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도 확대 살펴보기 영성(營城)



경상우병영성이었던 진주성에 관한 자료가 제법 많이 있는 편입니다만 아마추어인 팬저가 이미지를 구하기에는 힘이들더군요. 현재 인터넷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진주성도는 아래에 나오는 진주성도로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보관한고 있는 진주성도입니다. 진주성도의 경우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는 진주성도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보관하고 있는 진주성도가 있는데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는 진주성도가 조금 오래되었다고 합니다. 이 두개의 진주성도 말고 경상도우병영지지도가 있다고 합니다.

▼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보관하고 있는 진주성도입니다. 보시다시피 진주성 전체를 잘 표현한 그림으로 1823년 그린 그림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을 보면 남쪽에 남강이 북쪽과 동쪽에는 인공으로 만든 해자인 대사지가 흐르고 있으며 서쪽에는 해자가 없는 것으로 나와있습니다. 하지만 진주성 즉 경상우병영성은 산위에 자리하고 있어서 서쪽에서 공격하려면 작지만 가파른 산을 올라와야 하기 떄문에 공격하기가 힘이 드는편입니다. 이렇게 보면 천혜의 자연과 인공적으로 만든 튼튼한 성곽임을 알 수있습니다. 또 외성과 내성으로 나누어져 있어 외성이 뚤려도 내성에서 방어를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저 진주성도를 좀 더 자세하게 구경하기가 힘이 들더군요, 그러던 어느날 진주시에서 발행한 진주시 도시계획사 표지에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보관중인 보물(제1600호)인 진주성도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일단 그 진주성도를 팬저가 핸드폰 카메라로 찍었으며 여러분께 공개합니다. 

일단 경상우병영성인 진주읍성의 북측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북장대로 사용하고 있는 진남루(鎭南樓)의 모습이 웅장하게 서있으며 외성 앞에는 대사지가 보입니다. 대사지에는 많은 연꽃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배도 한척 보입니다. 조선시대 읍성 내부에 연못을 만들고 그 안에 또 섬과 같은 것을 만들어서 풍류를 즐겼는데 대사지 안에도 누각을 만들어 놓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내성에는 현재 복원 공사하여 관광객들에게 개방중인 공북문이 보입니다. 그리고 경상우병사가 근무하였던 운주헌의 모습도 잘 그려져 있습니다. 진남루는 전쟁발생시 누각에서 지휘하는 곳입니다. 

보통 읍성에서 진남문은 남문으로 사용을 하였습니다. 말그대로 진압하러간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며 남문으로 출입을 하였습니다. 말그대로 개선문과 같은 것이 남문입니다. 그 남문에 사용하는 진남(鎭南)이라는 말을 북측에 있는 북장대에 가져와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방위각의 개념으로 본다면 진남루는 사용하면 안되겠지요. 북측인데 남(南)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니까요! 하지만 그곳에서 진두지휘하여 적을 없애겠다고 하는 의미로 진남루를 사용하는것입니다. 지금으로 보자면 사령부 건물이라고 해야겠지요.

▼ 진남루라는 남문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었던 읍성이나 산성,진성을 살펴보면 창원읍성, 진해읍성(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김해읍성, 충남 서산 해미읍성, 충남 보령 남포읍성, 광주읍성, 전남 순천읍성, 전남 강진읍성, 울산 언양읍성, 경북 상주읍성, 경북 청도읍성, 순천 낙안읍성, 평북 구성읍성, 충남 공주읍성 등에서 진남루를 사용하였습니다. 
▼ 대사지의 모습과 외성과 내성의 모습이 보입니다. 대사지를 보면 말그대로 큰연못입니다. 배가 다닐정도이니 크지 않다고 하면 이상한 것이겠지요. 이 대사지가 유사시 해자로 사용되었으며 평상시에는 풍류를 즐기는 공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내,외성을 자세히 보시면 성문과 같은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문의 경우 한문으로 친절하게 적어 놓았으니 잘 아실 것입니다만 조그마한 성문처럼 생긴것은 이름도 없습니다. 팬저가 보기에는 치성으로 보입니다만. 즉 치성위에 누각을 얹었던 포루는 치성 옆에 자리하고 있으며 제법 크게 누각처럼 그려 놓았습니다.
▼ 확대하여 보았습니다. 구,북문인 대인문은 누각이 1층인데 비해 공북문은 2층 누각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공북문의 성문은 둥글게 그려 놓았습니다. 
▼ 신북문인 지제문과 함께 동장대의 모습이 보입니다. 지제문을 나오면 길이 있는데 다리라 생각하였습니다만 다리가 아니라는 것이 보입니다. 다리위에 민가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다리위에 집을 짓고 살지는 않았겠죠. 동측 끝에는 북장대의 모습이 보입니다. 지제문을 지나 진주목사가 근무하는 동헌과 객사를 갈 수 있습니다. 홍살문이 있는 부근에 형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 신북문인 지제문과 남문인 예화문과 거리가 길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남문인 예화문에서 촉석문까지 길이 놓여져 있는 것도 그림에서 보여주고 있네요. 동측은 대사지로 가는 물이 흐르고 있어서 자연스러운 해자로 되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동측의 해자는 홍교를 지나 남강으로 흘러가는 것을 알 수 있으며 홍교는 상당히 높게 형성되어져 있습니다. 홍교의 홍은 무지개 홍(虹)으로 무지개처럼 둥글게 다를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남측지방에 읍성이나 수군 진성 주위에 홍교가 많이 있으며 전남에 더 많이 있습니다. 남문인 예화문은 옹성으로 방어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화문이 주 출입문을 알려주는 것이 바로 성문의 누각인데 보면 2층으로 되어져 있습니다. 북문인 공북문과 함께 2층으로 된 누각은 진주성에서 두개뿐입니다. 1층 누각이 아닌 2층 누각이라면 그만큼 위용이 있는 누각임을 알려주는 것으로 보통 성문이 아니었음을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것입니다. 즉 남문이 주 출입문이었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 촉석문과 촉석루가 보이며 남측 체성에는 암문이 3개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암문은 말그대로 작게 만들어 적이 알지 못하게 하는 문입니다. 그림에서도 남측 체성은 자연의 바위 위에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촉석루가 있는 부분을 확대해 본 것으로 촉석루의 모습, 삼충비까지 표시하여 놓았습니다. 촉석문은 내성과 외성을 오가는 성문으로 옹성이 없습니다. 현재 진주성을 방문하면 먼저 반기는 성문이라 이 문이 주 출입문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예전에는 주 출입문이 아니었습니다.
▼ 서측 체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서문인 의정문이 보이고 서장대가 보입니다. 서장대는 진주 남강변에서 잘 보이는 곳으로 높은곳에 자리하여 적의 침입을 막고 서측에서 지휘하는 곳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보관중인 진주성도에는 서문이라고 적어놓지 않고 의정문이라고 적어 놓았다고 하며 호국사도 산성사라고 적어 놓았다고 합니다. 이런 것이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보관하는 진주성도와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보관하는 진주성도의 차이점이라고 합니다. 이를 토대로 역사적 측정을 해보니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는 진주성도가 오래되었다고 합니다.
▼ 서측 체성과 함께 내성 안에 있는 건물들을 표시하여 놓았습니다. 운주헌,백화당,중영,진무청의 모습이 보입니다. 진무청에서 출발하여 중영을 지나면 나오는 문이 원문입니다. 이 원문을 지나면 운주헌이 나옵니다. 운주헌은 경상우병사가 근무하는 곳으로 읍성으로 치면 동헌과 같은곳입니다. 병영이나 수영에서는 운주헌이라고 사용하였고 감영에서는 선화당이라고 사용하였습니다. 원주,대구,공주,전주,개성,평양,함흥에서는 감영이 있어서 선화당이라고 사용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때 운주헌을 없애고 선화당이라고 사용하였습니다. 이는 경상도의 감영이었던 대구에도 선화당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선화당을 사용한 것은 경상도에서 경상북도와 경상남도로 나누게 되었기 때문이며 경상남도의 도청이라 선화당이라고 사용하게 됩니다. 이후 도청은 진주에서 부산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즉 감영이 있었던 선화당이 가장 높은 벼슬아치가 근무하는 곳이고 그 다음이 운주헌 그 다음이 동헌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진주성에는 진주 목사보다 높은 경상우병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경상우병사가 자리잡고 있으니 경상우병영성이 되는 것입니다. 진주목사가 자리하고 있었다면 진주읍성이 되겠죠. 하지만 계급이 높은 경상우병사가 자리하고 있으니 경상우병영성이 맞겠지요. 일단 계급이 높으신분이 성내에 있으니 계급이 낮은 진주목사는 성 외부로 나와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동헌을 짓고 행정을 펼쳐야 겠지요. 경상우병영성이 있는데 굳이 읍성을 만들 이유가 없겠지요. 그래서 읍성이 없이 읍치만 있습니다. 동헌(보장헌)을 중심으로 작청, 장교청, 향청, 주옥 등이 있는데 자세히 알 수가 없습니다.  
▼ 객사와 동헌 그리고 향청의 모습이 보입니다. 객사의 경우 좌우익헌이 자리하고 있으며 외삼문 옆에 봉명루의 모습이 보입니다. 진주 객사터는 구,MBC방송국이고 현재는 아파트로 사용중에 있습니다. 향청터는 예전 봉래초등학교 자리였으며 현재는 갤러이아 백화점 진주점으로 사용중에 있습니다. 동헌터는 KT진주지사로 사용중에 있습니다. 
좀 더 큰 사진이 있다면 성내부에 있는 건물들과 동헌 주위에 있는 건물들을 알 수 있을 것인데 말이죠. 




덧글

  • 無碍子 2014/11/02 12:25 #

    모르는 사람이 봐도 성벽 뿐 아니라 강과 해자로 방어되는 군사요새입니다.

  • 팬저 2014/11/02 12:35 #

    예... 군사도시이면서도 문화,예술이 넘치는 도시이지요. 현재 교방굿거리춤,진주농악 등은 무형문화재이기도 합니다.
  • 음유시인 2014/12/16 17:07 #

    진주사는 사람으로서, 서쪽의 의정문이 있는 곳에 의문인 점이 있네요.

    진주성 서쪽은 완전한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곳인데... 저렇게 성 바깥쪽으로 길을 낼 수가 있는건가요?

    현재의 진주성으로만 놓고 본다면 가능한 것으로 보이지가 않습니다.
  • 팬저 2014/12/16 17:07 #

    그곳이 생각했던 것보다 가파른 곳입니다. 그러다 보니 임진왜란 당시 왜군들이 서쪽으로 공격을 들어오지 못하였죠. 오로지 동측말고는 힘이들었다 봐야 할 것입니다. 저 그림에 그려진 서문은 맞을 것이고 서문이 있는 곳에 대한 경사도는 다를 것으로 보여집니다. 현재의 진주성은 1950년 이후 복원(뭐 복원이라고 말하기 그러합니다만)하면서 축성한 것이라 다를 것으로 보여집니다. 예전에 그려진 그림이 맞다는 이야기이죠. 진주박물관 내부에 진주성 모형이 있다고 하는데 그곳에도 서문이 있을 것입니다. ^^ 저도 다음에 한번 진주박물관을 가보아야 할 것 같네요.
  • 음유시인 2014/12/16 17:53 #

    지형자체가 그 때와 지금이 달라졌을것 같지는 않고...

    아마 저 때의 성벽이 서쪽평지로 더 넓게 퍼져나갔다고 밖에 생각할 수가 없네요.

    아.. 그리고 진주성 고지도에 대한 자료는 진주시 서부도서관이라는곳에 진주성 고지도만 모아놓은 책자가 있는걸로 아는데...

    혹시나 방문할 기회가 있으시면 한 번 찾아 보시는것도 좋으실것 같네요.
  • 팬저 2014/12/16 18:51 #

    진주 서부도서관에서 자료를 만들어 올려주시면 더 좋을 것 같네요. 아무래도 시간적이나 여러가지 사정으로 가지 못하는 분들 있으니까요? 서문의 경우 지도에 그려진 것과 같이 그곳에 있었을 것입니다. 서측이 가파른 곳은 틀림이 없으나 높이가 그렇게 높지 않은 곳이고 사람들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은 충분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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