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읍성 성산관의 명칭 통일에 관하여 읍성(邑城)



계속해서 뒷북치는 이야기입니다. 부산촌놈의 일터라는 블로거가 "경북 성주의 경우 성주읍성과 함께 객사와 동헌이 있었는데 객사의 명칭이 백화헌이라고 사용되고 있다. 보통 객사의 경우 OO관으로 사용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 하는 질문과 함께 성주초등학교 앞 표석에는 성산관으로 적혀있다. 어느 것이 맞는 것이냐?" 하는 내용을 성주군청에 문의를 하였다고 합니다. (원본 글을 보고 팬저가 축약한 것으로 원본 글은 링크 된 것을 참고하세요)


이에 대해 성주군 담당자는 "객사의 명칭은 대개 옛 지명을 사용하여 붙인다. 고령이 가야관, 경주가 동경관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성주목의 경우 성산가야에서 유래하여 객사를 성산관이라 한것이다. 백화헌의 명칭은 고려시대 관아자리를 조선시대에 들어와 이건하면서 객사로 고려말기의 인물인 이조년의 엣 집을 활용하게 되면서 그의 아호를 붙인 택호 백화헌이 일부 사용된 것으로 비롯되었다. 성문이 4개가 있었으나 명칭은 알 수 없고 동문을 벽청문이라고 하였다.나머지 성문의 경우 서,남,북에 백,적,황의 글자가 들어갈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하였습니다.

그에 대한 또 다른 글을 살펴보면 "조선시대 전국의 고을에는 객사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져 있었다. 객사의 명칭은 대게 고을의 이름을 그대로 썼는데, 당대의 이름보다는 옛 이름을 주로 사용하였다. 따라서 성주의 경우 객사의 이름은 성산관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읍지 등의 사료에서는 성산관의 명칭은 보이지 않고 백화헌을 객관이라 하였다고 경산지에 적혀 있다. 고려문하시중 이조년의 사저이던 것을 조선시대 목사 김광선이 그 터에 경산부 관아를 지어 백화헌이라 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1612년 목사 조희보가 중건을 하였다. 그 후로 소실과 중건이 한 차례 이어졌다." 라고 경상북도 문화재연구원에서 2002년 조사한 "성주읍성지표조사보고서"에 적어 놓았습니다.

경상북도 문화재연구원에서 이야기한 것을 보면 객사의 경우 성산관이 맞지만 사료에는 보이지 않고 백화헌을 객관이라고는 적혀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성주군에서는 성산관이 맞다고 이야기 해줍니다. 그러다 보니 부산촌놈의 일터 블로거가 느꼈던 것과 같이 인터넷에 이런 자료가 혼용되어서 활용되고 있으며 성산관을 방문한 블로그들의 이야기를 보면 어떤 분은 동헌이라고 이야기하고 어떤 분은 객사의 익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전체적으로 현재 사용되는 성주객사 성산관이 맞습니다. 객사의 명칭은 보통 고려시대나 신라시대때 사용한 고을의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많기 떄문입니다. 상당부분 그렇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팬저도 댓글에 성산관이 맞을 것이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동헌의 당호는 주로 백성을 구제하겠다고 하는 수령의 의지가 닮겨 있는 글을 당호로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많이 사용하는 동헌의 당호를 보면 

청녕헌(淸寧軒) 하늘의 뜻은 맑음으로 얻고 땅의 인심은 평안으로 얻는다. 
평근당(平近堂) 백성과 가까이 지내면서 고을을 평안하게 잘 다스리겠다.
안민헌(安民軒)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겠다. 
제민헌(濟民軒)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제하겠다. 
근민헌(近民軒) 부지런히 민심을 살피겠다.

이렇게 사용을 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는데 자연의 풍광과 관련하여 이름을 짓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뒷에 헌(軒)을 사용하는 경우 청녕헌,제민헌,안민헌,근민헌과 함께 종해헌,부림헌,풍락헌 등의 당호도 사용하였습니다. 헌(軒)이 아니고 당(堂)이들어가는 것을 보면 초연당, 매학당, 하모당, 양민당, 목애당, 와선당, 봉수당, 안회당, 음순당 등이 있었습니다. 

그에 비해 관(館)은 집 관으로 사용되고 객사(客舍) 와 관사(官舍)에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여러가지 정황적 증거로 봐서 성주의 성산관은 객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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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기 글을 작성하고 나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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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더니 몇 가지 발견을 한 것이 있습니다. 아래에 나오는 사진이 성주 성산관의 모습으로 동헌과는 다르게 생겼습니다. 100%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동헌은 대청마루를 기준으로 좌우에 방이 하나씩 있습니다. 그에 비해 객사의 익헌들은 마루와 방이 있지만 방은 좌,우측으로 몰려 있습니다. 좌익헌의 경우 방은 우측에 있고 우익헌의 경우 방은 좌측에 있는데 성산관을 보면 우측에 방이 있습니다. 이를 보아 좌익헌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에서도 이야기하였지만 이 성산관을 동헌이라고 이야기하시는 분들도 제법있습니다. 아무래도 성산관 앞에 적어놓은 안내판 때문 일 것으로 추정합니다. 아니면 인터넷 자료에 있어서 퍼오는 경우라 그럴 것입니다. (이미지출처 : 성주군청)
또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총독부가 조선전체를 돌아다니면서 조사하고 사진을 찍었는데 여러자료가 인터넷에 올라와 있더군요.  일제강점기 자료관을 보시면 일제강점기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주로 문화재 관련입니다. 일단 링크를 시켜드립니다. 일제강점기 자료관 클릭   사실 너무 방대한 자료임을 알려드립니다. 궁금한 내용들을 풀어 나가실 수 있을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이 일제감점기 자료관에 있는 PDF화일을 인터넷으로 다시 사진으로 올려 놓은 블로거인 입실론님의 자료입니다. PDF화일에도 자료가 있습니다. 두군데 모두 똑 같은 것입니다. 

여기에 성주객사 성산관의 모습이 올라와 있더군요. 일단 감상부터 해보시죠. 사진을 찍었던 시기는 아무래도 1920년대 이후 일 것으로 보여집니다. 일단 객사가 개조가 많이 된 것으로 보여서 말이죠. 여기 사진을 보면 현재 성주군에 남아있는 성산관의 익헌이 좌측이라고 하였는데 사진에서도 좌측이 맞네요. 

여기 사진을 보면서 이런 객사 어디서 많이 보았는데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진을 보시면 좌측에 있는 익헌보다 우측에 있는 익헌이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먼가 떠오르는 것이 있나요?
예... 바로 나주객사 금성관의 모습입니다. 금성관도 성주 성산관과 같이 좌우익헌중 우익헌이 좌익헌보다 규모가 큽니다.우리나라에 있는 객사중 가장 큰 것이 금성관인줄 알았는데 성산관도 만만치 않네요. 다만 성산관은 현재 축소되어 좌익헌만 남아있고 나주 금성관은 복원을 하였다는 것이 다릅니다. 아 그리고 나주의 금성관은 좌우익헌이 없고 정당만 있었는데 좌우익헌을 복원한 것입니다. 또 금성관의 자리가 나주시청자리였는데 이전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나주도 조선시대 나주목이었고 성주도 성주목이어서 좀 규모가 큰 곳이라 그랬는지 방문하는 분들이 많아서 그런지 몰라도 익헌이 다른 곳에 비해 규모가 크네요.(이미지 출처 : 한국관광공사 e북 청사초롱 430호 2012년 발행)
현재 성주읍성은 흔적이 많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일단 2002년 경북문화재연구원에서 성주읍성지표조사를 하였는데 그 당시 성주읍성 평면도와 구읍성 평면도가 그려져 있었는데 팬저가 그 자료를 기준으로 다음 지도에 표시하여 재정리 한 것입니다. 빨강색으로 표시한 것이 조선시대에 축성한 성주읍성으로 석성입니다. 파랑색으로 표시한 것은 조선시대 이전인 고려때 있었던 토성을 표시한 것으로 석성이나 토성 모두 추정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지도에 보는 것과 같이 객사는 성주초등학교 자리이며 동헌의 자리는 현 성주군청자리입니다. 객사터와 시,군청자리의 경우 전국적으로 비슷합니다. 객사터에 초등학교 동헌터에 관공서가 들어서는 형식이죠. 성주읍성은 4대문으로 구성이 되어져 있는데 동문이 벽청문이고 나머지 성문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나주군 담당자는 3대문은 알 수 없지만 백,청,황의 글씨가 들어갈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 부분에 관하여는 어떤 이야기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문헌이 있으면 아주 간단한 문제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알기가 힘이들기 때문이죠. 남문의 경우 보통 진남문이라고 사용을 많이 했습니다. 아무래도 이곳을 통해 군부대가 이동하니 적을 진압하고 오겠다고 하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 봐야겠죠. 진남문이 많이 사용하였다고 해서 성주읍성의 남문이 진남문일지 아닐지는 알 수 없습니다. 북문을 보면 북문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교통요충지이거나 규모가 큰 경우입니다. 보통 3대문만 가지고 있는 것인데 비해 4대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것을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4대문중 북문은 임금을 공경한다는 의미가 들어간 성문의 이름을 많이 사용하는데 많이 사용하는 것이 공북문이고 그 다음이 공진문, 공신문입니다. 동,서대문의 경우 방향을 나타내는 것을 많이 하는데 동,서를 이야기하거나 청용과 백호가 들어간 것을 이야기하거나 계절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동,서대문의 경우 워낙 다르게 사용하는 것이 많아 "이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하기가 힘이 드네요. 

일단 나머지 3대문은 좀 더 조사를 하여 정확하게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보다 현재 성산관이 동헌으로 알려진 부분에 관하여 조사를 하고 바로 잡아야될 것 같습니다. 어떤자료에는 동헌 어떤 자료에는 객사라고 적혀있다면 문제가 될 것 같네요. 일단 객사로 통일시켜 놓아야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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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부산촌놈 2014/09/07 17:53 #

    아마 성산관이 객사인 것은 확실해보입니다.

    그런데 서울과 가까운 과천의 객사는 관호가 온온사(穩穩舍)로 특기할 만합니다.
  • 팬저 2014/09/07 18:50 #

    성산관은 객사가 맞습니다. 과천 객사의경우 관사의 사입니다. 한문으로 집사 舍이니 충분하게 그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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