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으로 사용중인 오량성의 치성/오량성_ 03 관문성(關門城)



이번편에는 그럭저럭 성곽의 형태를 알 수 있는 동측체성을 둘러볼 것입니다. 저번편에 성우가 끝나는 지점에 가정용 담장으로 사용중인 동측체성입니다. 막쌓은 느낌을 주지만 위로 올라갈 수록 성돌이 작음을 알 수 있고 돌과 돌 사이에 작은 돌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오량성의 특징중 하나가 아래 사진에 보이는 것과 같이 돌을 세워서 축성한 것입니다. 이렇게 축성한 것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는 당시 축성하는 스타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또 당시에 축성방식이 유행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래에 나온 사진을 가지고 비교한다면 고성읍성의 경우 현재 남아있는 고성읍성 체성중 일부에 저런식으로 아주 큰 돌이 세로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다만 남아있는 체성부분이 너무 작아서 저 한곳만 저렇게 축성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언양읍성의 경우 세로로 되어진 부분이 많습니다. 거리가 멀지만 거제 오량성과 언양읍성의 축성방식이 많이 비슷합니다. 물론 언양읍성의 경우 임진전쟁 이후 축성한 곳이 군데 군데 있지만 조선전기때 축성한 방식은 오량성과 거의 비슷합니다. 오량성의 경우 연산군 6년(1500년)에 오량성을 축성했고 언양읍성의 경우도 연산군 6년(1500년)에 언양읍성을 축성했습니다. 시기가 정확히 일치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축성방식면에서 거의 같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언양읍성_02 다양한 방식을 보여주는 서측체성

웅천읍성의 경우 여러 체성중 저 사진에 나오는 부분만 직선으로 이어져 있더군요. 4개의 성곽의 특징이 바로 평지성입니다. 물론 고성읍성의 경우 완전한 평지성은 아니지만요. (그래도 평지성에 가깝습니다. 높은 곳이라 해보아야 10미터도 되지 않으니까요) (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기단부에 쌓은 돌의 크기가 큰점만 본다면 함안읍성, 웅천읍성 등과 비슷하게 보입니다.  
기단석위에 있는 돌의 크기와 돌과 돌사이에 매워놓은 잔돌
이 아래 사진의 경우 조선초기 연해읍성에서 보던 흔한 방식의 축성법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느낌이 들더군요. 
2미터 정도 남아있는 남측체성의 경우 새롭게 축성한 북측체성과 비교한다면 엄청난 차이를 보여줍니다. 새롭게 복원한 곳과 현재 남아있는 체성을 비교해보시면 재미있을 것 같네요. 
치성에서 연결된 동측체성의 모습으로 어떤 곳은 1.5미터 어떤곳은 2미터 정도 남아있습니다. 
옆으로 누워놓은 돌의 경우 폭이 3미터 정도 될 정도로 아주 큰 돌을 아래에 쌓아놓았습니다. 
여기 아래 사진을 보면 일률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큰돌과 위로 가면서 놓은 가로형돌의 모습은 사등성과 언양읍성에서 보던 축성방식인 것 같습니다. 
아래 사진의 경우 위로 가면서 작아지는 축성방식이 아니고 그냥 큰돌위에 작은돌이 있고 또 위로 가면서 더 큰돌이 있는 방식입니다. 조금은 특이한 방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돌의 경우 정방향의 돌들도 있지만 둥그스러운 돌과 삼각형에 가까운 돌들이 자리잡고 있네요. 
이정도 남아있는 오양성은 복원보다는 보존을 택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필자의 경우 성곽에 관한 공부를 처음 할 때에는 복원을 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가졌지만 복원공사시 예전에 있었던 체성보다 못한 것을 발견하고는 복원보다는 보존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보존이 여러면에서 불편한 것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예전의 방식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때문입니다. 현재의 복원방식이 여러면에서 문제점을 들어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복원이 예전의 방식과 맞지 않는 것도 이유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가정용담장으로 사용중인 오양성 동측 체성
하부의 돌과 중간에 있는 돌의 차이가 있습니다. 하부의 돌이 아주 큰 것에 비해 중간의 돌이 작습니다.
수평으로 된 축성된 돌과 사각형에 가까운 돌이 재미있게 축성되어져 있습니다. 오량성에 관한 안내문을 보면"형식과 축성방법 구조등은 인근 사등성, 고현성과 같은 축성법으로 쌓았다"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비슷한 방식임에는 틀림이 없고 시기적으로 축성한 것이 비슷해서 그런지 비슷한 것 같기도 하지만 필자가 볼때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량성의 경우 조금 늦게 축성되었고 축성방법면에서 틀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언양읍성의 경우 하단부 1~3단 정도 남아있는 것에 비해 오량성 동측체성의 경우 사진과 같이 5~7단 정도 남아있습니다. 기장읍성동문지 보다는 높이가 낮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도 5~7단으로 된 동측체성의 경우 100미터 정도 남아있어서 조선초기 연해읍성 축성방식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현재 100여미터 남아있는 오량성 동측체성의 모습으로 높이가 5미터 정도 남아있었다면 더욱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겠죠.
동측치성의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남측치성과 연결된 동측체성의 모습
치성의 경우 동문지로 추정되는 부분과 거의 일치하는 곳에 있는데 왜 동문지 옆에 치성이 있는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성문 옆에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적대를 두는 경우는 있지만 이렇게 동문옆에 치성을 두는 것은 무엇때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치성의 경우 보통 치성과 크기면에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보통 치성의 경우 폭이 대략 5~6미터에 비해 오량성 동측 치성의 폭의 경우 13미터가 넘을 정도입니다. 후세에 변형을 주었는지 처음부터 폭을 넑게 한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길이의 경우 보통 읍성의 경우 6~7미터 인 것에 비해 오량성의 경우 10미터 이상되어져 동측체성보다 많이 튀어 나왔음을 알 수있습니다. 
이렇게 넓다보니 주차장으로 사용중이었습니다.  성돌의 경우 옆으로 된 돌들이 하단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현재 4~5단 정도 남아있는 모습으로 
오량성 동측 치성옆 동측체성과 연결된 모습이고 좌측에 보이는 차량은 동문지로 추정하는 곳에 출입하는 모습입니다.
주차장으로 사용중인 오량성 치성의 모습입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 처럼 치성치고는 아주 큰 편에 속하는 치성인데 이곳이 과연 어떤 용도로 축성된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재 동문지로 추정하는 곳으로 오량성의 경우 옹성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동문지에서 남측체성의 방향을 바라본 모습인데 여기서 부터는 동측체성이 많이 무너져 내려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겨우 1~3단 정도 남아있는데 언양읍성의 북측체성이나 서측체성과 같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논의 담장으로 사용중이며 해풍을 막는 역활을 하는 느낌을 주었고 처음에 축성한 목적과는 다르게 사용중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 부터는 언양읍성과 같이 임진전쟁 이후 다시 한번 축성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보시면 길고 납작한 돌들로 축성되어져 있는데 이는 언양읍성에서 축성한 광해군때의 방식과 거의 흡사함을 알 수 있습니다.
4단정도 남은 부분의 경우는  조금 틀리는데 아무래도 앞의 부분의 경우 축성된 체성이 무너지고 나서 다시 축성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량성의 경우 관문성으로서의 크기때문에 부분적인 보수나 축성을 했을 것으로 보고있습니다. 다만 이런 부분들에 대한 연구가 없어서 필자같은 아마추어의 경우 공부를 하는데 추정을 해야하는 것이 단점으로 보입니다.  
이곳 하단부의 경우 위 동문지 옆 남측체성과 비교한다면 아래에 큰 돌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간정도의 돌들이 자리잡고 위로 가면서 된 돌이 있는데 눈에 보이지 않지만 땅속 부분에 큰돌이 숨겨져 있는지 모르겠지만 조금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문지방향을 바라본 모습으로 높이는 1~1.3미터 정도 체성이 남아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아주 특이하게 돌이 삼각형에 가깝게 되어져 있으며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측체성의 경우 동문지를 경계로 동북측은 처음 축성한 방식 그대로 남아있는 것을 느끼고 동남측의 경우는 군데 군데 다시 축성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돌의 경우 수평으로 된돌과 사각형에 가까운 돌이 자리잡고 있네요.
여기서부터는 오량성 초기때 축성한 방식인 것 같습니다.
남측 성우가 이제 보이는데 아주 작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여기 저기 무너져 내려서 그런 것 같습니다. 사진을 보면 성우 주위로 농수로를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너져 내려서 그렇지 전체적으로 치성의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다만 원래 있었던 돌들은 사라져 버리고 현재 작은돌들로 쌓여져 있는데 아무래도 최근에 주민들이 쌓아 올린 것으로 보입니다.
오량성의 동측 체성의 경우 일부 여기저기 무너져 내린 곳이 있지만 그래도 잘 남아있는 편에 속합니다. 북,서측체성과 같이 복원을 하느니 그래도 보존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덧글

  • 유진우 2012/01/25 20:21 # 삭제

    오량성의 경우 연산군 6년(1500년)에 사등성을 축성했고 언양읍성의 경우도 연산군 6년(1500년)에 사등성을 축성했습니다.

    언양읍성의 경우도 뒤에 사등성을 축성했습니다.는 오타같네요

    오량성.... 참 만감 교체네요

    만약 복원한다면 고모산성2가 될 확률이 높아서 저도 염려가 큽니다.
  • 팬저 2012/01/25 20:34 #

    오타 지적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복원을 할 경우 정말로 신중하게 복원을 하고 그렇지 않다면 지금과 같이 보존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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