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길목을 지켰던 오량성_01 관문성(關門城)



거제에 있는 오량성의 경우 읍성이라고 불러야 할지 아니면 관문성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더군요. 형태의 기준으로 본다면 읍성이 맞지만 규모면에서 보면 읍성으로 보기에는 너무 작습니다. 규모면에서는 수군의 진성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량성의 경우 조선시대 고성땅(현재 통영시)에서 거제로 넘어와서 처음 만나는 역이 바로 오양역입니다. 오양역이라는 지명에서 이것이 변경되어 오량이라고 사용되었고 현재는 오량성이라고 합니다만 오양성이라고 해도 무난할 것 같습니다. 이 오양역은 고려시대때 생겼다가 폐원했다가 조선시대 다시 부활하였습니다. 그러면서 1500년대 진보의 보(堡)를 설치하면서 성(城)을 축성하였다고 합니다. 이 오량성안에 유배해온 <의종(毅宗)이 평상시 거주하다 위급할 경우 인근에 있는 폐왕성으로 이동을 했다고 합니다.

이 두가지를 가지고 주목해 보았을때 오량성의 경우 수군진성이나 읍성과 달리 거제도로 출입하는 주민들의 통제하는 기능과 거제로 들어오는 관리를 위한 역의 기능, 그리고 적의 침입을 막고자 설립한 관문성의 성격이 강한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1994년 발굴조사한 동아대학교 박물관팀에서는 관문성이라는 성격에 관하여 이야기하지 않고 관방성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관방성도 맞는 이야기이지만 필자는 관문성이라는 성격이 맞을 것 같아서 관문성 코너에 작성합니다. 

관문성의 경우 현재 많이 남아있지 않는 상태인데 삼국시대 신라의 수도인 경주로 들어오는 적을 막고자 울산에 설치한 관문성, 조선시대 문경새재를 막기위한  조령 관문성(조령1관문을 비롯한 조령2관문, 3관문), 임진전쟁때 일본군과 전투를 치룬 관문성인 작원관 그리고 평안도 지역의 관문들이 있습니다. 다만 관문성의 경우 이 길이 아니면 안되게끔 되어져 있는 곳에 성을 쌓고 입출입을 통제하는 곳인 것에 비해 오량성의 경우는 바다라는 특성때문에 조금은 틀립니다만 고성땅에서 들어오면 꼭 들러야 하는 곳이기에 관문성의 성격을 가진것으로 보고 이렇게 관문성이라고 정의 내립니다.  

오량성앞에 있는 땅의 경우 현재는 매립이 되었던 것으로 추정이 되며 조선시대에는 고성땅에서 출발하면 바로 오량성이 있는 오량포구에 도달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다음지도에서 살펴본 오량성으로 오량성의 형태를 알 수 있으며 이렇게 형태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현재 기초석이라도 남아있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량성의 경우 4대문과 치성 8개로 치성4개는 각이 진곳에 설치하고 또 다른 치성의 경우 각 방향의 문제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부분에 치성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오량성의 경우 둘레 2,150척의 석축성으로 내외축 모두 돌로 만든 협축성입니다. 오량성의 경우 역의 기능과 관방의 기능을 하는 성(城)인 것이 다른 여느 성(城)과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신거제대교를 지나 2km 정도 오면 만나는 거제 관광안내센터 주차장이 있는 곳이 현재 오량성이 있는 곳입니다. 다음편부터 나오겠지만 오량성에 사용된 돌의 경우 아주 큰편에 속합니다. 오량성의 경우 조선 연산군 6년(1500년)에 축성하였습니다. 이 당시에 축성한 여러곳이 읍성이나 진성과 같이 연해읍성과 같은 방식으로 축성하였는데 하단에 큰돌을 쌓고 위로 가면서 작은 돌을 쌓는 방식입니다. 오량성도 이런 축성방법을 충실히 따랐습니다. 하지만 다른 읍성이나 진성과 틀린점이 바로 축성된 돌의 크기입니다. 필자도 여러곳의 읍성, 진성을 가보았지만 이렇게 큰 돌들이 많이 있는 것은 처음 본 느낌이었습니다. 어디서 돌을 가져왔는지 모르지만 2미터로 보이는 돌들이 너무 많았으며 1미터 정도는 명함도 못내밀겠더군요.  

아래에 나오는 체성의 모습은 최근에 복원을 한 것으로 필자가 이야기한 돌과는 조금 관련이 있습니다. 조금 관련이 있다는 것은 하단부 즉 기단부에 나오는 돌의 경우 예전 조선시대 돌이고 나머지는 최근에 복원한 것입니다. 아래에 보이는 곳은 서측체성의 치성입니다. 
복원한 체성의 경우 조금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획일적인 돌을 이용하여 복원하여 놓았습니다. 
오량성의 축성방법을 이야기하는데 조선초기 연해읍성이나 진성에 축성한 방식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치성의 경우 너무나 획일적인 돌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런 축성방식과 비슷한 것은 주로 조선 중기인데 복원한 시기가 맞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너무 기계적인 느낌을 준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두부모양과 같은 사각형의 모양을 이용하여 축성하여 놓았는데 실제로 있는 오량성과 비교하면 여러모로 아쉬움을 주고 있습니다. 필자의 경우 이런식의 복원은 영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더군요. 
아래에 큰돌을 쌓고 위로 가면서 작은돌을 쌓는 방식이라고 안내판에 적어 놓았지만 실제로 보면 아래에 큰돌을 쌓고 위로 가면서 작은돌도 있지만 큰돌도 있는 방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새롭게 복원한 서측체성의 경우 높이가 대략 3미터 정도 되어 보였습니다.  
잔돌끼움 방식의 경우도 예전의 방식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여줍니다. 
하단부에 있는 돌의 색상과 최근에 복원한 상단부의 돌의 색상의 차이가 확연하게 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치성의 경우 사진과 같이 올라 갈 수 있게 계단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치성에서 북측방향을 바라본 서측체성의 모습 너무나 기계적인 느낌을 줍니다. 
심지어 레고 블록으로 조립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복원한 곳도 있습니다. 
복원한 체성의 경우 기존에 있었던 나무들과 조화롭게 복원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위사진의 반대방향으로 바라본 모습으로 복원을 할때 예산 때문에 높이가 낮게 복원한 것 같습니다.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조성한 체성의 내측모습으로 이렇게 복원하는 것은 처음 보는 느낌을 줍니다. 
서측 체성 내부의 모습입니다. 

이제 길을 북문지 방향으로 걷어갑니다. 예전에 사용한 도로 그대로 현재도 사용중에 있습니다. 
배추의 모습이 보이는데 이곳 아래에 북측체성이 있는 곳입니다. 
위 사진의 반대 방향에 있는 북측체성의 모습으로 쓰레기 더미와 함께 같이 있습니다. 
북문지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현재 북문지 앞에 흐르는 하천이 해자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북문지옆 북측체성으로 기단부 2~3개의 돌들만 남아있습니다. 
어떤 곳은 이렇게 겨우 하나만 남아있기도 합니다. 뒤에 상추밭이 보이시죠. 
문제의 배추가 있는 북측체성의 모습입니다. 
북문지 옆에는 돌이 아주 작은 돌로 되어져 있네요. 
위 배추밭에 있는 체성옆에 복원한 북측체성이 있습니다.  

하단부에는 조선시대에 축성한 돌들이 있는데 위에서 복원한 축성방식과 확연하게 차이가 있습니다. 
하단부의 경우 예전 방식이고 상단부는 요즘에 축성한 방식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2편에서는 북측체성과 동측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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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유진우 2012/01/16 17:13 # 삭제

    국민의 혈세를 들여 수행하는 사업이니 낡은 옛 성돌을 써서는 안되고, 일단 한번 쌓아놓으면 무너져내려서는 안되니 돌은 최대한 벽돌처럼 정교하게 다듬어야 하니 참으로 웃음만 나오죠

    그러면서 예산 문제라....

    솔직히 저런 식의 복원도 안하느니만 못한 것 같습니다( 그나마 성의 형태라도 파악할 수 있도록 해주니 필요악이기도 하군요 -_-;; )
  • 팬저 2012/01/16 20:17 #

    좀 안스럽다고 봐야겠죠.. 그래도 요즘은 성 복원이 잘 되는 편인데 말이죠
  • 부산촌놈 2012/01/16 18:00 #

    역을 성으로 둘러치다니 희한한 사례네요.

    위에 언급하신 용도로서 최적화된 요충지에 세운 게 맞는지요?
  • 팬저 2012/01/16 20:17 #

    최적화라기 보다는 전략적인 요충지라 보시는 것이 맞을 것 같네요.
  • 부산촌놈 2012/01/16 21:48 #

    그러면 군사적으로 특히 중요했고 다른 기능들은 그냥 부수적이었다는 말씀이신가요?
  • 팬저 2012/01/16 21:51 #

    가장 중심적인 것은 역입니다.
    거제땅(고현이나 현재의 거제면)에서 출발하여 고성땅으로 가는 곳에 가장 거리상 가운데 있는 곳이라
    휴식을 취하고 말을 바꿔타는 곳이 가장 큰 일이라 봐야겠죠.
    그 다음이 관방성이나 관문성의 역활이라 봐야겠죠.
    왜냐 전쟁이나 전투는 자주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역의 기능은 매일 하는 곳이니까요!
  • 부산촌놈 2012/01/16 22:03 #

    그렇군요 ㅎㅎㅎ. 명쾌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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