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감영이었던 해주읍성 영성(營城)



북한의 읍성 시리즈 5편째로 황해도 감영이었던 해주읍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래에 나오는 고지도 이미지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이 소장하고 있는 것이며 현대지도의 경우 구글지도이며 등장하는 사진의 경우 구글위성지도에 있는 사진들입니다. 

광여도에서 본 해주읍성입니다. 읍성인데도 읍성 카테고리에 넣지 않고 영성 카테고리에 넣은 것은 감영, 병영등을 구분하기 위해 영성카테고리에 넣어두었지만 전체적으로 봐서는 읍성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해주목은 황해도의 감영이 있었던 관계로 해주읍성내 동헌의 경우 선화당이 중심에 자리잡는 것과 반대로 한쪽 구석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는 저번에 소개한 북한의 함흥읍성과 거의 비슷합니다. 해주읍성의 경우 1391년 고려 공양왕 때 축조하였다고 전해지며 명종10년(1555년)과 선조24년(1591년)에 중수하고 영조23년(1747년)에 개축하였다고 합니다.  그림지도를 보시면 해주읍성의 경우 정사각형에 가까운 평지성이며 북측에 치성과 같이 돌출된 부분이 보입니다. 고지도에는 곡성이라고 표시하여 두었더군요. 이 곡성이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으로 보입니다. 광여도에서 본 해주읍성의 경우 성문이 3개이고 동,남문의 경우 누각이 있지만 서문의 경우 누각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향교의 경우 북측에 자리잡고 있으며 객사의 경우 남문위에 있고 감영의 중심적 행정건물인 선화당의 경우 남문과 서문가까이 있습니다. 목사가 근무하는 동헌의 경우 남문위 곡성이 있는 부근에 있습니다. 
▼ 해동지도에서 본 해주읍성의 모습으로 웅장한 산세의 모습과 함께 해주읍성의 모습이 보이고 동측편에 수양산성의 모습이 보입니다. 위 광여도와 마찬가지로 해동지도에 그려진 해주읍성의 경우 성문이 3개이며 동,남 성문의 경우 누각이 있지만 서문의 경우 보이지 않습니다. 
▼ 확대해서 보니까 선화당, 객사, 동헌의 모습이 위 광여도와 비슷합니다. 해주읍성 양옆으로 소하천이 보이는데 해자와 같은 용도로 사용하였겠죠. 해주읍성의 진산인 용수산의 모습도 보입니다. 
▼ 수양산성의 모습이 보이는데 해주읍성보다는 작게 그려져 있습니다. 수양산성의 경우 엄준한 산세에 포곡식 산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수양산성 은 762년(신라 경덕왕 21) 축성하였고, 1676년(숙종 2) 개축하였습니다. 임진전쟁이 끝난 후 아무래도 읍성에서 방어는 힘이 드니까 전시시 읍성주위에 있는 산성으로 가서 농성하라고 말을 충실히 따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동지지에 따르면 둘레가 3천 9백 50보이라고 합니다. 수양산성안에 은적사가 있고 밖에는 경치 좋은 수양폭포가 있다고 합니다.
▼ 여지도에서 본 해주읍성의 모습으로 여장까지 그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네요. 그리고 위 지도와 달리 남문에만 누각이 있고 동문과 서문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 동,서,남문 모두 홍예식의 성문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해주읍성과 관계가 깊은 인물을 살펴보면 율곡 이이는 황해도 해주에 감사로 갔다가 수양산 밑에서 석담천석을 발견하고 벼슬에서 물러난 후에 여기에 집을 짓고 학문을 강론하였다고 합니다. 또 다른 이가 바로 인조입니다. 해주읍성 내부에 있는 부용담이 인조의 탄생지라고 합니다. 부용담의 경우 아래에 나옵니다. 인조는 임진전쟁 당시 왕비와 왕자들이 해주읍성에 머물면서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독립운동가 김구선생의 탄생지가 해주입니다. 김구선생이 동학동민운동에 참가하면서 해주읍성을 공격하려다 실패한 곳도 해주읍성이며 문응순 선생이 기생들과 함께 3.1만세 운동한 곳도 해주읍성내였습니다. 
지승지도에서 본 해주읍성의 모습으로 위 해동지도처럼 웅장한 산세를 다 그려놓았고 바다의 모습도 잘 그려 놓았습니다. 
▼ 해주읍성의 경우 장방형의 읍성으로 되어져 있으며 1391년 고려 공양왕 때 축조하였다가 1555년(명종 10)과 1591년(선조 24)에 중수하고 1747년(영조 23)에 개축하였다고 합니다. 이 해주읍성이 임진전쟁이 일어나기 일년전에 중수를 하네요. 나름대로 왜군의 공경을 대비하였던 것일까요? 지승지도에는 성문이 두개만 있습니다. 동문과 남문이며 서문은 보이지 않습니다. 남문과 서문의 경우 홍예식이 아닌 개거식의 성문으로 그려져 있음을 알 수있네요. 
▼ 비변사인방안지도에서 본 해주목의 모습으로 전반적인 해주목을 잘 그려 놓았습니다. 위 고지도와 달리 사실적인 묘사가 눈에 들어 옵니다.  
▼ 해주읍성의 경우 그냥 장방향 사각형으로만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해주읍성과 수양산성의 모습도 보이고 성문은 3개 그려 놓았네요.
▼ 1872년 지방지에서 본 해주읍성의 모습입니다. 바다의 모습과 함께 북측에 높은 산을 잘 표현하였습니다. 
▼ 위에서 나왔던 해주읍성의 성문과 달리 1872년 지방지에는 성문이 동,서,남,북문 모두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4대문 뿐만 아니라 동문과 서문 사이에 작은 소동문, 소서문이 있습니다. 남문의 경우 다른 곳과 달리 2층누각으로 되어죠 있으며 남문의 경우 평거식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남문을 따라 올라가면 부용담이 보이고 객사의 모습과 선화당의 모습이 보입니다. 북문가까이에 동헌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곡성이 그려져 있는데 그곳에는 어떤 건물이 그려져 있는데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네요. 또 읍성내부에는 청단역이 그려져 있는데 읍성외부에 있지 않고 내부에 그려져 있습니다. 예전에는 읍성 동측외부에 있었는데 내부로 옮겨왔다고 하네요. 청단역은 7개의 속역을 거느린 찰방역이었다고 합니다. 
▼ 해주읍성 또한 다른읍성과 같이 일제강점기때 없어졌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해방이 되고 나서 미군이 제작한 해주시 지도입니다. 해주읍성이 사라졌지만 이 지도를 근거로 해주읍성의 실체적 모습을 찾고자 필자가 시도해봅니다. 
▼ 다행이 이 지도내에는 해주읍성의 체성부분의 흔적들이 상당히 남아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서측과 남측체성의 경우 거의 흔적이 남아있었던 것으로 추정이 되며 동측의 경우 일부가 보입니다. 또 해주읍성의 특징인 곡성의 경우 일부 남아있는 것이 보입니다.
▼ 현재의 지도의 경우 구할 수가 없어서 구글위성 지도를 가지고 대입시켜보도록 하겠습니다. 위 고지도에서 계속해서 등장하는 해주읍성 뒤의 산세의 모습을 구글위성지도에서 3D로 해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산세가 장난이 아닐정도 였으니 고지도에도 웅장하게 그려 놓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 구글인공 지도 위에 1945년 지도를 올려 놓으니까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전체적인 형태가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4대문과 2개의 작은 성문의 경우 1945년 지도에 나오는 작은 길을 근거로 작성하니까 상당부분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신건물이 들어서도 예전의 길이 남아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 길도 다 사라지고 없는 것 같습니다. 필자가 예상한 것이라 틀릴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필자가 항상하는 말 발굴조사를 해보아야 정확합니다.  
▼ 이렇게 대입하고 나니까 해주읍성의 모습이 한눈에 다 들어오며 위 고지도에서 등장한 장방향 사각형의 읍성의 모습이 보입니다. 또한 해주읍성의 특징인 곡성의 모습도 잘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해주읍성 남문의 당호는 순명문이라고 하네요. 
▼ 현재 해주읍성 내부에 있었던 부용담 건물이 해주시에 있는데 서문지 옆입니다. 이곳은 6.25때 파괴되었다가 다시 복원한 것입니다. 이곳에서 임진전쟁 당시 인조가 탄생한 곳입니다.  부용담의 경우 상당히 특이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으며 밀양 영남루,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같은 기능을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부용담의 경우 다른 누각과 달리 자연적인 모습이 아니고 인공적인 모습으로 만든 것이 다른 묘미인 것 같습니다.
저번에도 이야기 하였지만 일제강점기때 작성한 지적도가 있다면 필자가 예상한 해주읍성의 모습보다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덧글

  • 이 감 2012/04/21 20:13 # 삭제

    곡성은 북쪽 벽에 있는 건물이 장대인 걸로 봐서는 활터와 연무대로 활용했던 곳 같습니다.

    부용당은 왕의 탄생지여서 궁궐의 법식으로 지어져 있군요.
  • 팬저 2012/04/22 19:19 #

    곡성에 활터와 연무대라... 음... 새롭게 알게되네요. ^^
    부용당의 경우 6.25때 무너져 내려 다시 복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
  • 이 감 2012/04/22 20:14 # 삭제

    곡성부분은 그냥 제 추측이지요. 보통 성의 장대 앞에 광장 같은 것이 조성되어 있으면 연무대, 활터 같은 훈련장으로 쓰이니까요.
    부용당은 복원 건물이었군요. 내용을 못읽고 지나쳤나 봅니다. ^^;
  • 팬저 2012/04/22 20:31 #

    읍성안에 활터라던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장대부분이 그 역활을 하는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이 감 2012/04/23 00:57 # 삭제

    검색해보니 남문 순명문은 석축부분은 어느 정도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https://www.knowledge.go.kr/SearchSF1/search_result_dir_knowledgedb_list.jsp?rSearchChk=&resultcount=&selectSearch=no&startCount=&sortField=DATESdesc&searchText2=&kcdepth01=A&kcdepth02=0&know_cd=035&kind_cd=08&searchText=%ED%95%B4%EC%A3%BC%EC%9D%8D%EC%84%B1&startDate=&endDate=&item_cd=
  • 팬저 2012/04/23 01:10 #

    일단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과연 얼마만큼 남아있을까요? 그리고 제가 예측한 성곽의 터에 남문이 있을까도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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