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석보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된다 성곽 관련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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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여천동에 있는 여수 석보가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된다고 하는 뉴스입니다. 석보라는 말을 필자는 처음 듣었는데요. 기사의 내용을 보면 "처음에는 군사적인 방어 위주의 석보(石堡·돌로 쌓은 성)에서 출발해 점차 관청용 물자 비축 창고(倉庫)와 장시(場市·시장) 기능으로 활용되는 등 다양한 유적의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라고 하는 것으로 봐서 진보(鎭堡)의 성격을 가졌다고 봐야될 것 같습니다. 그냥 진성이나 보성이라고 하지 않고 석보라고 부르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여수석보의 위치는 어디였을까요? 

1872년 지방지에서 본 순천부지도에서 본 순천과 여수지방의 모습입니다. 현재 순천읍성의 경우는 위에 자리잡고 있는데 이 지도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좌측편에 고돌산진성이 있으며 고돌산진성 위에 곡화목장 분계성이라고 하는 말목장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돌산도에 방답진성이 있고 여수에는 전라좌수영성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현 여수시청 근처에는 선소가 있는 것을 표시하여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석창이라고 적어 놓은 곳이 있습니다. 그곳이 바로 석창이라고 적어 놓은 곳으로 여수 석보가 있었던 곳입니다. 목장의 분계성도 그려놓는 1872년 지방지에 석창은 간단하게 건물만 그려 놓았습니다.
고지도가 아닌 현재의 지도에서 살펴보면 여수석보가 있는 위치는 여수를 들어가기전에 만나는 지점에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있습니다. 처음에는 순천에서 나와 전라좌수영이나 고돌산진성으로 오는 적을 막기위한 하나의 관문성의 역활을 하다가 어느 순간 창고의 기능을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진보의 경우 아래 지도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 같이 바다를 끼고 자리잡고 있습니다. 여수석보의 경우 바다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이를 미루어 보아 육군의 진보라는 개념의 성곽으로 축성한 것은 아닐까 추정합니다. 
여수 석창성이 위치한 곳은 평지이며 정사각형에 가까운 성곽의 형태입니다. 여수 석창성에는 체성과 해자까지 발견되었다고 하니 성곽으로서의 기능은 다했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여수 석보성의 경우 처음엔 목책으로 축성하였다가 다시 돌로 쌓고 해자를 두른 둘레 682미터 성이라고 합니다.  
 
필자가 볼 때는 거제의 오량성과 비슷한 기능을 하지 않았을까 추정을 했습니다만 필자의 예상과 다르게 이곳의 경우는 군수물자를 조달하고 병기를 만드는 군수물자 종합 제작 창고의 기능을 했다고 합니다. 여수선소와 가깝고 전라좌수영과도 가까운 곳에 위치한 관계로 창, 칼 무기등 군수물자를 만드는 대장간과 주조소가 늘어섰고 군량미를 저장하는 창고와 그릇을 만드는 도요소가 즐비했다고 합니다. 거북선 부속을 만드는 제작소, 목공소. 도공이나 대장장이들의 숙소, 주막 등이 성안에 있었으며 이곳에서 근무하는 장인들은 종잡아 500명이 넘게 살았다고 하니 지금의 창원과 같은 군수물자 조달 도시와 같은 기능을 했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이여수석보의 초대 석창성 제작 소장은 거북선을 만든 나대용 장군이었다고 하니 여수 석보의 기능에 관하여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군수물자를 만드는 곳을 공격한다면 아군으로서 보통 낭패가 아니니 방어를 확실히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석성을 쌓고 전라좌수영 병사들이 번을 써면서 지켰다고 합니다.  또 무기를 제작하고 보관하는 기능뿐 아니라 군량미를 보관하는 창고로서의 기능을 했다고 하는데 좌수영엔 수군 1,000여명에 흥국사 승병 2000명, 합 3,000명을 먹여 살릴 군량미가 축적되어 있었다고 하니 규모가 어느 정도일지 상상이 됩니다.  
여수 석보(석창성)의 경우 성문이 3개(동,서,남문)이 있었다고 합니다. 임진전쟁후 여수 석보(석창성)의 기능은 점점 약화되면서 폐성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그후 여수석보 주위로 장이 들어서면서 시장의 기능을 했다고 합니다. 
"석창성의 상징적인 시설인 성문(동문 또는 남문) 1개소, 정비되는 성문주변의 성곽과 여장, 석창성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해자와 해자교, 연지와 우물 등은 우선 정비해야 한다"고 손영식 한국전통건축연구소장이 지난 2011년 12월 9일 전남대 여수캠퍼스에서 열린 석창성의 국가사적지 지정을 위한 학술대회에서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여수에서는 전라좌수영성을 복원한다고 했는데 아직 진척이 잘 진행되지 않고 있는데 석창성의 복원이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습니다. 
예전에는 여수 석창성 또는 석창이라고 했다가 군사기능을 중요시했다고 하여 이제는 여수 석보로 불린다고 하네요. 



덧글

  • 이 감 2012/05/22 15:32 # 삭제

    하지만 전라좌수영보다는 여건이 훨씬 좋은데요. 청주 정북동토성의 석성버전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물론 정북동토성 토성체는 정비 전의 상태도 거의 완벽했지만서도요. 토성 주위 해자를 복원하지 않은 것은 아쉽고요.)
  • 팬저 2012/05/22 17:23 #

    전라좌수영성의 경우 흔적이 많이 없다고 해도 이순신장군이라는 상징성이 있어서 복원에 서두를 것 같습니다만 아직 진행이 잘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청주 정북동토성의 경우 처음 듣는데 인터넷 검색을 해봐야겠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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