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읍성 04(남문은 없어졌지만 흔적은 남아있네) 읍성(邑城)



함양읍성지내에 있는 600년 이상된 느티나무로 이곳이 예전에 객사가 있었음을 증명해주는 나무입니다. 느티나무의 경우 객사안에 있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 함양읍성내에 남아있었던 함양객사의 경우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초등학교 교사로 사용되었습니다. 좌우익헌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미지출처 : 다음카페 옛길따라 - 옛길문화발전소 http://cafe.daum.net/jayuchon
▼ 목조건물의 경우 관리를 잘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여 함양객사의 경우 화재로 소실되었습니다. 이미지출처 : 다음카페 옛길따라 - 옛길문화발전소 http://cafe.daum.net/jayuchon
▼ 함양초등학교 교사가 객사의 건물로 사용되었는데... 
▼ 이제 함양초등학교의 경우 100주년을 넘어서 100년을 도약한다는 각오와 슬로건이 함양초등학교 교정에 세겨져 있습니다.  
▼ 함양초등학교 정문에서 남측방향을 바라보면 우측에 학사루가 나옵니다. 함양읍성의 경우 원형에 가까운 읍성으로 경남지역에서 원형으로 된 읍성의 경우 이곳 함양이 유일합니다. 함양읍성의 성문은 3개라 도로의 발달도 T자형으로 되어져 있습니다.  
▼ 함양읍성내에 있었던 학사루의 경우 함양초등학교 운동장에 있었는데 이곳으로 1979년에 옮겨왔다고 합니다. 학사루는 김종직(1431~1492)이 함양군수로 있을때 학사루에 걸려 있던 유자광(?~1512)이 쓴 시를 철거한 일이 있었는데 이것이 사적인 원한으로 발전하여 1498년(연산군4년)에 일어난 무오사화의 원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무오사화로 김종직은 시체를 관에서 꺼내어 다시 죽음을 당하는 부관참시로 끝을 맺었고, 유자광은 사화의 승리자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 학사루의 경우 운동장에 있었다고 합니다. 함양초등학교 운동장의 경우 보통 앞쪽에 운동장이 있는 것과 달리 뒷편에 있더군요.
▼ 학사루에서 남측을 따라오면 만나는 것이 남문인데 남문의 경우 현재 함양상림으로 옮겨놓았습니다. 
▼ 남문의 경우 보이는 식당앞에 있는 도로로 추정이 됩니다. 조선시대 남문의 경우 성문의 출입문과 마찬가지 였을 정도였습니다. 보통 남문을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지역에 따라 서문이나 동문 또는 북문을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었습니다. 함양읍성 남문에서 남측방향으로 민가들이 형성이 되었을 것이고 그곳이 가장 번화했을 것이지만 지금은 큰 도로를 따라 번화가가 형성이 되는데 함양의 경우도 예전 함양읍성 남문중심으로는 여느 시골의 골목과 같이 형성되어져 있습니다. 
▼ 남문지에서 내려다 본 남측방향으로 우측에 보이는 고목이 보입니다. 보통 성문의 앞에 이런식의 느티나무가 있어서 사랑방의 역활과 함께 쉬웠다 가는 역활을 하더군요. 
▼ 남문지를 떠나서 남측으로 내려와서 남문지 방향을 바라본 곳인데 골목길로 형성되어져 있으며 좌우측에 민가들이 들어서있는데 조선시대에도 이런식으로 형성되어져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 남문지에서 조금 내려오다가 본 것이 바로 일본식 가옥입니다. 일제강점기때 조선의 구석구석에 일본인들이 들어왔는데 그중에 예전의 읍성이 있었던 곳은 많이들 들어왔습니다. 그들이 세운 가옥들이 읍성(읍치)이 있었던 곳을 가면 볼 수가 있었는데 함양읍성이 있었던 곳에도 일본식 가옥이 있었습니다. 
▼ 일본식가옥의 경우 기존에 형성되어져 있는 조선인의 가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형성하였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이렇게 형성된 일본식 가옥의 경우 한두채는 아니고 몇채가 될 것 같았는데 이부분에 관해서는 함양에 사시는 분들께 물어보아야 될 것 같습니다. 
▼ 일부 현대식으로 개조를 하여 생활하고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일본식 가옥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이 건물이 언제 지었졌는지는 알수가 없네요.
▼ 2층으로 된 일본식 가옥의 경우 일제강점기때 일본인의 재력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비록 함양읍성과 성문은 사라지고 없지만 남문을 중심으로 형성된 주택과 함께 그곳에 자리잡고 어깨에 힘 좀 들어가려고 하는 일본인들이 남문을 중심으로 형성한 가옥이 예전의 화려한 함양읍성 남문의 위상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덧글

  • 부산촌놈 2011/09/24 13:18 #

    화재로 소실되다니 아쉽군요.
  • 팬저 2011/09/24 13:31 #

    읍성 말살정책으로 각종 객사와 동헌이 없어졌지만 그래도 남아있었던 객사나 동헌의 경우 화재로 소실된 것이 많습니다. 물론 여러가지 이유때문에 없어진 경우도 있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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