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양읍성_03 다리가 아닌데 다리로 알려진 고흥 홍교 읍성(邑城)



북문지로 추정되는 곳에서 서문지로 추정되는 곳으로 나오다가 골목을 찍었습니다. 예전 성문으로 이어지는 길의 경우 저 골목보다 조금 더 크겠지만 예전 길은 아주 작았거든요. 그래서 서문으로 이어지는 예전길이 아닌가 싶어서 찍었고 집에와서 자료를 찾아보니 맞더군요. 
요즘 사용하는 도로와 비교해보면 상당히 작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 도로의 경우 우측에 있는 청회색건물 옆 골목입니다.
서문이 있었음을 알리는 도로명도 보입니다. 
서문지의 위치를 비교해보세요. 
서문지 근처에 있는 주차장이고 바로 뒤에는 낮은 야산이 있는데 흥양읍성의 경우 저 야산으로 성벽이 이어집니다. 
바로 위 사진에 나오는 주차장이 아래 사진에도 보이시죠! 바로 옆에 있는데 옹성이 돌아가는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그자리에서는 확인을 하였는데 사진에서는 잘 볼 수가 없어서 다음지도 신세를 졌습니다. 빨강색으로 된 것이 흥양읍성의 체성이고 우측에 있는 서측체성은 흔적이 있지만 옹성밑에 있는 체성은 흔적이 없습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예전길을 표시한 것은 노랑색입니다. (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복원을 하려고 하는지 아닌지는 몰라도 민가의 담장이 보이지 않더군요. 원래 그랬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죠....
조금 뒤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확실히 흥양읍성의 체성이 보이시죠. 저 체성이 지나갔다면 민가의 담장으로 사용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실 것입니다. 
서측체성의 모습으로 겨우 남아있으며 나무가 자라서 체성이 무너지기 쉽게 조성되어져 있습니다. 나무가지를 잘나냈었다고 하나 저 상태로는 오래 버티기 힘들어 보입니다. 뿌리를 잘라내지 않으면 답이 없을 것 같습니다.  
위사진과 바로 연결된 체성의 경우 풀에 가려져 정확하게 알 수 없으며 체성위에 민가가 올라와 있습니다. 이런 경우 처음 봤을때에는 야 저런식으로 집을 지었지라면서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너무나 많은 곳에서 보다 보니 이제는 새롭지도 않네요. 
위 체성의 부분과 비교하면 또 확실하게 다른 체성임을 알 수 있고 이를 미루어 보아 흥양읍성의 경우 몇번에 걸쳐서 수축한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문지에서 홍교가 있는 방향으로 내려와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골목에 가까운 도로이지만) 도로가 직선이 아니라 곡선으로 이어져 있는데 이는 서문지 옹성의 방향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이제 고흥읍성의 가장 큰 특징중 하나인 홍교를 만나는데요. 이 홍교의 경우 1872년 지방지에 자세히 그려진 것처럼 두개가 있습니다. 그중 위측에 있는 홍교입니다. 

홍교의 경우 전남지방에서 자주 만나는 것입니다만 보통 다리를 무지개다리로 만든 것에 비해 이 고흥의 홍교는 흥양읍성의 수문의 역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수문의 경우 읍성에 반드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군데에 남아있습니다. 

수원화성의 수문도 마찬가지이기도 하고요.(물론 규모는 수원화성의 수문이 크지만 말이죠) 그리고 필자가 살고 있는 창원읍성에서 이런 수문이 있었고 경남 창녕 영산에 있는 영산읍성에도 수문이 있었다고 하죠.   
고흥 홍교 안내판에 적혀있는 내용입니다. 여기에 흥양읍성 수구로 들어오는 물을 빠져나가기 위한 것이라고 적어놓고 갑자기 다리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건 뭐지... 결국 다리로 결론 냅니다. 아~ 이것이 전남 유형문화재 73호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우리나라 문화재를 엉터리로 기록하고 그것이 맞는 것처럼 하는 것에 할 말을 잃어버립니다. 이 유형문화재를 어떤식으로 심사하였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심사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1872년 지방지에도 친절하게 수구라고 그려져 있는데도 횽교라고 하면 쩝 할말이 없네요.(물론 그림에도 홍예식으로 그려 놓았고 橋가 보이긴 보입니다.하지만 읍성의 체성으로 연결된 것이지 따로 하천을 연결해서 이어지는 것과는 다르죠. 그렇다면 북문에 있는 누각도 다리가 된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이다리가 만들어진지가 1871년이라고 하니 다리 완공 후 1년만에 지도가 그려지는 것이네요. 그러면 더욱 더 정확하게 그렸을 것 같네요. 
두산백과 사전에서 본 서문리 홍교에 관한 글입니다. " 서문리 홍교는 맨 밑에 편단석을 깔고, 직사각형 각재 27개를 규칙적으로 결구하여 반원형의 홍예를 만들었다. 한줄은 장대석 1개를, 다른 한줄은 장대석 2개를 붙여 차례로 짜올라갔다. 홍예를 보호하기 위하여 홍예 주위에 잡석을 채우고, 그 가운데로 잘 다듬어진 직사각형 각재를 덮어 통행에도 잘 견디게 하였다. 홍예의 서쪽으로 용두를 돌출되도록 조각하였으며, 반대편의 동쪽으로는 용꼬리를 조각하였다.

2개(옥하리 홍교, 서문리 홍교) 의 홍교의 공통점은 홍예의 좌우에 뚫려 있는 지름 23∼24cm의 구멍인데, 이것이 결구할 때 만든 것인지 또는 완성한 뒤에 개울물의 수위를 조절하기 위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서문리 홍교나 옥하리 홍교 모두 정상부가 지금의 도로 평면보다 훨씬 높은데, 이는 후대로 내려와 마을이 생겨나면서 원래의 지형이 변한 데에 원인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서문리 홍교의 서쪽 왼쪽 장대석에 해서체로 10행 48자의 음각명문이 있는데, 이것으로 홍교가 세워진 때가 1871년(고종 8)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여기에도 홍교 즉 무지개 다리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흥양읍성의 홍교는 읍성의 체성에 연결된 구조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존 전남지역에서는 볼 수 있었던 홍교와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어떤 곳의 자료를 보니 다리라고 소개한 곳에 고흥 홍교가 많이 등장하더군요. 필자가 볼때에는 잘못된 것으로 보입니다. 다리라면 강이나 하천을 건너기 위한 것인데 그 어디를 찾아봐도 보이지 않습니다. 

흥양읍성의 체성과 연결된 것이 어떻게 다리인지 필자로서는 이해하기 힘이드네요. 따라서 이제부터 홍교라는 명칭대신에 흥양읍성 수구문이라고 정확하게 불러야 될 것 같습니다. 전남지역에서 많이 보이는 홍예로된 다리를 보고 고흥에 있는 수구문도 그런 것 같아서 이야기한 것 같은데 분명하게 말씀드리면 다릅니다. 홍교가 아니라 수군문입니다. 물론 홍예형태의 수구문이 정확하겠죠.
읍성내부에서 본 모습이라 봐야하는데요. 홍예로 된 수구문이 모입니다. 그리고 그 위에 돌로 축성하였는데 홍예옆과는 달리 조금 떨어진 곳에는 너무 엉성한 모습이 보이는데 아무래도 최근에 한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확실히 수문인지 홍교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홍교라면 맨 밑바닥에 이런 것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래에 나오겠지만 쇠창살 같은 것이 들어설 것 같은 커다란 홈과 작은 홈 6개가 보이고  그옆에는 조금 아래로 쳐져 있고 그 옆에 또 돌출되게 돌을 올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물이 내려갈 통로가 보입니다. 아무래도 물길은 3개의 수로가 있었던 것 같네요. 그런것을 하기 위해 종방향으로 긴 돌을 가져다 놓았습니다. 

조선시대에 보통 삼문을 사용하였는데 여기 수로문의 수로통로도 3개로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으며 왠지 웃음이 나오는 장면 같습니다.
우측에 보면 축대처럼 보이는 흑색과 흑갈색의 돌들은 최근에 만든 것입니다. 홍예로된 수문위에 보면 돌출된 것이 3개가 있는데 홍예 가운데 있는 것은 바로 용의 꼬리라고 하는데 이게 용의 꼬리인지 물고기의 꼬리인지 모르겠습니다. 
이게 용의 꼬리인가요? 또 어떻게 보니까 용의 꼬리 같기도 하긴하네요. 우리가 상상하는 커다란 긴 용의 꼬리가 아니고 짧은 꼬리라 그런 것 같습니다. 
용의 꼬리 말고 옆에 두개가 더 돌출된 것이 있는데 이건 무엇일까요? 위에서 이야기한 고흥홍교가 홍교가 아닌 이유는 아래를 보시면 더욱 더 정확하게 나옵니다. 아래 사진을 보면 하단과 상단에 큰 원이 두개가 보입니다. 이는 적이 수구문을 통과하지 못하게 하기위해 나무기둥을 설치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홍예석이 있는 곳 하단에 둥근 구멍이 있는 돌이 보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큰 나무기둥을 고정시키기 위한 돌의 홈이라고 봐야겠죠. 
서문리 수구문의 정면이 읍성외부로 나왔습니다. 보이는 돌로 만든 축대는 최근에 만든 것입니다. 

정면에는 용이 여의주를 물고 늠름하게 버티고 있습니다. 이제 여기를 들어올 생각마라 여기 들어오면 혼내줄거라고 하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강력한 포스의 용의 모습은 읍성중 가장 취약하다고 할 수 있는 수구문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일종의 협박이며 여기가 가장 취약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읍성중 가장 취약한 곳이 성문인데 성문의 경우 그래도 옹성이나 적대 등으로 보호를 하지만 수구문의 경우 보호해주는 기능이 없습니다. 또 적의 입장에 봐서는 성문이나 체성의 경우는 보이지 않으니까 아군의 사정을 모를 수 있지만 수구문의 경우는 외부에서 내부를 볼 수 있는 곳이니 더욱더 공격을 해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야간에 내부침입이 용이한 곳이기도 합니다.
저 멀리 새롭게 수문을 만들어 놓은 것이 보일 것입니다. 예전에는 이곳으로 물이 지나갔는데 지금은 물이 흘러가지 않습니다.
하단부를 자세히 보면 원형으로 된 구멍이 보이고 그 뒤 홍예석에는 직선으로 파진 홈이 있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앞에 원기둥으로 막아 놓았고 그 뒤에 사각형으로 된 판자로 된 나무 또는 철재로 또 막아 놓았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용도는 적의 출입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 앞에는 사진에 보이는 것과 같이 하단부에 직사각형으로 된 홈이 6개가 보이고 그 앞에 H자 모양처럼 생긴 홈이 보입니다. 이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홍예를 보호하기 위해 철재나 목재로 된 것들이 직선으로 연결된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조금 멀리서 찍은 사진으로 전체적인 모습이 잘 나옵니다. 수구문위로 체성이 더 높게 조성이 되어져 있었겠죠. 
흥양읍성 수구문옆에 있는 민가로 하단부의 경우 흥양읍성을 이루었던 체성의 흔적이 보여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자 이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흥양읍성의 체성이 고흥 서문리 홍교라고 알려진 부분으로 이어져 갔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다리라면 올라갔다 내려가야하는 곳이 있어야하는데 올라가는 곳도 내려가는 곳도 없는 것이 흥양읍성 수구문입니다. 따라서 고흥 홍교라고 말하는 것은 엉터리라는 것입니다. 
수구문에서 옥하리 홍교)남측 수구문을 바라본 모습으로 보이는 도로의 경우 복개를 한 것 같습니다. 분명 이 아래에 하천이 흘러갈 것입니다. 
반대편 정면으로 넘어 왔습니다. 보이시죠 흥양읍성 수구문과 가정집과 이어져 있는 것을 현재 골목정도의 폭인데 아무래도 인도를내면서 무너졌을 것으로 보입니다. 
반대편에 와서 보니 위측에 있는 틈도 자세히 볼 수가 있네요. 
군데 군데 홈이 있습니다. 다른돌은 매끈하게 형성된 것에 비해 돌에 홈이 있다는 것은 어떤 용도를 위해 홈을 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상단부도 홈이나 있는 것이 보이는데 이는 위에서 소개한 홍예수구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나 적의 침입을 막기위해 가로, 세로로 격자형태로된 것을 설치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것으로 보았을때 화성 수문의 방식과 거의 비슷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즉 쇠창살을 달아 적의 침입을 막았다고 봐야할 것이며 이를 기준으로 본다면 서문리 홍교는 서문리 수구문입니다. 
홍예수구문에서 바로본 것으로 수구가 흘러 들어왔던 하천인데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도 물이 많지 않네요. 
용두의 경우 사실적으로 표현한 느낌을 줍니다. 용두 옆에 돌출된 돌은 어떤 용도였을까요?
새롭게 조성된 수구문으로 현재 흘러내려오는 물은 이곳으로 다 흘러갑니다. 여기도 홍예형식으로 수구문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것만 보아도 고흥 서문리 홍교가 다리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해야겠죠. 
고흥에 사시는 분들이 이런 것들을 바로 잡아서 정리하였으면 하고 잘못된 것은 고쳤으면 하네요. 



덧글

  • 애쉬 2012/08/08 19:20 #

    홍예 아래 물총에 자꾸 눈길이 가서;;; (부끄부끄) ㅎㅎㅎ

    문화재 알림 얼른 정정해줬으면하네요^^ 딱 봐도 다리는 아닌데 그죠?
  • 팬저 2012/08/09 08:16 #

    각 지역에 문화재들이 조금씩 잘못 적어 놓은 것이 많이 있죠. 그런데 잘 수정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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