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좌수영성의 성곽 원형 발굴 성곽 관련 뉴스



좀 늦은 성곽 관련 뉴스입니다. 지난 2014년 6월 말 부산 수영동에 있는 경상좌수영성의 성벽과 수구, 치성, 옹성, 문지가 발굴이 되었다고 하는 뉴스입니다. 


성곽 전문가인 나동욱 부산근대역사관 관장은 "큰 돌 사이에 작은 돌을 끼워 넣거나 중간중간 입석(立石)을 쌓은 것으로 봐서 조선시대 수군들의 성 쌓는 수법"이라며 "좌수영 성벽의 실체를 알 수 있다는 게 이번 발굴의 최대 성과"라고 말했다. 지난 24일 발굴 현장을 방문, 유구를 직접 확인한 문화재청의 한 문화재위원도 "조선 후기 성에서 성곽의 중요한 가치를 갖는 이런 유구가 한꺼번에 발굴된 경우는 매우 드문 일"로 평가했다. 


발굴된 경상좌수영성 체성의 모습이고 도로변(대성이용원 앞)의 경우 치성으로 보여집니다. 치성일지 적대인지는 전체를 발굴 해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보니 일단 치성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사진을 보면 기단석을 제외하고 3단 정도 남아있는 것이 보여집니다. 일단 사진상으로 봐서는 조선초기 연해읍성의 방식은 아닌 것 같으며 임진왜란 이후 축성한 것이 아닌가 추정합니다.

아래에 나올 사진 3장은 독일인이면서 우리의 성곽과 왜성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Jens-Olaf(옌스 올랍)님의 사진임을 알려드립니다. 사진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65817306@N00/
치성의 부분으로 도로에 의해 전체적으로 발굴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 발굴 조사된 수구로 수구 위에 넓고 평평한 돌을 올려 놓았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보니 배수관 공사를 하면서 수구 위에 있는 돌을 걷어낸 것 같습니다. 당시 배수관 공사를 할때 신고를 했다면 좀 더 일찍 발굴이 되었을 것인데 그냥 덮어 버렸던 것이 아쉬움을 줍니다. 
부산 수영구에 있는 수영사적원내에 있는 경상좌수영성 모형입니다. 이번에 발굴 조사된 지역은 북문인 공진문이 있는 곳입니다. 부산 수영구 수미로50번길 43이며 구 주소로는 수영구 수영동 416-2번지입니다. 다음 지도를 보니 발굴 조사중인 모습도 찍어 놓았더군요. 다음 지도 업데이트가 대단하군요. 
공진문앞에 보이는 옹성은 ㄱ자로 된 옹성인데 실제로 저런식으로 되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네요. 1872년 지방지에 있는 경상좌수영성의 옹성이 ㄱ자로 그려 놓은 것을 보고 ㄱ자로 옹성을 만든 것 같습니다. 
경상좌수영성에 북문에 사용한 성문이 공진문(拱辰門)입니다. 여기에서 공(拱)은 두 손 맞잡을 공이다. 손을 모아 가슴까지 들어 올려 공경한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辰은 별 진과 때 신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십이지(十二支)의 다섯째로 용을 상징합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용은 임금을 상징합니다. 즉 북측에 있는 왕을 향해 공경한다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공진문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곳이 몇 군데 있는데 김해읍성, 경주읍성의 북문에도 사용하였습니다. 또 통제영성의 북문보다 더 북쪽에 있는 성문이 원문입니다. 이 원문의 누각이 바로 공진문인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통제영성의 북문은 공북루(拱北樓)로 북측에 있는 대궐(왕)을 향해 공경한다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수군의 본영이라 그런지 임금을 공경한다는 성문이 2개나 있습니다.^^

공진문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는 성문의 명칭이 공북문인데 북측에 있는 대궐(왕)을 향해 공경한다는 뜻이 담겨져 있으며 창원읍성, 진주읍성, 전주읍성, 대구읍성, 광주읍성, 고창읍성, 공주읍성, 청주읍성, 통제영성, 전라우수영성에서 사용되었습니다. 

공진문과 공북문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는 것이 공신문(門)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신(宸)은 대궐 신자입니다. 즉 대궐(왕)을 향해 공경한다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공신문을 사용하는 읍성은 웅천읍성의 북문입니다.

북문은 사실상 많지가 않습니다. 북문이 있다는 것은 길거리가 +자 형태로 발달이 되었다는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다보니 북문이 있는 곳은 규모가 크거나 교통요충지의 경우에 북문이 있는 편입니다. 아무래도 수군의 영성이나 감영,병영성에는 북문이 있었고 읍성은 큰 규모의 읍성일 경우에만 4개 성문이 있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북문이 있었다면 임금에 대한 명세가 담겨져 있는 것이 성문의 당호입니다. 

여기에 비해 남문은 주로 진(鎭)자가 많이 들어간 이름을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즉 개선문과 같이 적을 진압하기 위해 남문으로 진출입을 하였기 떄문입니다. 특히 진남문을 많이 사용하였는데 창원읍성, 진해읍성(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김해읍성,충남 서산 해미읍성, 충남 보령 남포읍성, 광주읍성, 전남 강진읍성, 울산 언양읍성, 경북 상주읍성, 순천 낙안읍성, 순천읍성, 경북 청도읍성, 평북 구성읍성, 공산성인 공주읍성이 그렇습니다. 동문과 서문의 경우 다양한 이름을 사용하였는데 그래도 동과 서를 상징하는 청룡, 백호가 들어가는 용과 호가 많이 들어갔습니다.  



덧글

  • 연성재거사 2014/08/29 21:29 #

    흥미로운 내용 잘 봤습니다. 전라도나 경상도 모두 수영이 도시에서 교통이 좋은 곳에 있다 보니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라도 나타나니 반갑군요.
  • 팬저 2014/08/29 21:33 #

    예.도시화의 진행이 아무래도 성곽의 파손을 앞 당기죠. 그래도 전라우수영은 도심지가 아닌데도 발굴이 잘 이루어지지 않네요.
  • 역사관심 2014/08/29 22:00 #

    사진보니 말씀대로 도로공사중 덮어버린듯 하군요. 이제라도 발굴되어 천만다행입니다. 잘 남아 있네요.
  • 팬저 2014/08/29 22:11 #

    예... 역시 일제시대때 조사한 지적원도와 같이 그대로네요. 일제강점기때 성곽은 무너지고 해방후 도시화가 진행하면서 성곽은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 松下吹笙 2014/09/01 15:14 #

    복구 공사시 새로 사용되는 석재는 자연스러운 맛이 있으면 좋겠네요. 지방의 성곽들은 대개 자연석이나 일부 가공한 석재의 경우가 많은데 잘 반영이 안될때가 많더라구요
  • 팬저 2014/09/01 16:10 #

    원래 북측체성과 북문지 복원은 생각도 안하고 있다가 이번 조사에서 발굴이 되어 당황하다고 전해지더군요. 어떻게 진행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남문은 복원을 한다고 하였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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