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통제영복원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기대를 하고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필자는 통제영의 복원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가 궁금합니다. 아직 다 복원이 되지 않았지만 일부 사진에 소개된 내용중 문제가 없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나중에 나올 사진과 비교한다면 기가찹니다. 문화재 자문위원들이 세병관 지과문 앞 석축계단이 일제시대 방식으로 건축돼 전통방식으로 재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합니다만 자문위원들이 제시한 것이 맞았는지 아니면 시공업체가 틀렸는지는 확실히 잘모르지만 예전의 사진과 비교해보면 확연히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필자는 아래에 제시한 사진을 기준으로 복원이 잘못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필자가 잘못 알 수도 있지만 아래에 나오는 사진을 봐서는 필자의 주장이 맞을 것 같습니다.
사진을 보면 계단을 3개로 나누어서 만들어 놓았습니다. 어떤 발상인지 모릅니다만 이건 아니지 않나 싶네요. 지과문도 새롭게 만들면서 같이 한 것같은데 고증에 맞을까요? 3개로 나누었던 것은 어도와 같은 방식이었을까요? 아니면 올라가는 길 우측과 내려오는 길 우측을 구분하려고 한 것일까요? 도대체 저게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통제영복원을 위해 오래전부터 하고 있는데 저런식의 복원은 영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복원하기전의 지과문과 계단입니다. 이 계단은 일제강점기때 만들었다고 하네요. 보시다시피 길다랗게 만들어 놓은 계단을 이용하여 하나로 되어져 있습니다. 저렇게 된 것을 왜 3개로 구분하는 계단으로 만들어 놓았을까요? 고증에 맞추어서 한다고 한 것일까요? 옆에 있는 세병관 축대와 같이 조선식으로 복원한다고 하면서 만든 것일까요? 사진에 보면 우측은 조선식의 축대고 좌측은 일본식의 축대입니다.

축대가 발견되기 전의 사진으로 여기도 계단은 3개로 나누어져 있지 않습니다. 축대가 있는곳은 흙으로 덮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게 나중에 나오겠지만 일제가 조선식의 축대를 허물고 자신들의 방식인 축대를 만든후 덮어 버린 것입니다.

일제강점기로 보이는 세병관의 모습으로 지과문이 있고 세병관도 보입니다. 지과문앞 계단의 경우 1개의 큰 계단으로 된 형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좌측의 담장은 일제가 자신들의 방식으로 축대를 만들어 놓았으며 우측은 흙으로 덮혀져 있습니다. 이 사진을 가지고 추정하면 사진상 우측을 흙으로 덮고 이후 좌측도 덮어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 사진보다도 더 오래된 사진입니다. 지과문과 계단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계단의 경우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3개로 나누어져 있지 않습니다. 지과문옆 우측 축대는 조선식으로 되어져 있으며 좌측의 경우 서서히 일본의 견치식으로 대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상 대략 1905~1915년 사이가 아닐까 조심하게 추정하지만 정확한 것은 알 수 가 없네요.


망일루에 관한 글을 적어 놓았는데 조금 더 공부하고 다시 적어 올리겠습니다.
덧글
망일루는유학을 숭상한 나라의 정궁인 경복궁에 오늘날 서 있는 불교 석탑들 처럼 이상하군요. 말씀처럼 원상복구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서 너달 전에 복원현장 사진을 몇 장 찍은 게 있는데 .. 별 가치는 없겠지만 .. 보여드리겠습니다. http://ktmd0c.egloos.com/2085505
항상 좋은 게시물 잘 보고 있습니다 ^^
옛 통제영 모습에 관심이 있어서 그런데 조감도 위에 있는 두장의 흑색지도의 출처를 혹시 알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