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영의 관문인 원문은 어디에 있었을까? 관문성(關門城)

통제영은 조선수군의 본부이며 중요한 곳입니다. 이런 통제영을 방어하기 위해 통제영성인 통영성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토성과 석성을 섞어서 만들어 놓았으며 현재도 일부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통영성을 복원하기 위해 북포루,서포루,동포루를 복원하였고 일부 체성을 복원하였으며 복원할 예정입니다. 

통영성을 벗어나 고성으로 가다보면 또 하나 만나는 것이 바로 원문입니다. 즉 원문이 통영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것입니다. 이런 원문은 하나의 성곽을 보호함과 동시에 출입을 통제하고 일차 저지선을 만드는 것입니다. 일종의 관문을 하는 것으로 관문성의 성격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관문성은 평안도에 대부분 집중이 되었던 것에 비해 원문은 하삼도에 배치가 되었습니다. 통제영뿐 아니라 전라우수영과 녹도진성 앞에도 있었습니다. 


▼ 이런 원문과 비슷한것이 목장성입니다. 기르는 말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나무로 만든 것이 목장성인데 전국적으로 산재하여 있었습니다.   
 통제영의 원문은 군영으로 드는 문을 이르는 것으로 옛 기록에 在郡北十里 肅宗八年壬戌 統制使元相築之 有門樓二層 今則廢之“라 한 기록으로 보아 숙종 8년(1682)에 제161대 통제사 원상이 축조한 것으로 2층의 문루가 있었다고 하는데 문루의 이름은 공진루(拱辰褸)라 했습니다. 공진루의 경우 2층으로 된 아주 웅장한 누각이었음을 고지도는 증명합니다. 공진루를 중심으로 좌우로 체성이 연결되어져 있으며 바닷가까지 연결이 되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원문을 막으면 통영은 섬아닌 섬이 되고 원문을 열면 육지를 통하는 곳입니다. 그만큼 원문의 중요성은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원문이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통제영의 원문이 있었던 곳에 관한 이야기는 필자가 이야기하였지만 가보지 못하였는데 먼저 통영의 원문성에 관한 조사를 하신 통영의 김용재님이 있어서 소개를 합니다. http://blog.daum.net/backsekim/530  블로그에서 원문성에 관한 이야기를 보았다가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다 이후 거제를 갔다오면서 들러보았습니다. 대략 여기겠지 싶었는데 맞더군요. ^^

 네이버지도의 지적도 서비스를 통해서 본 모습으로 산지 비탈에 밭이 형성이 되어져 있는데 같은 크기의 일률적으로 되어진 부분이 직선으로 형성되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통영 원문의 체성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음지도에서 본 모습으로 노랑색 화살표가 되어진 부분이 일률적으로 형성이 되어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위 지도에서 본 지적도와 현재 남아있는 형태를 토대로 통제영의 관문성인 원문과 원문성을 추정한 것입니다. 빨강색은 체성이고 갈색은 원문인 공진문이고 노랑색으로 된 것은 통제영으로 가는 옛길로 추정하는 것입니다. 노랑색의 길은 조선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다녔지만 지금은 다니지 않는 곳이며 국도의 경우 2010년 이전까지는 저길로 거의 다 다녔는데 지금은 통영사람들 정도만 다니는 곳이고 현재는 고속도로로 많이들 다닙니다. 

 통제영의 원문성은 대략 600여미터로 보여지며 고속도로 부근에 있는 것에 따라 700미터로 보일 수 있습니다. 예전 문헌에는 왼쪽은 길이 151보(步) 높이 13척(尺) 오른쪽은 길이 202보(步) 높이 13척(尺)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위에서도 이야기하였던 것처럼 바닷가와 연결되어져 있는 부분까지 할 것인지 아니면 바닷가가 끝나는 부분까지 할 것인지에 따라서 길이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일단 700미터 미만이라 방어를 하는 입장에서 보면 적은 병력으로 방어를 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일단 도보로 움직인다고 해도 10~15분이면 끝에서 끝까지 갈 수 있으니까요. 
 위 고지도에서 나오는 것과 같이 원문성은 일직선으로 이어진 체성으로 바다에도 출입을 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에 바다와 연결되어져 있는 체성은 없는 것 같아서 중국 만리장성의 노룡두(老龍頭)를 대신 소개합니다. 체성의 축성방식은 중국과 조선이 차이가 있지만 바다와 접목되어져 있으면서 방어를 하려고 하는 부분은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통제영의 원문의 바로 뒷편의 모습으로 현재는 육각정이 놓여져 있습니다. 



 육각정 바로 옆에 우물이 놓여져 있는데 조선시대부터 있어왔던 우물이라고 합니다. 
▼ 현재는 사용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만 예전에는 잘 나갔음을 증명해줍니다.
▼ 우물 앞에 있는 가정집으로 이 집에 공진루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김용재님이 이야기하였는데 대략적으로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원인은 바로 지적도입니다. 지적도를 보면 체성의 흔적과 함께 통영별로로 이어지는 옛길 때문입니다. 
 골목이 보이는데 두개의 길이 형성되어져 있습니다. 
 골목의 경우 언제 형성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왔던 것이 아닐까 추정합니다.
 지적도를 살펴보면 956이 보이는데 그 부분이 바로 공진루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 앞으로 길이 조성되어져 있는데 바로 통영향교로 가는 길일 것입니다. 그리고 공진루 뒷편으로 골목이 형성되어져 있는데 세개입니다. 그만큼 원문을 지나면 여러개의 길이 있었음을 증명해줍니다. 
 공진루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하는 민가의 대문뒷편인데 여기가 바로 공진루의 출입문인 성문이 있었을 것입니다. 
 도로로 연결되어져 있는 부분이 체성이 연결되어져 있는 부분이고 저 멀리 새롭게 조성하는 아파트까지 체성이 연결되어져 있었을 것입니다. 
▼ 체성의 흔적을 살펴보았으나 찾지는 못하였고 밭으로 사용하고 있는 곳에 예전의 성돌로 추정하는 돌들이 몇개 보이는것 같더군요. 
 성문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하는 곳에서 불과 6~7미터 떨어진 곳입니다. 하단부에 있는 돌은 체성에 사용할 수 있는 돌이지만 가장 하단부 위에 있는 돌부터는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밭으로 사용하기 위해 사용된 돌로 보여졌습니다.
 맞은편에도 돌로 이어진 부분이 있었으나 체성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공진루가 있었던 민가에서 통영향교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온 길에 놓여져 있는 비석입니다. 이 비석의 경우 최근에 부서져 있는 상태로 아무렇게 방치되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2012년 4월 방치된 오횡묵비  다행이 이부분은 지적이 되어서 비석을 원래 형태로 접합(? 접합이 맞나요? 아니면 복원이 맞나요?)되어져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문화재들은 아무렇지 않게 흩어져 있고 관리가 안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비석의 명칭은 통정대부행 함안군수 전별향사 오공횡묵사적비라고 하네요.  




 현재 통영향교와 고성으로 가는 길은 따로 있습니다만 보이는 이길이 예전에 사용된 통영별로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통영성에 있는 원문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이 없는 곳이지만 통영을 가기위해서는 반드시 거쳐가야하는 관문입니다. 이 관문성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몇개 형성되지 않았던 관문이며 바다와 연결되어진 곳은 아마도 통영의 원문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가 더 있다고 하면 전라우수영의 원문정도 일 것입니다. 통영시에서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보다 체계적인 지표조사와 발굴조사가 이루어져야 하며 일부 복원을 할 수 있으면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원문이 있는 공진루나 바다와 연결된 체성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덧글

  • Nocchii 2014/01/14 15:38 #

    원문이 지금까지 있다면 눈으로 볼 수 있는 곳에서 일하고 있는 입장에서 특히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
  • 팬저 2014/01/14 16:27 #

    아 그렇나요? 예 남아있었다면 잠시 쉬시고 계실 경우 눈을 돌아보면 보기가 좋았을 것인데 말이죠. ^^
  • YOLO88 2014/01/15 11:15 #

    고지도도 그렇고 내용이 다 흥미롭네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 팬저 2014/01/15 13:23 #

    그렇나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Masan_Gull 2014/01/15 21:52 #

    통영 지명에 원문고개라고 있죠.
    거기가 교통의 요지라, 거길 틀어막으면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잊을 만 하면 원문고개서 밀입국자를 대량 체포한단 기사가 나오고, 경찰의 연말연시 음주단속 실적의 대부분을 여기서 채운다는 카더라도 있습죠.

    작계상으로는... 잠시만요, 설렁탕 배달이 잘못 왔나봐요. 시킨 적이 없는데.
    .
    .
  • 팬저 2014/01/15 23:28 #

    그래서 그런가 6.25전쟁 당시 통영상륙작전을 수행하면서 가장 먼저 원문고개를 대한민국 해병대가 점령하여 북한군을 막았을 정도이니 그만큼 아주 중요한 것이죠.
  • 한라온 2021/08/12 12:05 #

    2021년 1월에 찍은 로드뷰를 보니 남쪽 바다로 뻗은 체성 부분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고 되어 있는데, 해당 체성의 흔적을 따라 길게 돌담으로 보이는 흔적이 새로 생겨 있고 그 주변으로는 아파트 기초공사를 하는지 흙이 파헤쳐져 있어 체성 복원과 아파트 단지 조성이 동시에 이루어지는지 아닌지를 모르겠네요.
  • 팬저 2021/08/13 21:14 #

    이후 몇 번 갔었는데요. 현재 아파트가 올리는 곳은 일부는 놓아두고 공사하는 것으로 알고있고요. 원문은 그대로 남겨져 있으며 비석은 다른 곳으로 옮겨 갔습니다.
  • 한라온 2021/08/12 12:16 #

    조금 더 찾아보니 정말 다행히도 아파트 단지 안에 문화재보호 구역을 만들어 원문 체성을 보존하는 모양이네요. 안도가 됩니다.

    https://0556467277.tistory.com/6
  • 팬저 2021/08/13 21:16 #

    비석은 이곳으로 옮겨갔습니다. http://kko.to/yOKnhHf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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