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생포왜성, 300년간 조선의 요새 성곽 관련 뉴스



서생포왜성, 300년간 조선의 요새 기사보기

기사에서는 왜 서생포왜성이 300년간 조선의 요새였다는 부분이 생략되어져 있습니다. 임진전쟁(2012년 교과서에 사용된다고 합니다)이 끝난 후 서생포진성으로 사용되었는데 그 시기가 300년이라는 이야기인데 그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서생포왜성이라는 명칭에서 나오는 것처럼 서생포진성이라기 보다는 서생포왜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서생포진성의 경우 산 정상에 있은 것은 아니고 남문을 중심으로 형성하였습니다.  

임진전쟁이 끝난 후 조선수군이 서생포진성을 축성하기 보다는 서생포왜성을 이용하여 진성으로 사용했는데 이런식의 경우 부산진성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기존에 잘 축성된 왜성을 이용하여 방어하고 진성을 축성하기 위한 백성에 대한 민폐를 막기 위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따라서 서생포왜성을 갈 경우 왜성에 대한 부분도 공부하면서 조선후기 울산지방을 중심으로 방어를 한 조선수군도 생각 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덧글

  • 두근두근 2011/10/30 17:40 # 삭제

    한국에는 조선 전기와 후기의 구분이 될 정도로 절대적 영향력을 끼쳤던 전쟁인데, 일본은 에피소드처럼 넘겨서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없을 것 같더군요. 그래서 한국에 있는 왜성 가운데 순천과 울산에 있는 왜성을 복원하여 한국인들에게 전쟁에 대한 대비와 평화의 소중함을 알리고, 일본인들에게 과거의 역사에 대한 자각의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데, 일제강점기의 유적이 한민족에게 치욕이라고하고 보존하는 것에 대한 반대 의견이 많으니 과거사를 숨기려는 일본에게 오히려 도움을 주려는 것 같더군요. 과거 일본인들이 이런 말을 했었죠. "하삼도의 사람들은 우리를 적대적으로 대하여 독립운동가들을 쉽게 파악할 수 있으나, 서북 사람들은 도대체 알 수 없어 독립운동가들을 파악하기 어렵다."
  • 팬저 2011/10/30 22:55 #

    현재 순천왜성의 경우 복원이 되어져 있지만 실질적으로 복원이라는 부분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 부산촌놈 2011/10/30 19:50 #

    300년의 조선군 주둔도 고려해서 복원할 때는 조선식 성문과 관아를 지음을 생각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팬저 2011/10/30 22:54 #

    서생포왜성내에 있었던 임란당시의 공시들을 모신 사당인 창표당을 복원한다고 하는군요.
  • 한라온 2021/07/08 15:52 #

    1872년 지방지도를 보면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이 보이던데, 서생포진으로 사용될 시절에 보면 외성에 남문/암문/북문 3곳, 중성에 중성문 1곳, 내성에 서문 1곳 해서 총 성문이 5개더군요. 위치와 지형지물을 대강 따져보았을 때 남문은 현재 왜성 남문지를 그대로 이용한 것 같고, 북문은 남창 방면에 있는 고구치를 이용한 것 같고, 암문과 중성문은 각각 현 동문지와 내성 주출입구의 석축 위에 평석을 깔아 문을 만든 것으로 보이며, 서문은 현 내성 부출입구를 이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팬저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팬저 2021/07/08 16:20 #

    예나 지금이나 돈이 작게 들어가는 것이 좋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왜인이 만든 성문을 활용하였을 가망성이 많습니다. 다만 왜인들이 만든 천수대까지는 올라가기 힘이드니 산기슭 언저리에 동헌과 객사를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이 1872년 지방지에 나오죠. 이야기하신 성문은 보통 그정도에서 활용하였을 것입니다. 현장을 가보니 남문지가 제법 크더군요.
  • 한라온 2021/07/08 16:03 #

    또한 高田徹이라는 분과 호리구치 겐지(堀口健貳)라는 분의 분석을 보니, 위 사진의 '현 위치' 바로 왼쪽에 ㄱ자로 크게 꺾여 있는 저 부분도 고구치로 분류하시더군요. 1872년 지방지도에는 외성에 성문이 3곳밖에 뚫려 있지 않은데 어찌 된 일일까요......@-@
  • 팬저 2021/07/08 16:21 #

    서생포왜성 이외 부산진성 등은 원래 있던 왜성을 활용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부산진성은 새롭게 축성을 하였지만 말이죠. 따라서 성문의 경우 우리가 편하게 하기 위해 만들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 한라온 2021/07/08 16:50 #

    그 말씀이 아니라 반대입니다. 조선의 서생진에서는 입구가 보이지 않는 부분을 일본 전문가들이 고구치라고 분석한 것이 의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있던 성문을 구태여 메울 이유가 딱히 없어 보일 뿐더러 해당 부지는 남문 터와 달리 고구치로 분류하는 한국 자료를 찾아볼 수가 없었기에 질문을 드린 것입니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구글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