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량진의 적량은 어디일까? 진성(鎭城)



적량진성의 기록을 보면 성종 21년(1490년) 윤 9월에 적량진성의 축조가 끝나자 적량진을 구도성에서 옮기게 됐다고 합니다. 적량진성의 둘레는 1천182척이었다. 숙종 14년(1688년)에는 진의 중요성이 인정돼 만호진에서 첨사진으로 승격되었다가 고종 32년(1895년) 칙령 142호로 폐지됐다고 합니다. 또 다른 기록을 보면 성종실록16년에 행한 성기심정에서 "둘레 1,500척(약454m), 성내에는 못 1개소가 있었다고 전합니다. 이후 적량진성이 완성된 성종 21년(1490년)의 기록에는 둘레 1,182척(약 358m), 높이 13척(약 3.9m)"이라 전하고 있습니다.
적량진이라는 명칭중 적량(赤梁)이라고 부르는 명칭이 먼저 나옵니다. 눈치 빠르신분은 아시겠지만 적량중 량(梁)의 경우 섬과 섬사이 또는 섬과 육지, 육지와 육지사이에 폭이 좁고 빠른 물살이 있는 곳인 해협을 말할때 사용하는 것이 량(梁)입니다. 

우리들이 잘아는 견내량, 노량, 명량의 경우 육지와 섬사이 아주 작은 해엽을 가르키는 것입니다. 부산의 초량의 경우도 영도와 부산사이에 있는 물길을 이야기하는 것 같고 견내량 위에 있는 오량의 경우도 마찬가지이고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의 저도앞 바다인 고리량, 사량도의 상도와 하도 사이의 해엽을 사량이라 불리다가 현재는 사량도로 불리는 것 사천 삼천포와 창선도 사이의 해엽을 구라량, 통영시와 산양의 가운데 있는 해엽을 착량, 전남 강진군 마량면과 고금도 사이인 해엽을 마량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여수의 내례량과 진례량의 경우는 명칭이 확실하지 않습니다 아시는분은 알려주시면 수정하도록하겠습니다.)

이런 량(梁)이 붙은 적량의 경우 과연 어디일까요? 위 문헌을 보면 "성종 21년(1490년) 윤 9월에 적량진성의 축조가 끝나자 적량진을 구도성에서 옮기게 됐다"라는 말을 기준으로 보고 위치적인 것으로 봐서는 남해도와 창선도 사이의 좁은 해엽을 적량이라고 불렀을 확률이 많다고 봅니다. 
성종 21년(1490년)까지는 구도성인 곳에서 생활하다가 옮겨갔다고 하는데 옮겨가면서 예전에 사용한 지명을 그대로 가져간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시대 수군진이나 육군진이 옮겨가면서 예전의 지명을 그대로 가져갔는데 이를 살펴보면 거제의 조라진이 옥포옆으로 옮겨가면서 조라진으로 사용했고 조라진이 있었던 곳은 구조라 사용했습니다. 영등포진의 경우도 옮겨가면서 영등포진으로 사용했고 예전 영등포의 경우 구영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율포진의 경우 옮겨가면서 율포진으로 사용했고 예전 율포진의 경우 구율포라 사용중에 있습니다. 김해에 있었던 신문진이 진해로 옮겨오면서 신문진이라는 명칭을 사용했고 김해 장유에는 신문리로 사용중에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부산에도 있고 기장, 포항에도 있을 정도로 많이 있습니다.   

따라서 적량진의 경우 예전에 사용한 적량진이라는 지명을 그대로 가져가서 현재의 적량에 사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예전 적량진이 있었던 곳은 어디일까요? 남해군의 기록에 의하면 현재 창선면 부윤2리에 속한다고 합니다. 부윤2리라 부르고 구량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구량의 경우 구적량의 적을 빼고 부르는 이름으로 보입니다. 예전의 적량진의 경우 적량사이에 위치하면서 방어하는 수군기지였다면 옮겨간 적량진의 경우는 외해를 접하는 곳에 자리잡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명칭인 적량과는 관계가 없지만 예전에 사용한 지명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이고 현재의 적량의 경우 적량마을 앞바다를 그렇게 부르고 있네요.  
창선도와 남해사이에 있는 해협을 적량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닌지 싶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곳의 경우 예전부터 전해져내려오는 죽방염을 이용한 고기잡이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죽방염은 물때를 이용하여 고기가 안으로 들어오면 가두었다가 필요한 만큼 건지는 재래식 어항입니다. 적량이 남해도와 창선도사이의 해엽이 아니라면 창선도와 구도사이의 작은 공간인 저곳을 적량이라고 했을까요? 그렇게하지는 않았겠죠.
적량의 경우 견내량이나 노량, 명량, 사량처럼 아주 좁고 길죽하게 연결된 해엽입니다.
예전 적량진이 있었던 곳은 어디일까요? 저번에도 이야기했지만 적량진을 가게 된 것은 우연이었고 자료조사도 하지 않고 가서 정확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와서 확인해보니 창선면 부윤 2리가 예전의 적량진이었다고 하는데 현재도 일부 성곽이 남아있다고 하는데 어디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현재 부윤2리의 경우 일부 매립이 되어져 있었는데 예전 당시로 추정하여 그린 것입니다. 선소의 경우 마을입구 또는 구도섬에 선소를 둔 것이 아닌가 추정합니다. 예전 적량진의 경우 앞에 구도라고 불리는 거북섬이 자리잡고 있어서 선박을 숨기는데 좋고 적량의 길목이라 위치적으로 좋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또 선소를 아래지도와 같이 숨긴다면 여러모로 좋은 위치입니다. 

하지만 마을입구의 선소는 아니지 않겠나 생각했습니다. 위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적량진을 가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지나가다 구도 앞바다에 물이 빠져 모세의 기적을 체험하려고 가보았습니다. 가보니까 구윤2리에서 구도까지 걸어서 갈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배가 출항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선소로서는 위치가 좋지 못할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현재에 있는 포구가 예전의 선소였을까요? 
구도섬에서 부윤 2리를 바라본 모습으로 물이 완전히 빠져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이 들어왔을때의 구도는 아래와 같아서 건너기가 쉽지 않습니다. 위치적으로 유리한 적량진이었지만 이런 조수간만의 차이때문에 적량진이 현재의 적량으로 옮겨간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루에 두번정도 물이 빠져버리는데 빠르게 위기상황을 대처하지 못하는 이유때문이지 않을까요?
창선도와 남해도 사이의 해엽을 적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명칭을 수군진에 사용하게 되었고 적량진이 옮겨가면서 명칭을 가져가게 되었고 현재 남아있는 적량의 앞바다를 적량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알고 있는 량(梁)과는 거리가 조금 멀다고 볼 수 있네요. 

고지도출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위성지도출처 : 포털사이트 다음
3D위성지도출처 : 구글위성지도
지도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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