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 동헌 내삼문인 독진대아문 제대로 복원하는 것일까요? 읍성(邑城)



부산 동래읍성의 내삼문이던 독진대아문과 외삼문인 망미루가 원래 있었던 동래부 동헌으로 옮겨간다고 한 것이 지난 2014년 3월 이었습니다. 

부산의 국제신문에 따르면 "일제가 강제로 다른 곳으로 옮겼던 부산의 문화재가 100여 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온다. 부산 동래구는 일제 강점기 일제가 지금의 온천동 금강공원 자리로 옮겼던 동래부 동헌 독진대아문(동래부 동헌 바깥 대문)과 망미루(바깥 문루)를 원래 자리로 이전해 복구할 계획이라고 25일 밝혔다. 이 유물은 각각 부산시 유형문화재 5호와 4호로 지정돼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부산일보에서는 " 우리 민족정기 말살의 하나로 일제 강점기인 1930년경 아무런 연고도 없는 금강공원 숲 속에 버리다시피 했던 동래부 동헌 바깥대문인 '독진대아문(獨鎭大衙門)'이 80여 년 만에 동래부 동헌 제자리 인근으로 찾아간다.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5호인 '독진대아문'은 1636년 동래부사 정양필이 동헌 정당(正堂)인 충신당과 함께 지은 것으로 동래부 동헌의 바깥 대문이다.

1655년(효종 6) 동래부의 군사권이 경상좌병영 휘하 경주진영에서 동래독진(東萊獨鎭)으로 독립·승격되었음을 알리는 동래독진대아문(東萊獨鎭大衙門)이란 현판이 정면에 걸려 있다. 

동래구는 원래 망미루 뒤쪽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 시가지 정비계획에 따라 연고도 없는 지금의 금강공원 숲 속으로 방치하다시피 옮겨진 독진대아문과 금강공원 입구에 있던 망미루를 원래 자리 인근으로 이전·복원하기 위해 공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일단 예산은 15억원이며 8월에 마무리 지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현재 일제강점기 당시 찍어 놓은 독진대아문의 사진은 2장으로 아래에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인상깊은 것은 상당히 높은 솟을대문과 함께 대문에 단청과는 다른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동래부동헌을 상징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처음사진을 보면 독진대아문을 가기위해서는 경사가진 곳을 올라가야함을 알 수 있습니다. 독진대아문의 높이가 얼마 정도였을까요? 서있는 아전(?)들의 기준으로 보았을때 3미터가 더 되어보입니다.
▼ 또 다른 독진대아문의 사진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서있는 성인을 기준으로 봐서 가운데 문은 4미터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  그동안 부산 금강공원내에 있었던 독진대아문입니다.아문은 보이지 않습니다. 사진출처 : 부산시
 100년만에 옮겨가는 독진대아문에 관하여 부산시 공식 블로그에 잘 나와 있습니다.  http://blog.busan.go.kr/2925 

부산시 공식 블로그를 보면 독진대아문을 해체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독진대아문의 해체를 하고 현 위치로 옮겨와서 원래의 자재를 이용하여 다시 복원하는줄 알았는데 새로운 자재를 가지고 복원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팬저는 의문점을 가지고 인터넷에서 찾아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상리초등학교 46회 동문회 인터넷 카페에서 자료를 찾았습니다. 이미지출처는 상리초등학교 46회 동문회 인터넷카페 김정수님의 이미지입니다. http://cafe.daum.net/sangri46/1Hgc/823 

이 인터넷 카페에 자세히 나와 있더군요. 독진대아문의 상량식부터 기와잇기작업 등의 사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 한장의 사진을 가져와 보았는데요. 공사중인 장면인데 보시기에 어떠한지요. 독진대아문의 문 높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높이가 낮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일제강점기 당시의 독진대아문 사진을 가지고 아문의 높이를 측정해보았습니다. 남자아이들이 아닌 아전의 키를 기준으로 측정해보았습니다. 아전의 키를 160센치를 기준하였습니다. 더 큰 키 일 수 있겠지만 일단 160센치로 정하였습니다. 삼문중 가운데 있는 문은 대략 4미터 정도로 보이고 좌우문은 3미터 50센치보다 적게 보입니다.
 현재 있는 사진을 기준을 살펴보았습니다. 사진 좌측에 보이는 7단 사다리를 가지고 측정하였습니다.(좌우측은 거리의 차이 때문에 크기가 달라질 것입니다만 일단 무시하고 측정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즉 좌측으로 가면 2미터 기준이라고 적어질 것이고 우측으로 가면 더욱 더 커질 것인데 이를 무시하고 측정하였습니다. 오렌지색으로 된 부분은 좌우측의 높이를 계산하여 측정한 것입니다.세워진 비계를 기준으로 보시면 측정하기 편합니다) 7단 사다리의 크기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니 2미터에서 3센치정도가 부족한데 일단 2미터로 계산하였습니다. 우측의 아문을 측정하여 보니 초석을 제외하고 보니 3미터도 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다른 사진으로 기둥을 세울때의 모습으로 서서 작업하는 분의 키를 기준으로 대략 측정한 것입니다. 일단 170센치로 측정하여 계산해보니 3미터 정도 되어 보입니다.(초석위에서 계산한 빨강색선) 초석바닥까지 측정해도 3미터 40센치 보다 작은 높이입니다. 일제강점기 사진을 보면 초석에서 측정하니 3미터 20센치 정도 되어져 보입니다.
팬저가 보기에는 독진대아문이 일제강점기때보다 높이가 낮은 것은 아닌가 생각하는데 여러분들 보시기에는 어떠한지요? 어떻게 보면 맞을것 같기고하고 어떻게 보면 낮아보이는데 눈의 착시일까요?

준공된 독진대아문의 모습을 보시고 일제강점기때의 독진대아문과 비교해보세요.





덧글

  • 역사관심 2014/09/30 00:49 #

    확실히 낮아보입니다. 왜 사진까지 잘 나와있는 걸 다들 축소복원하는지... 관광측면에서도 하나 도움될게 없을 터인데요...
  • 팬저 2014/09/30 02:57 #

    그렇죠. 저만 그렇게 느끼나 생각했는데 말이죠.
  • 松下吹笙 2014/09/30 01:17 #

    아마.. 현존하는 독진대아문을 실측하여 설계를 하였기 때문에 높이가 낮아 진듯 합니다. 그리고 금강공원에 있던 아문의 높이가 낮아진 이유는 문을 옮기면서 기둥 하부 부식부위 및 초석 그랭이 가공으로 기둥 하단부를 잘라냈기 때문인듯 합니다.
    전 문짝에 그려진 그림들을 제대로 복원했으면 하네요. 대부분 그림 없이 무개성으 문짝들만 많아서..
  • 팬저 2014/09/30 02:58 #

    금강공원에 있던 독진대아문을 해체하고 나서 그 자제로 복원하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자재로 복원하는 것은 무엇때문일까요? 참으로 이해하기가 힘이 들더군요. 예,, 그림은 복원이 되었으면 하는데 그렇게 할지 지켜보아야 겠네요.
  • 松下吹笙 2014/09/30 09:54 #

    사진으로 봐서는 잘 모르겠는데... 단청을 다시하기 위해서 원부재의 단청면을 밀고 사용했을 가능성도 많습니다. 그러면 표면이 좀 거뭇 거뭇한 정도로 보이겠지요. 일단 조립과정의 사진을 보니 부재간의 색상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아 단청을 밀고 재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물론 실제로 확인해야 알겠지만요.
  • 팬저 2014/09/30 11:08 #

    망미루의 경우 원자재를 가지고 다시 사용하던데 독진대아문은 잘 모르겠네요.
  • 부산촌놈 2014/10/01 00:12 #

    제가 실제로 비 오는 날 저곳을 찾은 적이 있는데 금강공원에서 해체해서 가져온 목재들을 별다른 조치 없이 연심당 앞뜰의 임시 야적장에 쌓아뒀더군요.

    야적장에 지붕은 마련되어 있었지만 물기가 땅에 스며들어서 목재에도 물기가 약간 묻어 있더라고요.

    폐기하는 목재였다면 이해가 가지만 만약에 그걸 쓰기 위해서 거기 둔 거라면 지탄받아 마땅한 거라 생각합니다.

    사실 축대 쌓을 때부터 콘크리트와 시멘트 범벅이었고, 찬주헌은 본디 온전한 팔작지붕이어야 할 것이 객사의 익헌마냥 한쪽을 맞배 형태로 짓고(뒤에 복원될 공간이 마련되지 않아서 그렇게 지었다더군요. 현재 그 없다던 공간을 고마청을 복원한다고 밀고 있습니다;;), 독진대아문도 사실 독경당 앞에 있는 게 아니라 충신당과 내삼문과 축을 같이 해야 하는데 동래시장 상인들의 불편 때문에 임시방편으로 저렇게 복원한 겁니다.

    독진대아문 복원 위치만 제외하면 사실상 납득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데... 보여주기식 문화재 행정의 극치라고나 할까요?
  • 팬저 2014/10/01 00:27 #

    말씀하신것처럼 독진대아문은 동헌 앞에 있어야 하죠. 현재 설치된 아문은 영 고증에 맞지 않죠. 독진대아문이 현재의 아문에 설치한다고 해도 안맞는 것이 위치입니다. 제가 볼때에는 도로나 농협위치에 독진대아문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추정합니다. 그리고 그 앞에 망미루가 있어야 하는데 망미루도 딴 곳에 설치할 것으로 보입니다.
  • 부산촌놈 2014/10/01 00:15 #

    독진대아문 높이 문제에 대해서는 저도 송하취생 님의 추측대로 금강공원으로 옮길 당시 기둥이 부식되었거나 바뀐 주춧돌과 이를 맞추기 위한 그랭이 가공을 하면서 목재가 잘렸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하튼 동래구의 문화재 행정은 사람을 여러 모로 암 걸릴 것 같은 기분으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특히 찬주헌 복원에 대한 동래구청의 변은 정말로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밖에 안 나오더군요.
  • 팬저 2014/10/01 00:28 #

    그 높이는 일제강점기때 일본인에 의해 정해진 것이죠. 조선시대 독진대아문의 높이는 아니지요. 이왕 복원하는 것이라면 조선시대 당시의 높이로 복원하는 것이 맞지요.
  • 부산촌놈 2014/10/01 00:20 #

    아, 그리고 문의 높이 추정은 사람 키로 하기보다는 기둥에 걸린 주련을 기준으로 하시는 게 더 정확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 주련은 옛날 게 그대로 쓰인 것이고 가서 정확한 길이를 잴 수 있으니 말입니다.
  • 팬저 2014/10/01 00:29 #

    그 부분은 생각하지 못하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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