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잘 남아있는 오량성의 북측체성 오량성_02 관문성(關門城)



저번 1편에 이어서 북측체성인데요. 이 북측체성의 경우 북서측의 경우 복원을 하였습니다. 복원을 했지만 높이가 낮은 상태의 복원입니다. 북문을 중심으로 북동측 체성의 경우 원형 그대로 인데 많이 허물어진 상태입니다. 현재 남아있는 오량성중 상태가 가장 양호하게 남아있는 것이 북서측체성입니다만 사진 상태가 좋지 못합니다. 아래 항공지도에서 보면 하천이 나오는데 북측체성의 해자와 같은 역활을 하기에 충분합니다. 다만 이 하천이 예전 오량성의 해자로 사용되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복원한 오량성의 체성인데 보시면 이게 복원을 한 것 같은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것으로 보입니다. 하단부에 기존에 남아있던 성돌에다 복원을 하면서 돌을 올려 놓았는데 조선초기 연해읍성의 방식과 거리가 먼 방식으로 체성을 복원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곳의 경우 하단부에 작은 돌이 있고 위로 가면서 큰 돌이 나오는 너무나 어의가 없는 방식으로 복원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서측체성을 복원한 것과 달리 자연스러운 돌로 체성을 복원하였는데 마치 줄을 이어서 세운 것과 같이 일정한 높이를 유지하고 다시 돌을 쌓고 또 한칸위에 돌을 쌓아 놓았습니다. 마치 벽돌로 쌓는 방식과 같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단부의 경우 예전에 있었던 돌입니다. 예전의 돌과 현재 축성한 돌의 색상에서 완전하게 차이가 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곳에는 위에서 본 자연스러운 돌대신에 레고블럭과 같은 사각형의 돌로 축성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래에는 축대를 쌓을때 처리하는 배수관을 묻어 놓았던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식으로 배수관이 나온 것은 처음보네요.
아래에 나오는 체성의 경우 위에서 본 방식보다는 나은편이지만 여기도 돌의 크기가 위 아래 구별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축성방식중 잔돌끼움 방식으로 축성하였고 담쟁이 나무가 자라는 것 같은데 이렇게 함으로 체성이 튼튼하게 지켜지면서 여름에는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겠네요.
저번편에도 이야기하였지만 복원한 체성의 경우 높이가 겨우 2.5~3미터 정도 되다보니 성곽이라는 느낌보다는 어느집 담장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적어도 5미터 정도 되어야 성곽이라는 느낌을 주는데 말이죠. 물론 이렇게 되면 예산이라는 부분이 부담을 줄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참으로 이상한 느낌을 주는 방식으로 복원하였다는 느낌을 주네요. 이런식으로 복원이 진행되다보니까 문화재발굴 조사를 담당하는 관계자들은 제대로 복원을 하던지 아니면 복원을 하지 않고 원형 그대로 놓아 두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는데 필자도 같은 생각을 가져봅니다. 
물론 일반적으로 관광을 오신분들이야  이곳에 이런 성곽이 있었고 이 목적으로 성곽을 조성했구나를 알고 가는데에는 원형으로 남아있는 체성보다 복원한 체성이 좋아지겠지만 이런 체성을 보고 마치 예전에 이런식으로 되어있었구나를 알고 가면 더욱 더 문제일 것 같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우리가 TV를 보면서 알게 모르게 기억속에 남아있는 기억중 하나가 바로 포졸입니다. 포졸이라고 하면 하나같이 벙거지 모자에 삼지창인 당파를 들고 뛰어나니는 모습을 기억하는 것 처럼 말이죠. 성곽장면의 경우 거의 대부분 찍는 곳이 조령이 있는 문경세재에서 촬영을 합니다. 고구려,신라,백제시대때에도 찍고 고려시대도 찍고 조선시대에도 찍는곳이 문경세재에 있는 주홀관입니다. 
이 주홀관에서 찍는데 여기에는 옹성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에 있는 성곽들은 보통 없는 것이 정답으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이 주홀관의 경우 조선시대때 축성하다보니 조선중기 이후 축성방식을 볼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도 이곳에서 삼국시대에 나오는 고구려,백제,신라시대의 장면도 모두 이곳이다 보니 재미가 없다는 느낌을 주더군요. 물론 시대별로 다른 성곽의 축성방식은 논외하고 말이죠.  
아래 사진을 보면 기단부에 있는 예전의 돌과 현재 축성한 무성의한 돌의 차이가 확실히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어찌보면 이런 식으로 막 축성한 방식이 맞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위에서도 이야기 한 것처럼 큰돌이 아래로 가고 작은돌이 위로 가야함에도 불구하고 서로 섞여서 알 수가 없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 옆에는 일정한 크기의 돌들이 일정한 높이를 이루면서 벽돌로 담장을 쌓는 것처럼 축성되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식이라면 한마디로 "엉터리야"라는 이야기가 나오겠습니다. 
이제 다시 북문지가 있는 곳으로 다시 올라갔습니다. 
북문지옆 치성이 있는 곳인데 여기는 겨우 기단부만 남아있습니다. 
여기의 치성의 경우 조금은 이상하더군요. 보통 치성의 경우 성문에서 각루가 있는 곳까지 이어진 체성중 취약한 부분에 치성을 쌓는데 여기는 성문 바로 옆에 있습니다. 성문 바로 옆이라면 치성이 아닌 적대가 맞겠죠. 또 적대라면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양옆으로 되어져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더군요. 아직 발굴조사를 했는지 안했는지 모르겠지만 발굴조사가 이루어 졌으면 하네요.  또 이상한것은 만약에 치성이 아닌 적대라면 성문보다 앞으로 일정하게 튀어나와야 하는데 이곳은 조금 튀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방향이 이상합니다. 적대라면 체성과 같은 방향으로 튀어나오는 것에 비해 이곳의 경우 경사가 45도 정도로 되는 형식으로 되어져 있더군요. 원래 90도로 되어져 있었는데 무너져 내리면서 그렇게 된 것인지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흥미로운 치성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하단부의 경우 겨우 남아있다보니 조금은 어색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주민들의 출입을 하기 위해 체성이 무너져 내린곳이 있더군요.  
겨우 남아있는 하단부의 모습
주민이 사는 민가의 담장과 같은 부분인데 자세히 보면 하단부는 오량성의 체성이고 상단부는 조그마한 돌로 담장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으로 봐서는 새롭게 축성한 오량성의 축성방식과는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곳이 그래도 상당히 잘 남아있는 북측체성으로 높이도 3미터 이상을 유지합니다. 물론 일정한 높이를 유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죠. 
현재 잘 남아있는 북측 체성의 모습으로 높이가 어떤 곳은 2미터를 넘어 3미터까지 가는 곳이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 메탈님)

전체적으로 가장 잘 남아있는 북측체성의 모습(이미지 출처 : 메탈님)
또 40여미터 남아있어서 보존상태가 좋은편에 속합니다. 
 주민들이 농사를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배수로가 있었습니다. 
잘 남아있던 체성이 무너져 내린 곳이 있었는데 주민들의 입출입의 편의성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조금 아쉬운 부분이 들었습니다. 
예전부터 사용한 축성방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전의 방식의 축성방식과 주민들의 입출입을 위해서 쌓은 돌으로 확연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큰돌이 하단부를 받히고 돌과 돌사이에 작은돌로 채우고 또 그틈에는 더욱 더 작은돌로 채우는 식으로 축성되어져 있습니다. 
주민들이 담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체성의 경우 높이는 2미터가 되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오량성의 체성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원입니다. 
세월이 오래되어서 그런지 조금은 위태로워 보이지만 그래도 저 상태로 500년을 이어온 것 같습니다. 
남아있는 체성의 경우를 보면 사진으로 봐서 작아보이지만 100미터 정도 됩니다.  
주민들이 쌓은 돌은 주위에서 주은 아주 작은 돌로 축성하였네요. 
예전의 돌과 담장으로 사용된 작은 돌이 차이를 보여줍니다. 
북측체성이 끝나고 동측으로 이어지는 체성이 만나는 치성부분으로 하단부의 경우 겨우 남아있습니다. 사진을 보시면 거의 출입문으로 사용중에 있습니다. 
치성과 오량천의 모습
나중에 소개할 동측과 남측은 겨우 기단부만 남아있는 것에 비해  북측체성의 경우 그래도 잘 남아있는 곳에 속합니다. 




덧글

  • 에로거북이 2012/01/20 12:20 #

    잘 보았습니다. 담에 고향 갈 일 있으면 한번 쯤 둘러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영화 TV 에 나온 성곽 하니까 문득 떠오르는 게 있는데 영화 <최종병기 활> 혹시 보셨습니까?
    거기 초반부 성곽 전투씬이 아주 끝~내줍니다. ㅎㅎ 이쁘게 현대적으로 다듬잇돌로 만들어진 성곽에 포장된 공원가는 길에 잔디가 곱게 깔린 마당을 진격하는 청나라 기병들의 모습이 아주 제대로 어울려진 '명장면' (?) 입니다. 그런대로 잘 만든 영화인데, 차라리 성곽 전투씬은 싹 빼 버렸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 팬저 2012/01/20 12:31 #

    예 저도 보았는데요. 아마 위에서 이야기한 주홀관에서 찍었던 것 같은데 체성을 너무 쉽게 넘어가던것이 기억에 남네요.
  • 역사관심 2012/01/21 04:54 #

    확실히 이제는 외국의 예를 통해 벤치마킹으로 문화재복원의 '제대로 된 시스템'의 확보가 시급하다고 여겨집니다.
    놔두던 예전에서 이제는 지자체들의 복원이 활발해지는 시점인데, 지금 그러한 제대로 된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으면 앞으로 수백년 망가지는 일은 다반사일듯합니다.
  • 팬저 2012/01/21 11:55 #

    전 역사관심님이 주장하는 그런 시스템이 빨리 도입되었으면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예산이 집행되었지만 엉터리가 넘쳐나니까요?
    다만 이부분이 빨리 될 것인지가 문제일 것 같습니다.
  • 역사관심 2012/01/21 13:28 #

    맞습니다. 지자체끼리 예산만 보고 사업을 따내는 일을 해선 곤란하겠지요. 물론 지자체입장에서야 돈위주로 갈수밖에 없다해도,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면 그 돈이 어떻게 그리고 어떤 전문가집단의 복원설계대로 제대로 된 사업에 쓰이는가가 투명해야 선진국이겠지요. 누가 어떤 관직자가 부분을 더 늦지 않게 생각하고 시행 할것인가..그게 문제로군요. 언론들이라도 빨리 알려야 할텐데...
  • 팬저 2012/01/21 14:17 #

    그전에 발굴조사하는 문화재단 같은 곳에도 발굴조사와 함께 복원을 함께 하는 방법도 고민 해보아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 역사관심 2012/01/21 15:12 #

    좋은 지적이십니다.
  • 유진우 2012/01/25 20:23 # 삭제

    주홀과는 여장 복원 전부터 워낙 많이 촬영장소로 애용되서 저는 연개소문의 철근/콘크리트 세트가 정말 신선해보이더군요 ^^
  • 팬저 2012/01/25 20:38 #

    시청자입장에서 본다면 "복장도 고증에 맞지 않은데 성곽이 고증에 맞게 바라는 것"이 문제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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