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왜성 흔적 살펴보기 왜성(倭城)



고성읍성을 흔적을 살펴보고 나서 고성왜성의 흔적을 살펴보았습니다. 고성왜성은 과연 어떤 형태였을까?라는 의문이 있습니다만 일단 현재 남아있는 고성왜성의 흔적을 기준으로 고성왜성을 추정합니다. 다만 완전히 다 남아있지 않다보니 형태가 완전하지 않습니다. 

고성왜성의 경우 깃카와 히로이에에 의해 1597년 정유재란때 축성한 왜성입니다. 당시 주둔 병력은 7,000명이었다고 합니다. 고성왜성의 특징이 있다면 고성왜성의 터에 민가들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성이 있었던 곳은 거의 낮은 산 정상부근에 위치하였던 관계로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제법 형태가 잘 남아있습니다. 

웅천왜성,안골포왜성,서생포왜성,기장죽성리왜성,임랑포왜성,영등포왜성,명동왜성,송진포왜성,구포왜성,가덕도왜성 등이 그렇습니다. 아니면 이후 공원으로 활용되어서 사용중인 왜성이지만 제법 잘 남아있는 자성대왜성, 울산왜성, 마산왜성, 사천 선진리왜성, 순천왜성 등입니다. 민가들이 자리잡고 있지만 전체적인 형태를 알 수 있는 곳이 있는 왜성이 있는데 부산왜성과 남해 선소왜성입니다. 그중 선소왜성의 경우 민가들이 많지 않은 곳이라 제외를 하여야 하며 민가들이 많이 있어서 왜성의 형태를 찾기가 곤란한 곳이 부산왜성입니다.

하지만 부산왜성의 경우 이지환,삼지환,본환,천수대로 이어지는 부분이 또렷이 남아있어서 부산왜성에 관하여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것에 비해 고성왜성의 경우 연구도 부족한 것도 있지만 왜성의 형태와 함께 이지환,삼지환 등이 알기가 어려웠습니다. 대략적으로 이렇게 형성이 되지 않았을까 짐작은 가지만 워낙 형태가 남아있지 않아서 정확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번편 고성왜성은 어떤 규모와 형태였을까?  에도 이야기하였지만 고성왜성이 있는곳에 왜군들이 7,000명이나 있기는 곤란하였을 것으로 보이고 고성의 남산에 본환이 있고 현재 고성왜성의 터에 지성이 있었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비슷한 예를 명동왜성으로 소개하였습니다. 명동왜성도 틀리지는 않지만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서 부산왜성의 아들 성이라고 하는 자성대왜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 알기 쉬울 것 같습니다. 자성대왜성의 경우 부산왜성의 지성으로 자리잡았던 것처럼 고성왜성이 흔적이 있는 수남리의 경우도 고성왜성의 자성이고 본성은 남산에 있었을 것으로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 필자가 시간내어서 한번 찾아가보아야 겠지요. ㅠㅠ

 현재 고성왜성이 자리잡고 있는 곳은 북측이 남측보다 6~8미터 정도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경사도는 10~15도 정도 내리막이 형성되어져 있습니다. 또 그림지도의 F지점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던 흔적을 보았습니다. 따라서 정유재란 당시에는 바닷물이 들어와서 바닷가에 고성왜성을 축성하였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F지점 근처에 선소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리고 고성왜성터를 살펴보면 경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전부 삭평하여 평지처럼 되어져 있으며 그곳에 민가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는 정유재란 당시 고성왜성을 축성하면서 삭평한 것으로 그래도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고성왜성의 터에 민가들이 많이 자리잡은 것은 정유재란 이후였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때 왜군들은 조선의 진성,읍성,토성,병영성 등에 위치한 곳에 자리잡고 조선의 성곽에 사용한 돌들을 가져와서 단기간에 왜성을 축성 합니다. 이후 전쟁이 끝나고 왜군들이 물러가면서 자연스럽게 조선의 행정이 들어오기 시작하였을 것입니다. 

자성대왜성이 있었던 곳에는 부산진성이 자리잡고, 서생포왜성이 있었던 곳은 서생포진성, 안골포왜성이 있었던 곳은 안골포진성이 자리잡았습니다. 고성왜성이 있었던 곳 위에는 바로 고성읍성이 자리잡았습니다. 더군다나 모든 줄입문이라고 할 수 있는 고성읍성의 남문이 고성왜성이 있었던 곳에 자리잡았습니다. 그림의 I지점이 되겠습니다. 고성왜성이 노랑색과 같이 형성이 되었는지 아니면 파랑색으로 된 고성읍성의 성벽으로 사용하였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전쟁후 고성읍성의 남문이 형성이 되니까 남문을 중심으로 수령의 입출입, 병사들의 진출, 상인들의 진출이 많이 이루어지니 자연스럽게 남문 앞에 민가들이 하나둘 씩 형성이 되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면서 기존에 있었던 고성왜성의 체성들이 하나둘씩 무너져 내렸을 것이고 일제강점기를 거쳐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본격적으로 무너져 내렸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수남리를 바라본 모습으로 자동차가 주차한 곳보다 10여미터 이상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수남리에 고성왜성의 흔적이 보입니다. 바라보는 곳에 나무가 있는데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번에 답사를 하면서 알게된 고성왜성의 흔적입니다. 높이는 대략 2미터정도 되었습니다.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직선으로 형성이 되어져 있습니다. 남측 아래에 있는 부분은 뒤에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왜성을 방문하면 돌과 돌 사이에 나무들이 많이 자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의 읍성과 산성은 그렇지 않거든요. 이는 축성방식에서 차이가 있어서 그런 것으로 보여집니다. 조선성은 돌과 돌사이에 틈이 없는 형식으로 하고 내부에 잔돌을 메꾸는 방식인데 비해 왜성은 돌과 돌사이에 어느정도 공간이 생기고 내부에 잔돌을 조금 채우는 방식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즉 나무들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조성이 되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오랜 세월 지나고 나서 조선성은 잘 남아있는 것에 비해(인공적으로 무너트리는 것이 아니고 자연적으로 무너지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왜성은 잘 무너져 내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법 공간이 있죠. 조선성의 경우도 잔돌로 매꾸는 방식이 있지만 돌로 전부 채우다보니 나무들이 자랄 틈이 없는데 왜성은 그렇지가 않죠.
두등 하고 필자눈에 들어온 고성왜성의 체성입니다. 전반적인 왜성의 특징이 잘 나타나고 있으며 기울기는 70도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90도 각이 꺽여져 있으며 왜성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각이 걲여져 있다가 다시 한번 각이 걲여져 있습니다. 그림지도의 C지점입니다.
돌과 돌사이에 나무들이 많이 자라서 불안합니다. 다시한번 연결된 체성은 주차장이 있는 곳 A지점까지 연결됩니다.
왜성의 특징을 알 수 있는 것중 하나가 이렇게 인공적으로 잘 다듬어 놓은 우각부의 모습으로 주사위처럼 6각형으로 아주 잘 다듬어 놓았으며 이를 우각부에 사용합니다.
그림지도의 C지점이 있는 빌라로 빌라 뒷편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위 C지점에서 남측으로 내려오면 만나는 곳으로 그림 지도의 D지점이 되겠습니다. 민가 뒷편에 고성왜성의 체성이 보입니다. 
D지점은 민가라 양해를 구하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위에서 잘 기억하라고 하였던 나무입니다.
나무아래에 고성왜성의 체성이 보입니다. 경사가 이루어지고 나무들이 많이 자라서 잘 안보이는 것 같지만 눈을 크게 뜨고 보시면 체성의 흔적이 보입니다.
이곳의 높이는 사진과 같이 4미터 정도 되어보였습니다. 경사도의 경우 70도를 넘었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고성군 향토사학자인 고성향토연구소 하기호소장은 이곳이 본환이 있었던 곳이 아닐까 추정을 합니다. 고성신문기사 참고 필자는 정확하게 판단을 내리기 힘이 듭니다만 본환으로 하기에는 여러모로 문제가 있어보였습니다. 일단 바다와 너무 인접한 곳입니다. 필자는 사진에 보이는 곳이나 이보다 10여미터 전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바다에서 들어와서 바로 본환까지 들어오기가 쉽기때문에 본환은 아닐 것으로 보는 것이죠. 높이적인 측면보다는 지리적인 특성을 보는 것입니다.
사진에 보는 것과 같이 예전에 직선으로 이어진 고성왜성의 체성이 다있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축대와 담장 사이에 고성왜성의 체성이 보입니다. 90도로 이어진 축대끝 부분에 말이죠. 그리고 하단 부분을 보면 정유재란 당시축성한 체성의 흔적이 그대로 보입니다.
체성의 흔적과 담장이 보여지는데 저런식이라면 조선군이 진입이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나무때문에 고성왜성이 빨리 무너져 내릴 것 같습니다.
하단부를 보면 체성의 흔적이 보입니다.
풀들에 의해 가려져서 그렇지 체성은 그래로 있으며 C지점까지 직선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다시 길을 걸어와서 A지점입니다. 예전에 보왔던 것보다 높이가 낮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일단 높이가 2.5미터 정도 였으니까요?
예전에 필자가 방문하였을때에는 담쟁이가 많이 자라고 있어서 그랬던 것 같네요.
여긴 제대로 남아있는 느낌을 주죠.
왼쪽 상단에 있는 나무들이 있는 곳이 본환이나 천수대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았습니다.
A지점에서 C지점으로 이어지는 체성의 일부로 여기까지만 이어져있고 중간에 끊어져 있습니다.
이제 다시 D지점으로 내려왔습니다. 지도에는 E지점입니다. 사진에 보시는 것과 같이 삭평한 공터가 나옵니다. 예전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렇게 제법 큰 공간이 보이더군요. 
E지점에서 남측을 내려다 본 모습으로 편의점까지는 바닷물이 들어왓을 것입니다. 
E지점에서 걸어와서 F지점까지 가다가 본 것으로 성곽의 체성이 자리잡고 있더군요. 왜 이곳에 이런 체성이 자리잡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높이는 대략 2미터 이상이었는데 말이죠.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정교하게 다듬은 돌들로 체성을 형성하였는데 고성읍성이라고 해서 축성한 것일까요? 방식은 고성왜성이 아니고 고성읍성의 방식인데 말이죠. 문제는 고성읍성의 체성이 지나가는 곳은 이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체성이 있는 곳에서 적어도 직선거리로 200여미터 위에 있다는 것이죠. 또 아무런 설명도 없더군요.
아주 정교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냥 담장으로 하려고 한 것일까요? 궁금하군요.
체성과 같은 곳 바로 옆에 2미터 높이의 동산이 있는데 아래편을 보면 바닷물이 들어온 흔적이 보이더군요.
F지점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아래에서 위 민가들이 있는 곳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높이가 제법 있죠!
F 지점 아래를 살펴보니 바닷물이 들어온 흔적이 보이더군요. 이게 하루 이틀이 아니고 오랜 세월속에 있다보니 돌의 상단부와 하단부가 색깔이 틀리더군요.
사진에 보이는 부분까지 완전히 잠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생포왜성의 흔적을 찾아 가보았을때 본 것으로 저곳 바위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더군요. 이번 고성왜성을 답사하면서 서생포왜성의 바밧물이 들어왔던 곳이 떠올라서 쭉 둘러보았습니다.
다시 고성왜성의 흔적을 살펴보겠습니다. 자연이 만든 바위위에 인공적으로 왜성의 체성을 축성하여 방어를 하였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높이를 알아 보시라고 찍은 사진입니다. 나무들이 중간 중간 있는데 그곳은 아무래도 고성왜성의 체성이 자리잡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주차장에 세워진 곳과 비교한다면 높이는 7미터 이상되어 보입니다. 
뒤돌아 본 모습으로 직선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위 민가들의 경우 산을 삭평하여 평지에 있습니다.
또 고성왜성의 흔적을 알 수있는 체성이 나왔네요. 
ㄱ자로 꺽여져 쭉 이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위에 콘크리트가 덮혀있지만 아래편에 고성왜성의 체성이 보입니다.
이곳이 성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사진을 찍어보았습니다. 골목이 보이는 곳에서 다시한번 꺽여져 파랑색 지붕이 성문이겠지만 말이죠.
여기 보이는 민가의 담장들도 고성왜성의 체성이 이어진 곳입니다. 
성문이 아니라면 이곳이 선소를 방어하는 곳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부분이 ㄷ자형식으로 돌출된 구조입니다. 즉 조선성의 치성과 같이 돌출된 곳입니다. 
사천선진리왜성의 성문 입구와 같이 돌출되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높이의 경우 현재 2미터 정도인데 하단부에 체성이 더 묻혀져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단부를 보면 일부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주차장 공사를 하면서나 그 이전에 많이 무너져 내렸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나마 이 우각부때문에 고성왜성임을 증명해줍니다.
콘크리트로 된 축대말고 자연스러운 바위나 흙위에 고성왜성을 축성하였을 것입니다.
용궁사해탕 목욕탕을 찾아오면 바로 고성왜성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대략 높이가 짐작이 되죠. 위에서 이야기하였지만 콘크리트로 덮혀진 곳 하단에 체성의 흔적이 있을 것입니다.
내부의 돌인데 이부분은 요즘에 축대 쌓는 것과 같은 방식인데 이것은 근대 이후 쌓은 것인지 확실하지 않네요. 이럴때에는 전문가들과 함께 가면 설명도 듣고 그러하면 좋을 것인데 말이죠.
일단 이부분이 성문이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짐작이 간다는 것입니다.
주차장 위편으로 사진과 같이 텃밭으로 사용중에 있는데 평지가 조성되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직선으로 이어진 곳이 보이는데 나무들이 있는 곳이 고성왜성의 체성이 있었을 것입니다.
콘크리트로 덮혀져 있지만 하단부에 고성왜성의 체성부가 보입니다. 
위에서 주차장방면을 본 것입니다. 지금은 도로와 민가로 되어져 있지만 왼쪽 부분은 임진왜란 당시 바닷가였을것으로 추정합니다.
상단부에는 보인 것과 같이 민가들이 많이 들어서 있는데 이곳들이 이지환과 본환이었을 것입니다. 본환을 짐작할 수 있는 흔적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한번 더 가보아야하나 잘모르겠네요.
주차장을 내려다 본것으로 여기서 주차장까지 높이가 대략 7미터 이상 되니 체성위에서 내려다 본 느낌입니다.
민가들이 들어서 있어서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일단 한바뀌 쭉 둘러보았습니다.
다시 용궁사해탕 목욕탕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민가 하단분의 경우 체성이 많이 무너져 내려서 잘 알 수 없습니다.
다시 골목을 한개 더 들어가서 본 곳입니다. 축대와 같이 형성되어져 있는데 저 부분이 왜성의 체성인 것 같은데 사진과 같이 민가들이 너무 달라 붙혀져 있어서 잘 알 수가 없네요.
반대편으로 넘어오니 조금은 짐작할 수 있겠는데요. 체성의 흔적은 잘 보이지 않고 일제 강점기 부터 도입한 축대 축성한 방식이 보입니다. 다만 형태가 축대의 각이 진 부분이 왜성의 체성과 같아보입니다. 
담장 아래편을 보면 왜성에 사용하였던 큰 돌이 아니고 아주 작은 돌들이라 체성이다라고 말하기 힘이 듭니다. 
여기저기 둘러 보았습니다만 왜성의 흔적은 찾기가 힘이 드네요. 민가들 담장을 보면 되는데 문이 닫혀있으니 양해를 구하고 들어가기도 힘이들더군요.
아직도 청해비는 민가의 축대로 사용중에 있었습니다.
고성왜성의 경우 대략적인 흔적은 있지만 그곳에 7,000명이라는 병사들이 상주하기에는 너무나 작은 곳입니다. 추정하건데 고성 남산에 왜성의 본성을 지은 것이 아닌가 추정은 합니다만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다음에 시간이 난다면 남산을 조금 찾아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덧글

  • 明智光秀 2014/01/07 02:47 #

    이시가키의 나무 문제는, 처음 듣는 비교 발언(?)이네요. ^^
    일본의 성곽 전문가들도 '성곽 보존의 최대 적은 식물이다'라고 할 정도인데...
    그걸 당연하게만 생각했지, '조선의 성곽은 그렇지 않은데...'라는 것은 생각도 못한 바네요.
    아주 잘 봤습니다. ^^
  • 팬저 2014/01/07 09:49 #

    그렇나요? 제가 왜성을 가보니 보존상태가 좋지 못하더군요. 아무래도 원인이 축성방식이 달라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2014/01/07 23:07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1/07 23:0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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