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 많은 용이 사는 영남루 읍성(邑城)



지난번 발제글 "밀양은 용의 고향"에서 "밀양 영남루안에 용이 있습니다"라고 하면서 단청속에 그려진 용까지 포함한다면 대략 20마리 정도라고 했습니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니까 보통 영남루 안에 있는 용의 경우 10마리라고 하며 방위각을 나타내는 청룡을 포함하여 총 11마리라고 적어 놓은 블로그 글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필자가 볼때에는 11마리보다 더 많았던 것 같아서 조사를 해보았습니다. 
▼ 영남제일루 현판뒤에 보이는 창방사이에 단청이 보이는데(너무 오래되어서 그런지 잘 안보입니다) 그곳 별지화 속에는 운룡(雲龍)이 있었던 것 같은데 보이지 않습니다. 사진촬영 시기 2012년 6월 2일  
▼ 위 사진보다 시기적으로 4년전입니다.(사진촬영시기 2008년 4월 8일) 위 사진보다 단청의 모습이 흐리지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도 별지화속에 운룡(雲龍)의 모습은 알 수가 없으며 그 위에 흰색토끼의 모습은 보입니다. 
▼ 단청이 워낙 훼손되어서 어떤 그림이 있었는지 조차 알 수가 없습니다. 사진촬영 시기 2012년 6월 2일
▼ 필자가 보기에는 군데군데 보이지 않지만 용이 구름사이로 돌아다니는 모습이 있었던 것으로 보았지만 단청이 워낙 훼손이 되어서 정확하게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대원사의 빛깔있는 책들 중 단청편을 보니까 확실히 용이 살아서 움직이고 있더군요. 
대원사의 빛깔있는 책들 중 단청편에 나오는 밀양 영남루 속의 단청 모습으로 확실히 용이 살아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별지화(별지화는 창방,도리 등 큰 부재를 제외한 중간 공백에다 회화적인 수법으로 그린 장식화를 말한다고 합니다)뿐 아니라 단청 사이에도 용이 살아서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상 살펴보면 용의 경우 황룡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움직이고 뒤편에 보이는 용의 경우 청룡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대원사의 빛깔있는 책들 "단청편"의 경우 초판이 1991년 3월 30일입니다. 이 책자를 만들기 전에 영남루를 가서 사진을 찍었을 것인데 그 시기가 언제일까 궁금합니다.(사진의 경우 김대벽 사진작가가 찍었습니다.) 적어도 책자가 만들어지기 전에 갔을 것이고 그렇다면 1990년 이전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당시의 기준으로 봐서는 확실하게 단청의 모습과 단청속에 있는 용의 모습이 선명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의 밀양 영남루의 모습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당히 아름다우며 화려한 색과 선명한 단청으로 인해 영남루를 더욱 더 빛나게 해줍니다.  

문화재 전문위원으로 계시는 곽동해씨의 책자 [장엄과 기복의 미학, 한국의 단청]을 보면 "건축단청의 수명은 극히 제한적이다. 고구려벽화고분과 같이 완전히 밀폐된 것이라면 천년 이상도 변색되지 않지만, 자연 빛에 완연히 노출되는 건물의 경우 기껏해야 외부는 150여 년, 내부는 3 ~4백년 정도에 불과하다."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영남루의 경우 재건한 시기가 헌종10년(1844년)이라고 합니다. 그동안 단청을 새롭게 복원하지 않았다면 대략 요즘 시기에 단청이 변색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김대벽작가가 찍었던 시기가 언제일까? 라는 것과 저 좋았던 단청의 색상과 그림들이 불과 20년만에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퇴색이 되었는가? 하는 의문이 남습니다.  

영남루가 1990년경 지붕에서 물이 새고 사주문이 기울고, 용마루 기왓장이 떨어지는 등 문제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것들이 영향을 끼쳤을까요? 그사이 20여년이 지난 시기와 우연히도 일치하는데 아무래도 빗물로 인하여 단청이 혜손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네요. 그나저나 영남루의 단청이 너무 낡아서 새롭게 단청을 칠하긴 한데 그전의 자료들을 보관하고 있을까요?
▼ 필자가 찍었던 사진에도 겨우 용의 모습은 보입니다.  사진촬영 시기 2012년 6월 2일
▼ 단청사이에서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청룡의 모습이 보일 것입니다. 몇마리가 보이는 것일까요? 눈 크게 뜨고 살펴보세요.  사진촬영 시기 2012년 6월 2일
▼ 위 사진속을 확대해 본 모습으로 청룡 2마리와 황룡 2마리가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필자는 청룡 1마리를 표현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1마리가 아니라 용이 4마리군요. 사진촬영 시기 2012년 6월 2일
▼ 보에 보이는 용조각 위에 보이는 단청에도 청룡의 모습이 보입니다. 필자가 사진을 찍을때 왼쪽편으로 찍었는데 오른쪽에도 용이 있을 것 같네요. 
▼ 위 사진에 등장하는 황룡과 청룡말고 일반인들이 쉽게 볼 수 있는 룡의 모습을 보면 기둥위에 있는 보머리(이게 명칭이 맞나요?)가 용의 조각으로 되어져 있습니다. 총 8개의 용이 있으며....
▼ 대들보 위에 보이는 용조각으로 청룡과 황룡이 각각 1개씩 총 2개가 있습니다. 
▼ 그리고 방위각을 나타내는 곳에 청룡의 모습이 보입니다. 청룡의 경우 오방중 동쪽을 의미합니다. 참고로 남(南)주작이며 색은 적색이고 북(北)현무의 색은 흑색이며 서(西)백호는 흰색입니다. 
▼ 그리고 증랑(명칭은 잘모르겠네요.)위에 보이는 청룡의 모습이 보이더군요(아닌가요? 필자가 볼때 청룡으로 보이는데 말이죠)
▼ 도대체 몇마리의 용이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네요. 대략 한 기둥당 20마리(조각용 2마리 + 한면 단청속 청룡과 황룡 각 4마리 * 2개 *2면 + 별지화 속 청룡 2마리)정도로 보이고 기둥조각 4개이니까 총 80개 + 청룡과 황룡조각 2개 + 방위각 청룡 1개 이렇게 총 83개로 보여집니다. (이부분 아시는 분은 댓글로 남겨주세요)
이렇게 영남루에 용이 많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경희루에서 발견된 구리로 된 용의 경우  경희루 궁궐의 화재를 다스리기 위하여 연못에 용을 넣었다고 하는데 영남루에 저 많은 용의 경우는 밀양강의 물을 통제하고 다스리고 물이 범람하지 않기 위해 그려 놓거나 조각한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무튼 영남루를 가신다면 과연 용이 몇마리가 있는지 꼭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덧글

  • 이 감 2012/06/04 22:52 # 삭제

    영남루 서까래 각각의 방향에 사방신들이 그려져 있는데 흐려져 가고 있던게 생각나네요. 단청의 운명이야 어쩔 수 없이 바래지는 것이니 막을 수는 없지만 다시 원안대로 단청을 칠할 수 있게 실측을 해놓았기를 바래야죠.

    그리고 영남루에 가면 꼭 보아야 할 중요한 부분이 있는데 바로 서까래의 사래에 부착해 놓은 사래기와입니다. 고려~조선 중기까지는 장엄특수기와들을 많이 사용하다가 임진왜란이 지나면 몇종의 장엄특수기와들은 사라지는데요. 이 중 사래 같은 경우는 귀면와 혹은 용면와 등의 사래기와를 붙이던 것이 단청이나 토수로 대체되지만 영남루에는 단청이나 토수가 아닌 해학적인 얼굴의 철로 된 사래기와가 붙어 있지요. 조선시대 특수기와 중 걸작으로 평가 받습니다.

    올리신 용 그림들 잘 보았습니다. ^^
  • 팬저 2012/06/05 08:03 #

    사래기와는 못봤는 것 같은데요. 다음에 가면 한번 보아야겠네요. ^^
  • ttttt 2012/06/06 17:03 #

    와, 이런 팁 정말 좋아요. :) 나중에 밀양을 지나갈 일이 있으면 꼭 들러봐야겠습니다.
  • 팬저 2012/06/06 19:19 #

    그렇습니까? 저도 아직 사래기와는 못보았는데 다시 가서 보아야겠네요. ^^
  • dunkbear 2012/06/05 08:38 #

    안타깝습니다. 저렇게 멋진 그림들이 빛이 바래서 사라지고 있다니....
  • 팬저 2012/06/05 11:34 #

    예.... 저렇게 멋진 단청일줄 저도 몰랐습니다. ㅠㅠ 사진으로만 접하게 되네요.
  • KITUS 2012/06/05 08:51 #

    저건 따로 복원이 불가능 한건가요... 아니면 가능은 한데 비용이 막대한걸까요...
    유럽의 외딴 소국에서 그리스도의 이콘을 보는 것처럼 조선의 용을 보는 느낌은 색다른데 말입니다..ㅠㅠ
  • 팬저 2012/06/05 11:34 #

    글쎄요... ^^ 문화재청에서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 ttttt 2012/06/06 17:04 #

    빛깔있는 책이 나온 지 한 이십 년은 거뜬히 됐겠지만, 수백 년을 견뎌온 단청이 단 이십 년 새 저렇게 됐다고 한다면 이해가 안 가네요.
    과거에 복원을 잘못 한 걸까요?
  • 팬저 2012/06/06 19:18 #

    저도 이부분에 관해서는 너무 의문이 많이 듭니다. 김대벽 사진작가가 언제 사진을 찍었는지가 가장 중요할 것 같은데 알 수가 없네요.
  • 松下吹笙 2012/06/07 19:04 #

    개인 적인 소견으로 보아... 종보와 대보 상단에 새의 배설물들로 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개방적인 구조로 인하여, 많은 새들이 날아들고, 배설물에 의한 오염으로 보여지네요. 조류의 배설물이라면 충분히 짧은 시간에 단청을 망쳐 놓을 수 있죠. 그래서 궁궐에서는 삼지창이나 오지창을 꽂아 두거나 부시(철망)로 보호하기도 합니다.
  • 팬저 2012/06/07 22:56 #

    새의 배설물에 관해서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그럴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영남루에 새가 많이 오는지 모르겠네요
  • 松下吹笙 2012/06/08 21:15 #

    머 저도 답사를 안해봐서 화신이 안들지만, 강가인데다가... 나름 유명한 곳이니.. 사람들이 흘린 과자부스러기등 나름 먹을 것도 풍부하지 않을까요? ㅎ

    머 개인적인 소견입니다 ㅋ
  • 팬저 2012/06/09 10:31 #

    저도 새가 많이 오는지 않는지는 잘 모릅니다. ^^ 하지만 말씀하신 새의 배설물은 그럴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 거기까지 생각을 못해보았거든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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