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흥양읍성과 발포진성 탐방 성곽탐방기



원래 계획하고 전남 고흥을 간것이 아니며 자료도 보지 않고 찾아 간 것이 흥양읍성과 발포진성이었습니다. 그래도 아마추어이지만 몇년동안 해오다 보니 필자가 생각했던 곳을 가보니 읍성의 체성이며 체성의 흔적들이 보이더군요. 아무래도 초기에 비하연 실력이 는것 같습니다. 답사하는 날 비가 많이 와서 오랜시간 머물수 없었고 중요하고 특징적인 건물만 보고 왔습니다. 준비없이 간 답사이지만 흥미로운 것을 많이 본 답사입니다. 답사한 내용은 다음에 자세하게 올리도록 하고 이번편에는 간단하게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고흥반도의 경우 저번에도 이야기한 것처럼 섬아닌 섬인 반도이며 고흥의 입구인 남양면만 막아버리면 고흥으로 진출입이 곤란합니다. 고흥군의 옛지명인 흥양현의 경우 아래 1872년 고지도에 나오는 것처럼 읍성이 형성되어져 있으며 성문이 3개인데 북,남,서문입니다. 북문과 동문에서 흘러내려온 하천의 물이 남문옆으로 흘러가는 것을 고지도에서 알 수 있습니다. 객사를 중심으로 길이 두개가 나있었므며 객사 동측에 동헌이 자리잡고 있습니다.서문과 남문옆에 하천에서 흘러오는 물줄기를 표시하였으며 홍예로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림지도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흥양읍성의 평면도로 인터넷에서 구하기 힘들더군요. 또 문화재위원회에서 발굴조사를 한 자료를 구할 수 없어서 조금 힘이 든 것은 사실인데 고흥군에서 올린 아주 작은 평면도 그리고 훌륭한 다음지도, 필자의 발품, 직감으로 흥양읍성 평면도를 작성하였습니다. 따라서 일부 틀릴 수 있음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지도에 보면 홍살문, 외삼문, 내삼문의 경우 추정으로 표시하였고 동문,서문,북문도 추정하는 것입니다. 현재 남아있는 것을 보면 북측일부 체성과 서측일부 체성 그리고 홍교 두개, 치성 두개입니다. 옹성은 현재 남아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림지도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고흥군청 뒷산을 올라가면 바로 만나는 고흥읍성 북측체성으로 최근에 복원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진에 보시는 것처럼 5~8단으로 구성된 체성이고 하부에 큰돌을 사용하고 상부로 올라가면서 작은 돌을 사용하는 조선초기 읍성 축성방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진에는 나오지 않지만 흥양읍성의 경우 성외부와 성내부에 돌을 쌓는 방식인 내외협축식방식으로 되어져 있더군요.
▼ 서문 옆에 있는 홍교중 가장 특징적인 것이 바로 여의주를 문 용문석입니다. 홍교의 경우 흥양읍성내로 들어왔다 나가는 물줄기가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나가게하고 있습니다. 적의 침입을 막기위해 홍예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쇠창살을 달아 놓았을 것으로 보이더군요. 
▼ 남문지 옆에 있는 아래 홍교의 모습으로 흥양읍성으로 들어왔던 물이 흥양읍성 외부로 나가는 배출구의 모습입니다. 이 또한 홍교로 되어져 있으며 홍교 하부 가운데에 용문석이 자리잡고 있는데 위에 있는 홍교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고흥군 발포진성으로 현재 고흥군 도하면 발포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1872년 지방지를 살펴보면 발포진성안에 동,서,남문의 3개의 성문과 객사와 동헌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문 모두 개거식으로 된 것 같습니다. 
 이 발포진성의 경우 이순신장군이 36세때 선조 13년(1580) 발포만호로 부임해 18개월 동안 재임했던 인연을 맺고있다고 합니다. 발포진성 안의 건물지로써는 동헌과 객사, 배수로, 무기고, 동문, 서문, 남문, 망루 터 등이 남아 있었다고 하며 1977년 전남대 박물관 발굴 조사팀에 의해 확인된 것입니다. (하지만 전남대 박물관 조사팀 자료를 구하지 못하였네요. ) 이 발포진성의 경우도 최근에 복원을 한 것입니다. 
▼ 발포진성의 선소 및 굴강으로 이곳에 거북선과 판옥선, 사후선 등이  정박 한기도 하고 전선을 수리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선소내에 굴강의 경우 전국적으로 몇개 남아있지 않습니다. 물이 들어오는 곳의 경우 현재는 매립하여 바닷물이 들어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시 복원을 한다고 하던데 언제 복원을 할지는 모르겠네요.  
 발포 역사전시체험관 앞에서 본 왜가리의 모습으로 선박의 주인공처럼 앉아 있습니다. 왜가리가 접수한 배가 정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곳 발포의 경우 왜가리, 백로의 집단서식지로더군요.  
 발포 역사전시체험관 안에는 격군체험, 블루스크린을 이용한 전투체험, 승리함성체험 등의 체험행사와 임진왜란과 고흥의 수군, 이순신의 고흥방문기록, 정걸장군, 송대립장군 등 교지에 관련된 전시물이 있습니다.  
다음에 시간을 내어서 흥양읍성과 발포진성에 관하여 글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덧글

  • 에로거북이 2012/06/25 16:24 #

    오늘도 잘 보았습니다.

    굴강을 보니까 제가 태어난 진짜 고향인 삼천포에도 비슷한 선소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http://local.daum.net/map/index.jsp?map_type=TYPE_MAP&map_hybrid=false&urlX=741389&urlY=399428&urlLevel=2

    선소가 있다면 삼천포의 선소 주변 역시 만호진 같은게 있었다는 뜻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혹시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거기 있는 안내판이나 역사지를 봐도 정확하게 무슨 진이나 포가 있었는지는 설명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팬저님께 정중하게 여쭤봅니다. ^^

    다음번에 쓰실 흥양읍성과 발포진성에 대한 조금 더 자세한 소개글도 무척 기대됩니다.
  • 팬저 2012/06/25 16:36 #

    말씀하신 것처럼 삼천포에 있는 굴강의 경우 삼천포진에서 사용한 굴강이며 선소일 것입니다.
    이 삼천포에 있는 삼천포진의 경우 임진전쟁이 있을때에도 사용하였으며 임진전쟁이 끝난
    광해군 11 (1619년)에 현재의 통영시 산양읍 신전리 일대로 삼천포진을 옮기게 됩니다.
    새롭게 조성한 수군진의 경우 예전에 사용한 삼천포진의 명칭을 그대로 가져와서 사용하였으며
    예전 삼천포진의 명칭도 그대로 사용한 것 같습니다. 옮긴 삼천포진의 경우 일제강점기 전까지 사용했으니 대략 270년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삼천포진이 옮기고 났지만 지명은 삼천포로 사용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입니다.
    삼천포진 지명을 받았던 산양읍 신전리의 경우 현재 삼천포라는 지명을 사용하고 있지 않으며
    예전 삼천포진이 삼천포라는 지명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재미있죠.
    이런 경우 몇몇군데가 있는데 거제에 있는 구영의 경우 영등포진이 옮겨가고 나서 구영이라고 사용중이며
    새롭게 조성한 영등포진의 경우 삼천포진과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 전까지는 사용하였지만
    현재는 영등이라는 지명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외 몇군데가 더 있으며 둘다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
  • 에로거북이 2012/06/25 16:40 #


    약간 짧지 않은 사연이 있었군요. 그래서 아마 짧은 안내문 & 향토안내서적에 적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매번 "거북선을 만들던 곳이다" -_-;; 이런 애매모호한 설명에 뭔가 채워지지 않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덕분에 정말 오랜 궁금증이 말끔히 해소된 것 같네요. 자세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그러면 아마 광해군 11년 이전의 삼천포진 유적지 같은 것도 근처에 남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팬저 2012/06/25 16:43 #

    글쎄요... 삼천포진의 유적 그부분에 관하여는 알 수가 없네요. 아마 분명하게 있었을 것입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관아인 동헌과 객사도 있었을 것이고 선소도 있었을 것인데 문헌기록에 남아있어야 되지 않을까 싶네요. 혹 사천시사에는 남아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한번 찾아볼께요. ^^
  • 에로거북이 2012/06/25 16:43 #

    말씀하신 것으로 대표적으로 기억나는 건 거제에 구조라 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릴 적엔 멋 모르고 구조라 .. 이렇게 썼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구 조라포 란 뜻이었군요. 팬저님 덕분에 잘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삼천포진의 이름이 만약 통영시 산양면으로 옮겨갔다면 오늘날 "잘 가다가 삼천포로 빠진다" 는 오명(?)도 삼천포 것이 아니라 통영 것이 되었을까요? ㅎㅎ 문득 궁금합니다.
  • 팬저 2012/06/25 18:48 #

    글쎄요... 잘나가다 삼천포라는 것은 어떻게 사용했는지는 몰라도 삼천포분들은 싫어한다고 하니 안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
  • 에로거북이 2012/06/25 16:47 #

    어린 마음에도 ( 어릴 적에 소풍을 자주 간 곳입니다 . 삼천포 굴강 )

    " 여기서 배를 왜 만들었지? 주변에 아무 것도 없는데 ... 배를 만들어서 다른 데로 수출(?) 했나 .. "

    하는 아무도 갖지 않는 의문을 혼자 갖곤 했는데 만약 옆에 대형 수군 기지나 성터라도 남아 있었다면 전혀 그런 의문이 안 들었을 것 같습니다.
  • 팬저 2012/06/25 18:47 #

    자료에 의하면 고려시대 구라량현의 굴강을 이야기하는데 아무래도 그 이후 삼천포진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사용한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배를 정박하고 수리할 곳이 필요할 것이고 그렇게 사용하였고....
    이후 삼천포진이 옮겨가면서 사용할 수 없었는데 고깃배들이 사용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 이 감 2012/06/26 12:09 # 삭제

    흥양읍성의 북쪽으로 가는 물길이 흥양읍성 북문을 바로 통과하는군요. 영변읍성은 물길이 북문 바로 옆을 통과하는데 누교형식의 문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흥양읍성의 북문은 실제로는 어떤 형태였을지 궁금하네요.
  • 팬저 2012/06/26 16:32 #

    북문이 맞는지 모르지만 제가 가서 직접보니 땅이 복개한 느낌을 주더군요. 그리고 다음지도로 보니 옹성의 흔적이 보여서 북문이라 추정하는 것입니다. 북문의 실제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
  • 유진우 2012/07/01 21:01 # 삭제

    아, 저 아다케의 다케다 가문 문장은 도대체 언제쯤 개선될 것인지 하는 아쉬움이 드네요

    발포진성의 경우 서벽은 거의 복원 그 자체라고 온라인 곳곳에 나와있네요
    뭐, 붕괴돼 토루 형태로 남거나 아예 민가의 담장으로 쓰이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여기 외에도 방답진성과 같은 참화를 보자면 복원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현실이 너무 비참하네요 )
  • 팬저 2012/07/02 00:13 #

    발포진성의 경우 서벽만 복원되었고 물론 북벽 일부도 포함되었지만 말이죠... 동벽의 경우 하단부는 남아있는 것을 보았고 남벽은 잘 모르겠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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