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하늘과 함께한 청도읍성_01 읍성(邑城)



1년전에 답사를 다녀왔던 청도읍성에 관한 글을 이제야 적게 되었습니다. 청도읍성은 경북 청도군 화양읍에 있는 읍성으로 화양읍성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청도읍성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청도에 기차길을 놓을때 화양이 아닌 현재의 청도읍에 기차길을 놓았습니다. 그 이후 각종 관공서들이 청도읍으로 이전을 하게 되었고 조선시대 청도의 중심지였던 화양은 조그마한 읍으로 되어졌습니다. 이러한 조건이라면 다른 곳의 읍성에 비해 잘 보존이  되어야 하는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남아있는 것은 하단부 일부만 남겨져 있으며 북측체성과 동측체성 일부만 복원된 상태입니다.

▼ 해동지도에서 본 청도읍성입니다. 보통 지도에 북측은 위로가고 남측은 아래로 가는데 이 해동지도는 북측이 아래에 있으며 남측이 위에 있습니다. 성문은 3개이며 남문이 보이지 않습니다. 지도를 보면 동측과 서문에 길이 놓여져 있으며 동,서문이 활발하게 보입니다. 따라서 다른 곳과 달리 청도읍성은 동문과 서문이 주 출입문으로 보여집니다. 동문 옆에 또 하나의 성문으로 보여지는 것이 있습니다.  북문 옆에 형옥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객사는 동측으로 방향을 잡고 있습니다. 또 사각형으로 된 읍성이며 여장도 표시하여 놓았습니다. (이미지 출처: 서울대학교 규장각)
 경상도읍지(1832년경)내에 있는 청도의 모습으로 이 지도는 남측이 위측에 북측이 아래측에 그려 놓았습니다. 청도읍성의 경우 조금 타원형이 있는 사각형의 읍성이며 성문은 3개가 그려져 있습니다. 해동지도와 마찬가지로 여장은 다 그려져 있으며 북문앞에는 형옥이 있는데 형옥은 둥근형태로 된 담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경상도읍지를 보면 서문이 가장 활발하게 그려 놓았으며 서문이 중심문이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영남읍지(1871년)에서 본 청도군의 모습으로 청도읍성의 경우 정사각형에 가꾸운 읍성이며 성문이 4개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 지도도 북측이 아래에 남측이 위로 그려 놓았습니다. 위에 나온 경상도읍지의 경우 1832년에 만든 지도이고 아래에 나오는 영남읍지는 1871년입니다. 40년 사이에 남측에 성문이 만들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1832년 이후와 1871년 사이에 만들어 졌다는 것을 알려줍니다.(이미지 출처: 서울대학교 규장각)
 1872년 지방지에서 본 청도읍성입니다. 이 지도는 위가 북측이나 남측이 아니고 동측입니다. 1872년 지방지에는 정 사각형에 가까운 읍성이며 4개의 성문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남문 가까이에 동헌이 있고 읍성 정 가운데에 객사가 있습니다. 서문 근처에 시장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서울대학교 규장각)
▼ 청도군읍지(1899년)의 모습으로 이 지도에서도 남측이 위로 북측이 아래에 그려 놓았습니다. 이 지도에도 정사각형에 가까운 읍성이고 성문은 4개가 그려져 있습니다. 또 출입문은 동,서문에 길을 표시하여 놓았습니다. 보통 남문이 주출입문을 사용하는 것에 비해 청도읍성은 동,서문이 중심이었음을 알려줍니다. 그나저나 이 청도근읍지 지도가 1899년 지도라고 합니다. 그 시대 당시 세계적으로 사용하던 지도와는 너무 회화식으로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서울대학교 규장각)
 청도읍성 동문지에 그려져 있는 청도읍성 안내도의 모습으로 이 조감도에도 북측은 아래에 남측이 위로 그려놓았습니다. 그리고 객사인 도주관은 방향이 남북으로 그려 놓았는데 잘못된 것입니다. 도주관은 동,서방향으로 형성되어져 있기 때문에 도주관은 동,서방향으로 그려 놓아야 합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아주 중요한 것인데 이런 부분은 수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청도읍성은 북문만 복원하였습니다. 지도에 보이는 동문,서문은 아직 복원하지 않았습니다. 또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4개의 성문이 있었는데 남문은 그려 놓지 않았네요. (이미지출처 : 오솔길님)
 다음 지도에 청도읍성을 표시한 것입니다. 성문은 4개 모두 표시하였으며 암문으로 보이는 부분까지 표시하였습니다. 화양초등학교에 있는 동헌과 객사인 도주관을 표시하였으며 연지와 형옥도 위치를 잡아 표시하여 놓았습니다. 청도읍성은 정사각형에 가까운 읍성입니다만 남측에 자리잡고 있는 청도향교 때문에 체성이 조금 이상하게 형성되어져 있습니다. 예전 조선시대때 형성된 길 모두 남아있는 것이 한눈에 들어오며 동서방향으로 놓여져 있는 길과 남북으로 형성된 길은 근대에 들어서 길을 만든 것이고 이런 길을 제외하면 조선시대 그대로 길이 형성되어져 있고 남아있습니다. 남문의 경우 3개인데 추정입니다.
▼ 동문지 근처 주차장앞에 놓여져 있는 청도읍성 안내도로 이 부분은 위에서 설명을 해드렸습니다.
 여러개의 선정비가 놓여져 있으며 이곳이 청도의 중심지였음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위의 사진과 같이 선정비가 똑바로 세워져 있으면 그래도 나은편이고 일부 선정비들은 높혀져 있는 것들도 있었습니다.
 귀부들도 주인공을 찾지 못하고 자리잡고 있더군요. 원래의 선정비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현재 복원되어져 있는 동측체성의 각루 부분입니다. 보시는 바와 마찬가지로 체성이 너무 낮게 복원한 것을 보여줍니다. 대략 1.5미터 정도 복원한 느낌을 줍니다. 그나마 여장이 자리하고 있어서 2미터 이상 되어져 보이지 여장을 복원하지 않았다면 아주 낮게 복원한 것을 보여줄 것 같습니다. 읍성이 상대적으로 낮게 축성하였지만 복원한 청도읍성 체성 만큼은 아니지요. 저정도라면 금방 뛰어 넘을 것 같은 아주 적은 높이입니다.
 동측체성입니다. 여기도 마찬가지이지요. 축성한 방식은 조선전기 연해읍성에서 축성한 방식으로 아래에 큰 돌이 있고 위로 가면서 작은 돌로 축성한 방식입니다. 여장과 여장사이에 빈 공간이 보이는데 저것을 타라고 합니다. 저기에서도 사격이 이루어지겠죠.  타가 있는 부분만 보니 얼마나 낮게 복원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장은 평여장으로 축성되었으며 총안은 가까운 거리와 먼거리 사격을 하기 위해 둘 다 만들어 놓았습니다. 또 여장과 체성 사이에 미석을 만들어 놓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각루부분으로 성돌은 6단으로 구성되어져 있을 정도로 아주 낮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성돌 사이에 담쟁이 나무가 둘러싸져 있는데 운치가 있어보이는 장점은 있네요. 어떤 분은 담쟁이 나무가 둘러있으면 체성을 튼튼하게 하지 못한다고 하던데 이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네요.
 일단 잔돌끼움 방식으로 체성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방식으로 복원하는 것이 시간도 적게 걸리고 품도 적게 할 거 같습니다. 조선후기로 접어들면서 정방향쌓기나 장방향쌓기로 복원한다면 성돌을 다듬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가 요즘 복원하는 읍성이나 산성,진성에서는 잔돌끼움 방식으로 많이 복원하더군요.
 파란하늘과 함께 일직선상으로 이어진 북측체성입니다.
북측체성에 관해서는 다음편에 이어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덧글

  • 베로 2014/11/21 16:30 #

    성벽이 너무 낮은 것 같네요. 조선시대에도 저랬다면 저 성벽을 넘는 게 그리 어려운 게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 팬저 2014/11/21 16:38 #

    복원하면서 너무 낮게 복원한 것 같습니다.
  • 돌고래N 2014/11/22 07:35 #

    식물은 뭐가 됐든 분비물이 돌을 부식시키니 관리면에선 없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원래는 높이 몇 미터쯤 돼야 하나요? 확실히 옛날 약수동에서 장충체육관 뒤까지 가는 남산 성벽보다는 낮습니다만..

  • 팬저 2014/11/22 11:00 #

    읍성은 보통 4~5미터에다 여장까지 합치면 5~6미터정도 되거나 여장까지 합쳐서 7미터도 되는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에 비해 청도읍성은 너무 낮는 것 같아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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