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지난 뉴스이지만 이 부분은 아주 중요할 것 같아서 늦었지만 가져옵니다.
중앙일보에 나온 기사로 "부산 지명은 자성대서 유래됐다" 새 학설입니다. 그동안 알려진 부산의 지명은 현재 부산왜성이 있는 곳 부산 동구 좌천동 ‘증산(甑山)’을 부산 지명의 유래가 되는 곳으로 봤었습니다. 팬저도 부산지명의 유래를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산의 지명은 증산이 아니라 현재 자성대공원이라고 하는 주장입니다.
그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 심봉근(전 동아대 총장) 동아시아문물연구소장은 " 증산은 임진왜란 뒤에 생긴 이름으로 일본인들이 왜성을 쌓으면서 증산으로 불렸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심봉근(전 동아대 총장) 동아시아문물연구소장은 우리나라에서 성곽분야중 선구자적인 분의 이야기라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사실 증산이라고 불리는 곳은 부산왜성이 있는 증산말고 또 있습니다. 양산 물금에 있는 양산왜성을 증산왜성이라고 불리는 것만 보아도 증산이라는 부분은 사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산의 지명도 중요한 부분이지만 임진왜란 당시의 부산진성이 과연 어디인가? 하는 부분입니다. 그동안 부산의 일신기독병원이 있는 곳이라고 알려져 있었는데 나동욱 부산근대역사관장은 "바다와 붙어 있는 성문은 자성대가 더 유력하다고 주장한다. 조선 수군들이 배를 대기에도 자성대 쪽 항구가 적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일신기독병원이 있는 곳이 아니라 현재의 자성대왜성이 있는 곳이 부산진성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알고 있었던 부산진성의 위치는 완전히 뒤집혀지는 것입니다. 또 부산진성의 돌을 가지고 가서 부산왜성을 축성하였다는 부분도 바뀌게 되게 됩니다. 부산진성의 경우 임진왜란 전에 지었던 부산진성과 임진왜란 이후 축성한 부산진성이 다르다고 한 부분에서 원래 있던 자리에서 다시 축성한 것으로 수정을 해야하는 부분이 될 것입니다.
자성대왜성과 부산왜성까지 직선거리로는 대략 1km입니다. 직선거리가 아닌 형식으로 한다면 대략 2km정도 나올 것입니다. 그리고 자성대왜성과 조선전기 부산진성 추정지까지는 직선거리로 700미터가 되지 않습니다.
노랑색으로 표시한 것이 조선후기 부산진성의 체성입니다. 만약 이 조선후기 부산진성이 조선전기의 부산진성이었다고 하면 방어적인 입장에서는 아주 유리합니다. 왜냐하면 육지에서 공격해오는 적은 서측만 방어만 하면 되니까요? 남측은 조선시대 당시 바다였고 동측과 북측은 하천으로 이어져있으며 밀물때에는 바닷물이 들어오고 썰물때에는 바닥이 들어나는 형식이라 서측으로만 공격을 해야하는 구조입니다.
그에 비해 일신기독병원이 있는 곳에 부산진성이 있었다면 여러모로 불리한 위치입니다. 부산왜성이 정상에서 보면 부산진성에서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준비하는지 모두 알 수있습니다. 또 땅이 서측으로 경사가 지어져 있어서 부산왜성이 있는 증산을 방어하지 않으면 곤란한 구조입니다. 동북측과 서남측은 평지라 큰 문제가 없지만 북서측은 아무래도 부산진성에서는 불리한 구조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조선시대 당시 수군진성의 경우 이런 경우가 많이 있어서 큰 문제는 아닌 것 같기도합니다. 거제 영등포진성이나 안골포진성, 다대포진성 등에서도 이러한 부분이 있어서 그부분만 가지고 부산진성의 위치가 잘못되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조선후기 부산진성이 있었던 곳은 감시를 할 수없는 구조이긴한데 조선수군들이 선호하는 진성의 위치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좀 더 지켜봐야할 것 같고 더 연구를 해보아야 될 것 같습니다.

만약 현재 알려진 조선전기 부산진성의 위치가 아니고 나동욱 부산근대역사관장의 말처럼 자성대가 있는 곳이 임진왜란 당시의 부산진성이었다면 많은 것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팬저가 그동안 일신기독병원 근처에 부산진성이 있었다고 하는 부산향토사학자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부산진성의 변천에 관하여 이야기하였는데 수정해야겠지요. 다행이도 팬저는 부산진성을 옮겼다는 부분을 그래픽으로 표시하지 않았네요.

일단 이 부분은 논문을 입수하여 공부를 하여야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는 임진왜란 최초의 전투가 벌어졌던 부산진성의 위치는 어디일까요?
덧글
저렇게 넓은 바다를 어찌다 메꾸었는지..그리고 메꾼지 꽤 오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지반이 그리 튼튼한건지...
그런 의문이 듭니다.
특히 중앙동의 매축지점은 구한말 1887년대부터 매축이 되었습니다. 지금의 부산데파트지점이라고 하더군요. 그후로도 일제시대때도 계속해서 매축이 되었고 해방후에도 부두를 계속 개설하면서 부산의 해안선은 변화해갔죠.
뭐 덕분에 영주동과 남포동의 낮은 산들은 토석 채취로 그냥 낮은 언덕이 되어버렸고 옛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어진 단점도 있긴합니다.
인천만해도 80년대와 비교해도 2~3Km이상 매립된 자리가 많아 어린시절 지도와 비교하면 참 느낌이 뭐합니다. ^^;
육지한복판인데 지명은 배곶이니 배다리니 지명만 남았군요.
황령산 터널 옆쪽에...
그리고 팬저님이 올리신 사진의 바로 아랫부분의 동네이름이 바로 "매축지 마을" 이죠
변박의 기록화는 증산의 모습과 정공단 주변을 나타낸것이 맞습니다. 가장 중요한 자성대주변의 부산진성 주장의 반박할 점은 임진왜란 부산진성전투의 기록에서 보면 1592년 음력 4월 14일에 저항하는 정발의 부산진성에 일본 고니시군이 들어가는 결정적 요인을 서문쪽 고지대에서 발사한 조총세례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낮은 북문쪽을 고니시군이 공격해서 성안으로 들어가죠. 당시 왜군의 조총의 사정거리는 아무리 많이 봐도 100m 남짓입니다. 자성대 인근에 부산진성이 위치하였다면 그 서쪽의 고지대는 주변 100m 근방에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정공단이 위치한곳에서 자성대까지만 해도 600m 가 넘습니다.
정공단 주변이 변박의 기록화에서 처럼 임진년 당시의 부산진성의 위치가 맞고, 왜군이 조총을 쏜 장소는 현재 금성중고 부근 언덕이 될 것입니다. 그 부산진성이 허물어지고, 이후 증산(현 좌성초등자리)과 자성대 부근에 왜성이 조성됩니다. 자성대 부근을 부산, 부산진성이라고 하는 것은 일본성의 위치로 지적하는 매우 위험천만한 것입니다. 모든 고지도는 임진년 이후의 자성대 부근의 부산진성을 나타내고 있으며, 임진란 당시의 모습은 변박의 기록화가 유일하며 당시 화풍과 동래화원의 성격으로 보아서 신뢰할수 있는 자료입니다. 아울러 변박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부산진성과 자성 사이의 물줄기는 동천이 아니라, 좌천(佐川)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며, 현재의 위치로는 기차철길또는 좌천역 부근 도로가 될것입니다.
또한 일본왜성중 범천증산성(좌성)에 대해서는 증산공원과 좌성초등학교를 둘러산 경계다라고 보시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