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왜군의 항복을 받아내었던 수항루 영성(營城)



1945년 2차대전 당시 일본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위력앞에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합니다. 이때 일본은 미국의 미조리함에서 무조건적 항복을 선언하는 서명을 합니다. 이 항복문서를 받아내는 함정이 미조리함으로 일본에게는 치욕의 순간이고 미국에게는 자랑스러운 함정일 것입니다. 
이렇게 적국이 항복을 할때 사용하는 장소나 함정 등은 아주 중요할 것입니다. 이런 부분이 통영에 있는데 세병관 앞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름하여 수항루라고 하며 한문으로 受降樓라고 적습니다. 적국이 항복할때 사용한 누각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왜장으로 부터 항복 의식을 가졌다고 하는데 이부분 상당히 애매합니다. 과연 일본군이 항복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정유재란 당시 순천왜성에서 끝까지 남아서 항전하다가 도망치는 것 처럼 갔다고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과 다르고 당시 통영에 수항루가 없었는데 말이죠. 
두산백과사전을 찾아보니까 이해가 됩니다. 살펴보면 " 다른 문헌에도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항복한 장소에는 모두 수항루를 지었다고 한다. 경상남도 통영시의 수항루는 《통영지(統營誌)》 등의 기록으로 전해지다가, 1983년 11월 충무공 이순신 연구가 이종학(李鍾學)이 일본의 옛 사진집에서 찾아냈는데, “일본을 이긴 것을 기념하는 수항루”라는 제목을 붙인 통영시의 수항루 사진이 실려 있고, 설명문에는 “제국(일본) 군함 니타카[新高]가 지난 번 한국 남해안을 순항할 때 중좌 히데시마[秀島]가 찍은 것. 수항루는 통영시 해안에 있었는데,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의 근거지로서 이순신이 일본 수군을 격파하고 항복을 받았다고 하며 ‘受降樓’라는 큰 현판을 달고서 지금까지도 한국 사람들이 크게 자랑한다”라고 적혀 있다. 

《통영지》에 의하면, 수항루는 1677년(숙종 3) 57대 수군통제사 윤천뢰(尹天賚)가 충무공을 기리기 위하여 세웠으나 소실되었고, 1699년 74대 수군통제사 이홍술(李弘述)이 재건하였고, 1755년 117대 수군통제사 이장오(李章吾)가 부분적으로 고치고 단청하였다고 하는데, 일제강점기 때 파괴된 것으로 짐작된다."라고 적혀있습니다. 그러니까 일본군이 항복한 장소마다 후세에 수항루를 지었다는 것인데 그것이 통영에 있었으며 그후 일본 왜군의 항복을 기념하여 수항루를 지었다는 것임을 알 수있습니다.
1872년 지방지에서 본 수항루로 병선마당 앞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수항루를 원래의 위치로 옮긴다고 했던 것 같은데 말이죠.
수항루의 경우 병선마당 앞으로 옮기던지 복원하던지 하겠죠.
 
이 수항루의 경우 1987년도에 복원을 하였습니다. 원래 자리는 구. 한일은행자리였다고 합니다. 수항루와 세병관 외삼문 성격을 띠고 있는 망일루와 크기와 성격이 비슷합니다. 일단 누각이니까요? 
아래 사진은 현재 평안북도 종성에 있는 누각으로 종성읍성내에 있었으며 통영에 있는 수항루와 똑 같은 수항루입니다. 이렇게 3층으로 된 누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아주 크고 멋있습니다. 이 수항루의 경우 세종 때 김종서의 육진 개척 사업 당시 여진족으로 부터 항복문서를 받았네었던 곳에 세워진 웅대한 누각입니다.  
이 수항루의 경우 1층은 정면 7 간, 측면 6간, 2층은 정면 5간, 측면 4간, 3층은 정면과 측면 각 1간씩으로 아주 웅대합니다. 아래 사진의 경우 현재 북한에 있는 수항루의 모습입니다. 위 사진과 비교한다면 지금의 수항루의 모습이 틀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덧글

  • 대마왕 2012/11/07 10:30 #

    지금 수항루가 있는 자리는 중영군관청이 있던 자리입니다.

    원래 통영의 수항루는 병선소의 관아문 역할을 하면서
    수조를 행할 때 가왜장의 항복을 받는 의식을 행하는 곳이죠
  • 팬저 2012/11/07 13:52 #

    현재의 수항루가 중영군관청이라 새로운 사실이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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