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시대의 취락 방어 창원 남산유적 읍성(邑城)



창원읍성이 있었던 동헌이나 객사에서 바라보면 산은 산이 나오는데 이곳이 남산입니다. 우리나라 어디에 가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지명인 남산입니다. 이 나즈막한 남산에 청동기 사람들이 살았던 취락지구였던 것에 관하여는 잘 알지 못합니다. 
창원남산의 경우 해발 100여미터도 되지 않는 구릉으로 창원대박물관에서 조사 발굴한 남산유적을 보면 청동기시대의 환호취락과 패총, 원삼국시대의 취락과 환구, 폐기장, 패총, 그리고 중세와 근세의 건물지, 수혈, 구, 현대의 공동묘지에 이르기까지 매우 장기간에 걸쳐 다양한 유구가 집적된 복합 유적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소개할 환호의 경우 청동기 시대에 형성되었다고 하며 타원형으로 구릉 정상부를 감싸며 돌아가는 환호와 그 내부 경사면에 축조되었던 주거지, 환호 바깥쪽에 자리잡은 패총으로 구성되어져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둥글게 호를 만들고 취락을 외적으로 부터 지키는 호로 취락 전체를 지키는 커다란 외호와 안쪽을 구획한 내호를 만든것을 보니 청동기시대 때의 사람이 방어에 관한 개념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청동기시대를 거쳐 삼국시대,고려,조선을 거치면서 읍성이나 산성으로 발전하였고 현대에 와서는 중대전술기지 개념과 거의 비슷함을 알 수 있습니다.
발굴 당시 항공 촬영한 모습으로  위 그림지도와 비교하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산유적에서 발굴된 건물지에 관한 안내문으로 발굴당시의 모습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발굴 당시 모습으로 각종 건물지의 흔적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환호의 경우 큰 도랑을 파고 판 흙을 바깥쪽으로 높게 쌓아 보루를 만들어 적의 침입을 막았습니다. 환호는 마을을 돌아가며 판 도랑을 가르키며 목책은 도랑을 따라 돌린 나무 울타리를 말한답니다. 환호를 판 흙을 한쪽에 성벽처럼 쌓게되면 환호의 깊이가 아주 깊게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때 쌓아둔 흙을 토루라고 합니다.  환호에서 이렇게 발전하게 되면 더 도랑을 파고 물을 채우면 해자가 되고 파낸 흙으로 더 높게 흙을 채우면 토성이 되는 것입니다.  
현재 남산유적의 경우 간단한 휴게시설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곳이 취락 방어를 위해 조성된 환호인가 잘 모릅니다. 현재 국내 환호의 시설이 있는 곳이 발굴된 곳은 20여개 되는데 주로 경남지역에 분포하고 있습니다. 
남산환호가 있는 곳에서 창원시청 방향을 바라본 모습으로 적의 침입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환호의 경우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 중국 등에서도 발굴이 되고 있습니다. 물론 유럽에서도 환호의 흔적은 찾을 수 있습니다. 
창원 남산 환호의 경우 중심환호와 바깥환호로 나눌 수 있는데 중심환호의 길이는 전체 200m되도 바깥환호는 북쪽사면으로 2중으로 나머지사면으로 2중으로 형성되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바깥 환호의 경우 중심 환호보다 늦게 형성되어졌던 것으로 보인다고 이야기합니다. 중심취락지구에는 망루의 축조 등이 보여 방어용으로 사용되었을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남산환호에서 천주산을 바라본 모습
망루가 있었던 장소에는 이렇게 조성되어져 있었는데 망루의 초루를 이야기하는 것인지 잘 알기 힘이듭니다. 조금 예산을 사용했어라도 망루를 만드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쉬운데 말이죠. 
창원 남산에는 청동기시대 당시 살았던 주민들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취락도 보이지 않습니다. 위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안내판만 남아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김해 봉황동 유적에 있는 다락형 창고입니다. 
 아래 사진은 김해 봉황동 유적에 있는 가옥의 모습입니다.  
김해봉황동 유적에 있는 목책으로 복원(?)한 것입니다. 이렇게 남산환호에도 이렇게 복원(?)을 한다면 남산환호에 관하여 이해하기 쉬울 것 같은데 하지를 않네요. 
남산 환호내 망루옆에서 소답동 방향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남산환호의 경우 이렇게 주민들이 찾을 수 있는 공원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조금만 신경을 쓴다면 청동기시대의 환호를 만들 수 있는데 안타깝네요. 진주 대평리에 큰 청동기 유적이 발굴되었고 마산 진동리에도 발굴되었습니다. 진주 대평리에는 청동기 문화박물관을 만들어 놓아 청동기를 이해할 수 있게 하여 놓았습니다. 
환호의 평면 형태는 일차적으로 그것이 에워싸는 취락의 형태나 지형에 따라 좌우된다고 합니다. 원형이나 타원형의 형태를 띠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지형에 따라 잘록한 장고형이나 다른 형태를 띠기도 한다고 합니다. 전체적으로 원형으로 되어져 있으면 방어에 유리한 것이 사실이고 현재 중대규모의 기지의 방어를 보면 타원형이나 원형으로 되어져 있습니다. 

환호는 보통 한 군데 이상 도랑을 일정한 폭으로 끊어 놓아 입구를 만들어 놓았으며 이중삼중으로 환호를 굴착한 경우가 많은데, 창원 남산 유적이 다중 환호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단면의 형태를 기준으로 환호를 분류하는 경우가 있는데 소형의 환호는 U자형이 많고 깊은 환호 중에는 좁은 V자형, 넓은 V자형, V자형에 바닥만 다시 凹자형으로 파는 것 등이 있다고 합니다.




덧글

  • Warfare Archaeology 2012/04/25 19:42 #

    우리나라의 경우, 건물지의 상부를 알 수 있는 자료가 많지 않습니다. 일본의 경우, 토기편에 건물이 그려져 있는 것도 있고 해서 요시노가리 유적 같은 유적공원이 조성될 수 있지만, 우리는 직접적인 근거가 없어서요...추정만으로는 건물을 복원하지 않는 쪽인 것 같습니다(실제로 저렇게 해 놓으면 말도 많고 탈도 많고요. 고증이 어떻니 저떻니 하고요 ㅋ). 암튼, 최대한 고증하고 신경써서 복원만 잘 되는 걸로 끝날 것이 아니라 유지가 잘 되야죠...과연 우리나라에서 요시노가리 유적처럼 복원 후 유지를 할 수 있을지...의문 또 의문입니다. ^^;;
  • 팬저 2012/04/25 20:17 #

    말씀하신것처럼 추정만 가지고 건물을 복원을 할 수 없죠. ^^ 그런데 남아있는 것이 없죠.... ^^ 그것도 문제입니다.
  • Warfare Archaeology 2012/04/26 10:36 #

    정말...안타까우면서도...뭐라 할 수가 없네요. 휴우~~
  • 역사관심 2012/04/26 04:32 #

    진짜 문제는 지자체수준에서 계속 해야할 '유지'겠죠. 저정도로 잘 해두었으면 녹슬어버리지 않게 꾸준히 관리해줘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항상 걱정입니다.
    만들때만 언론도 와~ 수준이고.

    지역에서 꾸준히 행사도 하고 애정을 가지고 축제도 하는등 뭔가 문화적인 스토리텔링을 만들어가는게 가장 좋은 '유지'라 봅니다.
  • 팬저 2012/04/26 07:53 #

    예.... 제일 중요한 것을 이야기하였네요. 저번에도 한번 발제글을 올린 것이 있는데 청주에서 하는 행사의 경우 읍성이 없음에도 행사를 치루는 것과 같이 있는 것이라도 잘 이야기를 만들어서 실천하는 것이겠죠. http://panzercho.egloos.com/10774617
  • 역사관심 2012/05/04 06:07 #

    팬저님> 제 포스팅에 대한 답글을 계속 달고 싶었으나, 내용과 무관한 댓글이 이어지는 것 같아, 이곳에 정보를 올려봅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검색한 결과 수원 팔달문도 옹성안에 홍예문 형식이 엿보입니다.
    http://blog.daum.net/22587101/15460279

    그리고 평양성그림에서 보이는 옹성안 홍예는 사실 '수원 화성'에서도 보이는 형식이 아닌지 조심스레 질문을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블로거가 올린 고구려 개모성추정 (100%추정이겠지만)으로 보이는 성곽의 오래된 사진 (포스팅아래부분)을 보시면, 옹성안에 홍예문이 보입니다.
    혹 이것이 만약 고구려성이라면 고구려성곽의 특징중 하나가 아닐까...흥미로워집니다.
    http://blog.daum.net/manjumongol/700

    (사족질문으로 항상 궁금하던 것 하나만 질문드려봅니다. 고구려 성곽의 특징이라고 잘 알려진 '치' 설비는 고구려만의 독창적인 기술인가요, 당시 다른 동아시아국가들도 구사했던 기술인지요).
  • 팬저 2012/05/04 08:11 #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
    고구려의 城의 특징이 옹성과 치성이라고 듣고 있습니다. 이를 근거로 중국땅에 있는 성곽중 고구려의 것인지 아닌지를 구분한다고 하던데... 좀 더 알아보아야겠습니다.
    중국내에 있는 고구려 城에 관하여는 저 블로그님이 자료가 많이 있더군요. 저도 몇번 가보았는데 근거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수원화성의 옹성은 예전에도 있었고 알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옹성위에 누각이 있습니다. 누각이 있는 상태의 옹성은 보았지만 누각이 없는 상태의 옹성은 평양성에서 처음 보아서 그렇습니다.
    수원화성의 옹성처럼 홍예로 된 곳은 수원화성말고 동래성에서도 보았습니다. 북한지역내에 있는 읍성에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
  • 역사관심 2012/05/04 09:04 #

    그렇군요. 이번 기회에 많이 배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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