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왜성_05 마산왜성에도 나성이 있었을까? 왜성(倭城)



한동안 잘 적지 않았던 마산왜성이었는데 이케치경감님의 마산왜성 답사기를 보고 다시 한번 가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원인은 그동안 마산왜성의 자료가 없었는데 이케치경감님의 답사기 마지막에 있었던 이 조감도 때문에 가보았습니다. 이 조감도의 경우 히메지시립 성곽연구소에서 나온 자료입니다. 이미지출처는 이케치경감님의 마산왜성 답사기 입니다. 일단 지면으로 고맙다는 이야기 전합니다. 

먼저 이미지를 보면 본환과 천수각은 산 정상에서 삭평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로 병사들이 주둔했던 흔적들이 보이고 있으며 평지가 있는 바닷가에는 나성(羅城)인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로 추정되는 부분이 보입니다. 좌우측에 보이는 이 나성(羅城)은 산까지 연결되어져 있습니다. 조선에 축성한 왜성의 경우 이 나성(羅城)인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가 있는데 마산왜성에서는 보이지 않아서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일러스트에서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네요.  일러스트를 자세히 보시면 산세가 상당히 험준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마산왜성이 있었던 용마산의 경우 해발 80m만 되는데 엄청 가파른 느낌을 줍니다. 실제 용마산을 방문하면 산은 낮은데 산세가 상당히 가파릅니다. 그 기준만 보아도 성곽을 축성하면서 방어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일러스트를 가지고 현 지도에 대입시켜보았습니다. 정확한 측정은 아니고 그냥 느낌이라 정확하지 않습니다. 정유재란 당시 마산왜성이 있었던 곳을 추정하였습니다. 이렇게 하고 보니 현재 합포초등학교로 나성(羅城)인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가 지나갑니다. 또 현재 있는 시립 마산도서관으로도 지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천수각의 경우 예전에 추정한 곳(현재 있는 충혼탑)과는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선소의 경우 어디일지 모르겠습니다. 책 "성웅 이순신 그리고 일본성"을 지은 이종락씨는 합포중학교근처로 추정하고 있는데 필자는 마산도서관 아래쯤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종락씨가 이야기한 부분은 너무 거리가 먼것 같았기 때문이며 적어도 나성(羅城)인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안에 있을 가망성이 많다고 봅니다. 이렇게 됨으로 자연스럽게 바다와 산을 배경으로 한 평산성의 마산왜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일러스트로 표시를 하였는데 오렌지색으로 표시한 것은 필자가 임의로 추정한 것입니다. 그림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또 흥미로운 사진을 보았는데 바로 용마산의 모습입니다. 수출자유지역이 있는 곳이 바닷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근거로 본다면 적어도 1970년 초반 이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본환과 천수각이 있는 곳은 아주 좁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곳 옆에 보이는 체성은 현재 남아있는 체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외성으로 보이는데 이는 현재 상남동에서 본환으로 들어오는 적을 저지하기 위해 처음부터 조성한 것은 아닐까 추정합니다. 

▼ 그리고 용마산이 있는 곳을 보면 아주 가파르게 형성이 되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산세가 이렇게 가파른 것은 이번에 답사를 하고 나서 알았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45도 이상인 곳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충혼탑이 있는 옆 현재 남아있는 마산왜성의 체성 일부 모습
▼ 체성이 죽이어지는 것이 아니고 ㄱ자로 꺽여 놓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 현재 남아있는 체성을 보면 많은 곳은 8~9단 적은 곳은 3~5단 정도 남아있습니다. 
▼ 사진상으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만 산세가 전체적으로 가파릅니다. 
▼ 가장 잘 남아있는 체성부분으로 위에서 찍어서 그런지 가파르다는 것을 잘 이해하기 힘이듭니다.
▼ 돌의 크기도 작은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 충혼탑 서측편 아래에 있는 곳을 가서 찍은 사진으로 근대에 축성한 것이 아닐까 추정합니다. 
▼ 현재의 모습으로 숲이 많이 우거져 있어서 전체적인 형상을 알 수 없습니다. 
▼ 돌을 자세히 보면 일정한 크기로 잘려나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돌들은 창동에 있는 합포진성의 돌을 가져온 것은 아닐까 추정합니다. 
▼ 각이진 돌보다는 조금은 둥글둥글한 돌들이 많이 보입니다. 일본측에서 용마산주위에서 돌을 캐고 축성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 천수각터가 보이는 곳에는 체성은 남아있지 않고 과거의 체성으로 추정되는 곳에 돌이 일직선으로 놓여져 있습니다.  
▼ 근대에 많이 허물고 보수한 흔적이 보입니다. 
▼ 조금 더 내려가면 만나는 것이 배드민턴장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 산세가 험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을 봐서는 알 수 없네요.  전체적으로 산의 기울기는 70도에 가깝게 형성이 되어져 있습니다. 
▼ 이렇게 산세가 낮음에도 불구하고 왜성이 들어선 것은 전체적으로 산이 너무 가파르기 때문에 방어에 유리하려는 목적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현재 노보리이시가키 (登り石垣)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산호동 일대는 도시화가 많이 진행되어서 더 이상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를 찾아보기가 힘이 들 것입니다. 하지만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다행이고 이를 통해 새로운 자료를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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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2/10/26 19:30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0/26 22:2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明智光秀 2012/10/27 22:34 #

    역시 전문가의 손길은 다르네요. ^^
    저는 어디가 어딘지도 감이 안오고 유적도 잘 모르겠던데 ^^
    아... 그래서 같은 창원시민으로서 동행이 가능할까 했는데...
    이젠 순천시민이 되어버렸습니다. ^^;;;
    마침 오늘은 순천왜성에 가볼 참이었는데... 비가 와서 다음주에나 가보렵니다. ^^
  • 팬저 2012/10/30 12:17 #

    아마추어일뿐입니다. 블로그에 올려주신 화일을 가지고 추정해보았습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나저나 순천을 갔다고 하니 아쉽네요.
    창원에서 한번 보았으면 좋았을 것인데 말이죠...
  • ttttt 2012/10/28 21:05 #

    저기는 아니지만 옛날에 동네 산에서 뜬금없이 산중턱에서 저런 축대같은 걸 보면 무심하게 지나갔는데..
    산중턱, 산위 빈 벙커 주위에서 요철이 있는 동그란 플라스틱 빈 통을 보고 "누가 또 뭘 버렸네" 투덜댔는데
    다 커서 생각해보니 그거 지뢰케이스..
    알면 좋은 건지 모르는 게 속편한 건지 모르겠어요. ^^
  • 팬저 2012/10/30 12:18 #

    축대의 경우 거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많이 일제식으로 바뀌었죠..
    우리 조선식과는 틀리는데 우리가 자주보이는 축대의 경우 거의 일제식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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