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오량성과 가배량진성 답사 성곽탐방기



거제에 일이 있어서 가다가 조금 시간을 내어서 오량성과 가배량진성을 답사하였습니다. 오량성의 경우 흔적이 잘 남아있어서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가배량진성의 경우 흔적이 많이 남아있지 않아서 남측체성일부와 동측체성일부만 답사하였습니다. 

거제 오량성의 경우 오양역으로 출발하였는데 거제와 고성의 중간쯤에 해당되는 곳이었고 오양역에서 배를 타고 건너면 현재의 통영 땅입니다. 오양역이 역참으로 역활을 하던중 보(保)를 설립하게 되었고 그렇게 되어 관방시설까지 갖춘것으로 보인다고 오양성 발굴조사를 한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밝힙니다. 이부분이 가장 특이한 곳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읍성이나 진성과는 달리 역의 기능을 하면서 성곽의 역활을 하는 곳이 오양성의 특징이더군요. 
두번째는 돌의 크기입니다. 오양성의 경우 조선 연산군 6년(1500년)에 축성하였습니다. 이 당시에 축성한 여러곳이 읍성이나 진성과 같이 연해읍성과 같은 방식으로 축성하였는데 하단에 큰돌을 쌓고 위로 가면서 작은 돌을 쌓는 방식입니다. 오양성도 이런 축성방법을 충실히 따랐습니다. 하지만 다른 읍성이나 진성과 틀린점이 바로 축성된 돌의 크기입니다. 필자도 여러곳의 읍성, 진성을 가보았지만 이렇게 큰 돌들이 많이 있는 것은 처음 본 느낌이었습니다. 어디서 돌을 가져왔는지 모르지만 2미터로 보이는 돌들이 너무 많았으며 1미터 정도는 명함도 못내밀겠더군요. 
 세번째로는 진성과 같은 크기였습니다. 역으로 사용하였다고 했어 작은 규모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크기가 컸습니다. 다음지도에서 면적을 측정해보니 75,826㎡ 더군요.평으로 계산해보니 22,937평 정도 되니까 이정도라면 작은 전문대학 규모는 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성문도 4개나 있는 구조였으며 체성도 잘 남아있었습니다.  
네번째로 느낀점은 복원을 하면 안되겠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오양성에 현재 남아있는 체성에 비해 복원한 체성의 경우 너무나 인공적인 냄새를 풍길 정도로 각이 딱 딱 맞게 축성되어져 있었습니다. 한치의 오차도 없을 정도로 축성된 것을 보고 복원에 관하여 생각해보았습니다. 
오후에 늦게 30분 정도 가배량진성(임진왜란 당시 경상우수영터이고 원균이 근무했던 곳)을 둘러(답사는 아님) 보았습니다. 이곳의 경우 거제 중에서도 아주 멀리 떨어진 곳임에도 불구하고 진성의 흔적을 찾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가배량진의 경우 처음부터 가배량진성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고 성종 19년(1488) 9월에 경상우도수군절도사영으로 축성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부산 수영에 있는 것과 같은 위치의 수군절도사영이었던 것입니다. 수군절도사영이었지만 임진전쟁때 그 기능을 상실한 곳이라 봐야겠죠. 그러다가 임진전쟁이 끝난 선조 37년(1603년)에 통제영으로 옮겨 가면서 고성에 있는 가배량진이 이곳으로 옮겨와서 가배량진성으로 사용해왔던 곳입니다.
1872년 지방지를 보면 가배량진성의 경우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봐서 그 이전에 상당부분 무너져 내린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현재 남측,북측,동측 체성일부만 남아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림지도를 보면 아시겠지만 가배량진의 경우 진성치고는 상당히 큰편에 속합니다. 이는 경상우도수군절도사영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곳 가배량진성만의 특징적인 것을 보았는데 바로 망루로 추정되는 곳이었습니다.  망루터로 추정되는 곳의 경우 상당히 평평한 곳인데 면적을 재어보니 263㎡로 평수로 계산해보니 79.5평이더군요. 이정도라면 적어도 1개분대 병력이 주둔하고 있어도 될 정도라고 봐야겠죠. 진성이던 읍성이던 그곳에 망루가 있었던 것을 본 것은 필자가 처음 봅니다.  
망루로 추정되는 곳에서 바라본 남측체성으로 현재 이곳이 가장 잘 남아있는 곳입니다. 가배량진의 축성방법도 조선초기 연안에 지은 읍성이나 진성과 같이 아래에 큰돌을 쌓고 위로 가면서 작아지는 돌을 쌓는 방식으로 축성하였습니다.  
다음에 시간이 나면 오량성과 가배량진성에 관하여 발제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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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제 오량성과 가배량진성 답사 | Appenheimer 2011-12-16 20:45:23 #

    ... 거제, 거제오량성, 가배량, 가배량진성, 가배량진, 역참, 거제도, 경상우수영성, 수영성 팬저의 국방여행 Posted on December 16, 2011 by acousticlife. This entry was posted in Rssx01 and tagg ... more

덧글

  • 역사관심 2011/12/16 13:07 #

    잘 보았습니다. 2미터라...엄청난 크기들이군요.
    그나저나 지자체들의 복원에 대해서는 이미 저번에 대화를 나누었듯 무슨 조치가 있어야 할듯..
  • 팬저 2011/12/16 14:51 #

    물론 작은 것은 1미터 2~30센치도 있습니다만 그런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 특징인 것 같더군요.
    말씀하신 것처럼 복원의 경우 전문업체의 교육과 함께 일본과 같이 문화재발굴기관에서 복원까지 같이하는 방법도 고민을 해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 이 감 2011/12/17 00:10 # 삭제

    성벽 복원할 때 의외로 저렇게 큰돌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들어서 복원시에 애로가 좀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긴 있는 것 같은데, 그래도 어느 정도는 어색하지 않게 맞춰줘야하지 않나 싶네요. 기부만 남아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성벽들이 제대로 남아있다면 말이죠. 저정도 성(오량성)이라면 정비 혹은 복원만 제대로 한다면 진도 남도진성(남도석성)처럼 지역과 잘 어우러지게 정비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번 진주성 포스팅으로 여러 진주성 그림들을 찾아보게--물론 팬저님 기존 포스트도 보고요-- 되었는데, 그 그림들로 진주와 거의 비슷한 지형의 빈 벌판만 있다면 19세기의 진주를 완벽히 재현해 놓을 수 있는 멋진 그림들이더군요. 그런 좋은 자료들이 있는데 두고 두고 아쉽겠습니다. 진주는...
  • 팬저 2011/12/17 00:27 #

    돌의 크기도 중요한 부분중에 하나이겠지만 제가 답사를 하고 느낀점은 복원을 하려면 제대로 하고 그렇지 않다면 현재의 상태로 놓아두어도 무난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체성의 경우 아주 큰돌이 자리잡고 위로 가면서 작은 돌들이 위치하고 있는데 자연스럽게 축성된 것에 비해
    복원한 체성의 경우 너무나 일률적이고 기계적이라는 것입니다. 남아있는 체성의 경우는 자연스럽죠.

    진주의 경우 진주읍성의 외성 부분을 일부 복원합니다. 그것이 바로 진주대첩광장인데요. 다만 외성이 주가 아니고 진주대첩에 관련된 자료들이 메인이라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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