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 완료된 웅천읍성 동측체성을 가다_02 읍성(邑城)



복원 완료된 웅천읍성 동측체성을 가다 2편에서는발굴 당시 찍었던 사진과 비교하려고 합니다. 또 1편에도 이야기한 것처럼 덩쿨나무가 자랄 것으로 보여 자료의 보관 차원적인 생각으로 복원되기전 예전 성돌을 찍었습니다. 따라서 성돌에 관하여는 코맨트를 달지 않음을 양해바랍니다. 
 
예전 복원되기전 동측체성의 경우 S자모양처럼 들쭉 날쭉하였는데 복원을 하면서 정리를 하였습니다. 
복원된 동측체성에 있는 수구의 모습입니다. 수구의 경우 웅천읍성내에 있는 물을 배출하는 배출구의 역활을 하는 곳이라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위 사진에 나오는 수구가 있는 부분으로 발굴공사 당시의 수구 모습입니다. 위 사진과 비교할때 변한 것이 있는지 찾아보세요. 복원공사를 어떻게 진행하였는지를 추측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수구의 모습 앞을 보면 물줄기가 흘러간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하루 이틀이 아닌 오랜 세월 진행하였음을 나타냅니다.
수구에 대한 설명인데 주로 고고학적인 부분의 설명이 많이 있습니다. 끝에 객사지에서 흘러나온 오수 방출로 보인다는 설명이 전부라 조금 아쉬움을 줍니다. 
수구옆에 있는 체성으로 하단부에 예전에 사용한 성돌들이 있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하단부에 녹색테이프가 떨어지려고 하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저렇게 녹색테이프가 떨어지고 나면 요즘 복원할 때 사용한 돌로 자리잡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녹색테이프가 떨어지려고 하는 것이 많이 있더군요.
아래 부분에 큰 성돌의 경우 예전에 있었던 돌로 보이는데 녹색테이프가 떨어져 버린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상단부에 새롭게 복원하면서 축성한 돌의 경우 크기가 일정한 크기로 축성한 것 같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확실히 예전에 축성한 성돌의 방식이 재미가 있네요. 요즘 복원한 방법은 기계적인 냄새가 나는 것에 비해 예전의 방식은 틀리네요.
발굴공사 당시 찍었던 사진으로 현재 복원된 부분 근처입니다. 보시면서 복원전과 후를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해자의 끝부분으로 보통 해자 안으로 물이 들어와야 하는데 풀에 가려져서 그런지 보이지 않더군요. 해자안으로 들어오는 입수구가 있을 것인데 웅천읍성 발굴공사에서는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언양읍성 발굴공사에서는 해자의 입수구가 발굴이 되었더군요.
동측체성 끝부분으로 이곳의 경우는 예전에는 없었던 부분을 복원(신축?)한 부분입니다. 
북측체성을 바라본 모습으로 웅천읍성에서 북측체성 복원이 가장 힘이 들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남아있는 것이 없다보니 더욱 더 그렇고 북측체성 복원의 경우 늦게 복원을 하는데 이루어질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복원된 동측체성에서 남측방향을 바라본 모습으로 웅천초등학교 교사가 객사로 바뀐다면 낙안읍성과 같은 읍성으로 발전 가망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발굴공사 당시 찍었던 사진으로 위 사진과 위치는 조금 떨어졌지만 대략적으로 복원전 체성을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웅천읍성 동측체성 사진을 보면 하단부가 진한 색상의 돌들이 있고 위로는 밝은 색상의 돌들이 있는데 예전성돌과 요즘 성돌을 알 수 있습니다. 동측체성과 해자와의 거리를 알 수 있으며 해자의 폭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 동측체성 뒤편에 보이는 산을 보면 산봉우리가 두개인데 왼쪽의 경우 웅천왜성이 있었던 곳이고 오른쪽의 경우 제덕토성이 있었는데 삼포왜관이 있었던 곳이 산넘어 있었습니다. 이 삼포왜관에서 왜인들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하여 제덕토성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복원 완료된 웅천읍성 동측체성편이 끝나고 나서 웅천읍성의 소프트웨어편에 이야기하겠지만 아래 보이는 장소가 중요할 것입니다.
동북치성과 웅천초등학교 체육관으로 사용중인 곰내관입니다. 곰내관이 완공된지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웅천초등학교가 옮겨가려고 했다면 이 곰내관을 신축하지 않았을 것인데 이렇게 신축했으니 이곳에 객사가 들어서는 것은 힘들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곰내관입니다. 곰내관의 곰내의 경우 웅천을 우리말로 풀어쓴 것인데 웅천땅이 예전부터 곰내라 불렀다고 합니다.
이렇게 복원하고 나니 그래도 멋스럽게 자리잡고 있네요.
이 출입구의 경우 예전부터 출입한 출입구이며 주민들의 왕래가 많은 곳입니다. 오토바이정도는 다니는데 차량은 힘듭니다. 
좌측에 있는 조교의 모습과 견룡루의 모습속에 웅천읍성을 지키는 군사들의 모습이 떠오르는군요.
옹성앞에도 목교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주차장에서 들어올때 사용하는 목교와 동문을 지나가는 목교 이렇게 목교는 2개가 있습니다. 
웅천읍성 동문 옹성의 모습입니다. 동문옹성의 경우 하단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복원을 한 것입니다. 
옹성 개구부를 바라본 모습으로 옹성의 축성을 알 수 있게 일부러 이렇게 사진을 찍었습니다. 성곽의 기울기를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알고 있었던 90도에 가까운 성곽기울기가 아니고 대략 82~85도 사이 정도 됩니다. 보통 이런식으로 체성을 쌓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개구부의 모습이 보이는데 이곳으로 적이 이곳으로 오거나 아군이 돌격할때 이곳으로 나오는 곳이라 폭이 조금 넓어 보입니다.
옹성에 관한 안내문으로 옹성은 직경 18m, 내벽직경 13m이며 옹성의 외벽 둘레는 52m, 내벽 둘레는 27m 이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옹성의 체성부의 폭은 3.5m이며 개구부의 폭은 4m라고 하네요. 
옹성안의 모습으로 높이의 위압감 때문에 적이 들어온다면 두렵겠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발굴 공사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된 것과 비교하면 많은 차이가 있죠.
조명의 설치를 위해 전기시설을 해놓았는데 아직 조명은 달지 않았네요.
몇군데가 되어져 있었습니다. 

견룡문이라는 문루가 있습니다. 원래 있었던 견룡루라고 하지 않고 견룡문이라고 한 것은 무엇때문일까요?
조명시설을 하지 않고 저렇게 놓아두다 보니 보기에 좋지 않네요.
현재 한군데만 조명시설이 있더군요. 필자가 갔다오고 나서 조명시설을 완료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기배관의 경우 저런 모양으로 해놓았더군요.
성문의 경우 적이 가장 많이 노리는 곳이라 좀 더 튼튼하게 축성해야 합니다. 그렇다 보니 성문이 있는 곳에는 가장 큰 돌로 축성하더군요.
견룡문앞에서 본 개구부의 모습으로 이렇게 사진을 찍어 놓으니까 예전의 시대로 돌아가는 느낌을 주는군요.
복원된 체성의 기울기를 알려고 찍은 사진입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성벽의 기울기는 83도 내외입니다.
견룡루 누각의 하부를 찍었는데 보시는 것처럼 어떤곳은 아직 도색을 하지 않았더군요.
문지석에 성문을 달아 놓으니까 자신의 역활을 하는 것 같습니다. 
반대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 발굴당시의 문지석입니다. 당시 필자는 구멍이 두개인데 왜그렇지 싶었는데 위 사진과 같이 하려면 문지석에 구멍을 두개를 뚫어야 하겠네요. 문지석에 구멍이 두개가 있는데 그중 하나에 기둥이 들어가는데 그 기둥의 명칭이 문설주라고 하네요. 
발굴당시의 모습으로 성문의 크기와 폭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문지석 두개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성문에 철엽을 달아 놓았습니다. 철엽은 쇠철판을 아주 가늘게 펴서 성문위에 다는 것으로 이렇게 해놓았을 경우 성문에 화공공격을 했을때 불이 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문의 문고리도 생각했던 것보다 크네요. 
성문의 두께를 알 수 있는 사진입니다. 보시는 것과 같이 철엽의 경우 두께가 아주 작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쪽에 빗장의 모습이 보입니다. 
성문을 고정하기 위한 것인데 이것에 대한 명칭이 무엇인지 모르겠네요. 
빗장을 걸어두는곳에 위로 똑 올라와 있는 것의 명칭이 장군목이 맞는지 모르겠네요. 일단 필자는 그렇게 알고 있는데 말이죠.
문지석의 경우 옆으로 길게 되어져 있더군요. 다른 곳에서도 이와 비슷한 것 같더니...
성문의 기둥인 문설주의 경우도 아주 튼튼한 나무로 하겠죠. 
하지만 저번에 이야기한 것처럼 문설주 나무 틈이 많이 갈라져 있습니다. 
성문을 고정하는 이곳도 마찬가지이고요. 빗장을 여기에 걸어둔다면 성문을 뚤고 들어오는 것이 힘이 들겠죠. 성문의 경우 아침,저녁으로 열고 닫았기때문에 이부분을 사용을 많이 하는데 복원된 곳은 열어두어서 그럴 일은 없겠죠. 
초석의 경우 장초석으로 되어져 있는데 평거식의 누각의 경우 보통 이런 장초석으로 하는 것 같았습니다.
동문루의 안내판
성문을 들어오면 보이는 모습으로 보이는 우체국의 경우 예전에 관아시설이었겠는데 어떤 것인지 모르겠네요. 조감도에는 이 우체국부지에 웅천읍성 기념관 형식으로 만든다고 했는데 힘들것으로 보입니다. 
뒷에서 본 견룡루의 모습으로 아주 멋스럽게 되어져 있습니다. 저번에 이야기한 것처럼 원래 없어야 될 용두와 취두가 없었다면 더 좋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보기에는 용두와 취두가 있는 것이 좋겠지만 고증이라는 면에서는 맞지 않으니까요! 다음편에도 설명을 하겠지만 견룡루에 북을 매달아 두었으면 더욱 더 좋았을 것 같은데 하지 않았네요. 보통 북을 매달아 두는 것은 성문의 계폐를 알리는 것인데 말이죠. 어떤 곳은 아침에는 종을 치고 저녁에는 북을 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역마다 종로거리가 있는 이유가 거기 있는 것입니다. 
동측체성의 뒷편의 모습입니다. 웅천읍성의 경우 협축식이 아니고 내탁식이라고 하는데 동문 주위에만 이렇게 협축식으로 해놓았습니다. 
성문을 올라갈 수 있게 육교가 조성되어져 있습니다. 
성곽보행시 주의사항을 적어 놓았는데 말처럼 음주자나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올라가면 안되겠던데요.
성문을 고정하는 것은 사진에 나오는 것처럼 아주 작은 나무로 고정하여 놓았습니다. 
성문에서 옹성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다음 3편에서는 견룡루의 모습에 관하여 이야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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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이 감 2012/05/10 05:16 # 삭제

    잘 보았습니다.

    청테이프는 공사 완료후에 사진과 문서로 기록하고 떼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굳이 계속 붙여놓지는 않겠죠.

    건물 지붕의 용두나 취두, 양성바름 등은 조선후기로 오면 그렇게 딱딱 맞게 지켜지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옛 그림을 봐도 법도대로라면 없어야 할 건물에도 얹은 그림들을 볼 수있다고 하고요. 옛사진이 남아있고 지붕 장식이 없다면 그대로가 가장 좋겠습니다만, 새로 복원한 건축물에 지자체의 야심이 깃들다 보니 얹은 것 같네요.

    문과 건물, 지붕의 형식만 확실히 지킨다면 장엄을 위한 장식인 용두나 취두, 양성바름은 지금 시대에서는 적당한 선에서 이루어진다면 유연한 적용의 여지를 둘 수도 있어 보입니다만 조화를 생각하지 않고 올린 건물들이 꽤 되더군요.

    조교는 가동되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싶네요. 이런 기물 움직이는 것도 나름 볼거리인데 말이죠.
  • 팬저 2012/05/10 07:44 #

    용두와 취두가 왕권이 힘이 약한 조선후기로 접어들면서 잘 지켜지지 않았다고 하시니까 제가 의문이 있었던 부분이 풀리는 것 같네요. 남쪽에 있는 읍성에서는 잘 찾기가 힘이드는데 북한에 있는 읍성의 누각에 몇군데 보이던것이 그 이유 때문이군요.
  • 이 감 2012/05/10 05:16 # 삭제

    오늘 수원에 갈일 있어서 화성행궁에 잠시 들렀다가 남수문 복원현장을 다녀왔지요. 거의 마무리 단계에 돌입해 있고요. 아쉬운 점이 두 가지가 있었는데...

    첫째는, 화성 남수문이 참 곡절이 많은 시설이라 여러번 홍수로 무너졌고 이런 이유로 교각의 형식을 변형한 개축이 있었는데 두 번째 형식의 문은 의궤에 실린 첫 번째 만든 기둥교각 형식을 더 보강해서 통홍예로 만들었습니다. 이번 복원은 두 번째 형식인 통홍예 문으로 하더군요. 이번에 복원하면서도 홍수 등에 의한 유실에 대한 방책에 대해 연구를 한 것 같은데 결과는 물길을 하천 지하에도 내는 것으로 결정했죠. 그래서 하천 바닥을 파고 수구가 있는 시멘트 블럭을 남수문 교각 밑에 받쳤더군요. 아쉬운 점은 이렇게 하천바닥에 보강공사를 할 것이었다면 의궤대로 짓는게 더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바닥보강을 해도 의궤대로 짓는다면 버티기 힘들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둘째는 홍예 석축과 교각 돌을 자른 모습이 너무 현대적이라는 것이죠. 요새 읍성 복원 추세가 간혹 지역에 따라 삽질이 있긴 하지만 기존 성돌과 어우러지게 만들거나 조선시대 석축, 성돌의 느낌을 재현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데 남수문은 반대더군요. 돌이 너무 하얀 것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해주는 부분이지만 성돌의 모서리 부분들이 칼각을 이루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돌을 평평하게 또는 곡면으로 갈아내는 기술은 좋았습니다만 모서리 까지 칼각을 잡진 않았을진데 말입니다.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는 화홍문과 대비가 너무 심하게 되더군요.

    아무튼 이곳에서도 화성을 가지고 어떤 컨텐츠를 짤까 굉장히 고심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연히 화성축제에 대해 의논하는 관계자 분들의 토론을 엿들을 수 있었거든요. ^^;

    아무쪼록 웅천읍성도 원만히 성내 시설까지 잘 복원되길 바랍니다.
  • 팬저 2012/05/10 07:46 #

    말씀하신 것처럼 너무 기계적인 냄새가 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어루러지는 것이 좋은데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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