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진례 청천진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진성(鎭城)



지난 토요일 진례에있는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을 가 보았습니다. 그곳에는 진례다반사가 열리고 있었는데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이 2013년 상반기 기획전 이 진례다반사입니다. 건축과 사회를 주제로, 미술관이 설립된 김해시 진례면의 일상과 사람, 건축 사이의 상호작용을 알려주는 전시회로 한번씩은 볼만한 전시회입니다.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에서 주최한 기획전이라 그런지 예산을 많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더군요. 
▼ 그 전시회중에서 흥미로운것이 있었는데 1910년대의 진례의 지적도입니다. 현재의 도로와 예전의 도로를 비교하여 놓은 것이 있었고  
▼ 우리마을숲에서는 각 마을에 있는 나무들을 조명해보고 있었습니다. 그중 필자의 머리에 와 닿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상촌마을 회화나무였습니다. 김아연교수님께서는 아래 사진에 나오는 것과 같이 접근을 하였습니다만 필자는 다르게 접근해보고 싶었습니다.  
아래에 등장할 사진 두장은 경블공에 계시는 천부인권님  이 찍었던것으로 김해 진례, 창원 동읍 자여 중심의 항공사진이라 필자가 이야기하려고 하는 부분에 참고가 될만한 사진입니다. 사진을 보내주신 천부인권님에게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하며 사진에 대한 저작권은 모두 천부인권님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사진을 잘 보면 김해 진례와 동읍 자여 사이에 제법 큰 산이 막혀있으며 산을 통과 하지 않을려고 하면 현재 진영방면으로 우회하여 가야 합니다. 현재 남해고속도로가 산을 관통하여 통과하고 있지만 예전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지나갔을까요? 
▼ 사진을 확대하였습니다. 그렇게 보면 진례의 마을들이 보이고 노현이라고 적어 놓은 곳이 보이는데 이곳이 조선시대 당시 걸어다녔던 옛길입니다. 현재도 다닐 수는 있지만 엣길을 탐방하시는분들 말고는 잘 가기 않는 곳입니다. 이 노현을 탐방한 글은 현재 최헌섭 두류문화연구원장의 블로그에 잘 올라와 있었습니다. 노현은 조선시대때 김해에서 창원으로 넘어가는 가장 빠른길로 널리 이용되었고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는 길입니다.  
▼ 구글위성지도에서 본 노현고개입니다. 이런 노현 고개이다 보니 이 노현고개만 막으면 창원에서 김해로 김해에서 창원으로 넘어오는 것이 힘이 들게 됩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임진전쟁 당시 경상우병사 유숭인이 이끄는 조선군들은 일본군이 김해에서 창원으로 넘어오는 것을 막고자 1592년 9월 24일 사천현감 정득열, 가배양 권관 주대청과 함께 노현고개에서 일본군을 막았습니다. 일본군 30,000명의 병력을 막기에는 중과부족이라 창원읍성으로 퇴각하였습니다. 당시 유숭인이 이끄는 조선군들이 일본군들을 막고자 하였던 곳이 바로 노현고개입니다만 여러자료에는 다르게(창원시 의창구 동읍 신방리) 소개되어져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 김해에서 노현고개를 넘어오면 만나는 곳이 바로 자여역을 만나게 됩니다. 자여도 찰방은 자여찰방의 최상위행정관서인 자여역을 비롯해 자여역에 소속된 근주역·창인역·대산역·신풍역·파수역·춘곡역·영포역·금곡역·금동역·생법역·적항역·보평역·남역·안민역을 관리하는 곳이었습니다. 현재 자여민원센터에 당시 찰방이었던 찰방 선정비 3개를 모아놓았습니다. 
▼ 조선시대 지도인 대동지리도에 각 역을 자세히 표시하였습니다. 자여도에서 관할하는 역들을 표시하였으며 자여에서 김해로 가는 노현고개도 표시되어져 있습니다. 
▼ 자여찰방에서 노현고개를 지나면 만나는 것중 하나가 바로 반효자와 조효녀 정려비입니다. 이런 선정비들이 예전에 많은 사람들이 다녔던 길이었음을 증명하여 줍니다. 
▼ 김해클레이아크미술관에서 바라본 노현고개로 산들중에서 높이가 가장 낮은 곳이라 자연스럽게 발생하였을 것입니다. 
▼ 노현고개를 넘어오면 가장 처음 만나는 곳이 신기마을입니다. 新基마을로 새롭게 터를 만들었다는 한문의 뜻인데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새롭게 터를 만들었다는 것은 그 무엇이 이곳으로 들어왔음을 의미하고 이곳에서 터를 닦고 살았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요? 
▼ 필자는 저 한문인 新基가 그냥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추정을 해보았습니다. 임진전쟁이 끝나고 조선은 일본군들이 다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읍성에서의 전투보다 산성에서 전투를 치룬다는 생각으로 대대적인 산성의 축성을 하거나 기존의 산성을 증축합니다. 그런 것이 바로 부산에 있는 금정산성, 김해 분산성, 칠곡 가산산성 등입니다. 그리고 예비부대를 동원하고 훈련할 수 있는 소모진을 만듭니다. 그 소모진의 경우도 일본군들이 올만한 길목에 설치를 합니다.  아래 지도를 보면 자세하게 알 수가 있는데 김해에서 창원으로 올 수 있는 길은 김해에서 진례를 거쳐서 오는 길과 김해에서 웅천을 거쳐서 들어오는 길이 있는데 그곳에 소모진인 청천진과 신문진을 설치합니다.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창원도호부에 있었던 청천진과 신문진이 광해군8년(1616년) 김해로 이동을 하는데 청천진은 지금의 김해시 진례면 청천리로 옮기고 신문진은 지금의 김해시 장유면 신문리로 옮기게 됩니다. 당시 두개의 진은 육군진영으로 소모진(召募陣)으로 육군을 훈련시키는 훈련소의 기능과 함께 유사시 병력을 모아서 전투를 하는 곳으로 지금으로 치자면 예비군 동원부대 정도 였다고 봐야 합니다. 

이런 기록은 선조실록에 있는데 “경자년에 완평부원군 이원익이 남쪽 변방을 살피고는 변방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는 군대를 훈련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울산ㆍ동래ㆍ창원 세 곳에 소모진을 설치하고는 먼 곳과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 그들의 신역을 면제해 주고 식량을 지급했습니다.” 하였다고 합니다. 그때 있었던 창원에 있었던 소모진이 김해로 넘어가면서 청천진과 신문진으로 나누어져 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김해에 있었던 청천진과 신문진은 효종7년(1656년)에 안골포진이 있던 안골포로 이전을 합니다. 김해에서는 40년정도 있다가 이전을 합니다. 그래도 그때의 흔적이 남아서 아직도 김해시 진례면과 장유면에서는 청천리와 신문리로 사용중입니다. 조선시대 당시 육군이던 수군이던 사용하던 지명은 지역이 옮겨가도 사용하였는데 대표적으로 알려진 것이 거제의 조라진이며 예전의 조라진이었다고 하여 구조라, 율포진이 옮겨가면서 구율포, 영등포진이 옮겨가면서 구영이라 사용하는 것만 보아도 지명은 오래동안 남아서 전해저오고 있습니다.

▼ 효종때 웅천현으로 넘어가는 장천진과 신문진은 이름을 그대로 넘어가는데 이때 넘어가면서 육군에서 수군으로 편제가 바뀌어 버립니다. 이 두개의 진이 넘어오면서 웅천은 수군기지가 뭉쳐있는 수군도시가 됩니다. 지금의 진해가 해군의 상징인것과 같이 웅천현은 17세기부터 수군을 훈련하고 유사시 병력을 동원하는 동원부대와 함께 4개진의 강력한 수군기지가 있었던 곳입니다.
▼ 청천진과 소모진은 19세기까지 남아서 활동을 하였습니다. 현재 청천진은 마을이름으로만 남아서 겨우 그 흔적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과 같이 버스정류장에 남아있는 청천지명입니다. 
위에 나오는 진해의 청천마을과 같은 진례의 청천은 지명으로 사용중인데 바로 청천리입니다. 그러니까 김해시 진례면 청천리입니다. 다만 이 청천리의 경우 현재 남해고속도로 진영터널 주변입니다. 다시 되돌아 가겠습니다. 그럼 진례에 있었던 청천진은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요? 대략적으로 노현고개밑에 있었지 않았을까 추정을 합니다만 정확하게는 알 수 없습니다.  

▼ 그래서 필자는 신기마을의 新基를 주목하는 것입니다. 새롭게 기반을 다진다는 의미는 청천진이 창원에 있다가 이곳 진례로 옮겨오면서 새롭게 다진다는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필자의 추정이 맞다면 신기마을에 어디쯤 청천진이 있었을까요?
▼ 신기마을 바로 아래에 상촌이 있습니다. 상촌과 신기마을과는 걸어서 5분도 안되는 거리입니다. 원래부터 신기마을이었다가 분리가 되었는지 아니면 임진전쟁 이전부터 상촌이라고 사용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 어디에 있었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는 청천진이지만 나무를 근거로 추정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모진이라고 해도 군인들이 있는 곳이나 분명히 그곳에 동헌이 있었을것이고 동헌에 있었던 회화나무나 느티나무들이 그 근거이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아래 사진은 웅천읍성내에 있는 느티나무로 이곳에 동헌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 밀양읍성 동헌터에 있는 노송나무
▼ 수군진이던 진성에 있었던 나무들은 현재 잘 보이지 않네요. 그래도 몇군데 남아있는데 부산 가덕도에 있는 가덕진성 내부에 있는 고목으로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부산 수영동에 있는 경상좌수영지에는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 311호로 지정된 나무인 푸조나무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것말고 충청수영에도 고목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소모진이었고 40여년 정도만 자리잡았던 청천진이지만 이 나무들을 근거로 있었던 곳을 추정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마는 신기마을에는 600여년 이상되는 나무가 없으며 상촌마을에는 600여년된 나무가 있지만 안대진형제들이 마을어귀에 심었다고 하니 아닌것 같기도 하군요. 

일단 좀 더 조사하고 알아보아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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