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두와 취두가 있는 읍성의 성문 누각 읍성(邑城)



웅천읍성 동측 복원이 완료되어 가는 것 같네요. 라는 발제글을 작성하고 나서 계속해서 드는 의문이 바로 용두와 취두였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을 통해서 알아보니 이런 글이 있더군요. 

" 용두와 취두에 관한 기와를 살펴보니 "망새의 일종인 취두나 용두 그리고 여러가지 모양을 하면서 열을 짓는 잡상 용마루 양쪽 끝에 얹는 취두는 그 모양이 독수리의 머리 모양을 닮았가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일반적으로 독수리 혹은 매의 머리처럼 쑥 불거졌으며, 모가 난 두 빰에 눈아로가 깃모양을 선과 점 등의 형태로 표현하였습니다.  반면 합각머리나 너새 끝에 얹은 용머리처럼 생긴 것을 용두라고 합니다."라고 적혀있는 것을 봐서 용두, 취두, 잡상은 궁궐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취두는 잡상과 같이 궁전건물에만 사용되고 용두는 왕릉 인근에 있는 원찰(왕과 왕실의 소원을 기원하는 절)에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또 용두의 경우 궁전건물 왕릉이 정자각과 침전, 문묘, 행궁, 지방관아 등에만 사용되었고 왕실을 상징하는 새와 짐승으로 용과 봉황을 드는데 용은 왕을 봉황은 왕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볼때 웅천읍성에서 복원하는 견룡루위에 있는 용두와 취두의 경우 원래 없었는데 복원업체나 문화재위원들의 허가로 삽입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최근에 복원한 청도읍성의 북문모습으로 북문누각에는 용두와 취두가 보이지 않습니다. 전체적인 모습의 경우 웅천읍성과 비슷합니다. 물론 성벽의 높이의 경우 웅천읍성의 성벽이 더 높습니다. 
 충남 홍주읍성의 동문인 조양문으로 취두와 용두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조양문도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 1975년에 완전 해체, 복원되었지만 경의문과 망화문과 달리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충남 보령읍성 남문인 해산루의 모습으로 용두와 취두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해산루의 경우 일부 체성과 함께 남아있는 보령읍성의 흔적이라고 합니다. 
 해미읍성의 남문인 진남문의 모습으로 여기에 어디를 보아도 용두와 취두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전북 고창읍성으로 가보겠습니다. 고창읍성의 경우 1976년부터 성문과 객사, 동헌, 향청 등 많은 건물들을 복원하였습니다. 그중 하나인 북문인 공북루입니다. 어디를 보아도 취두, 용두가 보이지 않습니다.  
▼ 고창읍성 진서루의 모습으로 진서루 또한 복원을 한 것입니다. 용두와 취두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고창군에 있는 또 다른 읍성이 있는데 무장읍성입니다. 무장읍성의 남문인 진문루로 광해군 4년(1612)에 개건되었으며 여러 차례의 개수를 거쳤다 하고 이후 1984년에 크게 중창되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용캐 잘 버텨온 진문루인데 여기에 어디를 보아도 용두와 취두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읍성 열풍을 일으킨 전남 순천의 낙안읍성 동문인 낙풍루의 모습입니다. 이곳 낙풍루 또한 복원을 한것이지만 어디에 찾아보아도 용두와 취두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낙안읍성 남문인 쌍청루의 모습으로 이곳에도 용두와 취두는 보이지 않습니다. 
 동래읍성 북문으로 복원한 성문과 누각이지만 용두와 취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읍성이 많이 남아있었던 일제 강점기때의 각 읍성의 사진들을 모아 보았습니다. 아무래도 정확한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경주읍성 월성아문(1929년)의 모습으로 용두와 취두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동래읍성 세병문(좌)과 주조문(우)의 모습으로 여기에 어디에도 용두와 취두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 주조문에서 세병문을 바라본 모습인데 성안에서 성문 바깥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여기에도 용두와 취두는 보이지 않습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들이 경성읍성 남문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는 모습인데 경성읍성 남문 여기에 용두와 취두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경성읍성은 현 북한에 있습니다. 
 북한의 무산읍성의 모습인데 거의 무너지기 직전인데 여기에도 용두와 취두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평양읍성의 칠성문으로 칠성문 누각에는 용두와 취두가 보이지 않습니다. 
 북한 함흥에 있었던 함흥읍성 남문으로 이곳에도 용두와 취두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의주읍성 남문 누각위에 용두와 취두이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일제강점기때 찍은 전주읍성 남문인 풍남문의 모습으로 여기 어디에도 취두와 용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데 복원을 하면서 없는 용두와 취두를 복원하였습니다. 

이제부터는 복원을 한 읍성의 성문의 누각으로 용두와 취두 또는 잡상들이 있는 곳입니다. 

 거제읍성 북문인 계룡루로 2006년 복원을 하였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이 계룡루의 경우 취두만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용두는 그럼 어디에 ㅠㅠ 
 김해읍성 북문인 공진문으로 2008년 5월에 복원을 한 것입니다. 당시 복원 부분에 발제글을 적을때 복원이 잘된 것 같다라고 발제글을 적었는데 이번에 보니 상당한 오류가 보이네요. 
 당시에는 용두와 취두가 있어도 그렇는 갔다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보니 문제가 있네라는 생각이 드네요. 
 용두가 너무 많이 자리잡고 취두가 상당히 큰 느낌을 받습니다. 당시에는 좋다라는 생각에서 지금은 영 조잡하네라고 바뀌네요. 
 용두와 취두의 모습이고 용두의 경우 아주 디테일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 용두의 멋진 모습인데.... 김해읍성 북문을 복원한 곳이 현재 웅천읍성 복원을 하고 있는 곳입니다. 기장읍성의 복원도 이 회사가 할 것 같다라고 하던데..... 전체적으로 모양새가 비슷하게 느껴지죠. 복원하는 건설회사에서 용두와 취두를 복원하자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각 시에 있는 문화재위원들이 하자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필자가 볼때에는 건설회사에서 용두와 취두를 넣는 것 같습니다. 이제 부터 복원하는 곳에는 용두와 취두를 넣지 않았으면 하네요. 보기에는 좋을 것인지 모르지만 복원이라는 취지에는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나주읍성 동문인 동점문으로 2006년에 복원하였습니다. 옹성과 2층 누각이 자리잡아 웅대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곳에도 용두와 취두의 모습이 보이네요. 
 나주읍성 남문인 남고문의 모습으로 1993년에 복원을 했다고 합니다. 2층 누각인데 그곳에 취두와 용두의 모습이 보입니다.
 호남제일문이라고 현판이 있는 곳은 바로 전주읍성 남문인 풍남문으로 성안에서 본 모습입니다. 이곳에는 취두와 용두의 모습이 보입니다. 
 2002년 복원 완료한 구미시 선산읍에 있는 선산읍성의 낙람루로 여기에는 취두,용두,잡상까지 다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면 용두와 취두가 있는 읍성의 성문 누각의 예전 사진들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개성읍성 남문의 모습인데 여기에 취두는 확실히 보이고 잡상의 경우는 헷갈립니다.  
 평양의 대동문 사진으로 취두의 모습은 보이는데 용두의 모습은 보이지 않으며 잡상의 모습도 보이지 않습니다.
 북한에 있는 영변읍성 남문의 모습으로 사진이 좋지 못해서 정확하게 알 수 없는데 취두의 모습과 잡상이 있는 것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조금 더 큰 사진이나 선명한 사진이 있으면 좋겠네요. 
 현재 찍었던 영변읍성 남문 사진에는 취두와 잡상이 보입니다. 다만 잡상이 하나입니다.
이상과 같이 살펴보니까 누각에 용두가 있는 경우는 거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취두의 경우 영변읍성과 개성읍성에서만 보았습니다. 나머지는 거의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잡상의 경우 잡상 한마리가 자리잡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웅천읍성의 동문 누각에 용두와 취두를 넣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140억원 이상의 돈을 들여서 복원하는 웅천읍성의 경우 제대로 된 복원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복원이라면 예전에 있었던 그대로 복원을 하는 것이 마땅한 것인데 건설업자의 입맛대로 복원을 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건설업자 마음대로가 아니라면 문화재위원들이 복원에 대한 감수를 했을 것인데 이부분에 관해서도 이야기가 있었는지 궁금하네요. 

얼마전 경상남도에서 거북선 복원을 한다고 국내산 금강송으로 복원한다고 열심히 홍보하고는 미국산 소나무를 사용하여 거북선을 복원하는 바램에 여러명이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사진출처 : 현대사진 본인 및 오솔길님(메탈) http://blog.daum.net/bae6607 
               예전사진 인터넷 검색
               북한사진 북한문화재자료관 http://north.nricp.go.kr/nrth/kor/inx/index.j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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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부산촌놈 2011/10/09 03:09 #

    그나마 발견되는 것은 북한 쪽의 것이군요.

    명청 사신들이 지나다녔던 길목이니 만큼 조금이라도 더 화려하게 보이려고 얹은 게 아닐런지요?
  • 팬저 2011/10/09 12:48 #

    글쎄요... 아직까지 왜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용두의 경우 임금을 상징해서 궁궐에만 사용한 것은 확실한 것 같네요. 나머지는 알아보아야 겠네요.
  • 松下吹笙 2011/10/11 23:07 #

    작은 읍성문의 경우는 없었다고 봐야죠 ㅎㅎ 작은 지붕에 용두 취두 올리면, 라인이 안 살아요

  • 팬저 2011/10/12 00:11 #

    ㅎㅎ 그렇겠네요. 그런데 라인이 살고 안살고 보다 읍성의 규모와 도호부나 목이상에 있는 것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네요.
  • 松下吹笙 2011/10/12 00:40 #

    네 도호부나 목사이면 더 설치할 가능성이 높죠. 머 그런 곳일 수록 읍성도 큰법이니깐요
  • 팬저 2011/10/12 00:42 #

    지금 사진에 남아있는 곳이 그런 것 같더군요.
  • 이 감 2011/10/18 02:51 # 삭제

    평양 대동문의 경우는 용두도 있습니다. 취두도 흥미롭게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주로 쓰인 치미의 형상이 섞여있어서 치미와 취두의 중간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철옹성 남문에도 용두가 보이네요.
    한국전쟁 이후 복원된 성문 중 개성 남대문의 경우에는 취두 용두와 더불어 잡상도 삼상이 있는데 구한말 옛사진에는 취두(혹은 용두도...)만 보입니다.

    참고

    http://portal.nricp.go.kr/kr/data/mkr/original/view.jsp?page=1&id=1038&subject=1&contents=3&con2=902

  • 팬저 2011/10/18 07:31 #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북한에 있는 읍성의 누각은 거의 다 보는 것 같은데요. 말씀하신 평양 대동문은 있지만 다른 곳은 없네요.
    왜 있고 없는 것일까요? 우리말로 시의 규모에 따라 틀리나?
  • 이 감 2011/10/18 14:03 # 삭제

    그러게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취두와 용두는 규모가 있는 공공기관 건축물(과 사찰)이라면 사용할 수 있고 잡상은 왕과 관련된 건축물에 한해 건물 서열에 따라 잡상 수를 조정해서 쓸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말이죠.
  • 팬저 2011/10/18 23:17 #

    취두와 용두의 경우 공공기관 건축물중에서도 현,군,부 등에서는 보이지 않던데 사실인가요?
  • 이 감 2011/10/19 06:33 # 삭제

    정확히는--전통건축에 대해 교양시간에 배운 내용으로는--취두는 잡상과 더불어 궁궐건물 혹은 왕과 관련된 건물에만 사용하고, 용두의 경우는 궁궐건물 혹은 왕과 관련된 건물과 지방관아, 왕릉 인근의 사찰에만 사용한다고 하죠. 그러므로 취두와 용두가 수원화성 건물에는 사용이 가능한 것이고, 전주읍성의 경우도 구한말 사진에는 없지만 사용한다고 해서 꼭 법도에 어긋난다고 할 수는 없다네요.

    그런데 이것이 또 딱딱 지켜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배운 기억으로는요.
  • 팬저 2011/10/19 09:03 #

    고맙습니다. 이런 저런 숙제가 풀리지 않아서 고민이 되었는데 좋은 정보 알려주어서 내용을 알게 되었네요. ^^^ 감사합니다.
  • 이 감 2011/10/18 05:58 # 삭제

    그나저나 동래읍성 주조문과 세병문 사진을 보니 역시 아쉽네요. 성이 남아 있었으면 꽤 웅장했을 읍성인데요. 특히 1872년 지방도의 동래읍성의 모습이라면 말입니다. 주조문과 세병문이라도 남아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요. 지금은 시가지라 복원도 어렵겠지요.
  • 팬저 2011/10/18 07:32 #

    예... 아무래도 그렇다고 봐야겠죠. 복원을 하는데 성문 복원은 힘들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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