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대학 세계지도 서비스를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http://www.lib.utexas.edu/maps 미군정 시절 제작한 지도인데 1946년 지도입니다. 원본지도는 여기에 있습니다. 벌써 68년이 지났는데요. 현재의 지도와 비교하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그동안 서울 도성의 경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체성이 많이 무너졌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서울한양도성 홈페이지에서 도성의 역사를 살펴보면 "1899년 도성 안팎을 연결하는 전차가 개통됨에 따라 먼저 성문이 제 기능을 잃었고, 1907년 일본 왕세자 방문을 앞두고 길을 넓히기 위해 숭례문 좌우 성벽이 철거되었다. 이어 1908년에는 평지의 성벽 대부분이 헐렸다. 성문도 온전하지 못하였다. 소의문은 1914년에 헐렸으며, 돈의문은 1915년에 건축 자재로 매각되었다. 광희문의 문루는 1915년에 붕괴되었고, 혜화문은 1928년에 문루가, 1938년에 성문과 성벽 일부가 헐렸다. 일제는 1925년 남산 조선신궁과 흥인지문 옆 경성운동장을 지을 때에도 주변 성벽을 헐어버리고 성돌을 석재로 썼다. 민간에서도 성벽에 인접하여 집을 지으며 성벽을 훼손하였다. 해방 이후에도 도로 · 주택 · 공공건물 · 학교 등을 지으면서 성벽이 훼손되는 일이 되풀이되었다. "고 적혀있습니다.
▼ 즉 평지에 있는 성벽은 다 무너져 내렸고 성문은 없어졌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 1946년 지도를 살펴보고 남아있는 체성을 표시하여 보았습니다. 북측체성은 지도에 표시가 되지 않아서 생략을 했고 동,서,남측은 거의 남아있습니다. 동문인 흥인지문이 있는 곳은 체성이 없는 부분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동대문 운동장과 야구장이 있었던 부분입니다. 남문인 숭례문의 경우를 보면 주위에 있는 체성부분은 없음며 조선신궁이 있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남산방면은 잘 남아있었던 것 같습니다. 도성의 80% 이상은 남아 있는 느낌을 줍니다. 도성의 상징적인 부분인 성문은 거의 없어지고 체성은 남아있었다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상당부분 남아있던 체성은 한양도성의 중건으로 이어졌는데 1968년 1·21 사태 직후 숙정문 주변에서 시작되었으며 이후 1974년부터 전 구간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즉 20년도 안되는 시기에 걸쳐서 복원이 이루었습니다만 생각보다 상당부분이 많이 무너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발굴 복원한 이간수문으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동대문기념관으로 오는 길에 있습니다.

▼ 현재 복원되어 있는 이간수문과 도성의 체성으로 근 90년만에 제자리를 찾은 것 같네요.

▼ 복원은 아니지만 흉내낸 오간수문지로 위치도 다른 곳입니다. 오간수문지에서 50여미터 올라온 오간수교자리입니다.

▼ 남대문이 있는 숭례문의 모습으로 1946년도까지 조선신궁의 모습이 그대로 남겨져 있습니다. 남산의 봉수대는 그대로 표시되어져 있으며 남산으로 이어지는 도성의 체성은 그대로 보여집니다. 현재의 서울역앞으로 전철이 많이 지나갔네요.

▼ 1902년 한양의 모습으로 1946년의 서울의 모습과 비교하는 것도 재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1920년대에 제작한 지적도를 보면 한양도성이 언제 무너져 내렸는지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덧글
1933년 경성시가도 라던지
http://gis.seoul.go.kr/Information/PavilionPopup.jsp?mg_id=20101221024&CAT_ID=20101221002&CAT_TYP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