다고 했을때 안의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보여집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느티나무를 근거로 했을때 나오는 공간이 운동장인데 이 부분도 정확한 것이 아닙니다. 정확한 것은 아무래도 발굴 조사를 해보아야 겠지요. 필자가 추정한 곳이 맞다면 현재 안의경로당으로 사용되고 있는 곳이 내아터로 추정이 되며 동헌터 옆이나 뒤가 책실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느티나무가 있는 곳 앞이 안의소방파출소가 있고 밑에 안의파출소가 있는데 안의소방파출소에서 안의객사지로 가는 골목이 있는데 그 부분이 외삼문이 있었던 곳이 아닐까 추정을 합니다. 안의소방파출소의 경우 헐소나 이방청 등의 관아건물지로 보여집니다. 바로 밑에 있는 안의파출소의 경우도 관아지로 추정이 되며 그 바로 밑에 있는 안의면사무소의 경우 향청으로 사용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안의현을 알아보려고 해도 인터넷에서는 거의 자료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향토사적인 부분은 안의에 사시는 분이나 함양에 사시는 분들이 정리를 해서 올려주면 좋겠는데 잘 안되네요. 아무튼 겨우 자료를 맞추어보았는데 지적도나 예전 지도를 구하면 안의동헌과 안의객사등을 정리해서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덧글

  • 에로거북이 2011/08/10 15:16 #

    이름이 기억 안나는 데, 저 광풍루 앞의 개장국집이 맛있습니다.
  • 팬저 2011/08/10 22:16 #

    후후~ 그렇습니까? 저도 잠시 갔다가 와서 정확하게는 잘 모릅니다.
  • 유유자적 2011/08/10 16:48 #

    멋지군요. 꼭 한번 가보고 싶어졌습니다.
  • 팬저 2011/08/10 22:16 #

    예전의 도시를 찾아서 추적하는 맛도 제법 재미있습니다. ^^
  • 두근두근 2011/08/13 12:54 # 삭제

    알고 계실 것 같은데, '안의'의 본래 이름은 '안음'입니다. 영조 때 이웃한 산음(지금의 산청) 여자아이가 애를 낳아서 음기가 쎄서 그렇다고 안음도 안의로 바꼈습니다. 따라서 안의에 대해 아시려면 안음으로 접근하셔야 될 겁니다.
  • 팬저 2011/08/13 14:23 #

    예.... 말씀하신데로 안음이 안의의 전신입니다. 조선후기 최종적으로 사용한 이름을 기준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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