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읍치 살펴보기 01 읍치



해동지도에서 본 거창부의 모습으로 거창부의 경우 현재 거창군중 거창 서부지역인 위천면 등을 제외한 현재의 거창군일대입니다. 거창부의 경우 읍성이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내륙 깊숙히 있다보니 읍성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신 읍치 옆에 거열산성이 있어서 유사시 거열산성으로 옮겨가서 농성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거열산성의 경우 삼국시대때 만든 산성이라 조선시대때 과연 사용할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지도에도 자세히 그려져 있지 않는 것으로 봐서 조선시대때에는 사용하지 않았을까 추정합니다. 해동지도 당시에는 거창은 거창부였습니다. 
여지도에서 본 거창부의 모습입니다. 거창부의 경우 읍치가 있는 곳을 주변으로 황강과 위천이 흘러서 식수에 대한 공급이 덜하고 자연스러운 해자의 기능을 하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 곳이어서 삼국시대부터 읍치로서의 기능을 했습니다. 아사의 경우 동측에 있고 객사의 경우 서측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향교는 북측에 침류정이 남측 위천이 있는 곳에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위천을 지나는 곳에 영천교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승지도로 위 여지도와 별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위 지도에 등장하는 거창부와 달리 거창현입니다. 아무래도 그동안 있던 거창부에서 강등당한 것 같죠. 
1872년 지방지에서 본 거창부의 모습인데 보통 나온 지방지의 지도와 달리 위 고지도에 나오는 것 보다 자세히 알 수 없는 식으로 되어져 있습니다. 거창현에서 다시 거창부로 승격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현재의 거창군의 모습으로 고지도와 별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거창읍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양옆에 황강과 위천이 흐르고 있으며 거창군청이 있는 북측을 중심으로 읍이 발달되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거창군청이 있는 곳을 본 지도입니다. 위 고지도를 기준으로 한다면 거창초등학교가 거창동헌이 있었던 곳이고 거창군청의 경우 객사가 있었던 곳으로 보입니다. 지도를 자세히 보시면 거창초등학교의 교사의 방향과 거창군청의 군청사 방향이 남향임에도 조금 각도가 서로 틀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창군청 앞 로타리로 아주 작은 로타인데 이곳을 중심으로 상업지와 관공서가 나눈다고 보시면 될 것입니다. 사진을 찍었던 시기는 한창 여름인데 지금은 겨울을 향해가고 있네요. 
거창객사가 있었던 곳으로 보이는 거창군청입니다. 전체적으로 객사의 모습과 내삼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느낌을 줍니다. 
거창군청 길 건너 있는 거창초등학교로 사진에 적혀있는 것과 같이 거창초등학교의 개교는 1907년으로 개교 100년이 넘었습니다. 우리나라 읍치에 있었던 초등학교의 경우 거의 대부분 100년이 넘었습니다. 
여느 초등학교와 별차이가 없습니다. 거창초등학교 교사의 경우 남측과 북측에 각 1동씩 있었는데 보이는 교사동의 경우 남측에 있는 교사동입니다. 이 교사동의 경우 내삼문이었을 것이고 운동장의 경우 법정일 가망성이 많겠죠. 
보이는 교사동의 경우 북측에 있는 교사동인데 거창동헌일 가망성이 많아 보입니다. 
인터넷에서는 거창의 객사와 동헌에 관련된 이야기가 없더군요. 아무래도 거창읍지를 보아야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거창문화원에 문의를 해야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거창읍치에 있었던 객사, 내삼문, 동헌, 내아, 책실, 각종 관아지의 경우 언제 사라졌는지도 모르게 사라져 우리 앞에 볼 수가 없습니다. 적어도 일제 강점기때 있었던 사진이라도 세상에 나타났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다행이 거창 신씨 문중이 관리하는 창충사에 거창 동헌에 사용하던 외삼문이 남아있습니다. 이 외삼문의 경우 정면 3칸, 측면 2칸의 오량구조 팔작지붕으로 누각 형식을 보여지고 있으며 현판에 앙진루라고 적혀있습니다. 거창동헌의 외삼문의 격을 표현해주는 앙진루의 경우 하단 주춧돌을 보면 거북이로 되어져 있는데 이부분이 아주 특이하게 보이더군요. 보통 자연스러운 돌을 사용하는데 앙진루의 경우 아주 섬세하게 거북이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외삼문인 앙진루를 자세히 잘 보면 추녀 밑으로 나무가 추녀를 받히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를 활주라고 하는데 4개가 있습니다. 사진에는 할주를 받히고 있는 할주초석이 보이지 않네요. 이 앙진루가 그래도 남아있어서 옛 관아 연구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앙진루의 현판
위천변에 있는 침류정의 모습으로 위 고지도에도 등장하는 침류정입니다. 밀양 영남루, 진주 촉석루, 함양 학사루, 안의 광풍루, 합천 함벽루, 평양 부벽루, 남원 광한루, 삼척 죽서루 등과 같은 회의를 하거나 연희를 하는 누각입니다. 다만 이 침류정의 경우 다른 누낙에 비해 작아야 하는데 같은 크기라는 것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 침류정의 경우 왜 영남루나 촉석루와 같이 루라고 사용하지 않고 정이라고 사용했을까요? 

내용을 살펴보면 
-樓의 경우 건물 구조상 종고(宗高)가 높아 마루밑으로 사람이 다닐 수 있을 만큼 높은 구조를 갖는 것, 중층(重層) 구조이며 
-亭의 경우 공간적 특성상 개방된 공간을 갖도록 만들어져 탁 트인 느낌을 주는 곳이라고 하네요. 내용 출처 : 네이버 지식검색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는 힘이 들지만 亭이 樓보다 작고 높이도 낮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첨류정의 경우 위 내용과 달리 종고의 높이가 많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거창신문에 적혀있는 첨류정의 내용을 보면 "침류정은 평소에는 선비들이 학문을 토론하고 시인묵객들이 풍류를 즐기는 곳으로써, 나라에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에는 국난극복을 위한 힘과 지혜를 모으는 곳으로 활용키 위해 1552년(조선명종조, 현감 조충언)에 건립되었다.

이후 임진, 정유 양난에 퇴락한 것을 1602년(현감 이보)에 중건하였으나 1936년 병자년 수파에 유실돼 1992년 복원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군민의 힘으로 재 건립 되었다."라고 적혀있습니다. 즉 지금에 있는 침류정의 경우 예전에 있었던 침류정이 아니고 새롭게 신축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침류정을 새롭게 신축할때 문화재위원회에서 이야기가 나왔을 것인데 무시하고 촉석루와 영남루처럼 누각으로 만들어 놓았네요. 침류정은 침류정으로 만들어 놓아야 하는데 침류정을 침류루로 많들어 놓았네요. 



핑백

  • 거창읍치 살펴보기 01 | Appenheimer 2011-12-05 04:40:02 #

    ... 을 침류루로 많들어 놓았네요. tag : 거창, 읍치, 거창군, 동헌, 앙진루, 거창부, 침류정 팬저의 국방여행 Posted on December 4, 2011 by acousticlife. This entry was posted in Rssx01 and tagge ... more

덧글

  • 진성당거사 2011/11/29 17:04 #

    앙진루는 이건된 건물 치고는 그래도 그럭저럭 보존이 잘 된 모양입니다. 다만, 활주의 경우는 건물에 본래 있었던 것 같지는 않고, 아마 이건하면서 건물의 중심이 흐트러지는 바람에 추가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옛 신문기사 등을 보면 침류정이 무너진 건 1936년이 아니라 1933년 9월 4일입니다. 지자체가 얼마나 이런 것 고증에 엉망인지 알만 합니다. 몇몇 기록을 보면 침류정은 아홉칸, 즉 정면 측면 각 3칸의 누각이랬으니 그나마 복원이라고 해놓은 것도 엉터리이구요.
  • 팬저 2011/11/29 19:09 #

    양진루의 경우 본래 활주가 있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러한 활주가 본 양진루의 추녀를 지탱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침류정의 기록이 잘못되었다면 수정을 해야겠는데 저런 부분이 안내판에 적혀있다면 계속해서 오류가 생기겠네요. 아홉칸이라고 했다면 현재 복원(신축이지만 말이죠)된 침류정의 경우 亭치고는 상당히 큰 편에 속하니 잘못되었다고 봐야겠네요.
  • 역사관심 2011/11/30 04:37 #

    개인적으로 지자체들의 여러 복원프로젝트중 '고증'부분을 어디서 어떤 경로로 확인하고 사업을 진행하는지 심히 궁금합니다.
  • 팬저 2011/11/30 11:20 #

    보통 지자체에 있는 00문화원이나 향토사학자, 00대학 역사관련학과 교수들에게 의뢰하지 않나요? 저도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이렇게하지 않을까 추정합니다.
  • 진성당거사 2011/11/30 11:42 #

    팬저님 말씀이 맞습니다. 한데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이런걸 잘 하지 못한다는 거죠,
  • 팬저 2011/11/30 11:56 #

    요즘 역사관력학과에서 기록관련학과들이 들어서는 것이 이와 무관할까요? 아무래도 건물이나, 읍성, 진성 들의 경우 문헌에 의존할 수 빡에 없는데....
    문헌의 자료를 가지고 옮겨야 하니 기록관련학과과 들어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저도 초보라....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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