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품페이라 불리는 풍납토성은 5층 높이 성벽이었다 성곽 관련 뉴스



지난 2011년 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시행된 동쪽 성벽 발굴조사를 토대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풍납토성은 풍납토성 동쪽 성벽은 기원후 3세기 중후반에 착공하여 4세기 중반 이전에 처음 완공되었고, 이후 4세기 말과 5세기 중반 두 차례에 걸쳐 증축되면서 규모가 확대되었다고 하며 최대 아파트 5층 높이에 이르는 거대한 성벽이었다고 합니다. 아래 이미지는 서울 한성백제박물관에 있는 동측성벽 모형을 재현한 것으로 성벽위에 있는 모형과 아래에 토성을 축성하는 사람들과의 차이가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흙벽중 남아있는 높이는 대략 8m 정도가 될 것으로 추측된다고 합니다. 성벽을 컴퓨터 모형화한 결과, 처음 성벽이 건설되었을 때의 높이는 10.8m였고, 두 차례의 증축을 거치면서 최대 13.3m까지 확대되었음이 밝혀졌다고 합니다. 토성이 13미터라면 엄청 높은 높이이고 조선시대 축성한 읍성의 높이 평균 4~5미터와 엄청 차이를 보여줍니다. 이렇게 토성을 높게 축성한 것은 적으로 부터 보호하겠다는 방어적인 의미도 있겠지만 한강의 홍수로 부터 보호하고자 하였던 것은 아닐까 추정해봅니다.
발굴 조사후 언론에 공개된 풍납토성의 모습으로 체성을 축성한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진을 보면 흙의 색상이 다른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축섷하는 시기가 달랐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 토성을 축성할 때 판축식으로 축성하였음을 알 수 있고 그 옆에 돌이 많이 있습니다. 이는 판축식으로 축성한 후 다시 돌로 덮은 뒤 두 차례에 걸쳐 성 안쪽으로 성벽을 덧쌓은 흔적을 확인한 것이라고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이야기합니다. 가장 하단을 보면 흙색깔이 어두운 색상을 보여주는데 평균 50㎝ 두께의 뻘흙이라서 색상이 그런 것입니다. 뻘흙은 매우 끈적끈적하고 질겨 건물 기반을 단단하게 다지는 기초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복원된 풍납토성의 제원(체적 704,200㎥)과 중국 당나라 『통전(通典, 801년)』에 기록된 인부 1인당 하루 작업량(19.95尺3=0.51㎥)을 비교했을 때, 풍납토성의 건설에는 연인원 138만 명 이상이 투입되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 정도라면 국가적인 프로젝트이고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것 만큼 국가의 운명을 가지고 투입한 국가적인 프로젝트였음을 증명해줍니다. 그도 그럴것이  4∼5세기 무렵 백제의 인구가 70만∼80만 명 수준으로 추정되는 것을 감안할 때 상당수 백성이 성벽 축조에 나섰을 것으로 보여지고 몇 번에 걸쳐서 참여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울 한성백제박물관에 있는 풍납토성 추정 모형
풍납토성이 3세기 중,후반부터 건설되었다고 하는데 그 이전부터도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풍납토성은 전체둘레가 3.5km이고 신라 경주의 월성이 1.8km, 고구려의 국내성은 2.7km 정도에 불과한 것을 볼 때 풍납토성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풍납토성은 백제 초기 역사를 다시 쓰게 할 정도로 위력적인 역사 유적으로, 이른바 ‘한국판 폼페이 유적’으로 불리어도 무방할 정도라고 하며 수 많은 유적들이 나왔고 더 많은 유적들이 묻혀져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풍납토성내에 입주하고 있는 주민들의 재산권이라는 측면이 있어서 진행하는데 애로사항이 있는 편이라고 하네요.  

이미지 출처: 국립문화재연구소 보도자료




덧글

  • 역사관심 2014/12/04 05:18 #

    10미터면 발해고에 전하는 고구려 국내성의 높이와 거의 비근하군요. 그런데 저 흙벽을 다시 돌로 둘렀다는 것은, 외장은 돌로 다 감쌌다는 것은 아니겠죠 (정말 그렇다면 대단한 모습일텐데...).
  • 팬저 2014/12/04 10:41 #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흙벽을 쌓고 그위로 다시 돌로 감쌌다고 하며 2번의 증축이 있었다고 합니다. 뭐 돌이라고 해서 석성처럼 쌓았던 것은 아니고요.
  • 레이오트 2014/12/04 09:33 #

    실제로 저런 수평지향적인, 즉 넓은 흙벽이 현대 화기에 의외로 잘 버틴다고 합니다. 오히려 수직적인, 즉 높은 석벽은 전장식 캐논에도 허무할 정도로 쉽게 무너지지요.
  • 팬저 2014/12/04 10:40 #

    예... 현대화기에 석성은 무너지기 쉬울것인데 반해 토성은 더 오래 견딜 것입니다.
  • 레이오트 2014/12/04 10:44 #

    실제로 총포가 전장의 주역이 된 이후 축성된 유럽의 성이나 요새를 보면 높이보다는 두터움을 지향하고 있지요.
  • 팬저 2014/12/04 10:46 #

    예.. 그렇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역사관심 2014/12/04 11:52 #

    그럴 것 같습니다. 포로 때려도 우르르 무너지는 대신 판축식은 약간 내려앉는 정도가 될것 같아요. 뚫어서 부수기도 힘들고, 왠만한 포탄은 박힐 것 같구요.
  • 팬저 2014/12/04 12:52 #

    예... 저정도의 두께라면 직사포에서는 안심이죠. 라면 먹고 있어도 안전 할 것 같습니다.
  • 연성재거사 2014/12/04 10:19 #

    화약무기가 등장하기 전의 성벽이니, 기본적인 높이가 있었겠죠. 해자가 있더라도 말입니다.
  • 팬저 2014/12/04 10:41 #

    예..가면 갈수록 성벽의 높이가 낮아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돌고래N 2014/12/04 22:34 #

    파면 팔수록 나오나보군요. 와.. 별 수 있나요.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국익을 말하려면
    풍납동 주민들에게도 국익을 말해야 하겠습니다.
  • 팬저 2014/12/04 23:10 #

    풍납동은 예전 공사하기전에 했으면 했는데 지나가버려 이제는 많이 힘들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 누군가의친구 2014/12/05 01:48 #

    풍납토성을 왕성으로 보고(출토 규모와 넓이를 보건데 현재로썬 유력.) 건축연도가 3세기가 처음이라는 연구결과와 대입해보면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에 대해 신뢰성을 다시금 검토해야 하겠지요. 저게 사실이면 백제가 적어도 200년 정도 건국연도를 끌어올렸단 소리가 됩니다.
  • 돌고래N 2014/12/05 03:47 #

    다르게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풍납토성은 백제 전성기에 지었다고 말이죠.
    본문에 나오는 정도로 많은 인력은, 건국시점보다는 어느 정도 기틀이 잡힌 뒤라고 해야 그럴 듯 할 것 같습니다.
    http://ko.wikipedia.org/wiki/%ED%92%8D%EB%82%A9%ED%86%A0%EC%84%B1
  • 팬저 2014/12/05 10:49 #

    풍납토성때문에 사학가들이 멘붕이 왔다고 하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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