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포해전에 관한 자료를 모으다 보면 이순신장군의 개인적인 부분까지 자세히 알 수 있는 글도 많고 임진왜란과 이순신장군에 관한 글과 서적은 엄청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의 경우 거의 글로 표현한 것이 많다보니 과연 부산포해전 당시 부산포의 위치며 부산왜성의 모습과 크기, 부산포해전 당시의 전투도, 전투시 선박의 위치, 일본군의 대응 모습, 해전장면, 자성대왜성 등에 관해서는 잘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부산포해전에 관한 내용을 요약하면 " 절영도에서의 전투 후에 이순신 장군은 부산포로 탐망선을 보내었다. 탐망선은 470여척이 부산포에 정박중인 것을 발견하고 조선 함대로 돌아왔다. 조선 함대는 부산포로 향하여 먼저 일본 전선 4척을 격침하고, 장사진을 피고 적진으로 돌격하였다. 일본 육군도 일본 함대에 합류하여 주변 언덕에서 조선 함대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조선 함대는 이 해전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그 후, 전선을 고치고 군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본영으로 돌아갔다. 이순신 장군의 함대는 9월 2일에 본영에 도착하였다. 조선군함대의 경우 74척의 판옥선과 92척의 작은 배를 이끌고 부산포를 전진하여 일본함대 130여척을 파괴하였다 그때 정운 및 6명의 조선수군 사망함, 25명이 부상을 당함하였다" 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나온 내용 말고 그림이나 일러스트 등은 없을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한다는 네이버에 있는 네이버 백과사전에도 일러스트로 표현하였습니다만 이순신함대의 진출로 정도로만 보입니다. 네이버백과사전보기
그나마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일러스트로 표현한 것이 보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보기
이것이 우리들이 그동안 알고 왔던 부산포해전에 관한 모든 것이라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이 내용을 보고 있다면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전투장면에 대한 기록문화가 부족한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난중일기를 통해서 나오는 것은 내용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고 좀 더 자세하게 적어 놓거나 전투장면의 재현, 전투시 선박의 위치, 사격, 이동, 침수, 승전, 패전, 후퇴 등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경우가 없어서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한산도해전의 경우는 좀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습니다만 다른 것들은 여전히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세계 4대해전이라고 불리는 트라팔가해전 당시의 전투도를 일러스트로 그려 놓은 것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트라팔가 해전 일러스트 보기 시기도 늦는 것도 있지만 어떻게 공격과 이동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바람의 방향은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물론쓰시마해전에 관련된 것은 더욱 더 정확하게 표현하였겠죠. 쓰시마해전 이야기 보기 또 세계4대 해전이라고 불리는 살라미스해전의 경우 는 오래된 전투이지만 자세하게 나옵니다. 네이버나 다음 등에서 살라미스해전이라고 검색하시고 이미지를 클릭하면 어떻게 전투가 벌어졌는지 자세하게 알 수 있습니다. 네이버 검색 결과보기
1588년 임진전쟁보다 조금 먼저 일어난 칼레해전의 경우는 우리와 비슷하게 자세하게 나온 것은 찾기가 힘이든 것은 사실입니다.
아래 그림은 충남 아산 현충사에 있는 부산포해전 기록화라고 합니다. 이외에 몇년전에 끝난 KBS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 나오는 CG정도입니다. 부산포해전의 기록화를 잘 보면 파도가 상당히 많이 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산포해전이 벌어진 9월 1일의 경우 기록화와 같이 저렇게 파도가 높게 쳤을까요? 그림을 봐서는 파고가 2미터 이상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동력으로 이동을 하는 배가 아닌 인력으로 이동하는 시대에 저정도 높이의 파도라면 배멀미가 날 것 같고 저 상태라면 조선수군들도 무사하지 못하였을 것이고 전투가 이루어 졌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물론 과장하여 그렸겠죠 예전에는 통했는가 몰라도 지금 시대에 저런 그림이 맞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러던중 필자는 일본인들이 그려 놓은 부산왜성의 평면도와 우리문화재연구원에서 만든 부산진성의 평면도를 가지고 다음지도에 표시하였습니다. 바닷가 근처에 있는 나성((羅城)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의 경우는 필자가 임의로 추정하여 그린 것으로 노랑색으로 된 것입니다. 나머지 빨강색으로 된 부분의 경우 일본군에 의해 축성된 나성((羅城)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으로 보여지는 부분입니다. 좌천동에 있는 부분의 경우는 출성(出城 데지로 でじろ )이 있지 않았을까 추정하는 곳으로 평면도를 기준으로 봤을때는 맞을 것 같습니다. (워낙 해손이 심하여 알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부산포해전이지만 그에 관련된 일러스트가 많이 없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으며 세계적인 밀리터리 전문 출판사인 영국 오스프리(OSPREY) 출판사에서 만든 Japanese Castles in Korea 1592-98에 부산포해전에 관련된 일러스트가 나옵니다. 일러스트 보기
일러스트를 보면 조선군의 입장이 아닌 일본군의 입장에서 방어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러가지 고증적으로 문제가 있지만 부산왜성과 전투장면의 경우 상당히 고증적으로 잘 표현된 일러스트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부산왜성을 축성하고 그곳에서 방어하는 장면과 부산진성을 점령한 후 다시 개축하여 방어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산위에 있는 부산왜성과 바닷가에 망루와 나성을 쌓고 방어하는 모습은 실제로 그렇게 했는지 모르지만 사실적인 느낌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부산왜성의 대략적인 부분에 관하여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부산왜성에 관하여 나온 장면이 없어서 아쉬움을 주더군요. 이순신장군이 부산포해전을 치룰때 있었다고 하는 부산왜성의 크기는 어느정도였을까요? 또 어떤 모습으로 이루어져 있을까요? 부산왜성과 자성대왜성의 경우 현재 일부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부산진지성이라고 부르는 곳도 일부 복원하였습니다. 하지만 임진전쟁 당시의 부산진성은 어딘지 알 수가 없습니다. 대략적으로 정공단과 일신기독병원 근처라고 합니다. 아래 구글 지도를 기준으로 만들어 본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보아도 부산왜성의 규모에 관하여는 알 수가 없습니다.
난중일기 번역본을 보면 "부산성 안의 관아는 모두 철거하고 흙을 쌓아서 집을 만들어 이미 소굴을 만든 것이 백여호 이상이나 되며, 성 밖의 동쪽 산 기슭에 여염집이 즐비하게 있는 것도 거의 삼백여호이며, 이것이 모두 왜놈들이 스스로 지은 집인데, 그 중의 큰 집은 층계와 희게 단장한 벽이 마치 불당과도 비슷한 바, 그 소행을 따져보면 매우 분통하다."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벌써 일본군들이 부산진성을 헐어버리고 산기슭에 많은 숙소를 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흰 벽이 마치 큰 불당 같았다는 것은 천수각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부산왜성의 경우 조선전기 부산진성의 돌을 이용하여 축성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현 자성대왜성이 보이는데 자성대왜성이랑 부산왜성은 연결된 성곽으로 보여집니다. 부산왜성의 경우 모성(母城)이고 자성대가 자성(子城)이라고 해서 자성대왜성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내용입니다만 거리가 있다보니 떨어져서 독립적인 성곽으로 유지된 것으로 본 것에 비해 부산왜성의 평면도는 같이 있는 왜성임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노랑색으로 된 나성((羅城)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이 더 연결 되었을 수 도 있습니다. 자성의 경우 지성과 비슷한 말로 봐야할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 부산시에서 사용하고 있는 부산진지성이라는 말은 현재 자성대왜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선후기에 사용한 부산진성을 부산진지성이라 사용중인데 부산진성으로 사용해야하는데 왜 부산진지성으로 사용하는지 의문입니다.
그러면 부산왜성의 크기는 얼마정도 될까요? 아래 사진을 기준으로 대략적으로 측정해보니 650,000 ~ 700,000평방미터(㎡)가 나오고 이를 평으로 환산해보니 대략 196,625평에서 211,750평이 나오더군요. 이정도라면 왠만한 대학교의 캠퍼스보다 크다고 봐야겠죠. 다른 왜성과 마찬가지로 상단히 긴 나성((羅城)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이 있으며 울산 서생포왜성에 사용중인 출성(出城 데지로 でじろ)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또 산꼭대기에는 2중, 3중으로 된 성벽이 있으며 중간 중간에 병사들이 숙식하는 곳이 있었던 곳으로 보여집니다.
부산포해전을 통해 수군만의 공격으로 부산을 점령하기 힘들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는데 이정도라면 30,000명 이상의 육군병력이 공격을 해도 힘들 것으로 보여질 정도입니다. 상당한 타격이 가는 공성무기인 화포가 있다면 틀리겠지만 말이죠. (지도를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 이순신장군이 공격했다고 하는 부산포에 관하여는 대략적으로 나오지만 이를 막기 위한 일본군들이 있었던 부산왜성에 관하여는 찾아보기가 힘이 들고 이 모든 것들이 일본에 의해 다시 들어오고 있는 점에 관하여는 뭐라고 이야기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역사의 한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왜성이라는 이유때문에 무관심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제라도 민간에서 좀 더 확실한 흔적을 찾아서 적진 한복판에 뛰어던 조선수군들의 용감함을 조명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덧글
너무 안쪽으로 깊게 들어가면 위험하기도 하구요
물론 전술적으로 치고 나오는 전법을 한시적으로 ㄱ전개할수 있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