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해전 당시 왜군의 출발지 어란진성 진성(鎭城)

요즘 명량 영화가 화제죠. 일본 수군이 거제 칠천량에서 승리하면서 계속해서 서측을 전진하게 됩니다. 

이순신장군은 어란진에 8월 24일 함대를 이끌고 도착을 합니다. 8월 27일 왜선 8척이 어란포에 나타나자 이순신함대가 공격하여 물리칩니다. 이것을 어란포 해전이라고 합니다. 나중에 지도와 사진으로 나오겠지만 이곳 어란진은 아주 작은 곳입니다. 함대가 머물기도 불편하고 적과 싸우기도 불편한 곳도 있지만 일본 수군의 서진도 있고 해서 진도 벽파진으로 함대를 옮겨갑니다. 

이순신함대가 벽파진으로 옮겨가자 일본 수군들이 어란진으로 들어옵니다. 이후 왜군은 벽파진으로 진출하였다가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수군 함대에 의해 격파됩니다. 바로 벽파진 해전입니다. 전선55척이 도착하였다고 하는 부분도 난중일기에 적혀져 있습니다. 명량해전이 있기전 조선수군은 울둘목에서 준비를 하고 일본 수군은 어란진에서 진을 치고 결전을 준비를 합니다. 정유재란 당시에는 어란진은 진성이 없었습니다. 어란진성의 경우 정유재란이 끝나고 나서 1690~1765년에 축성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합니다

그 어란진은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땅끝 마을 가기전에 있지만 보통 땅끝마을로 가다보니 어란진은 잘 찾아가지 않는 곳이죠. 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현재의 어란리의 모습으로 김양식의 집결지가 어란진이라고 하네요.
공중에서 본 어란진의 모습 이미지출처 : 서해어업관리단 http://westship.mof.go.kr/popup/popup2-20.html
지금은 방파제로 만들어 놓았습니다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겠죠.
현재 아주 작은 고깃배들만 있는 작은 어촌입니다. 예전에는 선창은 사진에 보이는 곳이 아니고 하네요.
바닷가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 바로 어란 경노당입니다. 예전에 선소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고 합니다.
이 경노당 앞에 어란진에서 근무한 수군 만호들의 불망비입니다. 현재 어란진성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유일한 것이 불망비입니다. 일부 성곽이 남아있다고 하는데 팬저는 시간이 없어서 자세히 살펴보지 못하였습니다. 이 불망비는 원래 어란초등학교 앞에 있었던 것인데 1995년경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합니다. 불망비의 경우 사람들이 출입이 많은 곳에 설치를 하는데 보통 남문에 위치합니다만 어란진성의 경우 주출입문이 동문입니다. 그래서 동문 앞에 이 불망비가 놓여져 있었나봅니다. 동문 앞이 바로 어란초등학교입니다.
불망비의 경우 한꺼번에 모아 시멘트로 발라 놓았습니다.
어란진에 관한 안내판입니다.
담장은 보이지만 체성은 보이지 않더군요.
동문지로 추정하는 곳인데 정확하지 않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체성의 일부라고 하는데 팬저는 보지 못하였습니다. 이미지출처 :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정유재란이 끝나고 나서도 이 어란진은 수군의 기지로서 활약을 하였습니다.  1872년 지방지에서 본 어란진성의 모습으로 선소의 모습이 보이고 진성은 사각형으로 이루어져있으며 3개의 성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통 성문이 남문이 중심역활을 하는데 이 어란진성은 동문이 중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해남으로 연결하는 길 때문임을 알려줍니다. 객사는 북문 서측방향에 자리잡고 있으며 동헌은 북문에서 내려와 동문 근처에 있음을 알려줍니다. 어란진성은 평지에 자리잡은 평지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닷가를 보면 선박이 보이는데 기록에 의하면 중선이 4척, 수군 480명, 초공 4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미지출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
어란진성 예상도로 북문,동문,남문을 추정한것입니다. 일단 어란진초등학교 바로 앞에서 시작한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체성의 추정도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서 작성한 도면을 기준으로 다음지도에 대입한 것입니다. 어린진성의 규모는 여지도서에 의하면 둘레 1,407척, 높이 8척이며 호남진지에는 둘레 560보 높이 8척으로 기록 되어져 있다고 합니다. 동,남,북 삼문에는 옹성이 있었다고 하네요. 어란진은 1434~1530년 경 사이에 현재의 어란진이 있는 곳으로 이전하였다고 합니다. 어란진성은 1690~1765년에 축성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합니다.
어란진성을 정비,복원한다고 한 것이 2010년 부터 인데 아직 소식이 들려오지를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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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역사관심 2014/08/08 07:26 #

    여행하듯 잘 보았습니다!
    영화 명량때문에 이런 저런 담론이 생겨나는 것 자체가 이 영화의 미덕이라고 생각해요.
  • 팬저 2014/08/08 10:39 #

    그렇겠죠. 명량의 해전지를 여행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기도하네요. ^^
  • 도연초 2014/08/08 12:45 #

    울산, 사천 왜성과 똑같은 처지군요; 성벽이 민가의 담벼락이나 축대가 되어있고 한 게.
  • 팬저 2014/08/08 13:12 #

    울산왜성과 사천왜성은 다른데요. 혹! 울산읍성과 사천읍성을 이야기하시는지요? 울산왜성은 많이 무너졌지만 그럭저럭 남아있고 사천왜성은 복원을 하였습니다.
  • 잭 더 리퍼 2014/08/11 23:34 #

    울산읍성은 울산왜성짓느라 왜군이 돌을 다 가져갔는지, 성벽 밖의 해자만 골목길이 되어 흔적이 남아 있을 뿐 성벽은 담벼락으로조차 남은게 없고
    울산왜성은 학성공원이라는 이름으로 공원이 되었기 때문에 손상은 되었을지언정 건재합니다 by 울산시민
  • 팬저 2014/08/12 00:52 #

    예... 울산왜성은 울산읍성의 돌을 가져갔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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