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행료 달라고 하는 밀양관아 문지기 읍성(邑城)



지난달 밀양관아를 갖다 왔다가 이래 저래 딴 글 작성한다고 밀양관아에 관한 글을 작성하지 못하였다가 이번에 작성하게 되었네요. 아래 이미지는 밀양읍성과 밀양읍성 내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는 건물지로 필자가 여러자료를 검토하여 작성하였지만 필자가 밀양사람도 아니라 틀린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틀린 부분은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그림지도를 보면 현재 동문지에서 영남루까지 동측체성과 남측체성 일부가 복원이 되어져 있습니다. 복원된 밀양읍성 체성보기
그리고 밀양읍성 내부를 보면 모두 예전에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으며 빨강색 동그라미입니다. 하늘색으로 된 동그라미의 경우는 현재 복원된 관아건물입니다.  
▼ 서문지 앞에 있었던 형옥 건물지로 현재 우체국으로 사용중에 있습니다. 형옥의 경우 보통 읍성 내부에 많이 배치를 하는편인데 밀양읍성에서는 외부에 배치하였네요. 형옥이 무조건 내부에 배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 밀양시장 부근에 있는 밀양교회의 모습으로 육영재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 현재 밀양전통시장인데 전통시장 길건너에 밀양관아가 복원이 되어져 있습니다. 예전에 방문했을때의  복원된 밀양관아 모습 보기
▼ 밀양전통시장 길건너편에는 밀양 읍면동을 가는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사용중에 있으며 밀양관아의 모습이 보입니다. 
▼ 마을버스 시간표가 있네요.
▼ 밀양관아의 경우 지난 2010년에 복원을 하였고 필자의 경우 복원되기전에 몇번 와보고 복원된 후 바로 왔었는데 2년만에 다시 찾아 보았네요.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먼저 관아 야경을 위해 조명시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옵니다.
▼ 가로등의 경우도 전통느낌을 살려서 디자인해놓았네요.
▼ 저번에 방문했을때에는 없는 공덕비(공덕비라고 하고 선정비, 유허비 등 다양하게 불리고 있습니다.) 안내문입니다. 이렇게 공덕비에 관한 이야기를 적어 놓았지만 여러가지 아쉬운점이 있습니다. 바로 안내문에 사진과 함께 공덕비의 내용을 적어 놓았지만 공덕비의 선정과정이나 공덕비의 주인에 관하여는 알 수가 없습니다. 물론 그렇게 되면 엄청 큰 안내문이 등장하겠죠. 이런 부분을 줄이기 위해 각 공덕비 사진옆에 QR코드를 표시하여 관광객이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찍으면 그 인물에 관한 정보가 스마트폰에 뜬다면 굳이 공덕비 안내문을 크게 할 필요가 없겠죠.
▼ 저번에 공적비가 있는 곳이 헐소라고 필자가 이야기하였는데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고지도와 지적도 그리고 밀양에서 작성한 지도등을 보니까 헐소의 경우 공적비가 있는 곳 맞은편이나 도로가 되겠더군요.
▼ 공적비가 나란히 서있는 곳 앞에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벤치가 놓여져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여기가 관아의 민원을 보려고 대기하는 헐소가 맞겠는데요. ㅋㅋㅋ
▼ 밀양 동헌입구에는 밀양관아지라고 하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 건물을 3D그래픽으로 만들어 놓았으며 내용을 알기 쉽게 표시하여 놓았습니다. 
▼ 현재 밀양 관아 즉 밀양동헌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내삼문인 응향문을 들어서야 합니다. 그 응향문에 문지기가 두명이 서있습니다.
▼ 2010년 4월에 찍은 것과 비교하면 문지기 인형이 들어선 것이 다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현재의 응향문의 경우 원래 내삼문에 사용되는 것이 아니고 외삼문에 사용하였는데 내삼문에 가져와서 사용중입니다. 예전 기준으로 본다면 틀리다고 봐야겠죠. 예전기준으로 본다면 밀양아문이 될 것입니다. 밀양아문의 경우도 문이 3개가 있어야 하는데 하나만 내어 놓았던 것도 틀리다고 봐야겠죠.
▼ 또 틀린 것은  바로 높이입니다. 현재 응향문 앞에 14개의 계단과 문지기 앞 계단까지 포함하면 15개의 계단이 있습니다. 이정도라면 엄청 높게 형성되어져 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일제강점기때 다른 시도의 읍성 동헌 아문 사진을 보면 이렇게 많은 계단은 보이지 않습니다. 굳이 있다면 1~2개 정도 조금 더 있다고 해도 3~4개 이지 이렇게 많지 않습니다.  
▼ 현재있는 응향문의 경우 노랑색 원으로 표시한 외삼문 추정하는 곳에 있어야 정상적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동헌과 내삼문 그리고 외삼문의 경우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자리에 잡고 있습니다. 이는 공간적으로 높이 쳐다보게 만들어 놓은 것으로 한방에 높게 만들지 않고 자연스럽게 경배하도록 만들어 놓은 것인데 밀양관아의 경우 너무 높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일단 외삼문을 들어오는 순간 아~ 여기가 동헌이니까 몸가짐을 바로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 것입니다. 
▼ 아무튼 이렇게 외삼문을 지나서 만나는 것이 내삼문인데 여기에는 문지기들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습니다. 
▼ 문지기는 삼지창이라고 부르는 당파를 들고 있는데 이부분 아쉬움을 주고 있습니다. TV드라마에 포졸들은 전부 당파를 들고 다니니까 이곳 밀양 관아의 문지기도 당파를 들고 있는 것처럼 꾸며 놓았는데 그냥 일반적인 창으로 하면 더욱 더 좋았을 것인데 말이죠. 
▼ 그래도 밀납인형으로 만들어 놓은 문지기의 경우 디테일이 살아 있습니다. 
▼ 집신을 신고 서있는 폼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저 멀리 근민헌에는 밀양부사가 앉아 있습니다. 
▼ 그런데 좌측에 있는 문지기를 보니 눈빛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문을 통과 하기전에 통행료를 내라고 하는 뜻한 표정인데 마치 살아있는 듯한 표정입니다. 곁눈질하는 모습 자체가 이거 통행료를 주지 않으면 마치 출입이 힘들 것 같은 표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그에 반해 우측에 있는 문지기의 경우 정면을 응시하면서 근무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사실 문지기의 경우 돈 들여올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민원을 위해 동헌을 찾는 사람들에게 온갖 구실을 대면서 출입을 불허합니다. 수령이 출타중이라, 몸이 아프다, 지금은 만날 시간이 아니다 등등 여러가지 구실을 대어서 만나게 하지 않죠. 그러면 몰래 문지기에게 돈이라도 찔러주어야 문을 열어주는데 그렇다고 바로 수령을 만나는 것은 아니고 헐소라는 곳에서 대기해야 합니다.  또 헐소에서는 수령을 뭐 때문에 만나는지 하고픈 이야기는 무엇인지, 민원사항은 무엇인지를 물어보고 대신 글을 작성하여 줍니다. 이때 민원인은 종이값이 들어갑니다. 지금의 수입인지와는 조금 차이가 있겠고 예전에 사용한 급행료 정도라 보면 될련지 모르겠네요.  
▼ 응향문이라는 현판이 문지기가 잘 지키는 것 같습니다.
▼ 응향문 위의 모습으로 
▼ 이렇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만나는 것이 근민헌입니다. 예전에는 밀양부사가 없었는데 지금은 떡하니 자리잡고 앉아 있습니다. 
▼ 내삼문이 들어가기전에 바라본 모습으로 좌측에 보이는 건물은 작청건물지로 추정이 되고 우측에 보이는 갈색건물의 경우 헐소 건물일 것으로 보입니다. 밀양내일동 사무소 바로 옆 도로가 예전 조선시대 당시의 주 도로입니다. 
▼ 예전 밀양관아 발제글 하면서 사용하였던 근민헌의 명칭과 수령이나 아전들이 법정에서 서있는 위치를 그래픽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번에 아전들도 인형으로 만들어 놓았으면 더욱 더 실감이 났을 것인데 말이죠.
▼ 법정 뜰에 있는 회화나무에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 반대편에 있는데에는 쉴 수 있는 공간이 없습니다.
▼ 조명을 달아 놓았는데 상단과 하단이 있는데 상단의 경우 위에서 설명한 조명등이고 하단의 경우 아래 사진과 같이 돌느낌을 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 군데 군데 설치한 CCTV
▼ 내부에는 밀양관아에 관한 이야기를 알 수 있게 해놓았습니다.
▼ 법정 뜰에서 동헌마루까지 이렇게 계단이 놓여져 있는데 이계단을 한칸 오르는데 엄청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 바로 지방의 수령이 되려면 많은 시간동안 공부를 해야하기 때문이죠.
▼ 수령이 앉아 있는 곳과 아래의 마루와는 높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위에서 나온 것처럼 이곳에는 서리가 앉아서 수령이 이야기한 내용을 작성합니다. 지금으로 치면 속기사정도라 봐야겠죠.
▼ 밀양 관아에 관련된 안내문이 있는데 앞면에는 보는 것과 같이 거의 밀양관광입니다.
▼ 안측에는 각 건물에 관련된 내용이 들어있는데 이정도로는 내용이 부실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좀 더 다양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 당호인 근민헌 현판을 고정한 못(못이라고 해야 하나 정확한 명칭을 몰라서요)인데 일반적인 서양의 못보다는 좋아 보입니다.
▼ 동헌의 대청마루에서 바라본 내삼문의 모습
▼ 상방 앞에 있는 마루도 조금 높게 만들어 놓았네요.
▼ 상방에 있는 방문인데 이 방문의 경우 옆으로 밀면 병풍처럼 펼쳐지거나 좁혀지기도 하고 위로 올려서 사용할 수 도 있게 해놓았습니다. 
▼ 이렇게 걸쇠가 있는데 여기에 걸면되겠죠. 저렇게 걸쇠를 걸어두면 상방의 경우 방이 아니라 회의실이나 강당으로 변신할 수 있습니다. 저런식의 다용도 방을 만드는 것은 우리 옛 선조가 제일 잘 하는 것 같습니다.
▼ 섬돌위에는 기와장과 같은 소재로 된 것이 보이는데 이것이 방전이라고 한다고 하네요. 바닥에 까는 타일이나 블럭형식인데 보통 격식있는 건물에 깐다고 합니다. 궁전건물과 절에 많이 사용했다고 하는데 지방관아의 경우 객사나 동헌에 사용했을 것입니다.  
▼ 매죽당은 저렇게 나즈막한 담장으로 되어져 있어서 동헌에 무슨일이 있는지를 알 수있고 수령의 경우도 자제가 공부를 잘하고 있는지를 알 수있습니다. 지금의 CCTV와 같다고 봐야하나요?
▼ 회화나무 옆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투호가 놓여져 있습니다. 
▼ 자세히 보면 투호가 요즘 시대에 맞는 플라스틱으로 되어져  있습니다.
▼ 투호통에는 용이 승천하는 음각이 새겨져 있습니다.
▼ 또 옆에는 널뛰기가 놓여져 있는데 저 정도라면 널뛰기가 쉽지 않을것 같네요.
▼ 요즘시대에 맞는 플라스틱이 가운데 중심을 잡고 있네요.
▼ 윷놀이를 할 수 있는 윷놀이판과 가마니가 깔려져 있습니다.
▼ 전통놀이가 있는 곳에서 바라본 근민헌의 모습. 밀양동헌에 사용한 당호가 근민헌인데 동헌을 근민헌(近民軒)이라고 한 것은 '민가근불가하(民可近不可下)"곧 백성을  친근히 하되 하대하지 않는다는 목민(牧民)의 정신에서 취한 말이라고 하는데 조선시대 동헌의 당호로 사용한 것 중에 많이 사용한 것이 근민헌과 평근당, 안민헌, 제민헌 등이 있습니다. 백성과 가까이 지내면서 고을을 평안하게 잘 다스리겠다하여 평근당(平近堂),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겠다하여 안민헌(安民軒),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제하겠다하여 제민헌(濟民軒)으로 사용했습니다. 밀양동헌에 사용한 근민헌의 경우 남원,김제,청주,제주 정의현 등에서도 사용했습니다.
▼ 매죽당 앞에서 담장을 통해 바라본 모습인데 우물이 놓여져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사용했을 것 같습니다.
▼ 동헌 뜰에서 바라본 청소년문화의집으로 예전 작청건물이었던 것으로 추정이 되며 현재 도로의 경우 내아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이 됩니다. 
▼ 매죽당에 들어가는 문으로 협문과 같은 방식인이네요. 
▼ 매죽당이라는 당호가 있는데 예전에는 책실에 이런식으로 당호를 사용했을까요? 
▼ 매죽당 현판을 고정시키는 법을 보려고 찍은 사진입니다.
▼ 사또 자제들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 매죽당에 보통 관아의 노비인 방자가 대기하고 있죠. 아 춘향전에 나오는 방자말입니다. 방자의 경우 수령의 자제의 개인비서와 같은 역활을 한다고 봐야겠죠.
▼ 수령이 가족을 데리고 내려오는 경우 여러모로 민폐를 끼친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자식이나 부인을 위한 여러가지 식량이나 부식이 더 들어가는데 이건 모두 지방의 주민들이 부담해야 하기때문이죠. 그래서 왠만하면 혼자 내려가는 것을 권장했는데 이게 잘 지켜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 매죽당의 마루의 경우 크고 시원하게 해 놓았습니다. 매죽당에도 방이 두개가 있는데 동측에 있는 방은 수령의 자제가 공부하는 곳이고 방자는 서쪽에 있는 방을 사용했을 것입니다. 현재 인형이 있는 방은 동측에 있는 방입니다. 별것 아니지만 이런식의 설명들이 밀양관아 리플렛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한옥의 경우 이런식으로 있다보니 겨울철 보다는 여름철에 시원함을 줍니다. 햇볕은 막고 바람은 통하게 만들어 놓았으니 이곳에서 공부한다면 성적이 쑥쑥 올라갈까요?
▼ 동측방에 사용하고 있는 아궁이
▼ 뒷에는 굴뚝이 있습니다. 
▼ 책실 바닥에도 방전이 깔려져 있는데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책실이 내아 건물과 함께 동헌의 부속건물이긴 하지만 엄연히 동헌과는 격이 다른데 이렇게 방전이 깔려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건 잘못되었을 것 같습니다.
▼ 책실을 보면 단청이 칠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동헌에는 단청이 칠해져 있습니다. 단청이 있는 건물의 경우 아주 격이 있고 중요한 건물에 사용중입니다. 그에 비해 한 격이 낮은 책실의 경우 단청이 있으면 이상하죠. 
▼ 매죽당에서 동헌인 근민헌을 바라보았는데 보는 것과 같이 담장이 아주 낮습니다. 
▼ 이제 다시 나와 동헌 뒷마당을 향해 갔습니다.  동헌 뒤에는 굴뚝이 있는데 이 방식의 경우 궁궐에서 사용하는 굴뚝의 방식이라고 하더군요. 
▼ 동헌 뒤에는 주민들에게 휴식의 공간을 제공하는 조그마한 공원이 조성되어져 있습니다. 
▼ 동헌 뒷 마당에도 CCTV는 돌아간다는 사실 나쁜 마음 먹지마삼~

▼ 뒤에는 원래 납청당과 같은 건물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동헌옆에 납청당을 복원하였죠.
▼ 공원에는 요즘 사용하는 조경방식과 예전 궁궐에서 사용하는 방식을 일부 섞어 놓았습니다. 
▼ 조명등의 경우도 바위와 비슷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 담장을 보면 누구든지 넘어올 수있을 정도로 아주 낮습니다.
▼ 뒷 동산에서 바라본 동헌인 근민헌과 납청당의 모습이 보입니다.
▼ 등도 전통방식의 문양을 이용하여 만들어 놓았습니다. 
▼ 필자가 궁전에서 사용하는 방식의 정원과 같다고 하는 부분이 이 부분입니다.
▼ 매죽당의 모습으로 납청당은 밀양부사가 휴식과 함께 양반들의 외부인을 만나는 사랑방과 같은 역활을 한 곳입니다. 
▼ 내아와 혼동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내아의 경우 부사의 가족들이 생활하는 곳이지만 이곳 납청당의 경우 수령이 업무를 보는 공간인 동헌을 보좌하는 기능이 있는 곳이라 봐야 할 것입니다.
▼ 매죽당의 현판이 보이는데 이 현판의 경우 양각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 밀양부사가 않아서 외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유리로 되어 있어서 사진에 잘 나오지 않더군요.
▼ 난간이 있습니다. 여기에 기대어 시나 한수 짓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 난간을 보면 길죽하게 생긴 닭목처럼 보이는 것이 있는데 계자각난간이라고 합니다. 모양이 닭목처럼 생겨서 그렇게 부르는 것 같습니다. 계자각난간위에 둥근 나무로 된 것은 들란대라고 하네요.
▼ 바깥에서 바라본 난간으로 계자각난간의 경우 확실히 닭과 닮았음을 알 수있네요. 
▼ 여기도 들것이 있어서 방문을 들어 올리면 채광과 함께 바람이 들어오겠죠.
▼ 판문은 보이지 않지만 이렇게 앉아 있으면 누가 지나가고 누가 뭐하는 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납청당에서 보면 바로 밀양전통시장이 보입니다. 보이는 5층짜리 건물터의 경우도 모두 예전 조선시대때 관청건물이었을 것입니다.
▼ 방문이 보이는데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냥 문을 밀고 닫을 수 있고 옆으로 당겨서 넓게 사용할 수 있고 위로 들어 올려서도 사용이 가능한 방식입니다.  
▼ 대청마루 옆에 있는 방문을 들어올리면 방과 마루가 하나가 되는 방식이라 좁은 공간에서 넓게 사용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 쪽마루가 보입니다. 
▼ 쪽마루에서 동헌인 근민헌으로 바라본 모습
▼ 팬저가 방문했을때가 오후 12시 10분경 이었는데 대청마루의 경우 햇볕이 들어오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다보니 한옥은 여름에는 시원했던 것 같습니다. 
▼ 디딤돌의 경우 막돌이 아니고 인공적으로 갈았던 느낌을 줍니다.
▼ 동헌인 근민헌을 가기위해서는 저 협문을 통해 갔을 것입니다. 
▼ 하부에 아궁이가 있는데 몇번 사용한 흔적이 보이네요.
▼ 주차장에서 들어올 수 있게 만들어 놓았으며 이는 원래 없었던 것인데 이동권 자유를 위해 고증과 상관없이 만들어 놓았습니다.
▼ 저렇게 경사를 내어서 휠체어의 출입이 가능하게 해 놓았습니다.
▼ 주차장에서 바라본 납청당의 모습
▼ 납청당의 담장도 1미터 50센치 정도 되어 보입니다. 
▼ 화장실과 납청당 사이의 담장이며 공원이 있는 곳 축대에는 콘크리트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예전에 방문했을때 보다는 관광객들을 위한 안내문들이 더욱 더 많지만 관광객들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부족할 것으로 보입니다. 밀양시에서는 좀 더 자세한 설명을 해줄 수 있는 방법에 더욱 더 고민을 해야 할 것입니다. 



덧글

  • 에로거북이 2012/07/13 16:03 #

    잘 보았습니다. ^^

    덕분에 밀양 관아에 가 본 적도 없는데 마치 다 본 것 같은 느낌마저 듭니다.
    가까히 살면 한번쯤 가 볼 텐데, 고향에도 못 가 본지 오래라 안타깝네요.
  • 팬저 2012/07/13 16:23 #

    그렇나요? 이제 밀양읍성 복원의 기초가 시작되었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
  • 역사관심 2012/07/14 15:39 #

    잘 꾸며놨네요, 아기자기하고 여러 체험도 가능하게.
    가로등까지 신경쓴것은 다른 곳에서도 활발하게 배울만 한듯 합니다.

    잘 봤습니당.
  • 팬저 2012/07/14 18:07 #

    예... 체험을 위한 부분은 있으나 관아건물에 관한 설명은 많이 부족해보였습니다.
  • 松下吹笙 2012/07/15 23:45 #

    자료를 찾아 봐야 겠지만, 복원을 주도한 설계사무소가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설계한 것이 역력하군요... 특히 석재 가공 부분은 ... 참..
  • 팬저 2012/07/16 08:48 #

    자연스럽게 경사가 흐르게 되면 동문으로 가는 도로때문에 할 수 없이 계단을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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