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왜성은 어떤 규모와 형태였을까? 왜성(倭城)



저번편에 간단하게 고성왜성에 관한글이었는데요. 이번에는 고성왜성의 형태는 과연 어떠한가하는 의문에서 시작하겠습니다. 저번편에서도 이야기하였지만 고성왜성에 관한 글은 거의 없습니다. 이렇게 없는 이유가 바로 일본 아마추어들이 만들어 내는 倭城の研究 에포함되지 않는 이유가 가장큽니다. 예전에도 한번 언급을 한적이 있지만 분명 우리땅에 있는 왜성이지만 우리들은 일본인들이 만든 것이라 왜면하였습니다. 그러는 그동안 일본의 왜성연구회에서 정기적인 답사와 실측을 통해 왜성의 평면도를 구하였고 그 자료들이 다시 한국으로 들어오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한국에 있는 문화재연구원에 실력이 부족하냐?라고 물어본다면 그렇지 않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문화재연구원의 경우 인력을 투입하는데 자원봉사개념으로 하기는 힘이들고 적어도 용역의뢰가 들어와야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자체에서는 왜성보다 더 많은 문화재들이 있는데 왜성에 관심을 갖기는 힘이들었고 그러다보니 일본 아마추어 성곽연구회에서 조사한후 자료가 발표되는 구조였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왜성 관련 자료들은 90% 이상이 일본에서 들어오는 현상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땅에 있는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역수입이 되는 현상이죠. 컴퓨터가 나오기전인 80~90년대에 인쇄를 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사진식자기라고 불리는 것이 있었는데 그곳에 원하는 글씨를 출력하여 대지에 부착한후 필름을 만들고 인쇄를 하였습니다. 당시 나오는 사진식자기에 한글서체가 있었는데 그 한글서체를 모두 일본에서 대량으로 수입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이 한글서체 디자인은 바로 최정호라는 분이 하였는데 일본에서 이 서체디자인을 구입한후 사진식자기에 사용하였고 이를 우리가 다시 수입하였던 것이었는데 바로 그와 비슷한 현상이라 봐야할 것입니다.

일본 왜성연구회에서 빼놓고 조사를 하지 않은 곳중 하나가 바로 고성왜성입니다. 그러다 보니 고성왜성은 형태는 어떠하였으며 어떤 규모였는지에 관하여는 알 수가 없는 형편입니다. 아마추어인 필자보다 더 학문적인 지식이 있는 프로패셔널분들이 나서준다면 아주 간단하게 해결될 일이지만 그분들은 생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이런 조사들도 결국은 그들의 시장인데 조사를 하겠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결국 한국과 일본 모두 고성왜성에 관하여는 철저히 외면하였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다면 우리도 일본과 같이 아마추어 연구가들이 모여서 철처하게 조사를 하여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일단 필자가 생각하고 있는 부분에 관해서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항상하는 이야기이지만 실질적인 측정이 아니고 눈대중이고 추정이라 상당부분 틀릴 수 있음을 양해바랍니다. 일단 먼저 고성왜성의 위치입니다. 현재 실 체성이 남아있는 곳은 고성읍성이 있었던 수남리 부근입니다.문제는 이 수남리에 있는 체성의 경우 생각보다 작다는 것입니다. 정유재란 당시 고성왜성에 왜군이 주둔하기를 7,000명(많이 있었을 경우) 정도였다고 합니다. 현재 있는 고성왜성의 흔적에 과연 7,000명이 다 상주하였을 정도로 크기가 크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래 평면도는 필자가 예상하는 고성왜성 평면도입니다. 파랑색으로 된 부분은 고성읍성의 체성이고 빨강색은 현재 남아있는 고성왜성의 체성이고 노랑색은 필자가 예상하는 부분으로 틀릴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본 것을 기준으로 보았을때 저 곳에 과연 왜군 병사들이 7,000명이나 들어갈 정도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무래도 너무 작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저곳에 1,000명이라면 모를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필자가 예측한 부분에 고성군청방향으로 또 왜성의 형태가 나타나거나 아니면 다른 곳에 또 다른 고성왜성의 흔적이 보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즉 그러니까? 한꺼번에 뭉쳐진 왜성의 형태이거나 떨어진 형태의 왜성이거나 둘중에 하나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서생포왜성, 웅천왜성, 안골포왜성, 순천왜성, 남해왜성, 죽도왜성, 기장왜성 등은 니노마루(二の丸),산노마루(三の丸),혼마루(本丸) 모두 한곳에서 뭉쳐져 있다는 것입니다. 고성왜성이 이와 같은 형식이었다면 고성왜성터 북측 위나 동서편으로 왜성의 흔적이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고성왜성터의 경우 조그마한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동서편은 고성왜성 보다 낮은 곳에 자리잡고 있어서 왜성의 확장성에서는 별로 좋지 못하니 동서편은 제외합니다. 북측의 경우 현재 고성군청이 자리잡고 있습니다만 이곳은 거의 평지에 가까운 형태라 왜성이 들어서기 좋지 못하는 구조입니다. 

우리들이 알고 있는 왜성의 입지를 살펴보면 바다나 강과 인접하고 있으며 삼면이 바다형식으로 되어져 있는 곳 등인데 고성군청이 있는 곳은 아래 지도에도 나오지만 사방이 모두 펼쳐진 곳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방어를 해야하는 곳이 많아지니 왜성으로서는 좋지 못합니다. 현재 필자가 예상하는 고성왜성의 경우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진 곳으로 추정합니다. 즉 그러니까 정유재란 당시 바닷물은 고성왜성이 있는 곳까지 들어왔을 것으로 예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성왜성이 있는 곳은 북측만 잘 방어만 하는 구조라 우리들이 알고 있는 왜성의 기본은 된다는 것입니다. 
전반적인 지형을 살펴보면 고성군청이 있는 곳이 지대가 조금 높은편에 속하고 남포방향은 지대가 낮습니다. 경사가 대략 10도 정도되는 곳으로 고성군청이 있는 곳이 높은 곳에 속합니다. 고성왜성이 있는 곳은 바다보다 5미터 정도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방어적으로 유리하였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뭉쳐진 형태의 왜성이 아니라면 흩어져 있는 형태의 왜성일 수 있다는 것인데 과연 흩어져 있는 형태의 왜성은 어떤 곳이 있을까요? 가장 먼저 생각난 곳이 바로 명동왜성입니다. 명동왜성의 경우 본환은 산 정상에 있고 지성은 선소가 있는 낮은 구릉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빨강색으로 표시된 곳이 명동왜성의 흔적인데요. 명동초등학교 파에 있는 선소옆 구릉에 명동왜성 지성이 보입니다. 선소옆에 있는 지성은 방어를 하면서 본환에게 연락을 취하는 구조였을 것으로 보여지는 것과 같이 고성왜성의 경우도 저런 형식은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 그러니까 고성왜성의 경우 선소가 있는 곳에 지성을 축성하고 본환은 고성 남산에 축성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사실일지 아닐지는 모릅니다. 다만 고성왜성의 주둔인원이 가장 많았을때가 7,000명이었다고 하니 어느정도 규모가 되지 않고서는 힘이 들 것은 사실입니다. 

또 다른 형식중 하나가 영등포왜성입니다. 영등포왜성의 경우 산정상에 혼마루와 니노마루 모두 뭉쳐져 있는데 산아래 영등포진성이 있는 곳(선소가 있는 곳)에 대수문(大手門 (おおてもん)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런 형식이 고성왜성에 자리잡을 수 도 있다는 것이죠. 즉 남산에 왜성이 자리잡고 선소가 있는 곳에 선소를 지키는 적은 중대규모만 있는 형식 말입니다. 
구글지도에서 본 고성군청이 있는 지형으로 남산의 높이를 알 수 있습니다. 남산정상부는 해발 100미터이지만 고성왜성은 해발 10미터 정도고 필자가 남산에 있지 않았을까 하는 곳은 해발 50여미터도 되지 않는 곳입니다. 그래도 저곳에 자리잡고 있으면 고성만으로 진입하는 선박의 출입을 체크할 수 있고 고성들판에서 들어오는 육군의 이동을 알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현재 있는 고성왜성의 경우 고성만으로 진입하는 선박을 살필 수 있으나 늦게 알 수 있으며 육군의 진출입도 잘 알지 못하는 구조입니다.  
왜성의 축성시 아주짧은 기간에 축성하나 자신들이 유리한 지형을 형성하여 축성합니다. 현재 있는 고성왜성의 지형도 나쁘지 않으나 많은 인원을 수용하기에는 작다고 볼 수있습니다. 그렇다면 좀 더 큰 규모의 왜성을 축성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남산에 본환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보았습니다. 이부분은 정확하지 않고 필자의 개인적인 추측성이라는 것을 밝혀둡니다. 남산에 본환이 있었거나 아니면 현재 남아있는 고성왜성이거나 또 다른 것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런 의문점에서 출발하여 좀 더 확실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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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팬저의 국방여행 : 고성왜성 흔적 살펴보기 2014-01-05 15:42:11 #

    ... 이 알기가 어려웠습니다. 대략적으로 이렇게 형성이 되지 않았을까 짐작은 가지만 워낙 형태가 남아있지 않아서 정확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번편 고성왜성은 어떤 규모와 형태였을까? 에도 이야기하였지만 고성왜성이 있는곳에 왜군들이 7,000명이나 있기는 곤란하였을 것으로 보이고 고성의 남산에 본환이 있고 현재 고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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