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의 미와 보리가 있어 여유로운 보리공방 김은진 내가사는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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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민일보에서 주최한 창동예술촌 블로그 팸투어행사에 초대를 받고 가기로 약속했으나 행사 당일 갑자기 일이 잡혀서 도저히 블로그 팸투어 행사에 참가를 하지 못하겠다고 전했습니다. 인원을 맞추어서 준비를 했을 것인데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서 참석하지 못한 것에 미안함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참여한 블로거들의 글을 보면서 필자가 참가했다면 어디를 갔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래도 모르는 곳보다 아는 분을 따라 찾아갔을 것이라 생각했고 파비님과 같이 가지는 않았지만 갔다는 가정을 잡고 발제글을 작성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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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갔다가 복학하고 나서 1년이 지날 무렵에 나온 여러 영화중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가 있다면 바로 "Ghost"였고 국내에서는 "사랑과 영혼"으로 번역되어서 상당히 화제가 되면서 어느정도 히트를 친 영화입니다. 당시 예능프로에서도 주인공인 패트릭 스웨이지, 데미 무어가 도자기를 빗는 장면에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흉내내기도 하였고 이후 여러 영화와 드라마, 예능프로에서도 패러디를 할 정도였습니다. 또 무엇보다 남자가 죽어서까지 헌신적인 사랑을 하는 장면때문인지 당시 여성들에게는 상당히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고 꼭 봐야할 영화였습니다. 남자친구가 있으면 반드시 봐야할 영화이고 그렇지 않다면 동성친구끼리 가서 봐야할 영화였습니다만 남자들에게는 로맨틱한 영화보다 액션영화가 더 눈에 들어오죠. 영화 "사랑과 영혼"이 리메이크된다고 하니 스토리의 탄탄함이 보이는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저 영화 "사랑과 영혼" 이 개봉되면서 여러화제를 몰고 왔으며 1992년 대입시에 도예 관련학과가 강세였다고 할 정도이니 대충 짐작이 가실것으로 보입니다. 

사랑과 영혼의 영화때문에 필자는 항상 도망 다녀야 했다는 불편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일단 필자가 다녔던 학과내 전공중 하나가 바로 도자전공이 있었습니다. 도자 전공자들은 일단 도자용 흙이 작업실로 도착하면 자신의 분량의 흙인 백자, 청자 흙을 열심히 자신의 작업실로 날라야 했습니다. 당시 2.5톤 트럭 또는 1.4톤 트럭이 도착합니다. 청자, 백자 흙은 개당 10kg이었는데 한두개도 아니고 몇백개가 되다보니 나르는 것도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학생들이 95%이상 차지하고 있는 도자전공학생들은 남자들의 도움이 필요한 것은 당연했습니다. 그래서 여학생들은 사랑과 영혼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인 패트릭 스웨이지와 같이 멋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남학생들은 흙을 날라 달라는 무언의 압력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게 자주 있다보니 슬슬 피하면서 남학생 후배들에게 시킵고 도망을 다닙니다. ㅠㅠ

당시 몇명 있지 않지만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는 남학생들의 경우 전기물레를 이용하여 도자기를 만들거나 아니면 판상작업을 하여 작품을 만들었고 여학생들은 도자흙을 돌돌 말아서 둥근형태의 도자기를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흙을 돌돌 말아서 하는 작업의 경우 자신의 키보다 높게 만들었습니다. 돌돌말아서 일정 높이를 올리고 다시 손으로 빗어서 형태를 만들고 빨래방망이와 비슷한 모양의 방망이로 흙을 두들겨줍니다. 이렇게 방망이와  나무칼로 형태를 만드는데 하루에 높이 올릴 수 있는 높이가 얼마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일단 비닐로 작업물을 덮고 집에 갑니다. 그 다음날 다시와서 반복작업을 하는데 이 또한 얼마 쌓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매일 매일 와서 조금씩 쌓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며칠 작업을 하지 않고 와서 보면 흙이 굳어져 있으면 거의 처음부터 다시 작업을 해야하기 때문에 매일이 아니어도 자주 와서 도자작업을 해야 하나의 작품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여름방학의 경우도 틈만 나면 와서 작업을 해놓아야 했고, 가마에 불을 넣는 날에는 되도록이면 끝까지 남아 있어야 했습니다. 물론 강요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작업물이 불 속에 들어갔는데 집에가기가 뭐하니까 있었죠. 나중에 고학년이 되면 집에 잘들어 갑니다. ^^  

작업하다가 버린 흙은 물이 고여있는 고무통에 일단 쌓아둡니다. 어느정도 양이 모이면 손이나 발로 쳐서 흙을 부드럽게 만듭니다. 이 작업이 거의 노가다 수준이라 여학생들은 거의 잘 작업을 하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튼 이렇게 흙이 부드러워지면 도자 작업을 하면 되는데 이물질도 있고 흙도 부드럽지 못하여 토련기라는 기계에 넣어서 작업을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토련기를 통해서 나온 흙은 작업하는데 별 무리가 없지만 토련기는 학교에 늦게 도입하다보니 거의 손과 발로 작업했던 기억이 나네요.(전공자가 아니라서 상당부분 틀릴 수 있습니다. 구경꾼!!) 

어느정도 형태가 갖추어지면 원하는 형태에 삼강을 하거나 나무칼로 모양을 만듭니다. 손물레위에 올려 놓고 조금씩 돌려가면서 형태를 만듭니다. 도자흙의 특성상 물기가 있어야 하기때문에 오랫동안(시간이 아니고 보름이상) 자리를 비운다면 말라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작업물에 분무기로 열심히 불을 뿌리기도 하더군요. 어느정도 완성이 되고 나면 1차 유약을 바르고 초벌구이를 하는데 이때 가마(현대식가마)에 불을 때워야하는데 저녁에 가마 불을 지펴도 몇시간 이상 지펴야하기 때문에 가마 불 때우는 것은 한두명 있는 남학생전공자가 합니다. 이렇게 새벽이 되면 가마문을 열고 열기가 빠져나가기를 기다리다가 아점(아침과 점심)시간정도에 가마에서 도자기를 끄냅니다. 이때 터져버린 작업물들이 있는데 그런데 다시 무한 반복을 하죠. ㅠㅠ

이후 2차 유약 바르고 가마에 또 들어가고 이런식으로 작업물들이 우리눈에 보이는 도자기로 나오죠.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잘 기억도 안납니다. 위에서 이야기했지만 전공자가 아니라 틀릴 수 있습니다. 틀리는 부분은 지적바랍니다.) 

도자전공 학생들은 여학생이건 남학생이건 부지런하지 않으면 도자기를 구경할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휴일이고 방학이고 작업실로 와서 하루에 한두시간이라도 해놓고 가야 좋은 도자기로 탄생을 하니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했습니다. 

잠깐 딴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려시대, 조선시대때 만들었던 도자기는 오리지널 당시 도자기이고 요즘 당시에 맞는 도자기를 만드는 것은 당시 시대에 맞는 흙과 가마, 유약을 통해서 재현한 도자기입니다. 그것과 별개로 현대식으로 도자를 만드는 것은 재현하는 도자기와는 다릅니다. 그러니까 밀리터리 군장 매니아들의 경우 2차대전 당시 독일군,미군,영국군들이 입었던 군복을 구입합니다. 하지만 그 수가 얼마없고 구하기도 힘이 들다 보니 당시 복장과 똑 같은 군복을 만드는 것을 입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이런 방식을 레플리카라 하는데 마찬가지로 조선과 고려시대 도자기를 재현하는 것은 레플리카 방식이라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당시 필자와 학교를 같이 다녔던 여학생들중 한명이 현재 보리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김은진 작가입니다. 필자가 처음 그녀를 본 것은 복학하고 나서이지만 몇마디 말을 한 것은 총학생회 모임에서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김은진 작가는 총학생회 홍보부차장으로 있었고 총학생회 모임에 참석하면 참가해주셔서 고맙다고 몇번이나 이야기하던 기억이 납니다. 당연하게 참석해야해서 참석했는데도 칭찬을 하면서 고맙다고 하던 기억이 납니다. 자신이 총학생회 집행부이면서 틈만 나면 작업실로 와서 작업을 하던 좀 악발이 같은 그녀을 필자는 기억합니다. 또 무엇보다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는 똑 부러지게 하였으며 자신이 하고픈 것은 쟁취하는 여전사의 이미지도 오버랩되는 것 같네요. 
그런 그녀는 작품에 대한 욕심이 아주 강했던 것 같고 자신의 작품에 대한 프라이드가 아주 강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잘 보지 못하였다가 몇년전에 창신대학교 디자인학과에 외래강사로 출강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2010년인가 동읍에 있는 주나美갤러리를 찾아갔었는데 개인전을 끝내고 철수하다 필자를 만나서 커피한잔 하였습니다. 그때 "선배 이것 가져가서 사용해"라면서 만든 작품을 챙겨주더군요. 그이후 몇번에 걸쳐서 개인작품전을 했다는 것을 언론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김은진 작가로 봐서는 무심한 선배이지요. ㅠㅠ 개인전말고 합동전은 여러번 했던 것으로 알고 있을 정도로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손에서 도자기를 놓지 않고 작업하고 있는 것에 관하여 칭찬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보통 시집가면서 자연스럽게 손을 놓은 것이 도자기인데 말이죠.(사실 작업할 공간과 시간이 없는 것이 가장 크지만 말이죠. 그리고 보면 김은진 작가는 여유가 있어 보인다고 해야하나)  
김은진 작가는 예전부터 욕심이 많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욕심에 항상 넘치는 열정이 끓어서 넘쳐서 도자기를 빗었는지 모릅니다. 그런 그녀가 학부때의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 요즘 김은진 작가의 작품들입니다. 학부에서 서툰 작품과 달리 철학과 이야기가 있는 방식으로 만든 도자기가 바로 요즘 보이는 도자기로 항상 그곳에 보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보리라는 아호 때문일까요? 정답게 보여집니다. 그녀의 고향이 남해라는것을 생각하면 보리에 관해서도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보통 보리의 경우 커피잔에 있는 것과 같은 그림을 그리거나 전사지로 부착할 수 도 있지만 김은진 작가는 돌출된 입체방식을 택하였습니다.  
특유의 항아리 방식뿐 아니라 액자와 같은 넓고 평편한 판상작업도 하고, 코일링기법의 작업도 하고 있고 다른 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필자가 김은진 작가가 만든 도자작품중 달항아리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둥근항아리는 하얀색을 머금고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에 보리가 피어 있습니다. 이것을 보고 있자면 한없이 허전하고 채워집니다. 허전하다는 것은 빈 공간이 주는 의미일 것이고 저 보리싹마져 먹어버리고 긴 봄을 날 우리 백성들의 생각에서 그렇고 채워지는 것은 채워도 채워도 다 채워줄 것 같은 항아리에 보리가 빚어나온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또 반짝이는 도자기가 아니라 거칠고 힘든 느낌을 주고 있는 것도 채워야할 우리들의 삶과 같이 느껴집니다.   

김은진 작가는  창신대학 실용미술디자인과 겸임교수 역임 및 경남대학교 미술교육학과와 동주대학 전통도예과 강사역임하였습니다. 남해해오름예술촌을 거쳐 현재 경남 김해시 진영읍에 보리도예공방과 창동예술촌에 도예공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미지출처 : 보리도예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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