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 대통령의 불편한 진실 사진 및 기타



요즘 노태우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 나온 YS에 전달한 3,000억원이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는데 노 前대통령에 관한 불편한 심정이 있는 필자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지난 87년 6월 항쟁이 한창이던 그 시절 필자는 군 복무를 시작하였다.(친구들이 제대할때 군에 가는 불행한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당시 운좋게 우리집에서 300미터 정도 떨어진 39사단에서 훈련소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후방이라 그런지 하루에 한번 TV시청이 가능했는데 보는 것이 바로 9시 뉴스였다. 아마도 당시 9시만 되면 나타나는 사나이를 알려주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아무튼 TV를 통해서 사회 소식을 알게 되었는데 필자가 들어가고 얼마있지 않아 6월 항쟁이 시작되었고 6월 항쟁의 소식은 TV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한번은 6월 항쟁이 타오르자 훈련병 전체를 소집하면서 우리 내무반이 아닌 다른 내무반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어떤 내용인지는 몰라도 비워있던 내무반 청소를 하기 시작하였는데 내무반의 갯수로 봐서는 적어도 1개 대대 병력이 생활할 수 있을 정도였다. 소문에 의하면 지금은 없어진 "사천에 있는 205 특공여단이 이곳으로 와서 6월 항쟁을 막기위해서라고 했는데"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다행히 205특공여단은 우리가 청소한 내무반에서 생활을 하지 않았고 노태우 당시 민정당 총재의 6.29 선언으로 일단락 되었다.

그 후 경북 울진으로 부대 발령을 받고 해안부대 생활을 했는데 대통령 선거가 직선제로 처음 실시하다보니 군에서 과잉 충성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경계근무 투입전에 여러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중 하나가 타 부대에서 안전주위를 하지 않아서 다친 이야기, 사고난 이야기 등이 전해지고 총기 및 장비, 암기사항 점검 등이 이루어지는데 마지막에 나오는 것이 대통령직선제에 관한 이야기였다. 항상 민정당 노태우 총재의 이야기는 좋은식으로 이야기하고 당시 YS,DJ,JP에 관해서는 부정적인 이야기로 마무리 지었다.

우리 소대의 경우 전라도 출신과 경상도 출신이 가장 많고 다음이 충청도, 서울 순이었는데 각자 지역별 대통령후보를 지지하였다. 필자는 DJ와 YS의 합의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고 나이가 조금 적은 YS가 양보하기를 바랬는데 정치라는 것이 나이와 상관이 없다보니 잘 합의가  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소부대 특성상 소대장이 부대를 운영하였는데 선거가 얼마 남지 않자 노골적인 노태우 민정당후보를 지지하라는 메세지가 경계근무 투입전에 쏟아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정신교육 시간은 늘어나고 중대장, 대대장으로 이어지는 민정당 후보 찬양(?) 시간은 늘어갔다. 당시 DJ는 언변이 뛰어나니까 말잘하는 후보는 안되고 YS의 경우는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으니 여자들 한테 인기가 많은 후보는 안되고  JP의 경우 2인자 생활을 많이 했으니까 안되고 등등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가지고 정신교육을 시켰다.

군특성상 부재자 투표를 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가관이었다. 원래 투표의 경우 보통,평등,비밀,직접선거인데 소대안에 차려진 투표소의 경우 비밀투표를 위반하고 있었다. 투표소가 있었지만 천으로 옆을 막아 놓은 것이 아니고 뻥 뚤려져 있었고 조그마한 책상에서 투표를 하는 구조였으며 그 앞에 대대장,중대장,소대장,인사계(지금은 행보관)이 나란히 서있었다. 비밀이 보장되지 않는 구조로 되어져 있어서 누가 누구에 투표를 했는지 알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내무반에 전체 소대원을 모아 놓고 중대장이 투표전에 마지막으로 정신교육을 한다. 말이 정신교육이지 노태우를 찍어라 하는 것이었다. 그 후 한명 한명 호출하고 투표하고 내무반으로 들어오는 시스템이었는데 계급이 높은 고참병부터 투표를 하였다. 투표를 하고 들어오는 고참병들의 경우 얼굴이 거의 죽을 상을 하고 들어왔다. 그 후 차례로 진행되다가 전라도 신안군에 살고 있었던 부대 고참병이 투표를 하고 나서 갑자기 부대가 소란해지기 시작했다. 그 고참병이 DJ에게 표를 던져서 그런지 대대장과 중대장은 길길이 날뛰고 고참병에게 해안 모래사장을 구보하게 하였다. 자신이 지지하는 대통령후보에게 투표하였다고 해서 모래사장을 구보하게 하는 더러운 불편함이 들어난 것이다.

그 후 중대장이 다시 내무반을 들어와서 두번 다시 이런 행위가 일어난다면 나머지에 관해서는 중대원들이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이런 협박성 이야기를 듣고 강심장의 마음으로 투표할 수 있는 병사들은 없었을 것이다. 또 고참들의 이야기도 들여왔다. "내 밑으로 사고치면 알아서 해라"는 협박성 이야기는 기본이었다. 내보다 선임들의 경우 투표를 하고 않좋은 얼굴로 내무반을 들어왔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서 나가 보니 위에서 이야기한 구조로 된 투표장이었다. 노태우 후보에 투표하지 않으면 안되는 구조이지만 용기를 내어서 반대를 하였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하였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도장밥을 많이 묻혀서 찍고 투표용지를 접을때 반대편에 묻혀서 나오게 하여 무효로 만들겠다는 생각만 하고 실행하였는데 그 투표가 무효가 되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짤방 방지용 사진으로 39사단에서 본 특공무술 장면)
우리 소대의 투표가 끝나고 나서 중대장, 대대장은 다른 소대로 가서 투표를 실시하였다. 아마 대대장의 경우는 다른 중대에 가서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다른 부대에서는 어떻게 하였는지 모른다. 몰라도 이와 비슷한 방법을 동원했을 것이다. 이렇게 군 부대내에서 조직적으로 투표를 하였고 사회에서는 천문학적인 돈으로 표를 샀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나서 노태우 전 대통령은 제13대 대통령에 취임하게 된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회고록을 내어서 사실을 밝히려고 했던 것 처럼 필자도 예전의 일이지만 밝히려고 한다. 노태우 대통령부터 시작한 대통령 투표부터 현재까지 투표를 다하였지만 내가 찍어서 당선시킨 대통령은 한명인데 그 사람이 바로 노태우 전 대통령이다.(필자는 이부분이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당시 저항하지 못한 필자의 못남을 탓한다) 필자가 찍고 싶었던 대통령을 찍었다면 필자가 찍었던 대통령 후보 모두 낙선하는 결과가 초래했을 것이다.    

그래서 노 전 대통령의 회고록의 이야기의 경우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이런 부분은 빠져있을 것이다. 필자의 이야기는 아주 아주 작은 부분이고 큰 이야기인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해서는 벌써 시끄럽게 진행되고 있다.   



핑백

  • 팬저의 국방여행 : 강군으로 가는길(?) 2013-01-31 03:00:48 #

    ... 문인지는 모르지만 말이죠. 필자가 군 생활하던 당시 13대 대통령선거에서 저런 부정이 있었다고 필자가 늦은 양심고백을 하였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불편한 진실 1988년 국회의원선거에서는 필자가 근무한 부대에서는 저런 부정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4년뒤에 다른 부대에서 생겼던 것을 보니 부대마다 다르구나 ... more

덧글

  • 하늘사랑 2011/08/12 13:44 #

    아마도 1980년대 군대 생활을 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겪었던 일이었을 것입니다. 당시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소신대로 행동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를 그 시대를 겪은 평범했던 한 사람으로서 동감합니다.
  • 팬저 2011/08/12 14:01 #

    그렇긴한데 당시 소신대로 할 수는 없었겠지만 그렇게라도 할 것을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 에로거북이 2011/08/12 17:22 #

    음.. DJ 에게 투표했다고 처벌 당한 전라도 출신 선임병은 지금이라도 국가 상대로 소송 가능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국 같았으면 최소 천만 달러 수준의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을 듯 도 합니다.

    비록 저는 어릴 적이었지만 참 깜깜한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 팬저 2011/08/12 19:37 #

    아마 공소시효가 지나서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 ... 2011/08/12 17:47 # 삭제

    바로 그 대통령 때였던가요..전교조 막 생겨나서 제가 다니던 중학교 도덕 선생님이 (평소엔 꺼벙해 보이던 샌님이 변신..) 앞장섰던 일이 있었죠. 그때 그분이 광주사태의 실상...그런 제하에 장갑차 사진 있는 전단지를 교내에 뿌리려다가 제지당했는데 나중에 집에 와서 아버지께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요?"라고 여쭙자 인상쓰시면서 "어디가서 그런 얘기 하지 말아라"라고 하시던게 기억나네요..
  • 팬저 2011/08/12 19:38 #

    당시에 많은 분들의 희생이 있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 ttttt 2012/02/05 21:21 #

    그래도 중학생 아이들을 연극보러 가자고 인솔해가더니
    소극장 어두운 조명아래서 잘린 유방에 시체사진을 보여주는 만행은 선생으로서 할 짓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더 괜찮은 방법도 있었을 텐데.. 그 때 학부모들이 난리가 났지만 학교가 진보적이었던지 교사는 아무 일 없이 선생했고..
    5.18때 어떤 만행이 있었는지 자체는 보도통제가 있던 80년에 어렸지만 이미 단편적으로 들은 게 있었고 그 뒤에도 알았고.. 하지만 그 소극장의 극적 연출과 붉은 조명은 강렬했지요.

    그 트라우마덕분에 전교조가 잘하는 일이 있어도 전교조라면 색안경을 쓰고 보게 됐더라는..
    이 인간들도 자기 대의를 위해선 수단방법을 안 가리는구나하고..
  • 팬저 2012/02/05 21:45 #

    예전의 시대와 요즘의 시대가 다른데도 아직도 그때의 시절에서 헤매이고 있죠.
  • ㅇㄴㅇ 2011/08/12 18:51 # 삭제

    존재 자체가 불편한 사람인데요 뭘...
  • 팬저 2011/08/12 19:37 #

    아무래도 그렇죠... 그래도 역사의 증인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 明智光秀 2011/08/12 20:55 #

    저는 세상 좋을 때 선거생활(?)을 한 샘이군요.
    제가 찍었던 대통령/국회의원은... 대부분 다 당선되었습니다.
    부산의 모든 지역구가 파란색일때... 우리 구만 노란색/녹색인 건 뭐라고 해야 하나;;;
    아, 물론 현대건설 사장님은 안 뽑았습니다. 저의 신념과 너무 달라서리.
  • 팬저 2011/08/12 23:48 #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나니까 국회의원의 경우 정상적인 비밀투표가 진행이 되더군요.
  • sk 2011/08/12 22:30 # 삭제

    많았죠 그런 경우 저도 그런 케이습니다..
  • 팬저 2011/08/12 23:48 #

    노태우후보시절에는 비슷한 경우가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 두근두근 2011/08/13 12:46 # 삭제

    어쩔 수 없죠.. 대한민국 첫 단추부터 잘못 꿰메졌으니.. 71년 대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출마했으니 87년 대선은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양보하는 게 상식적으로 맞을 것 같아요.

    71년 경선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경선 결과에 승복했으니,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자기가 한 약속에 따라 출마하지 않았다면, 노태우 전 대통령은 당선되지 못했겠죠. 어쨋든 예전보다 민주화는 많이 진행된 것 같아요.
  • 팬저 2011/08/13 14:21 #

    두명 모두 부질없는 욕심때문에 노 전대통령이 대통령되었다고 봐야겠죠.
  • ttttt 2012/02/05 21:17 #

    양김은 현대정치의 아이콘이자 흑역사죠. ;; 뭐 그 "곤조"덕분에 두 사람 다 인생 자체를 대선주자로 살고 각각 성취했겠지만요. 어릴 적에 "너 뭐 될래?" 하면 "대통령!"하면 좋아하던 시대의 대표적 산물.
  • 팬저 2012/02/05 21:43 #

    이제 양 김의 정치는 끝났지만 아직도 휴우증이 남아있는데 빨리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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