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 완료된 웅천읍성 동측체성을 가다_04 읍성(邑城)



복원된 웅천읍성 동측체성 4편으로 견룡루에서 내려와 옹성을 빠져나와 동남방향으로 방향을 돌립니다. 옹성하단부의 모습으로 녹색테이프가 부착된 곳중 색깔이 틀리는데 그중 하나는 청테이프가 부착되어져 있습니다. 색상으로 보아서는 최근에 복원한 것 같은데 말이죠.
옹성과 동측체성이 만나는 곳입니다. 
동측체성과 옹성이 만나는 지점으로 하단부의 경우 예전부터 있었던 곳이고 상단부는 복원을 한 것입니다.
예전에 성곽에 사용한 돌을 어떻게 절단하는지를 알 수 있는 사진인 것 같아서 찍었습니다. 작은 정으로 반듯하면서 띄엄띄엄 연결되어져 있습니다. 저런 상태에서 절단할 것 같습니다.  
명문석의 안내문으로 동벽과 남벽에 5개의 명문석이 확인되었다고 하던데 필자가 다 보았는지 모르겠네요. 
옹성 옆 동측체성 하단부에 진주지역에 있는 정0부라는 글씨가 보입니다. 이런식으로 명문석을 한 것은 공사에 대한 책임제요 요즘 말로하면 공사실명제입니다.   
이렇게하여 5년안에 무너지지 않으면 상을 내렸고 성이 무너져내리면 벌을 주었다고 하는데 삼국시대를 거치면서 조선시대에 와서는 축성기술의 발달로 인해 3년으로 축소되었다고 하며 성이 무너져 내릴 경우 읍성터를 잘못한 것인지 아니면 축성과정이 잘못된 것인지에 대하여 토론한 후 결정하였다고 합니다.
한문으로 적어 놓았는데 아시는분은 댓글 달아주세요. 일단 정O부인데 글씨가 잘려 나가 정확하게 알 수가 없네요.
예전체성과 요즘 복원한 체성을 알 수 있는 사진입니다. 예전의 성돌위에 작은 돌들이 틈을 채우고 있는데 이부분의 경우 예전부터 있어왔던 것은 사실이지만 요즘 복원하면서 다시 축성하면서 채운 것 같습니다. 다시 축성한다는 것은 예전에 있었던 성돌을 사진으로 찍어 놓은후 하나 하나 해체한후 다시 처음부터 하나하나 채우면서 하는것을 이야기하는데 필자가 이야기하는 부분이 맞을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채우는 곳에 기계적인 느낌을 줄 정도로 작은돌이 이빨이 꽉꽉 맞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예전의 방식과 다르게 복원을 하는 것은 위에서 이야기한 공사실명제처럼 문제가 발생하였을 경우 지자체에 하자보수를 해주어야 했어 그런 것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예전의 방식처럼 해버리면 기단부 및 하단부에 문제가 생겨서 무너질 가망성이 많다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따라서 그런 부분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잔돌끼움을 예전의 방식보다 많이 끼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발굴 당시의 웅천읍성 동측체성으로 위 사진에 나오는 지점과 비슷할 것입니다. 아래 보시면 동측체성의 경우 잔돌끼움 방식을 치하고는 있지만 위 사진과 같이 기계적인 느낌의 돌을 채우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진행하다보니 예전에 없었던 돌위에 녹색테이프를 부착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물론 군데 군데 녹색테이프가 떨어진 곳도 있습니다. 
녹색테이프가 부착된 돌의 경우 중간에 없다가 상단에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남측방향을 가다가 본 명문석입니다. 예전부터 있었다면 녹색테이프가 있어야하는데,,, 아무래도 떨어져 나간 것 같습니다.
이 한자가 무엇일까요? 
예전의 돌과 요즘의 돌의 색상차이가 나는데 확연한 차이를 보여주네요. 
중간쯤 와서 남측방향을 바라본 모습으로 해자와 치성이 보이고 그리고 저 멀리 웅천왜성이 있었던 남산이 보입니다. 이 남산의 경우 서울의 남산을 비롯하여 여러군데에서 남산이 보이는데 보통 읍치에서 남측을 바라보았을때 보였던 산을 남산이라 부르고 있더군요. 
동문인 견룡루를 바라본 모습입니다. 
이런 돌의 색상때문이라도 요즘에 축성한 것과 예전에 축성한 것을 한눈에 알 수 있겠습니다. 
해자의 경우 남측부분에서는 물이고여져 있습니다. 이는 배수가 잘 되지 않는 관계로 물이 잘 빠져나가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견룡루의 방향을 보면 해자안에 물이 없다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의 경우 중간돌의 크기가 아닌 수평으로 긴 돌이 자리매김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몇번의 걸쳐 수축하면서 축성한 것이 아닐까 추정합니다. 아무래도 옆에 있는 돌과 차이가 나니 확실히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여기를 보면 확실히 다른 색상의 돌인데도 녹색테이프가 부착되어져 있습니다. 진짜로 예전부터 있었던 돌일까요? 아니면 최근에 복원하고 나서 부착한 것은 아닐까요? 어떤 것이 진실일까요? 
2008년 7월에 필자가 웅천읍성 동측체성을 방문했을때 찍었던 사진으로 당시에는 발굴 공사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측체성의 경우 하나로 쭉 연결되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던 2009년 5월 말경에 방문했을때의 사진을 보면 동측체성 한쪽면이 완전히 파헤쳐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전에 찍었던 사진을 보니가 한군데가 아닌 몇군데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위 사진을 찍던날 좀 더 가까이 가서 찍은 사진으로 동측체성 일부분을 완전히 없애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때문에 위 사진에 나오는 돌에 청테이프로 부착한 것은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잘 있는 체성을 무너트리고(무너트린 이유는 간단합니다. 포크레인의 입출입을 위해서입니다.) 다시 복원한다고 하면서 축성하였는데 고증에 맞지 않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위 사진에서 필자가 의심한 지역과 확연하게 돌의 색상에서 차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이시죠 하단부에 청테이프가 많이 부착된 부분이 체성을 무너트리고 축성한 부분으로 보입니다.  
이제 동남치성에 관한 안내문입니다. 
동남치성의 경우 거의 하단부만 남아져 있었는데 그부분을 보여주는 것 같네요. 
명문석이 있는데 창녕의 이돈인인가요? 일단 명문석 안내판에는 그렇게 적혀있었는데 말이죠.
동남치성부근에서 북측을 바라본 모습으로 일단 고증이야 문제가 있지만 복원을 해놓고 나니 보기에는 좋네요.
동남치성인데 이부분의 경우 거의 무너져 내렸던 부분인데 이번에 복원을 하고 나니 조금 멋스럽네요. 
사진에 보시는 것처럼 하단부만 겨우 남아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해자가 끝나는 부분으로 사진에 보이는 것과 같이 배수구가 문제가 있다보니 물이 고이게 되는 것입니다.
하단부의 경우 황토색으로 된 부분이 보이는데 이건 돌이 황토색이 아니고돌에 페인트칠을 하여 그렇게 된 것입니다. 시기는 잘모르겠네요. 
돌에 새겨진 한자의 경우 田자 같아보이기도 하고 잘 모르겠네요. 
이제부터는 남측체성으로 이번에 복원한 곳의 경우 남측체성 일부입니다. 앞으로 복원할 곳의 경우 남측체성과 서측체성인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체성의 돌이고 축성할때 사용한 돌이 마름모로 된 것의 경우 처음보는 것 같습니다. 보통 성돌을 가지고 가로 또는 세로형으로 축성하는데 이렇게 마름모로 한 경우는 특이합니다.
이번에 복원한 부분을 보면 성돌이 일정한 크기이고 둥글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위에서 본 황토색의 돌이 하단부에 자리잡고 있죠.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곳의 경우 주민들에 의해 돌이 도색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단부를 보면 창녕이라고 적힌 한자가 보이는 것으로 봐서 남측의 경우 창녕에서 온 주민들에 의해 축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성돌이 군데 군데 황토색으로 칠해져 있습니다. 
하단부를 보면 청도의 글자가 보입니다. 청도의 주민들이 멀리서 와서 웅천읍성 축성을 하였네요. 
요즘에 새겨진 명문석입니다. 00인력의 전화번호가 새겨져 있습니다.
남측벽에 있는 수구로 동측에 있었던 수구와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겠네요.
동측에 있었던 수구의 경우 돌을 세로로 새우고 수구가 났었는데 여기는 틀리네요. 
여기는 바로 해자로 흘러가는지는 모르겠네요. 
또 하단부에 00인력을 알리는 광고판으로 사용하고 있는 성돌입니다. 이런식으로 활용을 하는군요.
사진과 같이 남측체성 일부만 복원을 한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복원해야할 곳과 복원한 곳의 차이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존의 돌의 경우 잘 안보이네요.
기존에 있었던 돌의 경우 세월이 흘러가면서 주민들의 담장으로 사용했는지 돌들이 성돌에 사용하는 돌과 다른 것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남측체성의 경우 사진과 같이 협축식으로 축성하고 내부에는 잡석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하지만 저번 3편에서 본 것처럼 안측에는 내탁식으로 되어져 있습니다. 
남측체성 일부만 복원된 부분을 보려고 찍은 사진으로 50미터정도 됩니다. 
사진상 나오는 것을 보면 ...복원을 하면서 축성한 것을 보니까 조선중기방식으로 복원한 느낌을 주네요.
하중을 견디지 못했는지 아니면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하단부에 있는 돌이 부서져 버렸습니다.
확대를 해보니까 자연스럽게 부서진 것이 아니고 인공적으로 부서진 느낌을 줍니다. 
어떤 돌의 경우 이상하게 가공된 느낌을 주는 돌도 자리잡고 있습니다. 
인공적으로 가공한 부분도 보이고
아주 재미있게 축성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곳은 가로형의 돌이 자리잡고 있고 어떤 곳은 마름모의 돌이 어떤 곳의 경우는 무너져 내릴 것처럼 옆으로 늘어져서 축성되어져 있습니다. 

축성된 돌이 마치 면도칼에 의해 잘려나간 것처럼 일직선상으로 금이 가 있습니다.  
하단부의 돌이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가는 느낌을 줍니다.
세로형의 돌이 자리잡고 옆으로 가로형의 돌이 맞물려 축성되어져 있습니다. 
여기의 경우 가로형의 돌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예전부터 있었던 하단부 체성의 경우 재미있게 축성되어져 있습니다만 잔돌끼움의 경우 복원하면서 채워 넣은 느낌을 줍니다.
확대를 해서 보면 돌의 색상도 그렇고 돌의 크기도 최근의 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곳은 성돌에 부착된 녹색테이프가 떨어져 나갔는데 돌의 크기나 색상, 위치로 봐서는 예전에 있었던 돌은 아닌 것 같은데 녹색테이프가 부착된 흔적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착된 녹색테이프가 예전의 돌 일 수도 있고 아닐 수 있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성돌의 옆을 보면 매직으로 적어놓은 숫자가 보입니다. 
성돌의 상단부의 경우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잘려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와 달리 세로로 갈라진 것도 보았습니다. 
아니면 이런식으로 갈라진 것도 보았고요.
이런식으로 금만 간 곳도 여러개 보았습니다.

옆으로 긴 돌이 자리잡고 있는데 황토색으로 칠해져 있네요. 
하단부에 있는 회색으로 된 돌이 예전부터 있었던 것 같은데 녹색테이프가 보이지 않네요. 떨어져 나간 것일까요?
많은 돈을 들여서 복원한 웅천읍성의 경우 보기에 시원하게 보이고 예전의 읍성의 느낌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복원을 하면서 기존에 있었던 성돌이 깨지고 부서진 것에 관하여는 아쉬움을 주고 또 복원을 한다면서 편의를 위해 일부러 체성을 무너트린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복원을 하는 건설업체들도 많은 신경을 쓰고 복원을 해야겠고 감독처인 창원시에서도 많은 관심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것으로 복원된 웅천읍성 동측체성에 관하여 답사하고 알아보았습니다. 다음편에는 웅천읍성을 이용한 방법에 관하여 이야기하 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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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이 감 2012/05/18 18:54 # 삭제

    잘 봤습니다. 여장은 안세우려나 모르겠네요. ^^
  • 팬저 2012/05/18 20:24 #

    여장은 계획이 없는 것 같습니다.^^
  • 유진우 2012/05/18 20:55 # 삭제

    건설업체 입장에서는 공사기간이 길어질수록 원가가 부풀어 올라 손해가 커지기 때문에 아무래도 퍼뜩 처리하는 것이 이득이겠죠

    여기에 국민의 혈세를 들이는 사업인만큼 뭔가 때깔 고운 새 돌을 사용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심리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다만 오랜 세월 읍성의 성곽이 민가 담장 혹은 광고판으로 쓰인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래도 저렇게나마 복원돼 천만다행이네요

    만약 공사가 시행되지 않을 경우 발생할 훼손을 생각하자면 일단 타협점을 잡은 것 같습니다
  • 팬저 2012/05/18 22:45 #

    현재 남아있는 읍성의 체성의 경우도 민가의 담장으로 사용중에 있으며 서문지의 경우 집으로 사용중이더군요.
  • Warfare Archaeology 2012/05/18 21:34 #

    테이프의 진실...정말 저도 궁금하네요.
    그나저나 물도 잘 흐르게 해자까지 잘 손보면 얼마나 좋노...쯧쯧
  • 팬저 2012/05/18 22:47 #

    현재로서는 저도 알 수가 없네요.
    해자의 경우 배수처리만 잘된다면 물은 잘빠져 나가겠지만 입수구에 들어오는 물이 너무 작습니다.
    이 입수구로 물이 많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해자에 물을 채우는 것은 힘들어 보이더군요.
  • 두근두근 2012/05/19 08:53 # 삭제

    우리 문화 유산이 복원되어가니 참 좋네요. 유럽 같은 경우, 역사 도시를 가면 고풍스러워서 참 좋던데, 우리나라는 현대식 건물밖에 없어서 휑한 느낌이에요. 뭔가 단절된 느낌..

    예전 문화해설사 선생님께 들은 바로는 복원한 부분은 티가 나게해서 후세인들이 알아보도록 한다고 하더군요. 석탑도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 보수한 흔적이 남아 있어서 석탑을 유지, 보수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죠.

    새 돌들도 후손들이 보수 관리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 팬저 2012/05/19 10:43 #

    그런부분도 일리는 있겠네요. ^^ 아무래도 좀더 많은 관심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 213 2012/05/19 12:23 # 삭제

    체성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치성인줄로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설명을 부탁합니다.
  • 팬저 2012/05/19 12:39 #

    체성의 경우 성곽의 성벽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성벽을 체성이라고 하고 성벽에서 돌출된 곳이 치성이고 돌출된 치성과 같은 것이 성문 바로 옆에 있으면서 적을 방어한다면 적대라 부릅니다. 치성에 누각을 세우고 포를 쏜다면 포루라고 하고 성벽이 각을 이루는 곳에 돌출된 곳을 치성이라고 하고 성우라고 합니다.
  • 두근두근 2012/05/19 21:14 # 삭제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요역의 기피로 군역의 요역화 현상이 발생하고, 군역의 대립제, 방군수포제가 발생하였다는 부분이 나오는데, 오늘 보니 그 까닭을 알겠네요. 군대 있을 때도 하수구 정비하다보면 큰 돌을 옮겨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저것처럼 큰 돌은 아니었죠. 그래도 하기 싫던데.. 어쨋든 좋은 깨달음 얻었네요.
  • 팬저 2012/05/20 09:17 #

    예전에는 성곽의 돌을 쌓는 노역의 경우 진짜로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
  • 딴따라 2012/10/13 10:31 #

    파란 테이프의 경우 원래 있던 성돌의 위치 기록을 위해 번호를 매겨놓은 표시가 맞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지금은 용도 폐기된 상태니까 다 떼버려야 되는데 워낙 많으니까 귀찮아서 떼지 않은 것 같네요.. 잔돌 끼움의 문제는 아무래도 오랜 시간 관리되지 않아 하부 성벽이 많이 뒤틀렸을 것이므로 그 상태에서 위에 엄청난 하중을 주는 돌을 올리게 되면 구조적으로 불안정해지니까 보강을 한 것 같네요.. 이 부분은 나름대로 어쩔수 없는 면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최근 복원 경향의 경우, 위의 리플에서도 언급됐지만 일부러 티나게 복원하는 편입니다. 옛날에는 실제 사용된 것과 똑같은 재질의 돌을 일일히 찾아 다녔지만 요즘은 그렇게 하면 공력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아예 복원한 부분을 완전히 다른 재질의 돌로 하는 편이죠.. 신라의 삼년산성 복원이 대표적인데 이 경우는 너무 심하게 티가나기 때문에 조금 거북하긴 하더군요.
  • 딴따라 2012/10/13 10:39 #

    유홍준 선생은 이를 두고 '보는 사람이 사라진 부분을 상상하게 하는 방식'이라고 멋지게 표현하기도 했습니다만.. 이것도 정도가 있어서 잘 보존되어 있는 실제 성벽의 미관까지 해쳐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웅천읍성의 복원은 정말 신경을 써서 잘 한 것 같네요. 물론 팬저님이 지적하신 대로 뜯어보면 아쉬운점이 곳곳에 눈에 띠지만 확실히 시공사에서 문화재 복원에 대한 개념은 어느정도 잡혀 있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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