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 완료된 웅천읍성 동측체성을 가다_01 읍성(邑城)



저번에 웅천읍성 답사기를 올렸는데 이번편에는 좀 더 많은 사진과 아쉬운점, 문제점에 관한 글을 작성하도록 하겠습니다.  몇번에 걸쳐서 웅천읍성 동측체성 복원에 관한 글을 올렸었는데요. 당시에는 주차장이 완공이 되지 않아서 소개를 못했는데 이번에 가보니 완공이 되어서 관광객입장에서 아주 편하게 답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아래 사진에 나오는 것처럼 웅천읍성 주차장이 조성되어 가족단위의 관광객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장애인을 위한 주차장 시설도 갖추고 있고요.
대형버스 주차장도 갖추어져 있습니다. 
원래 웅천읍성 복원조감도를 살펴보면 주차장의 경우 동문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현재 주차장의 경우 해자라로 적어 놓은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또 동문앞에 있는 관리사무실과 화장실의 경우도 주차장이 있는 곳에 있어서 아래 조감도와 같이 웅천읍성이 복원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또 조감도에 나올 웅천읍성 역사관의 경우 우체국 등이 자리잡고 있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객사의 경우 웅천초등학교가 이전을 해야하는데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동헌이나 내아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저정도 되려고 한다면 적어도 2020년 이후가 되지 않을까 추정합니다. 
또한 화장실과 관리사무실이 갖추어져 있어서 관광객 편의를 도모하고 있습니다. 
주차장에서 바라본 동문인 견룡루와 동측체성의 모습으로 아래에 나오는 길을 따라서 가시면 됩니다. 
힐체어를 이용하거나 하셔도 이동은 자유롭게 만들어 놓았지만 동문인 견룡루를 오르는 것은 힘들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웅천읍성에 관한 안내문을 작성하여 놓았습니다. 한글, 영어, 일본어로 안내문을 작성하여 놓았습니다. 
웅천읍성에 관한 안내문을 보면 제포와 가까우며 삼포왜란 당시 웅천읍성의 함락 등이 새겨져 있습니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의 이야기는 아주 간단하며 웅천읍성 내부의 이야기등은 보이지 않습니다. 어떤이는 안내판에 다 들어가기 힘들지 않느냐라고 이야기하겠지만 필자가 볼때 활용하는 면에서 아쉬움을 주고 있습니다.  
회원현성을 소개하면서 필자가 소개한 QR코드를 이용한 안내문이 있었는데 이것보다 더 진보한 것이 AR코드입니다. AR(증강현실)코드를 새겨놓아 그것에 스마트폰을 비추면 웅천읍성에 관한 성곽의 모양, 역사, 특징을 소개하는 동영상이나 3D그래픽이 나올 수 있으며 AR코드를 클릭했을때 한국어나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외래어가 시각장애인을 위하여 들려줄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이 앞으로 관광지에서 각광받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웅천읍성 복원 예정 조감도의 경우 동,남,서측 체성과 북측 체성정도이고 객사, 동헌 등의 경우 알 수 가 없습니다.  저건 희망사항도 아니고 될 수 없습니다. 일단 주차장이 물건너 갔기때문입니다.  
일단 주차장을 벗어나면 한눈에 들어오는 동문인 견룡루와 옹성때문에 이곳이 웅천읍성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해자안에 목익이 갖추어져 있는 관계로 안전을 위해 사진과 같이 줄을 치고 그 앞에 나즈막한 나무를 심어 놓았으며 추락주의라는 안내판을 부착하여 놓았습니다. 
목교가 자리잡고 있는데 예전에는 없었던 것이고 관람객들의 편의를 위하여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목교에서 바라본 목익으로 뾰족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해자안에는 물이 많지 않고 적은양의 물이 흘러가는 관계로 녹조이끼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2011년 11월 초의 모습으로 예전에 비하면 현재의 목익의 경우 많이 흩어져 있습니다. 또한 해자안의 물의 경우 더러워지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발굴 당시 나온 목익의 모습(이미지출처 :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발굴 당시 목익의 모습과 해자의 모습(이미지출처 : 잊어버렸네요. 알고 나서 수정할께요)
반대편을 바라본 모습으로 이곳 또한 목익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목익의 경우 해자안에 세워놓는 일종의 방어수단으로 적이 해자를 건너다 발이나 하체부분에 타격을 주기위해 뽀족하게 만든 나무로 된 창과 같은 것으로 웅천읍성에서 발굴이 되었고 동래읍성, 언양읍성, 거제읍성(고현성)에서도 발굴이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철없는 어른들을 위해 친절하게 안내판을 만들어 놓았는데도 사용(?)하시는 분들이 있겠죠.
혹시라도 들어가는 사람들이 생길까 싶어서 추락주의 안내판과 끈을 연결하여 놓았습니다. 
가시나무와 같은 나무를 심어 해자로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습니다. 아직 가시나무가 많이 자라지 않았지만 많이 자란다면 접근이 곤란할 것 같습니다. 
동측 옹성을 바라보면 동남치로 갈 것인지 문루로 갈 것인지 선택을 해야합니다. 그런 부분을 알고 설치한 안내판
옹성 바깥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하단부 일부를 제외하고는 복원을하였는데 예전의 돌과 복원한 돌의 경우 색상때문에 확실히 알 것 같습니다. 
하단부에 자리잡고 있는 돌의 경우 3미터가 넘는 돌들이 수평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웅천읍성 해자에 설치한 조교입니다. 필자의 경우 예전에 육교라고 설명했는데 육교가 아니고 조교네요. 
우리가 영화 등을 통해서 본 들어올리는 다리가 웅천읍성에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안내판
조교의 뒷모습으로 현재는 작동되지 않습니다. 
조교를 지탱하고 있는 기둥의 경우 3개인데 아래와 같이 3개중 두개는 녹이 쓸어있었습니다. 만든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말이죠. 
옆에서 바라본 조교의 모습
조교의 기둥부분으로 예전에는 없었는데 이번에 가니까 만들어 놓았더군요.
2011년 11월에는 조교 기둥을 설치하려고 준비하는 모습으로 필자가 이건 뭐지? 라고 질문한 것인데 이제 의문이 풀리네요. 
해자에 대한 안내판인데 여러모로 부족한 생각이 듭니다. 아래 사진에도 잘 나오겠지만 좀 더 해자를 이해할 수 있게 그래픽으로 작성한다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것인데 그렇지 못하여 아쉬움을 주고 있습니다.
동문인 견룡루와 옹성의 모습으로 복원하여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는것은 사실이지만 그러저럭 어울리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측체성 끝가지 올라가보기로 했습니다. 체성은 직선으로 이어져있지만 통행로의 경우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전 발굴 당시의 해자와 체성의 모습 위 사진과 비교하면 재미있을 것 같네요.
아래 체성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왜군의 장군의 모습이 떠오르게 느껴집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하신지요!
필자가 볼때에는 이렇게 보이는데 말입니다.
미석부분입니다. 미석의 경우 미석(眉石)이라고 합니다. 성체와 여장 사이에 납작한 돌로 튀어나오게 설치한 시설로 마치 눈썹처럼 보여 미석이라 합니다. 미석의 경우 여장이 시작되는 부근에 있는데 미석을 성벽과 여장 사이에 끼워놓은 이유는 선조들이 물질이 상태가 변화할 때 부피가 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물이 얼면 부피가 팽창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만약에 성벽 틈 사이로 물이 스며든 채로 겨울을 지내다보면 물이 얼어 성벽이 쉽게 무너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미석을 끼워놓으면 비나 눈이 와도 물이 성벽으로 스며들어가지 않고 미석을 타고 바로 땅으로 떨어져 더 오래 체성을 보존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있던 동측체성과 복원한 체성의 경우 확실히 알 수 있는 사진입니다. 
동측방향을 바라본 모습으로 보이는 산 정상에 임진왜란 당시 왜군들이 자마왜성을 축성하였습니다. 
왔던 길을 되돌아 보면서 찍었던 사진인데 누각의 힘이 느껴지네요. 예전에는 누각이 없었을 때에는 멋스러움이 없었는데 누각이 들어가니까 확실히 멋지다는 생각이드네요. 
자세히 보시면 체성의 성돌위에 녹색테이프가 부착되어져 있는데 녹색테이프가 있는 곳은 예전에 있었던 성돌이고 그렇지 않는 것은 최근에 복원을 하면서 축성한 성돌입니다. 그런데 자세히보면 예전에 있었던 성돌위에 복원한 성돌이 있고 그 위에 예전 성돌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저렇게한 것인지 모르겠네요. 
최근에 심어 놓았는지 담쟁이 나무가 성곽을 감싸고 있습니다. 담쟁이 나무를 심어 놓음으로 성곽이 오래된 것처럼 보여줄 수 있는 점도 있고 또 체성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점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단부에 예전부터 있었던 성돌의 경우 우리들 눈에 사라진다는 점이 아쉬운 것이라 생각이듭니다. 
담쟁이나무의 경우 이번 2012년만 지나고 나면 확실히 자리잡겠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예전 발굴 사진을 보았을때 상당히 높게 축성한 체성의 경우 하단부만 남아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일까요? 예전에 있었던 성돌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돌의 색상때문에 확실히 복원한 것과 예전에 있었던 성돌은 확실히 알겠습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성돌이 사라진 이유가 성돌이 너무 작아서 없애버린 것은 아닐까요? 
동북치성 옆에 동측체성으로 중간부와 하단부의 경우 생각보다 돌이 크지만 상단부의 경우 아주 작은 돌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의 돌들이 사라지고 복원을 하면서 중간부에 있는 성돌과 비슷한 돌로 축성한 것임을 알 수있습니다.
동북치성부근입니다. 동북치성의 경우 예전에도 높이가 높지 않았는데 이번 복원에서도 다 복원을 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군요. 왜 그럴까요?
동측체성에 치성이 돌출되어져 있는데 이로 미루어봐서는 축성하고 나서 다시 한번 축성하면서 치성을 축성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동북치성 앞 치성의 경우 치성 때문에 해자가 더 바깥으로 돌아서 지나갑니다.
동북치성 안내판으로 이 안내판을 작성한 사람의 경우 치성에 관하여 알고 있으니 이렇게 설명하여도 되지만 일반적으로  잘 알지 못하는 관광객들에게 쉽게 풀어쓰고 치성에 관하여 이미지 등을 이용했으면 더욱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최근에 축성한 동북치성의 경우 기계적으로 축성한 느낌을 줍니다. 
동북치성을 끝가지 축성하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인 것은 아닌가 필자는 생각했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면 동북체성중 기단부에서 미석까지 거의 남아있었던 부분이 바로 동북치성뒤 체성 때문에 끝까지 축성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사진을 보면 녹색테이프가 많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복원되기전 웅천읍성 발굴 당시의 동북체성의 모습으로 확실히 체성이 많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해자의 모습으로 저렇게 끝나버립니다. 
동북치성에서 동문 견룡루를 바라본 모습으로 전체적인 형상이 "이제 나도 읍성이오"라고 외치는 것 같습니다. 
2편에서는 누각과 동남치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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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팬저의 국방여행 : 전국의 읍성_01 경남전남편 2012-07-05 10:17: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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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明智光秀 2012/05/07 19:57 #

    호... 집에서도 가까우니 꼭 한번 가봐야겠네요. ^^
  • 팬저 2012/05/07 20:12 #

    예.... 시간 내시어서 한번 들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 제홍씨帝鴻氏 2012/05/07 21:55 #

    한국사극에서 다양한 성들에서 공성전 찍엇으면하는 맘이.., 맨날 문경새재 공성전...,
  • 팬저 2012/05/08 00:44 #

    말씀하신 부분 100% 동감합니다. 고구려시대도 문경, 신라시대도 문경, 백제시대도 문경, 고려시대도 문경, 조선시대도 문경이죠. 각시대별 성곽의 축성방법이 틑린데 말이죠. 또 옹성도 없고 조금 그렇죠.
  • 제홍씨帝鴻氏 2012/05/09 00:31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이 감 2012/05/08 02:47 # 삭제

    일단 성곽부만 저대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꽤 볼만하겠군요. 지금은 배수 시설이 아쉬운데 복원 완료되면 해자도 제대로 물흐르게 만드는 것 같고요. 성벽 상부의 작은 돌 쌓기가 안보이는 것은 아쉽네요.
  • 팬저 2012/05/08 07:38 #

    배수시설의 경우 남측에 있긴 있습니다. 다만 물의 흐름이 좋지 못하다보니 잘 빠져나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 KITUS 2012/05/08 09:34 #

    '읍성'의 사진을 보니까 디워의 촬영지였던 낙안읍성도 생각나고... 성곽안의 한옥들이 있는 작은 도시라는
    분위기를 보여주는 아주아주 멋진 자료라 봅니다~ㅋㅋ 이러한 읍성들이 우리나라안에.. 정확히는 대한민국
    남쪽에 복원된 것이나 복원되지 못한 폐허로만 남아있는 것 중에 몇개나 남아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 팬저 2012/05/08 09:54 #

    일단 갯수에 관하여는 저도 알지 못하네요. ^^
    낙안읍성처럼 외부 체성이 복원이 된 곳의 경우 낙안읍성, 고창읍성, 수원화성, 진주성(진주읍성), 무장읍성 등이 복원하였고....
    일부 동,서,남,북 체성만 복원한 곳의 경우는 아주 많습니다. 밀양읍성, 장기읍성, 동래읍성, 청도읍성, 고현성(거제읍성), 거제 사등성, 나주읍성, 진도읍성 등 아주 많습니다.
    또한 수군의 진(鎭)이 있었던 곳에 있는 진성의 경우는 당포성지(당포진성), 지세포성(지세포진성), 구조라진성, 고성소을비포진성, 제포진성, 마도진성, 남도포진성(남도석성) 등 많이 있습니다.
    복원이 된 곳보다 복원이 되지 않는 곳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고 앞으로 점점 복원이 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 sara 2012/05/08 09:36 # 삭제

    담쟁이는 오히려 제거해야 합니다. 구조믈의 적이죠. 문화재청으 지침이기도 하고요
  • 팬저 2012/05/08 09:43 #

    문화재청에서 없애라고 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러군데에서 심어진 것을 보았던 것 같네요.
  • 역사관심 2012/05/08 11:08 #

    1. 우선 타읍성에 비해 그래도 제대로인 읍성이 웅천인듯 합니다 (항상 보면서 느끼지만).
    2. 해자도 충실히 복원한 셈인데, 복원된 부분과 원래 부분이 차이가 어떻게 나는지 모르겠네요 (더 작은 규모로 된것같기도 하고).
    3. 물은 언제 좀 콸콸 흐를까...요 -_-
  • 팬저 2012/05/08 11:18 #

    1. 동측체성의 경우 그럭저럭 잘남아있었고 복원하기도 수월한 편이었습니다. 서측과 남측의 경우 어느정도 남아있어서 복원하는데 문제는 없지만 북측은 어찌될지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아직 남,서측의 발굴조사가 들어가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부분이 빨리 해결되어야 복원이 될 것 같습니다.
    2. 해자의 경우 몇번에 걸쳐 수축되었다고 합니다. 발굴된 사진을 보면 계단식으로 되어져 있더군요. 복원하는 과정에서 최초 해자를 만든 것을 상정하여 복원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진상 작아보이지만 실제로는 작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3. 물은 글쎄요. 이부분은 민원을 제기해하고 그렇게 된다면 해자주의에 안전시설을 갖추지 않으면 물이 흐르는 것은 힘들 것 같습니다. 또 물이 빠져나가야 하는데 이부분에 관해서도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라서 이야기하기 그렇네요. ^^
  • 역사관심 2012/05/08 11:24 #

    그렇군요...역시 해자에 관해서는 이웃국가들의 경우를 벤치마킹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고맙습니다.
  • 팬저 2012/05/08 14:31 #

    예... 이런 부분은 아직은 멀었지만 꾸준히 따라갈 필요가 있겠죠.
  • Warfare Archaeology 2012/05/08 22:28 #

    아...이런...발굴 당시 남아있는 성벽 중 자잘한 것들을 빼고 큰 것들로 대체한 것 같습니다.
    성곽의 경우, 축성기법을 파악할때 어떤 돌로 어떻게 쌓았느냐~도 중요한데 저렇게 크기가 비슷한 돌들로만 채워놓으면 어떡하겠다는건지...
    조기 아래쪽의 류쿠왕국만 해도 성돌의 형태를 갖고 성곽의 편년을 하고 있는 판국에...기존 돌을 최대한 활용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될듯 하네요.
    물론 축성기술에 있어서 현대인들이 과거 선조들의 그것을 따라가지 못 하는 것도 있겠지만...이건 좀...
  • 팬저 2012/05/09 07:30 #

    말씀하신부분이 틀리지는 않습니다만 발굴당시 남아있던 작은돌의 경우 체성이 무너지면서 주민들에 의해 옮긴 것으로 생각하여 들어낸 것 같습니다.
    웅천읍성뿐 아니라 다른 읍성에도 저런식으로 많이 축성되어져 있더군요. 아마 저런부분의 경우 문화재위원회에서 결정할 것으로 보입니다.
  • Warfare Archaeology 2012/05/09 19:07 #

    아~그렇군요...음...아쉽습니다~~
  • 부산촌놈 2012/05/15 00:55 #

    음, 안내판에의 설명 부족은 읍성 군데군데에 따로 독자적인 안내판을 세워서 기본적인 설명을 보충하는 형식을 채택하면 어떨까요?

    그러니까 웅천읍성에 얽힌 이야기 같은 것들 말입니다.

    동래읍성이 그런 식으로 안내판을 곳곳에 박아놨거든요.
  • 팬저 2012/05/15 08:30 #

    말씀하신 것처럼 아내판을 여러군데 세워서 설명하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또 외국인이나 내국인을 위한 좀 더 다양한 설명이 있으면 더욱 더 좋을 것인데 그것이 스마트폰을 이용한 안내라고 생각합니다.
  • 딴따라 2012/10/08 12:27 #

    복원된 치성의 경우 완전히 헐어내고 새로 쌓은 것 같은데, 안내문에는 분명 체성보다 축조 수법이 조잡하다고 적혀있으면서 실제로 복원된 것은 매우 정연하기 때문에 황당하기도 하군요. 또 일반 관람객용 안내판에 어려운 학술용어 사용은 정말 여기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유적의 문제점인 것 같습니다. 웅천읍성 안내판도 그냥 발굴 보고서같은데서 설명 된 것을 적당히 떼와서 만든 것 같네요..
  • 팬저 2012/10/08 15:09 #

    말씀하신 것처럼 체성 일부를 헐어내고 새로 쌓았습니다. 이부분은 제블로그에 몇개 발제글을 적어 놓았습니다. 체성보다 축조수법이 조잡하다는 것은 제가 생각할때 상부를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하단부의 경우 아주 큰돌이 자리잡고 있는데 상부의 경우 너무 작은 돌(아마도 근대에 주민들이 쌓은 것으로 보입니다.)때문일 것 같습니다. 또 이야기하신부분 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좀 더 쉽게 적어놓아야 되는데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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