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고성의 모습에서 고성왜성을 느끼다 왜성(倭城)



고성군박물관에서 본 1935년 고성군의 옛모습이라고 하는 사진을 다시 찍은 것입니다. 1935년이면 일제강점기때인데 사진을 보면 고성왜성의 모습이 어느정도 남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도로의 경우 신작로가 뚤려져 있음을 알 수 있으며 고성군청이 있는 곳은 보이지 않습니다. 
▼ 위의 사진을 트리밍하여 보았습니다. 사진이 작아서 확대를 해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깝지만 그래도 고성왜성에 관하여 대충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위 사진에 알파벳을 표시하였으며 위 사진과 비교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A지점의 경우 현재도 남아있는 곳으로 아주 경사가 진 곳입니다. B지점의 경우 현재 큰 나무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J지점을 보면 B지점보다 위에 있는 것을 알 수있습니다. 따라서 B지점이 산노마루(三の丸삼지환), 니노마루(二の丸 이지환)로 보이고 J지점이 니노마루(二の丸 이지환), 혼마루(本丸 본환)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팬저는 산노마루(三の丸삼지환), 니노마루(二の丸 이지환)를 정확하게 알 수 가 없었으나 이 사진을 통해 산노마루(三の丸삼지환), 니노마루(二の丸 이지환)를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이 사진을 통해 천수대를 알 수 없습니다. 적어도 체성의 흔적이 보여야 하는데 보이지가 았네요. 

사진에 보는 것처럼 J지점의 경우 바다와 상당히 인접해있고 높이가 낮은 곳이라 저 J지점에 천수대가 들어섰을 것이라고는 짐작하지 않습니다. 또한 사진을 찍었던 남산에서 바라보면 고성왜성의 모습이 그대로 노출되는 곳이라 방어를 하는 입장에서 유리한 곳이 아니었는데 왜 저곳에 7,000명이 주둔하는 고성왜성을 지었을까요? 다른곳에 지어진 왜성을 보면 독립형 구릉이거나 높은 산에 위치한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서생포왜성, 울산왜성, 죽성리왜성, 부산왜성, 웅천왜성, 안골왜성 등등) 인근에 있는 산에서 왜성을 내려다보는 곳은 거의 없는 편인데 고성왜성은 바로 옆인 고성 남산에서 내려다보는 곳에 고성왜성을 축성하였을까요? 팬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건 현대전투에서도 똑 같은 이치입니다. 낮은곳에 자리를 잡고 방어를 하는 곳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죠. 

딱 하나 다른 곳이 바로 자성대왜성입니다. 자성대왜성의 경우 부산왜성에서 바라다 보면 자성대왜성에서 어떤 일을 하는 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성대왜성의 경우 부산왜성의 지성입니다. 즉 부산왜성과 같은 부산왜성이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일종의 소규모 부대가 독립공간을 만들어서 방어하는 곳이라거죠. 자성대왜성과 같은 형식으로 축성한 곳중 하나가 명동왜성입니다. 여기도 작은 독립된 공간이 들어서 방어를 했던 곳입니다. 다만 명동왜성의 지성은 규모가 작은 편입니다. 명동왜성의 지성에 비해 자성대왜성의 경우 규모가 큰편에 속하고 산노마루(三の丸삼지환), 니노마루(二の丸 이지환), 혼마루(本丸 본환)이 다 있습니다. 자성대왜성과 명동왜성의 경우 본환이 위에 위치하고 있는 편이지만 고성왜성의 경우 본환이 낮은 곳에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힘이듭니다.  

고성에서 있었던 "조선시대 경상도 고성지역 수군진보와 남촌진"에 관한 학술토론회때 만난 심봉근 전.동아대총장님은 동래왜성의 경우를 이야기하셨는데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더군요. 아 충분히 그럴수 있다고는 생각하였지만 남산과 너무나 가까이 있는 부분에서는 이해가 안가더라는 것입니다. 동래왜성이 축성한 곳에서 옥봉산까지는 대략 1.6km가 되지만 고성왜성과 남산까지는 직선거리로 500m도 되지 않는 거리입니다. 즉 옥봉산에서 동래왜성을 감시하기에는 거리가 멀다는 것입니다. 그것에 비해 남산은 300m지점에서도 고성왜성을 감시할 수 있는 것입니다. 300m라면 사람의 육안까지 대략적으로 볼 수 있는 곳입니다. 그만큼 가까운 곳에서 감시가 가능한 남산을 놓아두고 왜? 그곳에 고성왜성을 축성하였을까? 하는 것입니다. 

왜성을 축성하면 가장 많이 들어가는 것이 바로 성돌 아닙니까? 그렇다보니 울산왜성을 축성하면서 울산읍성의 돌을 가져왔다고 하는데 그 거리가 무려 1.5km이며 경상좌병영성까지는 1.7km까지입니다. 고성읍성과 남산까지는 500m도 되지 않는 곳인데 고성읍성의 성돌을 가져가면 되는데 왜? 고성읍성과 바로 인접한 곳에 고성왜성을 축성하였을까요? 남산에 왜성을 축성하면 고성만으로 들어오는 선박이며 통영,진주,진해(임진전쟁 기준으로 현재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에서 넘어오는 적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그곳을 두고 낮은 능선에 왜성을 축성하는 것도 이해하기 힘이 듭니다. 

또 동래왜성의 경우 바닷가에는 부산왜성, 영도왜성이 자리잡아서 어느정도 방어가 가능한 곳이고 육지방향은 구포왜성, 양산왜성 등이 있어서 일차적인 저지선이 있는 곳입니다. 그에 비해 고성왜성은 가장 가까이 있다고 하는 왜성이 거제 광리왜성인데 이곳이 직선거리로 21km이고 사천 선진리왜성은 26km, 마산왜성은 35km이상이 떨어진 곳입니다. 직선거리로 추정한 곳이라 예전의 길로 본다면 적어도 30km를 넘는 곳입니다. 지원병이 온다고 해도 적어도 반나절 이상 걸리는 곳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체적으로 방어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런데 500미터도 떨어져 있는 곳에서 왜성을 살펴볼 수 있다면 방어에 충실한 곳일까요? 아닐까요?

500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는 곳에 자신의 왜성보다 더 높은 곳이 있는 곳은 울산왜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예전부터 토성이 지나가는 곳이어서 왜군들이 나성의 개념으로 사용하는 곳이었으며 울산왜성은 남측은 바닷가이고 동,서,북측만 막으면 되는 구조라 방어에 유리한 것입니다. 하지만 고성왜성은 현재 고성군청이 있는 곳이 더욱 더 높은 곳입니다. 울산왜성은 독립된 구릉에 방어를 하는 구조라 방어에 유리하지만 고성왜성은 그렇지 못합니다. 위 사진에도 나오는 것처럼 우측(북측)이 높고 좌측(남측)이 낮은 구조입니다. 그런데 고성왜성은 고성읍성을 다 함께 사용하였다고 해도 결국 방어는 왜성에서 해야하는데 낮은 곳에서 방어를 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이 든다는 것입니다. 

아래 지도에도 나오지만 고성읍성의 체성이 지나가는 대성초등학교부터 지대가 낮아집니다. 그 고성읍성의 체성부터 고성읍성과 고성왜성이 있는 곳까지는 직선거리로 400미터가 되는 곳이라 그곳에서 방어를 하다가 불리하면 고성왜성으로 들어가는 구조라하기에는 거리가 멀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팬저가 품었던 여러가지 의문들이 풀리기를 기대합니다. 팬저는 고성 남산에 왜성을 축성하고 그곳이 바로 본환이었다고 생각하고 현재 남아있는 고성왜성의 경우 지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C지점의 경우 현재 골목으로 형성된 부분으로 1935년 당시에도 체성이 무너져 내려져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D지점의 경우 현재 유료주차장 담벽으로 사용하고 있는 곳입니다. G지점의 경우 현재도 있는 대독천입니다. H지점은 야산인데 예전에는 섬이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I지점의 경우 현재 고성군공설운동장이 있는 곳입니다. 1935년에는 G와 F지점 사이에 논이 형성되어져 있습니다. 팬저는 저 지점이 정유재란 당시 바다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위 사진에 보이는 A부터 J까지의 표시를 현재의 지도에 삽입하여 보았습니다. 위 사진의 경우 남산에 있는 보광사에서 찍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 현재의 A지점으로 높이 5미터의 고성왜성 체성이 남아있으며 B지점이 보이는 나무입니다. 
▼ 유료주차장 담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고성왜성체성으로 위 지도 D지점이 되겠습니다.
▼ C지점에서 D지점을 바라본 것으로 1935년 당시에도 이런 모습이었겠죠. 다만 집이 초가집이겠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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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ine Unbekannte | Madang 2014-05-05 11:22:04 #

    ... g gehört, die Stadtmauer liegt etwa 200 Meter entfernt. Für sie Skizze war auch dieses bearbeitete Foto von panzercho hilfreich, Goseong 1935: Die westlich gelegene Festungsmauer ist ebenfalls vorhand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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