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한국의 대표누각 촉석루에 관한 이야기 "진주향당 총서 촉석루" 발제글을 작성하고 나니까 여러분들이 댓글로 글을 남겨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원래 진주읍성(진주성)의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만(답사갔다가 진주성을 찍은 카메라를 잊어버리고) 이래 저래 다른 이유로 진주읍성(진주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중 댓글로 작성하였던 진주읍성(진주성)의 잘못된 복원과 진주읍성(진주성)을 위한 문화콘텐츠(소프트웨어)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현재 진주읍성(경상우병영성)의 경우 내성만 남아있는 형태입니다. 원래 진주읍성의 경우 외성의 크기로 임진전쟁을 치루었으며 임진전쟁이 끝난 후 외성에 내성을 축성하였으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외성과 내성은 사라졌다가 내성만 복원한 경우입니다. 진주읍성(진주성)의 경우 복원을 하려면 외성까지 복원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그것은 사실상 힘이 들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진주읍성(진주성)의 외성과 관계된 성문이나 치성등에는 시민들이 알 수 있는 안내판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아직 진주시내에서는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원래 진주시의 경우 사국시대(고구려,신라,백제,가야)부터 이어온 유서 깊은 도시이지만 일제강점기와 6.25를 거치면서 역사적인 건물은 사라져 버려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조선시대 향청의 자리는 현재 갤러리아 백화점으로 객사자리는 MBC방송국을 거쳐서 현재는 롯데인벤션아파트로 동헌자리의 경우 KT진주지사로 사용중에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에 관한 안내판이 보이지 않는 것은 진주시의 역사를 알리는데 실패한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한 기업은행 근처의 동장대와 각종 성문의 흔적은 찾을 수 없습니다. 이런부분은 고도의 진주시를 알리는데 일조할 것으로 보이는데 진주시나 시민단체, 사회단체에서 하지 않고 있더군요. 이런것 보다 더 큰 돈을 들여서 타워를 만들고 00로타리클럽, 00 JC, 00봉사회라는 기념탑을 만들고 있습니다. 진주시의 큰 뿌리를 찾지 않고 자신들의 치적을 알리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먼저 진주읍성(진주성)의 체성부분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현재 진주읍성(진주성)에 있는 체성부분을 알 수 있는 사진으로 촉석루 앞에 체성이 있고 암문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하지만 1910년경의 촉석루를 보면 체성과 암문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촉석루앞에 있는 체성의 경우 복원을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아래에 나오는 이미지의 경우
오솔길님의 이미지입니다. 이 체성의 경우 공북문에서 서장대로 연결된 부분의 체성입니다. 현재 진주읍성(진주성) 체성의 경우 1975년에는 일제강점기에 허물어졌던 서쪽 외성의 일부와 내성의 성곽을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 거의 같은 위치로 추정되는 곳으로 성안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여장과 미석 그리고 총안과 갓돌의 모습이 보이는데 이부분의 경우 해방후 복원한 것으로 아마도 1970~80년대에 복원하였을 것입니다. 경사가 있는 곳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여장사이에 타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다보니 여장인지 체성인지 헷갈릴 정도이고 여장이라고 느끼는 것은 총안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공북문에 관한 백과사전을 살펴보면 "‘공북’이란 충성을 맹세한 신하가 임금이 있는 북쪽을 향해 공손하게 예를 올린다는 뜻이다. 기록에 의하면 공북문은 성벽과 나란히 자리 잡고 있고, 홍예문 위로 2층의 누각을 올린 형태였으며,
누각은 정면 3칸 구조로 2층은 1층보다 각 칸의 넓이를 좁히면서 올렸음을 알 수 있다. 또 왕을 바라보는 문으로 위엄을 갖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진주성의 다른 문보다 높게 쌓은 것으로 추정되며, 공북문 바로 앞에는 진무청과 중영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공북문은 조선시대 말에 훼손되었다가 1996년 5월과 6월 경남문화재연구원의 발굴조사를 거쳐 2002년 5월 3일 옛 모습대로 복원되었다. 현재 높이는 5.3m, 1층 면적 약 66m², 2층 면적은 46㎡로 되어 있다."라고 적혀있습니다.
▼ 여기서 적혀 있는 공북문의 경우 진주읍성에만 해당된 것이 아니라 여러 읍성에 있는 북문에도 사용되었는데 공북문(공북루)로 사용되는 읍성을 보면 대구읍성, 광주읍성, 고창읍성, 창원읍성, 전주읍성, 청주읍성, 공산성, 전라우수영성 등이 있습니다. 공북문의 경우 하삼도(충청,전라,경상도)에서 자주 사용했던 누각의 이름으로 보입니다. 남문의 경우는 진남루가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 위에서 이야기한 것 처럼 공북루의 경우 2002년 복원을 하였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어디가 잘못 복원이 되었을까요? 필자는 제일 먼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것이 바로 잡상입니다. 저번에도 한번 잡상과 용두 그리고 취두에 관한 발제글을 한 적이 있는데 잘못된 잡상과 용두,취두가 진주읍성(진주성)의 공북문에도 있네요. 용두와 취두가 있는 것 까지는 이해한다고 해도 잡상의 경우는 이해하기가 힘이드네요.
▼ 조선의 정신적인 도시라고 할 수 있는 전주와 함흥에 있는 성문에도 잡상이 없는데 경상우병사가 있는 진주읍성에 과연 잡상이 있었을까요?
▼ 너무나 잘 맞추어 놓은 대리석으로 협축을 만들다 보니 이부분도 재미가 없을 정도입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경남문화재연구원의 발굴조사를 보면 남아있었던 협축의 경우 틈이 있는 것으로 보였는데 너무나 기계적으로 맞추어 놓았습니다.
대구읍성 남문에서 사용했다고 하는 영남제일문의 모습으로 위에서 이야기한 진주읍성(진주성)의 공북문과 흡사하리만큼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구읍성의 남문에 있는 잡상은 7개로 5개가 있는 진주읍성(진주성)보다 잡상이 더 맞네요. ㅋㅋㅋ 엉터리인데 7개를 갖다놓으면 뭐하고 5개면 뭐합니까? 무조건 많으면 좋은거지... ㅎㅎㅎ 대구읍성이나 진주읍성이 한양에 있는 창경궁 통명전보다 높은 위치이네요. 또 진주읍성의 경우 창경궁 명정전과 같은 동급인데요.
그 이전에 지은 촉석문은 공북문과 달리 1층 누각이며 1972년에 복원했다고 합니다. 진주읍성의 경우 1979년이전에는 성안에 주민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필자가 초등학교를 다닐때 진주읍성을 가보니 민가들이 있었는데 1979년 부터는 성 안팎의 민가를 모두 철거하고 진주성 정화작업을 시작해버려 진주읍성이 아닌 진주공원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일제가 창경궁을 허물고 그곳에 창경원을 설치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라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차라리 민가를 개량하고 주민들이 거주하게 지냈다면 낙안읍성과 같이 더욱 더 사랑받는 진주읍성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부분에 관하여 진주에 있는 경남일보에서 진주성을 위한 기획특집을 가졌습니다.
▼ 현재 촉석문이나 공북문의 경우 누각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로 똑 같습니다. 전형적인 느낌을 많이 주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먼저 만든 촉석문을 기준으로 공북문도 만들어지다보니 두곳 모두 잡상이 있는 것이겠죠. 제발 저 잡상이라도 없애면 안될까요?
복원(사실 복원이라기 보다는 신축에 가깝지만)에 문제가 있는 진주읍성입니다. 이런 부분과 별개로 진주성에서 수문장 교대식이 상설되어 열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서울에 있는 광화문등에서 이루어진 수문장 교대식이 진주읍성에도 열리는 것에 관해서는 찬성을 합니다만 보고 있으면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사진을 보니까 이상한 점이 없는지요. 일단 병사들이 들고 다니는 삼지창이라고 불리는 당파의 경우 임진란 이후 명나라를 거쳐서 도입된 병기입니다. 당파의 경우 무게가 3kg 이상이어서 많은 병력이 들고 다니지 않았던 무기임에도 불구하고 기창으로 들고 다니면서 재현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또 사진을 자세히 보면 환도를 들고 다닙니다. 이런 환도가 지금과 같은 소총도 아니고 손에 잡고 들고 다닐 수가 있나요? 허리띠에 띠돈을 한 후 칼을 패용하고 다녔습니다. 현재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을 보면 띠돈을 하고 환도를 패용하고 있습니다. 경복궁에서 하는 교대의식이나 진주읍성에서 하는 교대의식 모두 조선시대의 의식을 재현하는 것이 아닌지요? 하지만 어떻게 경복궁의 경우 띠돈을 하고 환도를 패용하고 진주읍성은 들고 나니는지 이해가 가지 않으며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장교의 경우 신발은 수화자로 불리는 목화를 신고 있는 것은 맞으나 일반 병사들의 경우 목화를 신는 것은 드문편이라고 합니다.
일반병사들은 삼으로 꼬아서 만든 미투리를 신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찌 된 것인지 진주성에서 수성중군영 교대의식 재현하는 병사들은 하나 같이 수화자를 신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조선의 무기와 갑옷편을 보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링크 시켜 놓겠습니다. 읍성이던 수성중군영 교대의식이던 복원을 했다고 하지만 어딘가 이상하면 잘못된 복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왕 복원하는것이라면 제대로 하였으면 합니다.
진주대첩 기념광장이 800억원을 들여서 촉석문 앞에 만들어진다고 하던데 이곳에 콘텐츠의 하나로 수문장교대의식이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 김시민 언덕과 임진왜란 체험시설, 전망대, 김시민 장군 동상, 논개 동상 건립 등도 계획안에 들어있다고 하는데 고증부분과 여러가지 문제가 있을 것 같습니다.
진주대첩 기념광장을 만들면서 외성의 일부를 복원하는지 모르겠지만 복원을 한다면 제대로 복원을 하였으면 합니다. 만약 복원이 된다면 남문이 복원되겠죠.
덧글
성문 안 쪽을 블럭으로 전부 포장해버린 것도 좀 그렇습니다. 필요의 문제도 있는데...흙바닥이 아니기 때문에 더 공원스러워져버렸죠. 블럭을 깔더라도 최소한 문을 따라 이어지는 길만이라도 옛 느낌이 나도록 넓직한 편석을 까는게 좋고, 돈도 덜 들텐데; 정작 불필요한 부분에 많은 돈을 쓴 것 같아요.
교대의식을 한 번 본 적이 있는데...아무래도 서울의 교대식의 영향을 받은 것일텐데도 띠돈을 쓰지 않는다든가 하는 부분은 아쉬운 부분이죠. 쉽게 개선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니 바꾸기가 어렵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미투리 문제가 있는데...미투리의 공급문제도 있을겁니다. 개량미투리라고 나온게 있는데...이건 무용목적으로 나온거라서 저런 행사용으로는 부적합하고요. 그리고 겉보기에도 짚풀의 느낌이 안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짚신을 신겨버리면 짚신의 내구성때문에 수급문제도 발생하고요. 지금 짚신이 결코 싼 물건이 아님을 생각하면 수급관리, 예산문제로 일괄 목화를 택한 것 같습니다.
저 교대의식말고도 여러가지가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부분에 관하여 이야기가 없다보니 계속해서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
천연 섬유에 폴리에스테르같은 화학섬유 재질을 합사해 만든 끈을 소재로 쓴다면 외관 뿐 아니라 내구성 문제도 해결될텐데 행사용 제외하면 쓰이는 수요가 없어 비용이 높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니 나오지 않는 거죠...
서울 궁궐 수문장 교대식도 시민들의 비판을 받으면서 조금씩 고쳐져 왔습니다. 지금도 고칠 부분은 좀 남아있죠. 조선 전기를 상정하고 교대식을 하는 경복궁의 경우는 환도를 띠돈을 사용해서 자루가 뒤로가게 하는 조선 후기 방식으로 차고 있기도 하고요.
마찬가지로 수문장 교대식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이런부분은 시민단체나 문화단체에서 이야기 해야 합니다.
부산만 해도 1970년대 말까지 멀쩡했던 안락서원이 개조되어서 사당으로서의 기능만 남아 있는 콘크리트 건물 충렬사로 지금 흉물스럽게 남아 있죠.
용두와 잡상이 아마 그렇게 의도적으로 국가에 대한 충성과 애국에 관련된 유적들의 격을 높이는 데에 역할을 다분히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데 공북문은 비교적 최근에 복원되었는데도 저런 식이라니 답답하네요.
콘크리트 건물의 경우는 사실 답이 없습니다.
둘의 입지도 비슷하거니와 큰 어른들이 다스렸던 큰 고을이고 각자 약간 다르지만 특징적인 역사도 품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되는데 진주시민들이 이러한 사실들을 자각하고 저렇게 망쳐진 진주성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길렀으면 합니다.
진주읍성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의 읍성이 그렇니까 이해는 갑니다만 좀 더 보존이 되었으면 더욱 더 좋았을 것인데 말이죠.
그것과 나룻배들이 왕래하는 남강의 모습이 정말 닮은 것 같습니다.
게다가 성체 자체도 진주가 그 수가 더 적긴 하지만 둘 이상의 권역으로 나누어져 있고요...
지자체의 부서에서 그 지방의 향토사학자들에게 물어보나요? 혹은 문화재청에 부속팀이 따로 있는건지요 (차라리 이런 제대로 된 중앙시스템이 있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된 씽크탱크 말이지요- 한두군데 복원프로젝트가 돌아가는게 아닌데.).
개인적으로는 괄호안의 의견처럼 문화재청등에 제대로 된 부속기관 (고증부 라든가 복원부라든가)이 있어서, 각종 프로젝트에 감수를 제대로 하면 합니다 (거기 도장을 못받으면 복원이 안되는거죠). 물론 썩을수 있으니 행정을 잘해야겠지만 그건 다음문제이고.
하다못해, 드라마 피디들도 이용할수 있는 기관이 될수도 있을텐데요.
(아..저 기계식 성곽..)
말씀하신것처럼 중앙에서 어떤 매뉴얼을 만들어서 배포하고 문의하거나 의문이 있는 경우는 관리부서가 있다면 전국적인 수문장교대의식의 경우
통일성이 있을 것 같네요. 그렇게 하고 지역색에 맞는 방언이나 문화를 접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문재청에서 총괄적인 제대로 된 (말씀대로) 메뉴얼같은 것을 만들고, 고증분야나, 컨텐츠면에서 최종보고는 (일정규모이상의 프로젝트경우) 중앙관리의 허가 (메뉴얼에 따른 고증하에)가 떨어져야 이행될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