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단청을 가지고 있는 거창향교 향교



거창향교의 홍살문은 거창향교에서 직선거리로 150m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홍살문 아래에는 하마비가 있는 것은 여느 향교와 다르지 않습니다. 
거창향교의 경우 전학후묘(前學後廟)로 되어져 있으며 필자가 방문했을때에는 문이 닫혀져 있어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거창향교의 경우 다른 향교와 달리 외삼문과 2층 누각이 일직선상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보통 외삼문을 대신하여 누각이 있는 것에 비해 거창향교는 외삼문도 있고 누각이 있는 식으로 되어져 있더군요.
외삼문을 지나면 나오는 내삼문을 지나면 대성전을 나오는 구조입니다. 보통 외삼문을 지나면 나오는 명륜당은 누각을 지나야 볼 수 있습니다. 
외삼문을 자세히보면 삼태극과 태극으로 이루어진 문이 보입니다. 
솟을대문에는 단청이 있으며 단청에도 태극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려진 것이 호랑이인가요? 아니면 용인가요?
외삼문의 경우 객사의 형태와 비슷한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외삼문에 사용되고 있는 문고리는 최근에 한 것 같더군요.
거창향교에 대한 백과사전을 살펴보면 1415년(태종 15)에 창건되었다고 합니다. 창건 당시에는 대성전을 짓고, 공자의 위패를 봉안하여 봄가을로 제사지냈는데 이건 보통의 향교에서 하는 것이죠. 1572년(선조 5)에 현감 서의가 중건하였으며, 1574년(선조 7)에 현감 장문한이 명륜당을 지어 지방의 자제를 교육하는 관학 역할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후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23년(인조 1)에 대성전을 중건하였습니다. 1715년(숙종 41)에는 춘풍루를 건립하여 향교의 모습을 두루 갖추게 되었다고 합니다. 1748년에 도유사 김천분이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여 몇 차례의 중수·보수를 거쳐 강학공간이 미련되었습니다.

보통 향교의 외삼문으로 사용하는 누각과 달리 거창향교의 춘풍루는 누각의 역활을 합니다.
춘풍루옆 담장은 몇번에 걸쳐 증건한 느낌을 줍니다.
춘풍루를 지탱하는 장초석의 모습으로 이것을 장초석이라 해야하나 그냥 초석이라 해야하나 헷갈립니다. 너무 크기가 어중간해서 말이죠.
춘풍루 누각에 있는 청룡의 모습으로 청룡의 모습은 익살스러운 느낌을 줍니다.
황룡의 모습, 단청이 화려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읍치안에 단청을 새겨 놓은 곳은 객사, 동헌, 향교, 서원이며 민가에는 단청을 그려넣지 않으며 민가에서 단청을 그려 넣을 수 있는 곳은 사당이라고 합니다. 
화려한 단청과 함께 새겨진 춘풍루 현판
춘풍루를 옆에서 본 모습입니다. 춘풍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목조와가라고 합니다. 어떤 곳은 활주를 놓는데 거창향교 춘풍루는 활주가 없는 구조이네요. 

정문이 아니고 옆에 있는 협문의 모습
동재 뒷모습
명륜당
향교의 경우 조선시대에는 국가에서 전답과 노비·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습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이 된후 거창향교의 경우 1948년 군정법령에 의해 향교의 재산이 향교재단으로 귀속되고 1950년의 농지개혁법으로 전답이 분배되어 계속 황폐해지다가 1974년 향교직제에 따라 중건 및 보수가 시작되어 1976년 전면 복원되었다고 합니다. 전면 복원한 곳이 어떤 곳인지는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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