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상주를 지켰던 상주포성(상주보성)_01 진성(鎭城)



남해군에 현재 조선수군이 담당하고 진을 지켰던 진,보는 총 5개로 진성이 3개 보성이 2개입니다. 조선시대 기준을 한다면 진,보는 각각 2개씩 총 4개입니다. 창선도에 있는 적량진성의 경우 진주목에 소속되었고 현재는 남해군에 소속되어져 있습니다. 그동안 진성에 관하여는 많이들 다루었는데 보에 관하여는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진성에 비해 보는 많지가 않은 편이지만 기록으로 남아있으며 현재도 남아있는 곳이 있습니다. 

그럼 보는 무엇을 하는 곳일까요? 현 동양문물원장으로 있는 이일갑 원장이 적은 남해안지역 조선시대 진보에 관한연구 논문을 보면 보에 관하여 알 수가 있습니다. "조선시대 진보란 鎭과 堡를 합친말로 진은 축성논의를 거쳐 축성된 진성과 주둔부대의 부대명칭을 의미하는 반면에 보는 제진 및 하급부대의 병영시설을 부르는 총칭" 이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또 남해안지역 조선시대 진보에 관한연구 논문을 살펴보면 "보는 세종실록에 보면 적의 통태감시, 주민대피, 전투시설 이 3가지가 중요한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데 보 주변에는 봉수가 설치되어 즉시 알려주는 역활을 하였다"고 적어 놓았습니다. "보는 읍성, 진과는 동일한 목적과 의도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면 읍성의 역활에 가깝되 지키는 군사는 진에서 파견된 것이었다. 그리고 위급할 때에는 인근의 주민들이 보내로 들어오는 인보처의 역활도 겸하였다. 따라서 보는 읍성에서 멀리 떨어지거나 진에서 멀이 떨어진 곳에 설치되기도 하였다."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즉 진의 보조적인 기능을 수행하면서 유사시 주민을 대피하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예전 조선시대 경남지역에 있었던 보를 보면 3개가 존재하는데 현 창원시 진해구에 있는 풍덕보 남해에 있었던 곡포보 그리고 상주보입니다. 그중 여름철이면 많이들 찾아가는 남해군 상주면 은모래비치해수욕장이 있는 상주보가 있었던 사실을 알고 계시는 분들은 많이 없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1872년 지방지에서 본 남해군의 모습으로 이 당시 상주보성은 남아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성은 둥근형태의 보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 그에 비해 1872년 지방지보다 먼저 나왔던 여지도에는 상주보성의 경우 사각형으로 그려져 있는데 상주보성말고 여러 진보도 모두 사각형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물론 남해읍성도 사각형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
▼ 상주보가 있었던곳을 다음지도로 살펴보면 대략적인 모습이 나옵니다. 북측은 남해 금산을 끼고 있으며 남측은 바다로 배산임수의 기본으로 들어서 있습니다. 상주바다의 경우 은모래로 되어진 바다가가 보이고 양옆으로 산들이 들어서 있는 형태입니다. 또 다른 곳에 비해 포구가 들어설 수 있는 구조가 한눈에 보입니다. 즉 주민들이 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죠.  
네이버 지식백과 사전에서 살펴본 상주포성(상주보성)을 보면 "현재 상주초등학교의 담장과 뒷산을 둘러싸고 있는 평지석성(平地石城)이다. 석축 형태를 보아 고려시대에 왜구 방비용으로 축성 되었다고 전해내려 오고 있다. 둘레는 약 500m이고 석성의 높이는 3~4m정도이나 거의 대부분 붕괴되고 민가의 담장과 전답의 담으로 사용되어지고 있다. 양호하게 잔존하는 부분에는 화포(火砲)의 흔적이 남아 있어 왜구를 물리치는데 큰 역할을 한 성(城)으로 보인다. 상주포성은 1437년에 재 축성(再築城)되어졌고 중종17년(1522)에 이동면 성현에 있는 성고개성이 혁파되어 상주포성으로 옮겼으며 권관(權管)을 설치하여 방수 한다 라 동국여지승람에 기록하고 있다. 임진왜란 시에는 남해에서 제일 먼저 침략을 당했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라고 적혀져 있습니다. 

▼ 남해에 있는 상주포성의 자료는 저 위에 적혀있는 것이 거의 전부인 것 같더군요. 아직 지표조사등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상주포성(상주보성)에 관한 평면도로 안보입니다. 또 지적원도가 있다면 보다 더 정확할 것인데 필자가 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일단 발로 뛰어서 상주포성(상주보성)에 관한 평면도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일부 체성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곳이 있어서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채성과 체성을 이어서 평면도를 만들었습니다. 일부 틀릴 수 있으며 정확한 것은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를 거쳐야 더욱 더 정확할 것입니다.  
▼ 일단 상주초등학교를 찾아 갔습니다. 여기서 상주초등학교는 경상북도 상주시에 있는 상주초등학교가 아니라 경남 남해군 상주면에 있는 상주초등학교입니다. 현재 남해 상주보건소 뒷편에 있는 체성을 기준으로 한다면 이순신장군상 옆으로 체성이 지나갔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 남해 상주초등학교 교실 뒷편에 있는 체육관으로 해밀관이라 명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해밀관이 예전의 상주포성의 당호로 사용한 이름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 해밀관 옆에 자리잡고 있는 나즈막한 동산으로 나중에 이곳으로 체성이 지나가는 것을 알았습니다. 
▼ 하단부에 있는 돌들은 담장쌓는 것과 같이 쌓았더군요. 체성이 아닙니다. ^^
▼ 상주초등학교 동측 담장으로 잘못보면 체성으로 오해할 수 있을 정도로 4미터 정도 높이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많은분들이 오해하기 좋게 일직선으로 되어져 있고 높이 또한 제법 됩니다만 체성이 아닙니다. 
▼ 위사진과 비교해보면 알 수 있겠지만 체성으로 사용하기에는 성돌들이 너무 작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는 아니군하면서 지나갔습니다. 
▼ 조금 내려와서 본 모습
▼ 길을 따라 조금 내려오니까 체성의 흔적들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 돌의 크기며 형태 그리고 여러개가 있는 것으로 봐서 예전 상주포성에 사용하였던 체성이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가더군요. 평면도의 A지점입니다. 
▼ 가정집을 기준으로 10미터 이어졌으며 빨강색 민가 뒷편으로 이어졌는지는 확인이 불가능하였습니다. 
▼ 바로 맞은편에 있는 것으로 성곽의 돌이 제법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옆을 확인해보니 제법 길게 이어져 있습니다. 직선거리로 40여미터 이어져 있는 상주포성(상주보성)의 체성
▼ 앞에서 찍어보니 확실히 상주포성의 모습이 보일 것입니다. 체성의 돌은 1미터 이상되는 것만 현재 남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형태로 봐서 조선전기때 축성한 것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조금 확대를 해보니 확실히 조선전기 해안읍성에서 보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축성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논을 조성하면서 하부부분을 깍아버린 것 같습니다. 
▼ 끝나는 지점에 수로를 만들어 놓았는데 원래 있었던 체성을 허물고 수로를 만든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체성이 있는 곳을 가기전에 본 논의 제방으로 돌로 쌓았으며 제법 튼튼하게 축성되어져 있습니다. 
▼ 하단부의 모습으로 체성이 아닌가 하는 오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만 체성이 아닙니다. 
▼ 하단부 밑을 보면 기단석이 보이지 않고 흙만 보입니다. 이렇게 기단석이 보이지 않는 것을 봐서 체성이라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 체성이 있는 곳까지 가야하는데 길이 없어서 수로옆에 있는 시멘트둑(?)으로 걸어갑니다. 사진과 같이 10센치 정도 되는 곳으로 잘못하면 옆으로 빠질 수 있습니다. ㅠㅠ
▼ 상주보성의 동측 체성입니다. 사진상 B지점이 됩니다. 
▼ 돌들이 파헤져있는 것으로 봐서 수로를 만들때 돌들을 정리한 것 같습니다. 
▼ 동측체성 B지점에서 C지점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이곳은 둥글게 조성되어져 있어서 처음에는 옹성인가 싶어서 가보았습니다. 
▼ 돌의 규모만 본다면 큰 돌이 하부에 자리잡고 있어서 옹성의 느낌을 많이 줍니다. 
▼ 그런데 옹성치고는 이상하게 너무 크게 둥글게 형성이 되어져 있더군요. 
▼ 한창 마늘 수확중이었는데 주인 아저씨꼐 말씀하고 양해를 구한후 사진을 찍은 것입니다. 주인장 아저씨가 상주포성이 있었다는 것에 관하여는 잘 알고 있더군요. 다만 동측에 있는 체성의 경우는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 하부의 모습을 보면 예전에 있었던 체성과는 조금 거리가 멀어보입니다. 아래에 소개될 곳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 이렇게 옹성과 비슷하게 형성된 논의 축대가 보였습니다. 
▼ 체육관인 해밀관옆에 치성과 같은 형식으로 돌출된 것이 보입니다. 
▼ 제법 ㄷ자형식으로 돌출되어져 있으며 높이도 어느정도 있습니다. 그림지도의 D지점이 됩니다. 
▼ 체성을 보니까 아래 위 모두 같은 크기의 돌들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체육관인 해밀관옆으로 체성이 지나갔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 치성으로 오해하기 좋을 정도로 높이며 크기입니다.(물론 높이는 작지만 말입니다.)
▼ 하단부를 찍은 사진으로 여기를 보시면 이곳이 치성이 아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하단부에 기단석이 있어야하는데 그곳에 콘크리트로 타설한 흔적이 보입니다. 이것으로 이곳은 치성이 아님을 증명합니다. ^^
여름휴가때면 남해안을 찾아가는 피서객들 사이에 인기가 많은 남해 상주 은모래비치에 이런 상주보성이 있었다는 것을 아시는 분들은 많이 없을 것입니다만 이곳은 남해안을 지키고자 했던 선조들의 역사가 있었던 곳임을 알아 주었으면 하네요. 그리고 남해군과 같이 작은 자치단체에서는 이런 성곽에 관한 조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문화재연구원과 같은 곳에서는 예산이 들어와야 조사를 하는 형편입니다. 그러다보니 기초적인 연구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문화재연구원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시간을 내어서 조사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으로 보이는데 너무 무리한 요구이겠죠.  

아무튼 다음편에는 그래도 잘 남아있는 서측체성에 관하여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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