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영 세병관 일본식 축대는 언제 만들어졌을까? 영성(營城)



얼마전 통영에 있는 통제영지에서 석축이 발견되었으며  그 석축은 일제강점기때 일본이 축성한 견치석 그리고 조선시대 축조한 석축이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자료를 찾기위해 문화재연구원 홈페이지를 가보니 이번에 발굴된 통제영의 석축은 2010년 4월 이전에 동양문물연구원에서 발굴한 토대로 다시 발굴한 것을 알았습니다. 

당시 동양문물연구원에서 세병관 석축중 일부를 발굴한 모습으로 아래에 나오는 것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조선식 석축을 무너트리고 자신들의 방식인 견치석으로 축조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흙으로 덮어 놓아버려 몇십년간 알지 못했습니다. 이미지출처 : 동양문물연구원
이런식의 축대는 현재 전국 어디가나 볼 수 있는 흔한 축대방식입니다. 이미지출처 : 동양문물연구원
그에 비해 오른쪽에 있는 축대의 방식은 조선중기에 사용한 방식임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일단 장방향의 큰돌이 똑 같은 크기와 방향으로 쭉 이어져 있음을 알 수있습니다. 오른쪽 또한 흙으로 덮어버렸네요. 이미지출처 : 동양문물연구원
확실하게 조선식으로 축성된 것을 볼 수있으며 거의 벽돌과 가까울 정도로 정교하게 쪼개어서 축조했네요. 이미지출처 : 동양문물연구원
1910년대 일제강점기때의 통제영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일본인들의 모습입니다. 여러모로 기분이 나쁘겠지만 일단 지과문과 지과문밑에 있는 축대를 주목해주세요. 사진이 작고 흐려서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축대의 경우 조선식으로 남아있는 것이 보입니다. 또 지과문에서 내려와 현재 망일루가 있는 부분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세병관이 더욱 더 웅장하게 보인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계단의 길이도 현재의 길이보다 더 길어 보이는데 착각일까요?  이미지출처 : 동양문물연구원
1937년 세병관앞에서 단체로 사진을 찍었네요. 아무래도 통영초등학교 졸업식사진 같아 보입니다. 암만 보아도 계단의 길이는 현재의 계단의 길이보다 더 길어보입니다. 아래 사진을 가지고는 세병관 축대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네요.  이미지출처 : 동양문물연구원
1940년도 세병관의 모습과 지과문의 모습입니다. 오른쪽에 있었던 조선식 축대는 흙으로 덮여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좌측에 있는 일본식 견치식 축대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미지출처 : 동양문물연구원
저번에 사진을 공개한 것으로 세병관의 모습과 지과문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진은 언제 였을까요? 축대의 방식으로 보아서는 1940년 이전이고 1910년 이후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지과문 아래에 나무로 된 전봇대가 보입니다. 이 전봇대는 1937년과 1940년도 사진에는 있지만 1910년도 사진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으로 보아서 1930년대 초중반이지 않을까 싶네요. 그렇다면 견치식 방식으로 축대를 조성한 것도 1930년대라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좀 더 자세한 사진들이 있다면 정확한 추정이 가능할 것 같은데 자료가 없네요. 여기 저기 있을 것 같은데 필자는 잘 찾지 못하고 있네요. 



덧글

  • 부산촌놈 2012/09/08 20:29 #

    부산에도 그런 게 많아요, 동래 지역 행정의 상징 동래부동헌도 그렇고 최전방 호국사찰이라는 범어사에도 견치축대가 많이 잔존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요즘은 그 잔재들은 많이 떨쳐내고 있긴 하지만요.

    하여튼 일본의 민족정기말살정책은 소름이 끼칠 정도입니다.
  • 팬저 2012/09/08 20:32 #

    어느지역을 가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항구가 있었던 도시(울산,부산,마산,삼천포,통영,여수,목포,군산,인천 등)에는 어김없이 일본식 건물이 들어섰고 그 축대는 거의 일본식이었다고 보면 맞을 것입니다.
  • dunkbear 2012/09/08 21:23 #

    민족 말살이라는 측면보다는 뭔가 다른 이유 때문에 저렇게 설치한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제대로 하려고 했다면 모두 철거하고 일본식 축대로 세웠을 테니까요. 재난이나 인재에 의해 축대
    가 무너져서 재건하는데, 일본식 방식이 쓰였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죠.
  • 팬저 2012/09/09 01:09 #

    예... 말씀하신 것처럼 그렇게 보면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문제는 일본인들이 찍은 1910년도에는 좌우측 모두 축대가 보인다는 것이고 가장 아래에 있는 축대의 경우 좌측 계단부분옆에 있는 조선식 석축은 멀쩡합니다. 또 기존에 있는 오른쪽 석축의 경우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흙을 덮어버립니다. 밑에서 두번째 사진입니다. 이런 사진으로 보았을때 일부러 저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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